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작전 연장 (4)
똑같은 상황에서 묵룡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더 긴장하고 있는 쪽은 신룡대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새삼 묵룡의 존재가 더욱 든든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즈음 송주의 시선이 잠시 선화란에게 머물렀다. 몰래 아는 척을 한 것이다. 선화란도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송주가 단유소에게 말했다.
“조사는 대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따로 대화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지 않소? 귀맹과 본교의 동맹 관계가 유지되는 이상, 앞으로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할 테니 대책도 필요할 것이고.”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이 공간의 구석으로 향했다.
단유소가 물었다.
[언제 왔나?]
송주가 대꾸했다.
[이각쯤 됐나?]
신룡대는 정혼단원들을 도와 전투를 펼치던 중, 수라단이 원군으로 등장한 후에야 출발했다.
흑풍대는 아마도 혈천맹의 대규모 전력이 등장한 순간에 그들을 역추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룡대보다 더 빨리 이곳을 찾아낸 것이고.
송주가 말했다.
[저 거대한 웅덩이에 담겨 있는 액체는 아마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신체를 강화시키는 용도겠지?]
이곳에도 공간의 중앙에 거대한 웅덩이가 있었다. 그 안에도 역시나 초록빛의 액체가 채워져 있었다.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아가서는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 아까 발견한 동굴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었거든. 안에 담긴 용액의 색깔도 비슷한데, 이쪽의 색이 더 진한 것 같군.]
[그랬군.]
송주가 대꾸하자 단유소가 물었다.
[혹여 석실에 민간인들은 없던가? 아까 발견한 곳에는 벌거벗겨진 젊은 민간인들이 있었거든.]
[소수의 방어 전력 외에 다른 자들은 없었네. 이곳에서 이어진 통로들을 다 조사해봤는데, 대부분 공동 숙소 비슷한 구조더라고. 식량이 가득 쌓여 있는 석실들도 있었고. 딱히 위험해 보이는 다른 시설들은 없었고.]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주가 다시 말했다.
[아까 발견한 곳의 용액보다 이곳의 용액이 더 진하다고 했지? 그렇다면 아마도 그곳에서 초기 단계의 신체 조작을 마치고 이곳에서 다음 단계를 진행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런 듯하군.]
그 후로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대원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신룡대와 흑풍대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서로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였지만.
[자네 조원들 말인데, 전에 그 소저 구해줄 당시에 봤던 모습들과는 느낌이 또 다르네?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하기에 저렇게들 쑥쑥 크는 거야?]
그 말에 단유소가 피식 웃었다.
송주가 묵룡조원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일전에 한설연이 청룡조에 납치당했을 당시였다. 불과 서너 달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연소운과 서백풍이 벽을 넘어섰고 진평과 곽승추의 실력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송주는 지금 그것을 알아채고 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흑풍대가 신룡대보다 저평가되고 있어서 내 입장이 얼마나 곤란한 줄 아나? 상부에서 알게 모르게 압력을 주는데 내가 아주 미칠 지경이라고. 그런데 그 격차를 더 벌려놓으면 어쩌자는 건가?]
농담조의 투정에 단유소가 또다시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앓는 소리 하기는.]
송주가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흑풍대원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볼 때마다 발전하고 있는 건 신룡대만이 아닌 것이다.
잠시 후에 단유소가 말했다.
[공격해온 적의 수는 천오백에 달해. 이곳이 그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만한 규모가 되던가?]
송주가 대꾸했다.
[아니. 잘해야 그 반 정도?]
[그렇다면 근처에 이런 시설이 최소 하나쯤 더 있다고 봐야겠군?]
그러자 송주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쪽에서 이쪽으로 역추적해오던 길에 또 다른 방향으로 통하는 흔적을 발견했거든. 정찰 전력 몇 명을 보내놓은 상태야.]
그 말에 단유소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좋군.]
[이곳에 더 이상 특별한 게 없다면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어.]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주가 물었다.
[적들은 대체 이런 시설들이 얼마나 구축해둔 걸까?]
송주의 질문을 들으니 한설연과 함께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녀를 호위하는 와중에 수없이 많은 적들을 만났었다. 자신과 한설연의 경로가 파악되기만 하면,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규모의 전력을 투입했었다. 그런 식으로 상대했던 적의 수를 따지면 능히 수만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많을 거야. 아무래도 중원보다는 변방에 더 많겠지. 인적이 드물고 시야가 닿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을 거야.]
[그런 곳들이 이런 식으로 감춰져 있다면…….]
말을 멈춘 상태로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곳들을 모두 찾아내서 무력화시킨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고.]
송주의 말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적의 핵심부를 얼마나 빨리 찾아낼 수 있는가의 문제겠네. 그렇게 핵심부를 무력화시키고 중심인물들을 처단해야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겠어.]
[내 생각도 그래.]
단유소가 대꾸하자 송주가 물었다.
[이번 작전이 끝난 후, 신룡대의 다음 행선지는?]
그 말에 단유소가 송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기밀 사항을 대놓고 물어보다니.
평소의 송주는 결코 이러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놓고 물어봤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대강은 짐작이 되었다.
단유소의 속내를 알아챘다는 듯 송주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아. 이런 질문 실례라는 거. 다만 우리의 동선과 비슷한지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야.]
