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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78화 (178/200)

178화. 한설연의 대비책 (3)

신형을 뒤로 빼는 와중에도 광응은 빠르게 두세 군데의 혈도를 짚고 있었다. 어깨와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 쪽이었다.

세 곳에 입은 상처 모두 얕지 않았다. 특히 옆구리의 상처는 깊은 편이었다. 상처의 정도도 그렇지만 부위를 생각해도, 이후에 무공을 펼치기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을 듯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처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표정이 살짝 구겨진 상태에서도 그의 놀란 기색은 가실 줄을 몰랐다.

이 현상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묵룡의 무공 수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이긴 하나, 일전에 청성에 투입되었던 거학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게 혈천맹 내의 평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학이 당한 건, 그가 무리했기 때문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자신은 거학보다 강하다.

아까 직접 붙어보니 묵룡의 대단한 실력은 충분히 알 것 같았지만,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심했었다.

묵룡이 실전으로 단련된 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경지가 비슷해도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고, 때때로 경지의 차이마저도 넘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변수가 바로 실전 경험이라는 부분임을 잘 아니까.

묵룡이 실전에서 얼마나 똑똑하게 움직이는지도 이전의 보고들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묵룡은 전투 지능이 매우 높은 고수다. 아까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묵룡은 비응과 소응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었는데, 결코 비응과 소응이 방심한 탓이 아니었다. 묵룡이 똑똑하게 싸운 탓이었다.

그 부분을 인정했기에, 그 후로 방심하지 않았다. 승리하기 위한 가장 안정적인 방식을 취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아직도 방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묵룡이 바보가 아닌 이상, 괜히 진기를 크게 소모해가며 그런 모래폭풍을 일으킬 리는 없었다. 그 후에 분명히 강력한 수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렇기에 모래폭풍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묵룡의 기척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었다.

한데 묵룡은 끝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정신 집중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보통 이기어검 등의 수법을 이용하여 후방을 공격해오게 마련이었다. 묵룡은 아까도 신경을 분산시킨 후 이기어검을 이용해 비응과 소응에게 타격을 가했으니까.

예상했던 대로 공격은 후방에서 날아왔다. 한데 그 방식이 상상 초월이었다. 모래폭풍에 감춰진 채로 수십 개의 검과 도와 창이 날아왔는데, 그것들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 또한 매우 강력했던 것이다.

깜짝 놀란 와중에도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그것들을 막았는데,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휘몰아치는 모래폭풍이 방해한 건 시야만이 아니었다. 기척을 감지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던 것이다.

특히 허벅지 쪽은 어떻게 다치는지도 모르고 다쳤다. 인지한 순간에는 이미 시커먼 뭔가가 허벅지를 관통한 후였다. 묵룡이 이곳에 등장하면서 썼던, 그 후에는 계속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던 묵영시였던 것이다.

스윽―

모래폭풍이 잦아들기 시작했을 때쯤, 누군가가 근처로 다가왔다. 익숙한 기운, 비응이었다.

비응의 모습을 확인한 광응이 서둘러 물었다.

[괜찮나?]

괜찮을 리가 없을 것이다.

흉부 위쪽에는 한 자루의 검이, 복부에는 한 자루의 기다란 창이 박혀 있는 채였으니까. 물론 그 외에도 관통으로 입은 상처들 두세 개가 더 보였다.

계속 전투를 펼치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만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태였다.

비응이 저 정도로 당한 건, 아마도 초반에 묵룡에 의해 입었던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다친 어깨가 하필이면 검을 사용하는 쪽이었으니, 방금 전의 엄청난 공격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응이 대답 대신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찡그리고 있는 건 물론 상처의 고통 때문이었다.

비응이 전음으로 빠르게 물었다.

[자네는 괜찮나?]

[썩 괜찮지는 않아.]

[거응과 소응은?]

광응이 대답 대신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생사를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다. 죽었다는 뜻이었다.

의미를 알아들은 비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혈응은 왜 개입하지 않는 거야? 이쯤 되었으면 이미 개입했어야 정상 아닌가?]

[음…….]

비응의 말대로였다.

오늘 투입된 다섯 명의 고수들 중 한명이 바로 혈응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자객에 가깝다. 물론 최고 수준의 자객이다.

평소에는 기척을 죽인 채로 은신해 있다가, 몰래 나타나서 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역할이 바로 혈응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포위 공격을 하며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라면 몰라도, 변수가 발생한 지금에는 나타나서 적을 타격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각에 잠겨 있던 광응이 한순간 눈동자를 부릅떴다.

그가 비응의 뒤쪽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조심!”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모래폭풍을 뚫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비응의 뒤쪽에 나타났던 것이다.

깜짝 놀란 비응이 서둘러 광응 쪽으로 다가왔고, 광응은 빠르게 비응 쪽으로 향했다.

사사삭―

기척을 죽인 채 모래폭풍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인영은 단유소였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모래가 발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금 전, 짧은 시간 동안 혼원태극공을 두 번이나 썼다.

모래폭풍을 일으킬 때 한 번, 주변의 모든 병장기들을 제어할 때 한 번이었다. 특히, 마지막에는 혼원태극공을 익힌 후로 가장 강력한 힘을 썼다.

아까 비응과 소응을 타격할 때에도 혼원태극공을 두 번 썼으니, 이들과 전투를 치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총 네 번을 쓴 것이다.

이러면 신체에 크게 무리가 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기회였고, 단 한 번의 기회였으니까.

이제 남은 건 두 명이다.

잠시 후면 후유증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며 무기력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와중에 다행인 점은 그 두 사람이 모두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나마도 움직일 수 있는 지금, 그 둘 모두를 처치해야 한다. 반드시.

