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65화 (165/200)

165화. 작전 연장 (3)

단유소와 진평은 금세 적룡이 이끄는 신룡대와 합류했다. 애초에 신룡대의 동선을 확인한 후에 움직였던 탓이었다.

전장에서 빠르게 이탈하여 한적한 곳에 이르자 단유소가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많은 혈천맹의 적도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조사하러 간다.”

“예!”

신룡대원들이 낮게 외치자 단유소가 즉시 말을 이었다.

“진형은 기본적으로 적룡조장이 짜놓은 형태를 유지한다. 단, 나와 길평이 중진에 합류하고, 백운이 선봉으로 옮기는 것만 다르다.”

“예!”

“적이 이곳으로 온 흔적을 역추적하며 빠르게 이동한다. 이상. 출발.”

단유소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적룡을 선두로 한 선봉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중진과 후미가 바짝 쫓았다.

신룡대원들은 빠르게 적의 흔적을 역추적하며 산길을 나아갔다. 혈천맹의 적도들이 워낙 대규모로 이동한 탓에 역추적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주된 이동 방향은 동쪽이었다.

그렇게 이동하기를 반 시진쯤 지났을까?

현재 신룡대원들이 위치한 곳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으로, 골짜기 중의 골짜기였다. 혈천맹의 인물들이 이동한 흔적을 제외하면 인간의 발길 자체가 닿지 않을 법한 곳이었다.

울창한 수풀들을 구불구불 돌며 잠시 나아가자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 사이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물줄기는 암석 지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저 물줄기에서 흔적이 끊겼습니다.”

“그렇다는 건, 저 암석 지대에 뭔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백풍과 진평이 빠르게 보고했다.

평소 묵룡조의 방식이었다. 대원들이 조사한 바를 알아서 보고하고 의견을 먼저 말하는.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고, 신룡대는 암석 지대를 향해 은밀히 나아갔다.

한동안 앞으로 나아가던 중에 단유소가 손바닥을 펴서 한 팔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뜻.

“암석 지대 사이에 누군가가 있다. 확인된 인원은 네 명. 모두가 수준 이상의 고수인 듯하다. 일단은 내가 먼저 가보지. 잠시 후 신호를 보낼 테니, 모두 내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저들과의 거리를 좁힌다. 이상.”

그 말을 마친 단유소가 암석들 사이의 음영 사이로 녹아들었다. 그의 신형이 소리도 없이, 귀신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적룡은 저 멀리로 사라지는 단유소의 뒷모습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정도만 겨우 눈치챘을 뿐인데…….’

목표 지점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동일한 거리에서, 동일한 시간에 자신이 파악한 최대한은 그 정도였다. 그런데 묵룡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적의 수는 물론이고 무공 수준까지 짐작해낸 것이다.

‘하여간 저 괴물 같으니.’

이게 현 시점에서의 묵룡과 자신 간의 격차였다.

그 격차, 적지 않다. 아니,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크다고 봐야 옳았다.

‘조금은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멀어지다니.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황룡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당신은 저곳에 적들이 있다는 거, 파악돼? 내 경우에는 이 거리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야. 묵룡이 저 정도면 당신은 어느 정도인가 해서…….]

그 질문에 적룡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저 여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상황인지에 대한 자각이 있는 걸까?

물론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집중이 필요한 때라는 걸 모르는 건가? 아무리 초짜라도 그 정도 생각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황룡의 아미가 좁아졌다.

[알았어. 미안해. 이 수준밖에 안 돼서 미안하다고. 거참 딱딱하게 굴기는.]

황룡이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삐쭉거렸다.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니 답답했다.

이윽고 멀리에서 묵룡이 신호를 보냈고, 신룡대원들이 그 방향을 향해 은밀하게 나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지형이 매우 감쪽같았다. 집채만 한 바위들 사이로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오며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이 아마도 출입구인 듯했다.

첩첩산중이라서 찾기도 힘든 곳인데 출입구까지 감쪽같다. 역추적하여 찾아왔기에 가능했지, 그러지 않았다면 결코 찾기가 쉽지 않았을 위치였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의 수준이 범상치 않아 보여. 진입조는 자네와 황룡, 엽풍, 백운이면 될 것 같고, 엄호는 내가 하지. 일단은 제압을 목표로 하되,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지체 없이 처치해. 진입조에게는 자네가 전달하고.]

적룡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진입조에게 단유소의 지시를 전달했다. 단유소는 진평에게 방금 전의 작전을 알려, 그로 하여금 대기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준비가 끝나자 단유소가 허공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가 펼쳤던 손바닥을 꽉 움켜쥔 순간, 적룡을 앞세운 진입조가 바위들 사이의 음영 안으로 스며들었다.

스윽―

적룡의 신형이 빠르고 은밀하게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슈악―

강력한 힘을 담은 그의 언월도가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카앙!

흑의를 입은 적이 검을 들어 그 공격을 튕겨냈다. 튕겨낸 순간 적의 인상이 굳어진 것은, 적룡의 공격에 담긴 힘이 매우 강력했던 탓이었다.

캉! 카강!

