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45화 (145/200)

145화. 합동 임무 (4)

단유소가 전서의 내용을 훑더니 그것을 선화란에게 넘겼다.

선화란도 전서의 내용을 훑더니 말했다.

“이곳이 습격받았다는 상황을 알리는 것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더군. 그래도 우리는 못 보는 암어 같은 게 배열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당신이 간수했다가 나중에 상부에 보고할 때 첨부하도록 해.”

“알겠어.”

선화란이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은 후에 물었다.

“그런데 저건 뭐지? 쇠뇌 같긴 한데 일반적인 쇠뇌와는 달라 보여서 말이야. 보통 물건이 아닐 것 같은데? 위력도 강할 것 같고.”

“좀 특수한 쇠뇌야. 우리 조에서 자체 설계해서 주문, 제작한 거야.”

단유소가 철혼에 대해 대충 둘러대며 대꾸하자 선화란이 다시 물었다.

“제법 무거울 것 같은데, 묵룡조는 저런 것도 들고 다니면서 싸우는 거야?”

“분해해서 나누어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조립해서 쓰는 식이지.”

“아하. 그거 괜찮네. 이번 임무 끝나고 돌아가면 우리 조도 저런 거 하나 구비해야겠어.”

단유소가 희미하게 웃어 보이기만 했다.

선화란이 말했다.

“이제야 상황이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네. 우리를 미끼 삼아 장원의 모든 이목을 이쪽으로 집중시킨 후에, 당신은 나머지 대원들과 함께 장원의 바깥채를 완벽하게 장악했던 것이겠지?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니 바깥채 장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다 맞아. 하지만 하나가 틀려. 당신과 운이는 미끼가 아니었어. 미끼는 잡아먹히라는 목적으로 던져주는 것이거든. 애초에 내 목적과는 달랐다는 뜻이지.”

단유소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선화란이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 대꾸해주고 싶지만 백운의 실력을 이미 확인한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선화란이 쓰러져 있는 장주 쪽으로 다가가더니 쭈그려 앉아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주가 혈도를 집혀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도 움찔했다.

선화란이 고개를 들어 단유소에게 물었다.

“굳이 이 아저씨는 왜 살린 거야?”

“무림맹으로 호송시키려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캐낼 수도 있으니.”

“그런 거라면 나도 잘할 자신 있는데.”

선화란이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장주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장주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단유소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었다.

“고문술도 배웠나?”

선화란이 대꾸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고. 사내들은 대부분 중요한 부위에 가위만 갖다 대면 알아서 다 불게 돼 있거든.”

“컥!”

“헙!”

여기저기에서 신룡대원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장주는 오한을 느끼듯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그만하십쇼. 그런 소름 돋는 얘기.”

서백풍이 그렇게 말하자 선화란이 대꾸했다.

“나도 아는 친구한테서 들은 거야. 효과가 매우 좋다고 하더라고.”

단유소가 농담하듯 물었다.

“당신의 경험담이 아니고?”

“아직까지는 경험 안 해봤는데…….”

잠시 말을 줄였던 선화란이 손으로 장주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이참에 한번 경험해볼까? 가뜩이나 이 아저씨가 아까 나를 사로잡아서 재미를 본 후에 죽인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나도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고 말이야.”

“추잡하고 잔인하군.”

단유소가 그렇게 말하자 선화란이 고개를 들어 단유소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남자들이 하는 짓이 더 추잡하고 잔인하다고는 생각 안 해?”

단유소가 바로 대꾸했다.

“당신한테 한 말 아니야. 그자한테 한 말이라고.”

그러자 선화란이 뜻 모를 미소를 띤 채 잠시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장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맹에 후송하면서 전해. 내 친구 주소 알려줄 테니까, 이 아저씨가 뭐든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바로 그 친구 부르라고.”

“기꺼이.”

단유소가 그렇게 대꾸하더니 돌아서서 신룡대원들에게 지시했다.

“곧 이 지역 천망단원들이 도착해서 뒷일을 처리해줄 것이다. 그러면 바로 인계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이인 일조로 장원을 돌며 이상한 점이나 특이한 점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이상.”

신룡대원들이 짧게 대꾸한 후 곧바로 이리저리 흩어졌다.

숙소는 허름한 객잔의 별채였다.