그 후의 일은 신룡대와 흑풍대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으리라.

이윽고 단유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래폭풍 밖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던 탓이다.

단유소가 지체하지 않고 모래폭풍을 벗어나 그 인영을 향해 보법을 펼쳤다.

‘비응.’

잘된 일이었다.

차라리 광응보다는 비응이 나았다.

비응이 부상도 더 많이 당했고, 광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보다 쉬운 상대를 빨리 제압하여 머릿수를 줄여놓는 것이 중요했다.

단유소의 장검이 비응의 등에 가까워졌다. 부상을 많이 당한 탓인지, 비응은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심!”

짧은 외침이 들리더니 인영 하나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는 바로 광응이었다.

다가오는 광응의 검에서 진한 빛무리 한 줄기가 튕기듯 쏘아졌다.

단유소의 상체를 노리고 날아든 강력한 검강.

단유소의 눈동자에 찰나간 고민이 스쳤다.

이대로 비응의 등을 노리면 어쩔 수 없이 광응의 공격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유소가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후유증이 심한 단계가 아니니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고, 막으려면 어떻게든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비응을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끌 경우, 불리해지는 쪽은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니니까.

푹― 푸욱!

“커헉!”

“큭!”

거의 동시에 그런 소리들이 이어졌다.

하나는 광응이 날린 검강이 단유소의 복부를 관통하는 소리였고, 하나는 단유소의 장검이 비응의 등을 찌른 소리였다. 또한 앞선 비명은 비응의 것이었고, 이어진 신음은 단유소의 것이었다.

이미 광응은 지척에 다다른 상태.

단유소가 찔렀던 검을 뽑아내려 할 때였다.

턱!

비응이 자신의 가슴 앞으로 삐져나온 단유소의 검신을 양손으로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광응을 돕기 위한 한 수였다.

검을 뽑아내기 위해 단유소가 한 차례 힘을 가했지만 쉽사리 뽑히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간단히 뽑을 수 있었겠지만, 후유증이 빠르게 몸을 잠식하고 있는 지금은 그러기가 힘들었다.

그런 단유소를 향해 광응이 빠르게 검을 찔러왔다.

단유소가 검을 뽑기를 포기하고 비응의 상체를 끌어안다시피 하며 그의 정면으로 돌아갔다.

결국 광응이 인상을 구기며 검로를 틀었다. 그러자 단유소도 비응의 상체를 그 방향으로 틀었다.

광응이 인상을 구기며 거리를 더욱 좁혀왔다.

그 직후.

슈슈슉―

광응이 비응을 향해 날카로운 기운들을 쏟아냈다. 세 줄기의 기운 모두 검강이었다. 검강으로 비응을 관통하여 그를 안고 있는 묵룡까지 찌르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푸부북!

세 가닥의 검강이 순식간에 비응의 몸을 관통했다.

광응이 공격을 이어가기 위해 더욱 거리를 좁힐 때였다.

팟!

갑자기 창촉이 광응의 상체를 찔러갔다.

원래 비응의 몸에 꽂혀 있던 창이었다. 단유소가 뒤쪽에서 창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광응을 향해 강하게 밀어버린 것이다.

적절한 임기응변이었으나 광응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부족했다. 급속도로 후유증이 커졌기에 제대로 힘을 담지 못한 것이다.

광응이 부드럽게 상체를 비틀어 창을 피하며 단유소에게 달려들었다.

슈슈슈슈슈슉―

광응이 몇 가닥의 검기를 동시에 발출하며 단유소를 견제했다. 그 후에 강력한 한 수를 펼칠 의도였다.

카가가가가강!

광응의 검기를 모두 막아낸 직후, 단유소의 신형이 휘청하더니 그가 반무릎을 꿇었다. 후유증이 너무 커져, 버틸 힘이 없었던 것이다.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기회를 놓칠 광응이 아니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광응이 단유소의 상체를 찔러갔다. 그리고 단유소는 그 공격을 막지 못했다.

푸욱―

결국 광응의 검이 단유소의 가슴께에 박혔다. 마지막 순간에 단유소가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검이 박힌 곳은 정확히 심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반무릎을 꿇은 상태였던 단유소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단유소를 향해 광응이 다시 한번 검을 찔러갔다.

“죽엇!”

검이 찔러오고 있음에도 단유소는 이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단유소가 눈을 감았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눈을 감는 법이 없는 그가 눈을 감았다는 건, 이제는 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무사히 귀환하겠다는 약속, 결국 못 지키네.’

인생 최후의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바로 그녀의 얼굴이었다.

‘미안해, 한 소저. 정말 미안해…….’

그때였다.

카앙!

가슴 바로 앞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니, 단유소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광응의 검극과 자신의 가슴 사이로 하얀 손 하나가 끼어들어 있었다.

투명한 듯 하얗고 고운 손.

그 하얀 손이 비틀어지자 광응의 검신도 휘어졌다.

뚝!

그리고 거짓말처럼 광응의 검이 부러졌다. 강기가 주입된 검을 맨손으로 비틀어 부러뜨린 것이다.

그 직후, 단유소의 얼굴 위로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 상황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 얼굴은, 단유소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단유소가 여전히 부릅뜬 눈으로 말했다.

“누님…….”

미녀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어두운 밤이 온통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고, 더없이 따뜻한 미소였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유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말을 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 보였다.

“누님이 어떻게……, 이곳에…….”

그러자 여인이 단유소의 입술에 검지를 대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동생. 지금은 그냥 쉬어.”

여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물기가 가득했다. 단유소의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 그녀도 아는 것이다.

단유소의 곁에 몸을 굽히고 앉았던 여인이 이윽고 몸을 일으켜 광응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따뜻했던 그녀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그녀의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것처럼 차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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