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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74화 (174/200)

174화. 친구의 친구 (1)

그 말에 선화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다, 당신, 처음부터 이럴 생각…….]

그러자 선화란의 말을 끊으며 적룡이 말했다.

[됐고. 당신은 어서 가기나 해. 귀신이 돼서도 당신 때문에 묵룡에게 욕 듣긴 싫다고. 설령 저승길이라도 당신과 함께하는 건 질색이니까, 반드시 살아남아. 당신이라는 여자는 이승에서도 충분히 지긋지긋하거든.]

말을 마친 적룡이 돌아섰다.

돌아선 상태에서도 적룡이 한 손을 들더니 어서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길 잠시, 적룡이 왔던 길을 향해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다.

송주와 비쩍 마른 사내 사이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수십 합이 오갔다.

그는 길이가 짧은 검을 썼는데, 마르고 왜소해서인지 매우 날렵했다. 게다가 그의 검에서 발출되는 기운은 날카롭고 강력했다.

그렇기에 검을 섞는 내내 열세인 쪽은 송주였다.

비쩍 마른 사내는 진실로 강했다.

그는 틈도 없고 방심도 없었다. 대처도 빠르고 임기응변도 뛰어났다.

한 수까지는 아니지만 반 수쯤은 항상 그가 앞서 나가는 느낌이었다.

뚱뚱한 사내를 맡고 있는 쪽은 흑풍대의 일조장과 이조장이었다. 앞서 적룡과 함께 혈강시들을 도맡아 처치했던 바로 그들이다.

뚱뚱한 사내도 문제였다.

그는 한 자루의 박도를 썼는데, 체구만 봐서는 움직임이 둔할 것 같은데도 실상은 매우 빨랐다. 송주가 보니 비쩍 마른 사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간 느린 정도였다.

두 명이라고는 하나, 조장들의 수준에서 그런 자를 상대한다는 게 애초에 무리였다. 그렇기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일조장과 이조장은 계속해서 밀리는 형국이었다.

삼조장과 사조장은 동굴에서 몰려온 적들을 처치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상황 또한 썩 좋지 않았다.

일단 몰려오는 적의 숫자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그들 중에는 청강시는 물론, 혈강시까지 끼어 있었다.

애초에 삼조장과 사조장은 혈강시를 상대할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혈강시의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가며 사력을 다해 버티는 중이었다.

각자가 이길 수 없는 적들을 상대로, 그야말로 처절한 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오로지 동료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적들 중에 바다 속으로 뛰어든 자들은 없었다. 적들이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다행이었다.

비쩍 마른 자를 상대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그 모든 상황을 확인한 송주가 이를 악물었다.

‘하나라도 데려가야 한다.’

데려갈 곳은 저승.

데리고 갈 이는 눈앞에 있는 비쩍 마른 자다.

슈슉―

상대에게 한 차례 강력한 강기를 발출한 송주가 찰나의 시간 차를 두고 또다시 강기를 발출해내었다.

그러나 두 번째 강기는 비쩍 마른 사내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옆에서 싸우고 있던 뚱뚱한 사내를 향하고 있었다.

일조장과 이조장이 위기에 처하자, 뚱뚱한 사내에게서 그들을 엄호하기 위해 날린 것이다.

마른 사내는 비스듬히 검을 기울이며 강기를 비껴냈고, 뚱뚱한 사내는 박도를 이용해 강기를 쳐냈다.

캉! 카앙―!

그 와중에도 송주가 곁눈질로 확인해보니 다행히 두 조장은 위기를 모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송주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비쩍 마른 사내가 그 짧은 틈을 이용해 더욱 거리를 좁혀온 것이다.

그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더 민첩하니, 좁혀진 거리만큼 자신이 더 불리해지는 건 당연지사.

역시나 이런 기회를 놓칠 상대가 아니었다.

슈슈슈슈슉―

근접한 거리에서 상대의 검이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찔러왔다.

