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62화 (162/200)

162화. 거점 타격 (7)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중에 적룡이 말했다.

[저 창 들고 있는 친구 말인데, 역시나 당신 부하겠지?]

그러자 단유소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전에는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더니, 많이 변했네?]

적룡은 역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단유소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맞아.]

단유소가 답하자 적룡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어쨌거나 적룡은 서백풍의 실력을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역시 적룡이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돼?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곧바로 복귀하나?]

단유소의 물음에 적룡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단유소에게 건넸다. 그것은 한 장의 서류였다.

단유소가 받아서 훑어보니 한설연의 필체가 아니었다. 아마도 제갈윤의 필체일 것이라 생각되는 바로 그 필체였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이 시간 이후로 적룡조, 황룡조, 묵룡조의 세 개 조는 함께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과, 총책임자는 묵룡이 맡는다는 내용이었다.

단유소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문상 어른…….’

이런 일은 자신 없다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도, 황룡조에 이어 기어이 적룡조까지 붙여버린 것이다.

물론 상황은 이해한다.

남은 신룡대원들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도 이러는 편이 낫다. 혈천맹의 위험성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자신이 총책임자라는 게 부담스러울 뿐이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게 없다. 문상의 신뢰는 매우 고맙지만.

단유소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총책임자, 자네가 맡으면 안 될까?]

그 말에 적룡이 또다시 표정 없는 얼굴로 말없이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릴랑 집어치우라고.

그 직후 적룡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단유소가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서백풍이 다가왔다.

[이곳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곳에서 연결되어 있는 통로는 총 여섯 곳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진입한 통로이고, 또 하나는 아군이 대기하고 있는 퇴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노인이 밝혔던, 방금 적룡조가 들어왔던 통로입니다. 나머지 세 군데의 통로는 모두 짧은데, 작은 석실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유소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서백풍이 말을 이었다.

[석실들에는 벽력탄을 제조할 때 쓰일 법한 재료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양이 상당합니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다.]

[수고들 했다.]

그러자 서백풍이 물었다.

[적룡조장님은 어떤 분입니까? 일단 무뚝뚝한 분이라는 건 알겠는데.]

[나 혼자 단독 임무를 나갔던 경우가 종종 있었지? 그 임무들은 대부분 몰래 다른 조의 임무를 지원하는 일들이었다. 변절한 청룡의 경우에는 가장 많이 마주쳤던 사이인데, 두 번 만에 나를 알아봤었다. 변절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는 백룡의 경우에는 끝까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적룡은…….]

말을 멈췄던 단유소가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단번에 나를 알아봤던 유일한 조장이다. 실력만 놓고 봤을 때 신룡대의 조장들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조장이 바로 적룡이지.]

[그렇군요.]

[어쨌든 일이 귀찮게 되었다. 적룡조도 앞으로 우리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군.]

[귀찮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역시 조장님이 총책임자 역할이신가 보군요.]

단유소가 허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서백풍은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서백풍은 황룡조와 함께하는 와중에도 내내 즐거워했었다.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서백풍이니만큼, 다른 조원들과 대면하는 걸 마다할 성격이 아니었다.

사실, 서백풍뿐만 아니라 다른 묵룡조원들도 대부분 황룡조와의 합동 임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적룡조가 합류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녀석들을 너무 묵룡조 안에만 묶어뒀던 걸지도…….’

단유소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백풍의 전음이 귓전에 날아들었다. 서백풍의 표정에는 여전히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까 보니 적룡조에도 여인이 두 명이더군요. 보니까 둘 다 괜찮더라고요. 후후.]

단유소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백풍을 너무 우습게 봤다는 후회를 하면서.

정혼단의 인원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 수십 개의 벽력탄들을 날랐다. 물론 석실들에 쌓여 있던 재료들도 함께였다.

벽력탄이 워낙 위험한 물건이라서 운반에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가뜩이나 석실에 쌓여 있던 재료들의 양도 많아서, 그것들을 밖으로 나르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소모되었다.

벽력탄과 재료들을 정협단의 주둔지까지 운반할 운송 도구가 마땅치 않았다. 동굴에 두 대의 수레가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정혼단의 주둔지에도 수레는 없으니, 벽력탄들은 수레에 싣고, 나머지 재료들은 어쩔 수 없이 나누어서 들든지 할 수밖에 없었다.

왕운생은 벽력탄과 재료들을 관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적룡조원들을 포함한 신룡대원들은 안에 남아서 벽력탄 제조 시설들을 문서로 기록했다. 어차피 상부에 보고할 용도로라도 문서는 필요했다.

선화란을 비롯한 나머지 신룡대원들이 합류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단유소 일행 외에 인원들이 더 있는 것을 보고 진평이 물었다.

“이분들은…….”

“일단 보고부터 듣지.”

“알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진입했던 공간의 외곽에 있던 석실들에는 벌거벗은 남녀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모두 젊은 일반인들로…….”

진평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보고했다.

단유소가 보고를 받으면서 보니, 그 와중에도 선화란의 시선은 적룡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적룡은 현재 자신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는데, 그를 보는 선화란의 시선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진평이 보고를 끝내자마자 선화란이 적룡에게 말했다.

“다, 당신은 혹시 그때 그…….”

그러자 적룡이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눈동자만 선화란에게 돌렸다. 물론 무표정을 유지한 채였고 대꾸는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도 황룡조가 작전을 펼칠 때, 적룡이 지원을 갔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다른 조의 임무를 지원했던 것처럼.

