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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83화 (183/200)

183화. 회복 (4)

조부의 치료가 시작된 후부터만 따져도 벌써 닷새째였다. 그러니 단유소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시간은 더 길었다.

단유소를 치료하기 위해서 조부는 그야말로 온 정성을 쏟았다.

백리우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이 석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조부 본인이 이 석실을 비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생리 현상을 해결할 때나 씻을 때, 식사를 할 때 등,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물론 조부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에 이 석실을 지킨 사람은 자신이었다.

조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저 수많은 침들을 뺐다가 꽂기를 반복했다. 진땀을 흘려가면서.

단유소에게 뭔가를 먹이거나, 그의 몸을 닦아주거나, 심지어는 생리 현상을 해결해주는 일까지 모두 조부가 도맡아서 했다. 자신이 하겠다고 해도 조부는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조부의 그런 정성 때문인지, 단유소의 상태도 이전보다는 호전되었다. 영약의 효과 때문인지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모두 아물었고, 치료하기 전에 비해 호흡도 매우 안정되었다.

그제 밤부터는 체내에서 미약하게나마 진기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유소가 이렇듯 오래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게 걱정스러웠다.

치료를 시작할 당시에 반드시 깨어나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조부도 최근에는 초초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지금 조부는 좀 씻겠다며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아우야, 많이 잤잖느냐. 이젠 일어나야지.”

한 손으로 단유소의 머리카락을 다듬어주며 백리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물론 대답이 들려올 턱이 없었다.

백리우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후에 석실 구석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 상태로 벽에 뒤통수를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애초에 산동 쪽은 조사하지 말라고 했어야 옳았을까?

몰래 표익을 보내어 비밀리에 호위하게 했어야 옳았을까?

아니, 처음부터 아예 신룡대에 기용하지 않는 편이 옳았을까? 그러면 묵룡이 될 일도 없었을 테고, 이런 일이 벌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했어야 자신의 이 이복동생이 무사할 수 있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잘못이다. 내가 미안하다, 아우야.’

백리우가 괴로운 듯,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리고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 이러다가 영영 깨어나지 않는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 생각을 하던 백리우의 입술 선이 비틀어졌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절대로 혈천맹에 속한 자들을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연관된 자들이 정치 세력에 속해 있다고 해도 상관치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이 일에 황제가 연관되어 있다면, 황제마저도 죽일 것이다.

백리우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때였다.

팅!

문득 그런 소리가 들려왔음에도 백리우는 눈을 뜨지 않았다.

이 석실에 있다 보면 종종 들리는 소리였다. 단유소의 몸에 꽂혀 있던 침이 떨어지는 소리다. 신체의 뒤쪽에도 수많은 침들이 꽂혀 있는 탓이다.

어차피 침술을 펼치는 건 조부이기에, 자신은 떨어진 침을 따로 모아두기만 하면 된다. 조부가 그것을 소독하여 다시 꽂는 것이다.

잠시 후에 주을 생각으로 백리우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을 때였다.

팅! 티딩! 티디딩!

연이어서 침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했다.

가끔 하나씩 떨어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처럼 몇 개가 동시에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던 탓이다.

백리우는 눈을 뜨자마자 더 크게 눈을 떠야 했다.

팅! 티디디디디디딩!

단유소의 몸에 꽂혀 있던 침들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했던 탓이다. 떨어져 내리고 있는 침들은 주로 몸의 후면에 꽂혀 있던 것들이었다.

백리우가 벌떡 일어나서 단유소에게 가까이 갔다.

살펴보니, 몸의 정면에 꽂혀 있던 침들도 저절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놀란 백리우가 얼른 석실의 문을 열고 바깥에 지시했다.

“어서 할아버지를 모셔 와! 어서!”

백리극이 도착했을 때는 단유소의 몸에 박혀 있던 대부분의 침들이 빠져 있었다.

빠지지 않고 아직까지 박혀 있는 침들도 일부 있었다. 그 숫자는 수십 개 정도였다.

백리우가 빠진 침들을 부지런히 정리하는 가운데, 백리극이 단유소를 진맥하며 그의 신체를 유심히 살폈다.

침들을 치우던 백리우가 보니, 백리극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좋은 징조라도 있는 거예요, 할아버지?”

그러자 백리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스스로 빠지지 않은 침들이 있지? 그 위치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이라뇨?”

“무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맥(脈)들이 있지. 빠지지 않고 여전히 박혀 있는 침들은 모두 그 맥들과 연결되는 부위에 있는 것들이다.”

“그 말씀은…….”

백리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백리극이 대꾸했다.

“그래. 이 아이의 신체가 스스로 더 이상 필요 없는 부분의 침들을 알아서 밀어낸 것이다. 그에 반해 맥과 연결된 부위에 꽂혀 있는 침들은 처음 꽂았던 깊이에서 조금도 밀려나오지 않았다. 즉, 기의 통로들과 혈은 아직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게지.”

백리극이 바로 말을 이었다.

