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거점 타격 (3)
유굉 대사와 함께 무림맹의 장로단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 그였다. 그래서 유굉 대사가 정협단주를 맡고 왕운생이 부단주겸 제일대주를 맡은 것이다. 왕운생은 이곳에서 무예도 가장 출중한 인물이었다.
유굉 대사가 수습을 맡고 제일대부터 제사대의 전력을 이곳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왕운생의 존재 때문이었다.
“전력들을 중간중간에 나누어놓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며 서로 빠르게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소. 최종적으로는 진입조만이 동굴의 끝까지 갈 것이오.”
“아, 알겠습니다.”
황보균이 대표로 대꾸하자 왕운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책임자이니 끝까지 진입조와 함께할 수밖에 없소. 위험할 수도 있으니 강제로 함께 가자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소. 후방에서 전력을 통솔하는 역할도 중요하니 말이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소생도 함께하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지휘부가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려서야, 일반 단원들이 어찌 믿고 따르겠습니까?”
황보균, 팽야창, 육아룡 등이 차례로 그렇게 대꾸했다. 세 사람 모두 공을 세우고 싶은 입장이니, 이런 상황에서 빠지려 할 리가 없었다.
왕운생이 대꾸했다.
“알겠소. 그럼 여러분들도 진입조와 함께 가십시다.”
그러자 이검인이 바로 왕운생에게 말했다.
“저희들에게도 주어진 임무가 있으니, 진입조와 함께하겠습니다.”
왕운생이 대꾸했다.
“그러시게.”
이동 중에 왕운생은 군데군데 전력들을 분산시켜 남겨두며, 전령들을 통해 신속하게 서로 연락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진입조만이 계속해서 동굴의 안쪽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진입조는 단유소 일행을 포함해서 사십 명 남짓이었고, 동굴의 폭은 동시에 두세 사람이 이동할 만한 정도였다. 그렇기에 서른 명 남짓의 인원임에도 행렬은 종으로 제법 길었다.
넓게 곡선으로 이어지던 어두운 동굴이 어느 순간 각을 이루며 꺾였을 즈음이었다.
“적입니다!”
선봉에서 그 외침이 들린 순간.
카강! 카아앙!
쇠붙이와 쇠붙이가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헉……!”
“가, 강시입니다! 두 구입니다!”
그 말이 들리자마자 왕운생이 명령했다.
“물러나라!”
선봉에 섰던 무인들이 동굴의 벽면에 붙어 물러나는 동시에 왕운생이 전면으로 나섰다.
그 순간 왕운생과 함께 또 한 사람이 전면으로 나섰는데, 그는 바로 황보균이었다. 이곳에서 왕운생 다음으로 강한 고수가 바로 그였기에, 진형을 짤 때도 팽야창과 육아룡보다 앞쪽에 배치되었던 탓이다.
신룡대는 진입조의 후방에 배치된 터라, 지금의 위치에서는 등장한 강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동굴의 꺾인 부분에 선봉이 진입하자마자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놈들일까요? 선봉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절정 이상의 고수들인데, 그들의 검이 통하지 않았다면 흑강시는 아닐 것이고. 청강시일까요? 아니면 설마 혈강시?]
서백풍의 전음이었다.
지금껏 등장한 혈천맹의 강시 중에 가장 약한 건 흑강시였다. 흑강시라면 절정 고수들도 벨 수 있다.
그다음은 청강시인데, 청강시는 어지간한 최절정 고수라면 벨 수 있다.
혈강시의 경우에는 서백풍과 연소운의 경우에서 보았듯,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야만 벨 수가 있었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이 위치에서는 놈들의 피부색을 확인할 수 없으니, 반응 보면 알겠지.]
살아 있는 사람이면 기운만으로도 대강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으나, 강시의 경우에는 직접 보지 않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정협단에서 초절정 고수는 두 명이었다.