적룡의 무기가 언월도이다 보니 선화란의 입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알아본 것이다.

그 사실을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유소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모른 척 물었다.

“뭐야? 두 사람, 구면인 거야?”

그러자 선화란이 다급하게 되물었다.

“누구야? 저분 공자님은?”

대답한 사람은 적룡이었다.

“흥. 여전히 애송이군. 언제까지 그렇게 초짜 티나 팍팍 내고 있을 건가?”

갑작스러운 적룡의 독설에 선화란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대꾸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그전에 우리를 도와주고 바로 사라지셔서, 그 말을 못 했었으니까요. 나는 단지……,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공자님이 누구인지 궁금한 것뿐인데, 굳이 그런 식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나요?”

마지막에는 약간 항변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때 적룡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소였다.

“그게 애송이라는 거다.”

적룡이 그렇게 말하더니 더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흩어져 있는 조원들에게 가버렸다.

선화란이 억울함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저런……!”

말문이 턱 막히는 모양이었다.

선화란이 호소하듯 단유소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뭐 잘못한 거야? 왜 저래? 고마운 사람이라서 좋게 말하려고 해도 진짜……!”

주변에 있던 진평과 서백풍 등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결국 남은 사람은 단유소와 선화란뿐이었다.

“아니, 뭐라고 말 좀 해봐. 저 사람,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대?”

이에 단유소가 빙그레 웃더니 전음으로 물었다.

[저 친구가 누구인지 아직 모르겠어?]

[알 게 뭐야, 저딴 사람……!]

[적이 음탕한 말들을 할 때는 냉정하게 잘만 대처하더니, 지금은 왜 그렇게 감정적이야? 일단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저 친구가 당신네 조를 도와줬던 적이 있다면서? 그렇다면 저 친구의 실력도 알 것 아니야?]

그러자 선화란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내민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선화란의 눈매가 좁아졌다.

[저 사람도 신룡대 조장이구나!]

그 말에 단유소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거기까지 갔으면 바로 한 사람을 특정했어야지.]

선화란이 바로 대꾸했다.

[적룡……!]

오룡 중에서 백룡은 여인이고, 그녀는 현재 변절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청룡은 변절이 밝혀져 현장에서 제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조장은 선화란 본인과 단유소 그리고 적룡뿐인 것이다.

[저 사람이 적룡이었구나…….]

단유소가 또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단유소의 미소를 확인한 선화란이 바로 물었다.

[지금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야.]

단유소가 고개를 저었지만 선화란은 의심의 눈초리를 한동안 거두지 않았다. 그러더니 저쪽에 있는 적룡의 뒷모습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아니, 늦게 알아볼 수도 있는 거지, 뭘 그걸 가지고 저렇게 사람을 무안을 줘? 자기는 뭐, 퍽이나 한 번에 딱딱 알아맞히고 그러는 모양이지?]

[응.]

단유소의 대꾸에 선화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답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표정.

단유소가 말했다.

[나도 적룡조를 지원하러 갔던 적이 있거든. 도와주고 나서 말없이 사라지려는데, 저 친구는 내 정체를 한 번에 알아맞히더라고.]

선화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단유소가 말을 이었다.

[상대가 적이든 아군이든, 고수를 알아보고 그의 경지와 정체를 빠르게 짐작해내는 것은 무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능력이야. 그래야 비로소 전체적인 상황을 본인이 제어할 수 있게 되는 거거든. 적룡은 당신의 그러한 미숙함에 대해 지적한 거야. 아무리 신임 조장이라도, 신룡대의 조장은 신룡대의 조장다워야 한다는 거지.]

선화란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단유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녀도 답답할 것이다. 본인의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정리하고 이겨내야 할 문제였다.

잠시 후에 선화란이 말했다.

[심정적으로는 적룡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인정해야겠지. 그래, 난 신룡대의 조장 황룡이고,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니까.]

단유소가 빙그레 웃었다.

어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

바로, 본인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

선화란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화란이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종종 그렇게 각 조장들이 단독으로 다른 조를 지원하러 다니고 그래?]

[적룡이 얼마나 다녔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몇 번 경험이 있지.]

선화란은 왠지 가장 많이 지원을 다닌 조장이 묵룡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실력이라면 분명히 어디에나 큰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혹시 묵룡조도 다른 조장들의 단독 지원을 받은 적이 있어?]

그 말에 단유소가 고개를 저었다.

[임무 인계가 있을 경우에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조장들이 단독으로 지원하러 온 적은 없어.]

하긴, 애초에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묵룡이 있는데 무슨 지원이 필요했을까.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주고받던 때였다.

“큰일 났소!”

정혼단원 한 명이 통로 쪽에서 다급하게 달려오더니 외쳤다.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정혼단을 습격했소! 밖에서는 지금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소! 적의 숫자가 많은데, 아마도 혈천맹의 무리들인 듯하오! 얼른 밖으로 나오시라는 유굉 대사님의 명이오!”

그 말에 모든 신룡대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었다.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호를 받은 진평이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동굴 통로를 달리는 와중에 진평이 단유소에게 전음을 보냈다.

[벽력탄과 재료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다소 걸리긴 했다지만, 그렇다 해도 적습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벽력탄과 재료들을 놔두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그래도 진평의 말마따나 적습은 의외였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적들일까요?]

진평의 물음에 단유소가 대꾸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는 거겠지.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적의 또 다른 거점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진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끝날 것만 같았던 이번 작전이, 왠지 조금은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