이미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송주가 서둘러 검을 휘두르며 그 공격을 막아갔다.

카가가가강!

겨우겨우 그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결국 몸의 중심은 뒤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 틈을 타서 상대가 더 접근하며 빠르게 상체를 공격해왔다.

자신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한 한 수.

이참에 승기를 확실히 잡으려는 의도였다. 과연 고수다웠다.

송주가 재빨리 상체를 뒤로 눕혔다.

그의 고개가 젖혀지며 등이 활처럼 휘어지더니, 검을 들지 않은 그의 한 손이 땅바닥으로 향했다.

거꾸로 땅을 짚고 제비를 돌아 피하려는 것이다. 철판교의 수법이었다.

이 경우, 허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몸의 중심이 완전히 흐트러지며 한순간이나마 몸의 정면이 상대에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쩍 마른 사내는 결코 그런 기회를 놓칠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그의 검이 자신의 살갗을 파고들 테니까.

역시나 비쩍 마른 사내는 낮게 도약하더니 무방비 상태인 자신의 복부를 찔러오고 있었다.

송주가 이를 악물며 온몸에 호신강기를 가득 끌어올릴 때였다.

‘응?’

송주는 의아했다.

후방에서 강력하고 날카로운 뭔가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슈아아아악―

그 날카로운 기운이 자신의 배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카앙!

허공으로 도약했던 비쩍 마른 사내가 검을 세워 그 공격을 막았다.

그 틈에 송주가 제비돌기를 마치고 서둘러 신형을 바로잡았다. 비쩍 마른 사내는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주는 누군가가 뒤쪽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도 알 것 같았다. 익숙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척!

이윽고 뒤에서 다가온 인영이 자신의 옆에 섰다.

송주가 여전히 비쩍 마른 사내에게 시선을 둔 채로 옆에 선 인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석 공자,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랬다. 그는 적룡이었다.

적룡이 대꾸했다.

[대주께서 보시기엔 무슨 짓 같습니까?]

그 말에 송주가 피식 웃었다. 적룡도 웃었다.

송주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의 친구라서 호의를 베풀었던 것인데.]

[거,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친구의 친구도 결국 친구 아니겠습니까.]

[하! 이런, 이런.]

송주가 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석 공자께서 가세한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쯤, 잘 알고 계시지요?]

그렇다 해도 어차피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함께 죽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적룡이 대꾸했다.

[변합니다. 가령 반각을 버틸 거 일각이 버텨질 수도 있고, 일각을 버틸 거 이각이 버텨질 수도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송주가 피식 웃었다.

적의 대처가 지금대로라면 적룡의 말마따나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적들이 그냥 그렇게 놔둘 지는 의문이지만.

물론 적룡도 그걸 모르고 한 소리가 아닐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보자는 뜻이다.

송주가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이들 중 하나라도 저승길의 동지로 삼을 수 있다면, 나중에 도착할 그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겠지요.]

[예.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친구니까요.]

적룡의 말이 끝나자마자 송주의 신형이 비쩍 마른 사내를 향해 쏘아졌다.

적룡도 바로 움직였다.

다른 적이 합류하기 전에, 얼른 눈앞의 적에게라도 타격을 주려는 것이다.

슈악―

적룡의 언월도를 빠져나간 강기가 반달 모양으로 뚱뚱한 사내를 덮쳤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송주가 다섯 가닥의 검기를 쏘아냈다.

슈슈슈슈슉―

뚱뚱한 사내가 피할 방위를 점하며 다섯 가닥의 검기가 빠르게 날아갔다.

그 즈음 일조장이 비쩍 마른 사내를 향해 한 줄기 강기를 날렸다.

슈욱―

비쩍 마른 사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자 뚱뚱한 사내의 박도가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았다.

카가가가가강!