동시에 적룡의 양옆에서도 그런 소리가 났다.

현재 적룡의 양옆에 위치한 사람은 각각 서백풍과 선화란이었다. 그들의 공격도 막힌 것이다.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낸 흑의인들도 이를 악문 상태였다. 막긴 막았으나 충격까지 흘리지는 못한 것이다. 그게 서로 간의 실력 차였다.

그 와중에도 흑의인들은 동굴 안쪽으로 진입하는 방향을 점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길을 막아섰고 나머지 한 사람은 빠르게 동굴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아마도 이곳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 움직인 모양이었다.

적룡은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내심으로는 살짝 놀란 상태였다.

‘보통내기들이 아니야……!’

제대로 기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적의 방어와 대처가 매우 훌륭했던 탓이었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자들의 움직임이었다.

적룡이 언월도를 고쳐 쥐었다.

적들 모두가 상당한 고수들이긴 하나, 지금의 진입조가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룡이 적들을 향해 막 보법을 펼치려던 찰나였다.

“자, 잠깐……!”

앞을 막아서고 있던 흑의인들 중 한 명이 황급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보아하니 무림맹 분들인 것 같은데, 맞소?”

그 말에 적룡이 한 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일단 대기하라는 뜻.

아마도 적의 저 입에서 되지도 않는 소리가 나오는 순간, 적룡의 팔은 아마도 그들에게 향할 터였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싸울 이유가 없소……!”

“무슨 뜻이지?”

적룡이 되물었을 때였다.

동굴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두세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적룡이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다. 그때 그의 귓전으로 한 줄기 전음이 흘러들었다.

[잠시만 기다려보지. 아마도 저자의 말이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단유소의 전음에 적룡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분위기가 묘하긴 했다. 눈앞의 적들은 최소한의 경계심만 유지하고 있다 뿐이지, 어느새 적대감은 거둔 모습이었다.

이윽고 뒤쪽의 어둠 속에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선 사람은 호리호리한 체구로, 여인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선화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아는 얼굴이었던 탓이다.

‘홍련……!’

그랬다. 엊그제 함께 식사를 했던 바로 그녀, 홍련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선화란이 바로 적룡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이 사람들, 흑풍대야.]

적룡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돌아가는 정황을 보고 이미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홍련도 선화란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짧게 눈인사를 건네며 전음을 보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확인 좀 하겠습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 모두 신룡대원들이지요?]

선화란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홍련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일단은 우리가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게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선화란이 다시금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자 홍련이 육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흑풍대입니다. 방금 전부터 이곳을 조사하는 중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신지도 알고 있고, 오실 것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신룡대라면 이곳을 조사하러 올 가능성이 높으니, 오해와 분란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라고 말한 사람이 바로 흑풍대주 송주였다.

그 말을 들은 적룡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기습할 당시에 이들의 대처가 매우 훌륭하여 놀란 바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흑풍대였던 것이다.

홍련이 말을 이었다.

“이왕 동맹 관계가 된 만큼, 굳이 서로 경계하며 따로 조사를 펼치는 건 심력 낭비일 듯합니다. 합심하여 공동으로 조사를 하는 게 여러 모로 효율적일 것 같다는 게 우리 대주님의 의견인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그렇게 하지.”

몸을 숨기고 있던 단유소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렇게 말했다.

홍련의 시선이 단유소에게 머물렀다.

‘저 사람이 묵룡…….’

눈빛이나 인상만 보면 전혀 고수 같아 보이지 않는 사내.

얼굴선도 고와서 얼핏 보면 곱게만 자라온 서생 같아 보이는 사내.

그러나 저 사내는 무시무시한 고수이다. 그는 송주가 인정한 초고수다. 천마신교 내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젊은 고수인 송주가.

“대주님은 동굴 안쪽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홍련이 그렇게 말하자 선화란이 동굴 밖에 있던 모든 신룡대원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신룡대원들이 홍련을 따라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홍련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동굴의 통로에 시체들이 보였다. 진입 과정에서 흑풍대원들이 처리한 혈천맹 측 인원들의 시체였다.

신룡대원들은 오래지 않아 넓은 공간에 도착했다.

그곳에 송주가 있었다.

“그 유명한 신룡대의 영웅들을 보게 되어 반갑소. 송주라 하오.”

송주가 먼저 본인의 이름을 밝히자 신룡대원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유명한 천마신교 흑풍대주의 이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송주가 단유소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임무 중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지. 반갑소, 묵룡.”

송주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척 인사를 건네자, 모든 흑풍대원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단유소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묵룡.

흑풍대 요주의 인물 서열록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바로 그 이름이었다. 흑풍대주인 송주조차도 본인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한 바로 그 인물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잘 부탁하오.”

단유소도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척 대꾸했다.

송주와 단유소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짧은 시간 동안 분위기가 두 번 바뀌었다.

송주가 본인의 정체를 밝힌 순간에는 신룡대원들이 긴장하는 분위기였는데, 묵룡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에는 흑풍대원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선화란이 느끼기로 조금 더 동요한 쪽은 흑풍대 쪽이었다.

‘이게 바로 묵룡이라는 이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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