솔직히 평소에 중요한 정보 등을 더 자주 전해주는 쪽도 송주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근래에는 그에게 너무 받기만 했다.
단유소가 바로 대꾸했다.
[하북 인근 지역들.]
[역시나 우리 쪽에서 파악한 것과 같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함께 움직여도 되지 않겠어? 물론 대놓고 함께 움직일 수야 없겠지만, 비슷하게 움직이면서 공조 작전을 펼치는 거지. 그러면 더 안전할 거고. 효율도 좋을 거고.]
신룡대와 흑풍대.
정과 마를 대표하는, 그야말로 강호 최강의 기밀 조직들이다. 그 구성원들 또한 최고의 작전 수행 능력을 가진 최정예의 요원들이다.
별개로도 강력했던 신룡대와 흑풍대가 함께라면, 그 상승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원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이지만, 지금은 동맹 상황이니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여건이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
수긍의 표시.
[그러게.]
짧게 대꾸한 송주가 바로 말을 이었다.
[자네와 함께 작전을 펼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실망이나 안 시킬까 걱정이군.]
[그건 내 쪽에서 해야 할 걱정이고.]
그 말에 단유소가 빙그레 웃자 송주가 다시 말했다.
[멋지게 가자고.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멋지게.]
* * *
사흘 후.
산서에서의 임무를 마친 신룡대와 흑풍대는 어느새 하남 임주현의 북부에 위치한 산지에 도착해 있었다. 하북과의 경계에서 멀지 않은 산지였다.
신룡대는 스무 명이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흑풍대는 서른 명에 육박했다. 그렇듯 적지 않은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세인들의 이목을 전혀 끌지 않았는데, 역시 신룡대와 흑풍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림맹에서 예측한 적의 거점도, 흑풍대에서 파악한 적의 거점도 이 인근이었다.
“인적 드문 야산들이 많지만 넓고 빽빽한 산지는 아니야. 마음먹고 찾으면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한데.”
송주의 의견이었다.
중요한 회의는 주로 네 사람이 진행했다.
흑풍대에서는 송주와 홍련이, 신룡대에서는 단유소와 선화란이 참여했다. 일전에 우연히 만나서 식사를 나누었던 바로 그 구성이었다. 적룡은 회의에 큰 관심이 없어, 결과만 알려달라는 쪽이었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우리가 동쪽 산지를, 그쪽에서 서쪽 산지를 맡지. 각각 전서응을 이용할 수 있는 대원들 두 명씩을 교환 파견해서 연락책으로 삼으면 될 것 같고.”
“그러면 되겠군.”
송주가 그렇게 대꾸하더니 곧바로 홍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홍련. 네가 대원 한 명을 이끌고 신룡대와 함께 움직인다.”
송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홍련이 감정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명(命).”
그러자 단유소가 살짝 놀랐다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연락책을 파견하자니까 무슨 부대주씩이나 보내고 그래? 부담스럽게.”
“흑풍대 최초의 여성 대주를 노리는 친군데, 이 친구도 이런 기회에 견문을 넓혀야지. 흔치 않은 기회잖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강하게 키우는군.”
“그게 본교의 방식이지.”
웃으며 그렇게 대꾸한 송주가 선화란을 일견하더니 말했다.
“어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 쪽에 화 소저를 보내주는 건?”
그 말에 선화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뭐라고? 나?
아니 갑자기 왜 나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
솔직히 마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활동하는 경험을 굳이 자신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동맹관계라 해도 그 일만큼은 꺼려졌다.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거지만, 솔직히 두려운 게 가장 컸다.
게다가 묵룡이라는, 이 바닥에서 가장 든든한 배경에게서 웬만하면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상대가 그 무시무시한 혈천맹이니 더더욱.
묵룡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함께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탓일까?
저 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달가워하지 않는 미소였다.
그래! 거절해, 묵룡!
당신이 더 잘 알잖아? 난 아직 보호가 필요한, 겨우 신임 조장일 뿐이라는 걸.
이윽고 단유소가 입을 열었다.
“화란은 아직 그런 경험이 필요할 단계는 아니라서.”
선화란의 눈동자에 안도감이 담겼다.
역시, 묵룡!
내가 이래서 당신을 존경하는 거라니까? 사람이 참, 배려심이 있어, 역시!
단유소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흔한 기회가 아니긴 하지.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면 나중에 그녀에게도 후회로 남을 거야. 그래선 안 되지.”
뭐, 뭐야? 당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 하하. 따, 딱히 후회까지 될 일은…….”
선화란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단유소가 결정을 내렸다는 듯 말했다.
“그래. 화란이 가는 게 좋겠어. 그녀를 보내지.”
자, 자, 잠깐……!
선화란이 당황한 기색을 비칠 때 송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선화란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화 소저. 그럼 잠시 후에 뵙지요.”
송주가 그 말을 마치더니 바로 자리를 떴다. 홍련이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선화란이 탓하는 표정으로 단유소를 흘겨보자 단유소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걱정 마. 송주가 알아서 잘 이끌어줄 거야. 그곳에서는 그의 말이 곧 법이거든. 그리고 믿을 만한 친구로 붙여줄게.”
단유소도 그 말을 남기고 휙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