유굉 대사와 왕운생인데, 왕운생은 초절정의 초입쯤이었고, 유굉 대사가 그보다 조금 더 강했다.
콰곽!
퍼어엉!
앞쪽에서 두 종류의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헙……!”
“이, 이런……!”
각각 왕운생과 황보균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황보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본인의 주먹과 상대 강시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강력한 일권(一拳)이 검을 들고 있는 강시의 흉부에 적중했었다. 그런데 그 강시는 충격으로 인해 잠시 상체가 살짝 뒤로 젖혀졌을 뿐, 전혀 피해를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강기로 가득 감쌌던 자신의 주먹은 마치 쇳덩어리라도 때린 듯 얼얼했다. 손목과 팔꿈치가 저려올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황보균보다 덜 놀란 기색이었지만, 왕운생이 속으로 느끼는 충격은 상당했다.
‘베지…… 못했다고?’
최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넘었다. 드디어 초절정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앞에 철곤(鐵棍)을 들고 있는 강시를 베지 못했다. 검이 박히기는 했으나, 깊이 박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왕운생이 이를 악물며 다시 한번 빠르게 진기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검이 번쩍 허공을 갈랐다.
콰곽!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검은 강시의 피부를 살짝 파고들었을 뿐, 베는 건 어림도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검이었거늘……!’
그 순간 뇌리를 스쳐 가는 말이 있었다.
“혈강시의 경우에는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조차도 쉽게 벨 수 없습니다.”
무림맹 장로회의에 참석했을 때 문상 제갈윤이 했던 말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보니 강시의 피부가 불그스름했다. 강시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미처 구분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심하시오! 이것들은 혈……!”
왕운생의 외침은 또다시 들려온 폭음에 의해 묻혀버렸다.
퍼어엉!
황보균의 강력한 주먹이 이번에는 혈강시의 장딴지를 강타한 것이다.
혈강시의 신형이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나 기우뚱거린 정도는 아니었다.
황보균이 여전히 놀라 있을 때였다.
샥―
그 강시가 들고 있던 검이 황보균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왕운생이 또다시 두 눈을 부릅떴다.
강시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위험……!”
왕운생이 바로 황보균을 도우려 했지만 그는 결국 도울 수 없었다. 그의 앞에 있던 강시가 철곤을 휘두르며 자신을 공격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강시가 철곤을 휘두르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왕운생이 서둘러 강시의 쌍검을 막아갈 때, 다행히 황보균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그의 앞에 있던 강시의 공격을 피한 후였다. 그 순간, 황보균의 뒤쪽에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낮게 도약하며 튀어나온 그 인영이 강시의 몸을 사선으로 양단할 듯 도(刀)를 내리그었다.
팽야창이었다.
도법에 관해서만큼은 하북팽가가 강호에서 으뜸이라더니, 과연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강맹한 일도(一刀)였다.
이윽고 팽야창의 도가 검을 든 강시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카아앙!
강력한 충돌음이 들린 순간, 검을 든 강시의 상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강시의 목 언저리에는 약간의 생채기가 남았을 뿐이었다.
“헉……!”
팽야창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카앙!
이어지는 강시의 검을 막아내며 팽야창이 외쳤다.
“무, 무슨 이런 괴물들이……!”
왕운생이 대꾸했다.
“조심하시오! 이것들이 바로 문상이 얘기했던 그 혈강시요!”
왕운생의 그 말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혀, 혈강시라니……!”
“초절정 고수들조차 쉽게 베지 못한다던……!”
무인들이 수군거리며 동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비좁은 동굴인지라 저 두 구의 혈강시를 피해서 안으로 진입할 수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포위 공격을 할 수도 없었다.
“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팽야창이 부지런히 도를 휘두르는 와중에 왕운생에게 물었다.
왕운생이라고 해서 방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두 구의 혈강시는 그냥 벽이었다.
