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산동에서의 전투 (3)
송주의 근처에 다다른 흑풍대원들이 다시금 진형을 갖추었다. 추격해오는 적들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그 즈음 선화란과 적룡도 송주에게 가까워진 상태.
적룡이 송주에게 빠르게 물었다.
“왜 갑자기 후퇴…….”
적룡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대신 그는 고개를 홱 젖혀 허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직후, 적룡이 두 눈을 부릅떴다.
허공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탓이다.
그것은 두 개의 인영이었다.
휘이익― 쿠웅! 척!
두 개의 인영이 곧 근처에 착지했다.
한 명은 땅이 울릴 정도로 강하게 착지했고, 한 명은 저 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뿐히 착지했다.
소리 내어 착지한 쪽은 덩치가 크고 뚱뚱했고, 사뿐히 착지한 쪽은 비쩍 마르고 왜소했다. 두 사람 모두,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적룡이 놀란 이유는 두 사람이 이미 떨어져 내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즉, 그 두 사람의 경지가 자신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었다.
적룡이 송주를 바라보며 서둘러 물었다.
[설마 대주께서 아까부터 저 위쪽을 바라보고 계셨던 이유가…….]
[예, 저 둘도 포함되어 있지요.]
적룡의 눈동자가 또다시 커졌다.
[그 말씀은…….]
그러자 송주가 빠르게 대꾸했다.
[예. 절벽 위쪽에 아직 한 명이 더 남아 있습니다. 저 둘도 문제지만 정작 문제는 아직 위쪽에 남아 있는 바로 저잡니다.]
그 말에 적룡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절벽 위쪽을 바라보았다. 곧 적룡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벽 위쪽의 끝자락에, 장포를 휘날리며 서 있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그는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저렇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신경이 눈앞에 떨어진 두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고 해도 이건 심각했다. 저 위에 있는 자가 그 정도로 대단한 고수라는 뜻이니까.
적룡이 송주에게 다시금 빠르게 물었다.
[대주께서는 아까부터 저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계셨는데도 곧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보아하니 저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은 듯한데, 대주께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 겁니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적룡은 송주가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주기를 빌었다.
송주는 흑풍대주다. 천마신교의 핵심 조직인 흑풍대, 그 유명한 흑풍대를 이끄는 수장이다.
자신에게 있어 묵룡은 그 능력의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고수인데, 흑풍대주 송주도 묵룡에 버금가는 고수다. 그렇기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윽고 송주가 대꾸했다.
[솔직히……, 눈앞의 둘 중 하나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적룡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기대했던 대답이 아닌, 우려했던 대답이었던 탓이다.
의아한 점은, 상대가 그런 고수들인데도 왜 송주가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다는 듯, 송주의 음성이 귓전으로 날아들었다.
[저도 아까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한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 위에 있던 자들은 원래 셋이 아니라 다섯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들을 파악한 직후, 두 명이 양옆으로 사라졌습니다. 양쪽으로 사라진 그 둘이, 눈앞에 있는 둘보다 강합니다.]
송주의 말에 적룡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그렇다는 건…….]
[예. 나머지 둘은 각각, 이 해안선의 좌우를 막고 있을 겁니다. 애초에 우리이겐 온전히 저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송주가 저들의 존재를 파악하자마자 완벽하게 포위되었다는 뜻이다.
전방은 절벽과 적들에 의해, 뒤쪽은 바다에 의해, 양쪽 측면은 각각 송주조차 감당하기 힘든 고수들에 의해.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
송주의 전음이 이어졌다.
[저들은 마치,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 시험이라도 하듯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왕 그렇게 된 상황이니 저는 그동안 흑풍대가 눈앞의 적들을 보다 더 많이 쓰러트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송주 본인은 저들의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 계속해서 저들을 주시한 채 가만히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들이 움직인 순간, 후퇴 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송주의 전음이 이어졌다.
[석 공자께서 싸우고 계신 동안 수하를 시켜서 몰래 신룡대 쪽에 전서를 보냈습니다. 우리를 도우러 오지 말라 했습니다.]
옳은 판단이었다.
묵룡이 아무리 대단하고 묵룡조원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저들을 감당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적룡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올 겁니다. 제발 안 왔으면 좋겠지만, 그는 안 올 사람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예. 제 생각도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상황에서 모두가 살 수는 없습니다. 묵룡과 신룡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버티고 싶으나, 그러기 힘든 현실임을 석 공자께서도 아시겠지요.]
상대가 저 정도의 고수들이니 묵룡이 도착하기 전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포위된 상황이니 모두가 죽을 것이다.
[방법은 하나, 누군가가 시간을 끌고 나머지는 헤엄쳐서 바다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적들도 추격하겠지만, 흑풍대는 수중 훈련이 되어 있으니 생존율은 나쁘지 않을 겁니다. 흑풍대가 그렇다면 신룡대도 그렇겠지요?]
[물론입니다.]