“체내의 상태는 더욱 안정되었고 진기의 순환도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조건이 충족된 지금, 이 아의의 신체가 알아서 이 아이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관리는 치유겠지. 현재 이 아이의 신체는 자연 치유력이 극도로 활성화된 상태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너조차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백리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질 때,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단유소를 바라보던 백리극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헛! 허허헛! 이 녀석……, 어느새 대라유유선공을 대성했던 게야. 허허허헛!”

“그 대라유유선공이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이처럼 신묘한…….”

“이 할애비도 대성한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확실한 건 모른다. 다만, 대성했을 경우,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신체가 알아서 회복하기 시작한다는 건 안다. 천수가 다하지 않은 한은 말이지. 비급의 첫 장에 적혀 있었다. 물론 이 아이는 그 사실까진 모르고.”

놀람의 연속이었다.

사실, 수많은 비급들이 첫 장에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스스로 대단한 무공이라며 자찬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허황된 내용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대라유유선공이라는 비급의 경우, 결코 허황되다 여겨지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게 있기 때문이다.

백리극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이 아이는 조만간 깨어날 것이다. 이제는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구나.”

백리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내 침술도 침술이지만, 너희들이 이 아이에게 먹였던 영약들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천마신교의 그 꼬맹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야겠구나.”

단유소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에 석실 안의 분위기도 좋아졌다. 백리극과 백리우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 참! 이 아이 말이에요. 연애해요.”

“오! 그래? 어떤 처자냐?”

“보면 할아버지도 깜짝 놀라실 거예요. 천하제일미녀거든요.”

“호오. 내가 알기로 요즘 천하제일미라고 불리는 아이는 현월곡주의 제자라던데.”

“예. 그녀예요.”

그러자 백리극이 약간은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듣기로 매우 똑똑한 처자라고 하더구나. 보통 똑똑한 데다가 얼굴까지 그렇게 예쁘면 버릇없게 컸을 공산이 큰데……. 현월곡이라는 든든한 배경에서 얼마나 대접받으면서 자랐겠느냐.”

“할아버지가 뭘 염려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래?”

“예.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하는 짓도 예뻐요. 고마움을 아는 친구고 희생을 아는 친구거든요.”

“오호!”

“무엇보다도 그녀가 이 아이를 정말 좋아해요. 직접 보면 아마 할아버지가 제일 예뻐하실 걸요?”

백리극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그가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그물망 위에 누워 있는 단유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색싯감도 구하고.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누. 다 컸구나, 다 컸어.”

백리우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상태로 조손간에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백리극이었다.

“그 불한당들 상대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백리극이 말한 불한당들이란 당연히 혈천맹이었다.

백리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인생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도 없이 살아왔는데, 업보치고는 너무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업보에 관련된 말은 농담이었다. 그걸 알고 백리극도 미소를 보였다.

“그 불한당들을 몰아낼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고?”

“예. 천마신교주도 잘해주고 있고, 소수궁에서도 도움을 줄 모양이고요.”

“그래. 천마신교주와 함께 있는 걸 보니 단순한 연합 이상의 돈독한 게 느껴지더구나. 너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재주가 있었지. 아마 이 할애비와 네 애비였으면 그러지 못했을 게다. 그래서 대견하구나. 잘될 게야.”

백리우가 빙그레 웃었다.

잠시 후에 백리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와 함께 적들의 본거지를 밝혀냈어요. 조만간 결전이 벌어질 거예요. 사기를 위해서라도 저 또한 전장에서 함께 싸우며 진두지휘를 해야겠죠.”

“맹의 일은 윤이 그 아이에게 맡기고?”

“윤이는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지만, 특히 전략이나 전술 부분에 더 뛰어나요. 그렇다면 녀석도 현장에 있는 게 좋겠죠.”

“큰 싸움을 벌이려면 맹에서 여러 사안들을 제어하며 후방 지원을 도맡아야 할 게다. 한데 너와 윤이가 모두 현장에 가면 맹이 비지 않겠느냐? 믿고 맡길 만한 인재는 있느냐?”

“현월곡주가 도와줄 거예요.”

“그는 뛰어난 인재지. 그러나 영향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으냐? 하면 통제도 힘들 터인데.”

역시 전전대 무림맹주다운 정확한 판단이었다. 백리우가 대꾸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드리려고요. 하면 제갈 숙부께서도 도와주실 것이고. 두 분도 누구보다 현 강호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실 테니, 도와주실 거라고 봐요.”

그 말에 백리극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아들과 손자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손자인 백리우가 그의 아비인 백리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간 네 애비와의 사이는 많이 풀렸느냐?”

“아뇨. 달라진 게 있다면 저도 나이를 먹었다는 정도겠죠. 아버지가 잘못하셨던 건 분명하지만, 솔직히 저도 너무 그 일을 어머니의 일과 결부시켰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할애비도 딱히 네게 뭐라 하지 않았던 것이고. 어쨌거나 네가 그런 마음이라니 다행이구나.”

“어쩌겠어요. 그래도 아버지잖아요. 이런 식의 사이가 지속되어봐야 그 누구에게도 득이 없는 게 사실이고. 어쨌거나 아버지가 이 일을 승낙하셨으면 좋겠어요.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만에 하나…….”

“네 아비는 당연히 도울 것이다.”

백리우의 말을 끊으며 백리극이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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