왕운생이 고민하며 강시의 공격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붕―
자신을 공격하던 강시가 갑자기 몸을 틀어 팽야창을 향해 철곤을 휘두르니, 왕운생이 서둘러 외쳤다.
“팽 대협, 조심!”
그러나 그 즈음 팽야창은 앞에 있던 강시의 검을 피해 안으로 파고든 상황.
그렇게 되니 팽야창의 정면은 검을 든 강시에 의해, 왼쪽은 봉을 든 강시에 의해, 오른쪽은 동굴의 벽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가뜩이나 팽야창은 정면의 강시를 향해 파고들던 상황이었으니, 역동작에 걸린 꼴이 되어 후방으로 빠지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왕운생이 서둘러 봉을 휘두르는 강시의 팔을 향해 검을 뻗었지만, 왕운생 본인이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검은 강시의 팔을 벨 수 없으니, 팽야창의 등을 향해 떨어지는 강시의 저 철곤을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순간이었다.
슈욱―
왕운생의 우측 후방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철곤을 휘두르던 강시의 팔을 찔러갔다.
왕운생의 눈에 똑똑히 보인 것은 하나의 기다란 창이었다.
그다지 강력한 기운이 담겨 있지도 않은 것 같은 그 창은 적어도, 빠르기 하나는 상당했다.
정협단의 대주들 중에 창을 쓰는 고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저 창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상황이 급하여 확인할 틈은 없었다.
창은 정확히 강시의 팔꿈치를 찔러갔다.
강시의 팔꿈치에 창이 닿는 그 순간까지도,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어차피 이곳에서 저 혈강시들을 벨 수 있는 고수는 없으니까.
왕운생의 눈동자가 갑자기 휘둥그레진 직후였다.
서걱―
철곤을 휘두르던 강시의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휘둥그레졌던 왕운생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찰나에 두 번이나 놀랐다.
처음 놀란 건 창날이 강시의 피부에 닿기 직전이었다. 별로 강력해 보이지 않았던 창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기운이 담긴 탓이었다.
아마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인원들 중에서 그 강력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파악한 사람은 자신이 유일할 것이다. 초절정에 오른 자신조차도 순간적으로 그렇게까지 강력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였다.
두 번째로 놀란 건 당연하게도 결과 때문이었다.
창에 강력한 힘이 담긴 순간,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었는데 역시나 강시의 팔을 잘라낸 것이다. 그것도 더없이 깔끔하게.
저 정도의 고수라니, 대체 누구일까.
그 순간, 검은 인영 하나가 왕운생의 곁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초절정의 경지에 있는 왕운생의 안력으로도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
검은 인영이 향한 곳은 역시 팽야창 쪽이었다.
그 즈음 팽야창은 강시의 검을 막으며 동굴 오른쪽의 벽면에 붙은 상황.
팽야창의 정면을 스쳐 간 검은 인영이 무서운 기세로 창을 휘둘렀다.
슈악―
서걱!
이번에도 여지없이 강시의 팔이 잘렸다. 두 강시 모두 무기를 휘두르던 팔이 잘린 것이다.
그 광경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왕운생은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이번에도 아까와 같았다.
창날이 강시의 피부에 닿기 직전에만 강력한 힘을 머금었던 것이다.
팽야창이 그 틈을 타서 뒤로 몸을 뺐다.
그러자 검은 인영이 더욱 자유롭게 창을 휘두르며 두 구의 혈강시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의 창이 향하는 곳마다 강시의 몸이 갈라졌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
이와 같은 동굴에서 사용하기에 저러한 장창은 제약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인영은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 정도로 고수인 것이다.
모두가 멍하니 그 인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가운데, 왕운생의 귓전으로 한 줄기 전음이 흘러들었다.
[왕 대협을 뵙습니다. 저는 신룡대의 엽풍이라 합니다. 맹주님의 명을 받고 정혼단의 작전을 돕는 중입니다. 상황이 다급하여 이런 식으로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된 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