[바다 먼 곳으로 헤엄쳐서 피해 다니다가 묵룡이 도착하면 다시 합류하든 해야 할 겁니다. 어쨌거나 이미 우리 조장들과는 이야기를 해두었습니다. 제가 조장들과 함께 저들을 막을 테니, 석 공자께서는 화 소저와 함께 바다로 피신하십시오.]
적룡은 송주가 아까 왜 자신에게 흑풍대원들을 잘 부탁한다는 식으로 말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송주는 그때부터 이미 희생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제가 저들에게 달려드는 게 신호입니다. 이미 우리 대원들에게도 상황 전파가 되었을 테니 그때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아까 제가 석 공자께 했던 부탁,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겠습니다.]
전음을 마친 송주가 검을 어깨에 걸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뚱뚱한 체구의 사내와 마른 체구의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하신가, 우리 악당 여러분?”
마치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듯한 목소리.
그러자 마른 체구의 사내가 물끄러미 송주를 바라보다가 냉소하며 대꾸했다.
“훗. 아까부터 제법이더군. 그래도 명색이 흑풍대주라 그건가?”
“오오! 이래서 유명 인사는 피곤한 법이라니까. 굳이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지금의 송주는 희생을 각오한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밝았다.
송주가 적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쯤, 적룡의 귓전으로 선화란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우, 우리 지금 괜찮은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도 염려가 가득했다.
적룡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수준에서는 아마 눈앞에 있는 적들이 얼마나 강한지 파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 정도는 그녀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최악이야. 저들은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그런 자들이 양쪽 측면까지 포위하고 있어서 퇴로는 바다밖에 없어.]
[그, 그런……!]
[이미 송 대주와 의견을 나눴어. 그러니 잘 들어. 송 대주가 저들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우리는 흑풍대원들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뛰어드는 거야. 알겠나?]
선화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말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챈 것이다.
[그, 그러면 송 대주는…….]
[그가 흑풍대의 조장들과 함께 적들을 막을 거야.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그 말을 들은 선화란의 입술이 벌어졌다.
[마, 말도 안 돼.]
흑풍대에 파견을 오기 전에도 친절했지만, 파견을 온 후에는 특히 자신에게 친절했던 송주였다.
그는 자상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선화란의 표정을 확인한 적룡이 바로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안 그러면 이곳에서 모두 개죽음을 당할 뿐이야. 그걸 알고 있기에, 그가 스스로 각오한 일이야.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 그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마. 그게 바로 우리가 그의 희생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야.]
선화란은 서글픔이 담긴 눈빛으로 말없이 송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룡이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그가 적에게 달려드는 순간,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바다로 뛰어든다. 알아들어?]
선화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도 신룡대의 조장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그 즈음에도 송주는 비쩍 마른 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핫! 이러지 말고 우리, 평화적으로 해결해보면 어떨까? 싸우면 당신들도 다치잖아. 다치면 아프고. 괜히 그러느니 타협을 해보자고. 어때? 이쯤에서 우리도 조용히 철수할 의향이 있으니, 이 자리는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게?”
그 말에 비쩍 마른 사내가 피식 웃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송주의 제안 속에도 진심은 담겨 있지 않았었다. 농담기가 가득한 어조였던 것이다.
송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쩝, 역시 안 되려나……?”
그리고 그 순간, 송주의 신형이 꺼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마자 적룡이 빠르게 외쳤다.
“행동 개시!”
흑풍대원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달렸다. 적룡과 선화란도 그들의 후미에서 달렸다.
뒤쪽에서 진기와 진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송주와 조장들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였다.
잠시 빠르게 달리던 선화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바로 뒤에서 달리던 적룡의 기운이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달리는 와중에 선화란이 고개를 돌렸다.
뒤를 따라오던 적룡이 저만치에서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룡이 싸늘한 표정으로 전음을 보냈다.
[애송이, 내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안 했었나?]
선화란이 움찔하며 대꾸했다.
[그, 그게 아니라…….]
[더 빨리 안 뛰어?]
적룡이 으르렁거리듯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화란이 경공을 펼치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는 중이었다.
선화란이 서둘러 물었다.
[뭐야, 당신? 어, 어쩔 생각인 거야?]
그러자 적룡이 씨익 웃었다.
놀라웠다.
웃다니. 저 인간이 웃다니.
물론 적룡이 웃는 모습을 종종 보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조소였다.
그런데 지금 적룡이 짓고 있는 미소는 조소가 아니었다. 분명히.
[하여간 말 징그럽게 안 들어. 이런 때는 제발 선배 말 좀 들어라. 다 업보라고, 그거. 그러다가 나중에 당신도 말 안 듣는 후배 만난다고.]
[흰소리 집어치우고! 대체 어쩔 셈이냐고, 지금!]
그러자 적룡이 여전히 미소 띤 표정으로 말했다.
[신룡대 체면이 있지, 어떻게 흑풍대에게 뒤를 맡기고 나 몰라라 도망쳐? 후! 웃기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