적룡과 송주의 그림 같은 연계 공격은 뚱뚱한 사내에 의해 너무도 쉽게 막혔다. 곧 뚱보 사내의 신형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비쩍 마른 사내에게 향하는 일조장의 검강까지 막아갔다.

캉!

순간적으로 비쩍 마른 사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뚱보 사내에 의해 모습이 가려진 것이다.

슥―

그 직후, 비쩍 마른 사내가 나타난 곳은 일조장의 옆이었다. 그가 일조장의 측면에서 장력을 날렸다.

그때까지도 비쩍 마른 사내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일조장이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그러나 이미 피하기엔 늦은 상황.

비쩍 마른 사내가 발출한 장력이 일조장의 옆구리에 닿을 듯했다.

일조장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였다.

스윽―

누군가가 그의 정면을 스쳐 지나가더니 장력을 막아갔다. 적룡이었다.

퍼어엉!

장력이 폭발했고, 적룡의 신형이 반탄력을 버티지 못하고 강하게 밀려났다. 곁에 있던 일조장이 양손을 들어 밀려나는 적룡을 지지했다. 적룡이 겨우 신형을 추슬렀다.

붙어 있는 그 둘을 향해 거대한 강기가 날아왔다. 뚱뚱한 사내의 박도에서 발출된 강기였다.

적룡과 일조장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든 상황.

그 순간 송주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강기가 가득 주입된 그의 검이 뚱보 사내의 도강을 막아갔다.

콰아아아앙!

전투가 벌어진 후로 가장 강력한 폭음이 들렸다.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던 세 사람이 결국 동시에 튕겨 나갔다.

모래사장을 몇 바퀴 굴렀지만, 세 사람은 빠르게 신형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키며 방어 자세를 취한 송주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당연히 뚱뚱한 사내와 왜소한 사내의 공격이 이어지리라 예상했는데, 웬일인지 두 사내는 아까의 자리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양측은 서로 대치한 채로 섰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처음이었다.

적룡이 합류한 뒤로 흐른 시간은 반각쯤.

그 즈음 전장의 상황은 많이 변한 상태였다. 송주와 적룡과 흑풍대의 일조장이 합심하여 뚱뚱한 사내와 마른 사내를 동시에 상대하는 중이었다.

동굴에서 몰려나오는 적들과 강시들의 숫자가 많아, 삼조장과 사조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결국 이조장이 그쪽을 지원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구도가 그렇게 변했다.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은 흑풍대의 일조장이었다. 그는 어느 시점부터 내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무복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다리와 옆구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후우, 후우우우…….”

앞섶이 땀으로 젖기 시작한 적룡도 틈이 날 때마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적룡은 왼쪽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 양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언월도의 특성상,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색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송주의 호흡도 거칠어져 있었다. 이미 그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상태였다.

겨우 반각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 충분히 알 만했다.

그에 반해 뚱뚱한 사내와 비쩍 마른 사내는 매우 멀쩡했다. 땀방울이 보이지도 않았고, 호흡의 세기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결코 쉴 시간을 줄 작자들이 아닌데…….’

송주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비쩍 마른 사내가 고개를 들더니 절벽 위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슬슬 지겨운데 말이야. 굳이 우리가 힘을 더 쓸 필요가 있겠어?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절벽이 제법 높아 거리가 먼데도, 비쩍 마른 사내는 조용한 음성이었다. 과연 저 음성이 절벽 위의 사내에게 들릴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러자 대꾸가 들려왔다.

“그런가.”

절벽 위에서 들린 음성이었다.

그 목소리 또한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처에서 말한 것처럼 또렷이 들렸다. 전혀 외치거나 한 게 아닌데도.

송주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마침 절벽 위의 사내가 왼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직후, 절벽 위에 있는 사내의 팔이 향한 방향에서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하나의 인영이었다.

이 정도로 빠른 속도라면, 엄청난 고수라는 뜻.

아마도 처음에 절벽 위에 함께 있던 자들 중 한 명일 게 확실하니, 송주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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