한바탕 전투를 벌인 후인지라 아직 새벽이 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아까 갔었던 장원을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서의 임무는 끝났다. 이전까지는 계속 허탕이었는데, 마지막에 쓸 만한 정보를 얻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단유소는 선화란과 함께 오늘 입수한 정보를 정리하여 전서응을 날렸다.

일처리를 마치자 선화란은 목욕을 하겠다며 갔고, 단유소도 적당히 몸을 씻은 후에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묵룡조원들과 황룡조원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마시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퍼붓고 있다고 봐야 했다.

혈천맹에 관련된 일이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임무 수행 중에는 철저한 금주령을 내렸었다. 그래서 모두가 삼 주 이상 술을 입에도 못 댔다.

이제 이 지역에서의 임무는 끝났다. 어차피 하루 이틀 정도는 이곳에서 대기하며 맹의 다음 지시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기에 오늘은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허락했다.

모두 고생이 많았으니, 풀어줄 때는 확실하게 풀어줘야 대원들도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이다.

“조장님! 어서 오십쇼! 거하게 한잔하셔야지요!

단유소를 발견한 곽승추의 말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단유소가 가서 보니 이미 탁자의 한쪽에는 비어 있는 술병들로 가득했다. 단유소가 의자에 앉더니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만큼이나 마셨어?”

“에이, 조장님. 입이 몇 갠데요!”

“저 정도면 입의 개수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준 아닌가? 오늘 이 집에 있는 술, 모조리 동낼 작정들이야?”

“이제 와서 말리기 없깁니다, 조장님. 엄연히 조장님의 허락하에 마시는 거니까.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뱃속의 주충(酒蟲)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고 있단 말씀입니다.”

곽승추의 대꾸에 단유소가 결국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누가 말린댔나? 안 말린다, 안 말려. 그래, 그놈의 뱃속에 있는 주충들, 이참에 실컷 호강들 시켜줘. 오늘 여기 술값은……!”

단유소가 호기롭게 말을 꺼내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

단유소가 바로 말을 이었다.

“반은 내가 낸다.”

대원들이 짐짓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야유를 보냈다.

“에이, 조장님, 우리가 마시면 얼마나 마신다고…….”

“이런 땐 기분상 다 쏘셔야지, 반이 뭡니까, 반이! 멋있어 보이려다가 말았잖아요!”

“부양할 처자식도 없으시면서.”

서백풍과 곽승추 그리고 진평이 연이어 그렇게 말했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시끄러. 니들이 작정하고 마시는 술값 다 내주려면 우리 집 기둥뿌리 뽑아야 돼. 어쨌거나 나머지 반은…….”

단유소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두가 외쳤다.

“에이, 조장님, 약한 모습!”

단유소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맹에 청구할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원들이 또다시 불타올랐다.

“우오오오오오!”

공짜 술의 위력이었다.

그러자 단유소의 맞은편 좌측 대각선상에 앉아 있던 인물이 술병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황룡조에 소속된 대원이었다.

“묵룡조장님, 첫 잔은 제가 따라드려도 되겠지요?”

그 인물의 이름은 호문혜(狐文慧)로 여인이다. 가냘픈 몸매에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겼다.

물론 인피면구를 착용한 얼굴에 이름도 가명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얼굴형 자체가 미인형이긴 했다.

묵룡조는 조장까지 포함하여 총원이 다섯 명인데 반해, 황룡조는 여섯 명이다. 그중에서 조장인 선화란과 조원인 호문혜까지 두 명이 여인이다.

근래 몇 년간 신룡대에 지원하는 지원자들 중에 여성의 비율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지원자의 비율이 많이 늘어난 만큼, 실제 신룡대에 차출된 여성들의 비율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나.

단유소가 술잔을 들었다.

“고맙게 받지.”

그러자 호문혜가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영광입니다, 조장님.”

“무슨 영광씩이나.”

단유소가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호문혜가 말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신룡대에 차출되어 훈련생으로서 각종 교육을 받던 시절에, 교관님들을 통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이 바로 묵룡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물론 조장님의 명성이야 신룡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래? 그분들이 뭐라고 하시던가?”

“역대 최고 점수로 신룡대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셨다고…….”

그녀의 말에 모두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민망하군.”

단유소가 그렇게 말하자 호문혜가 대꾸했다.

“그래서 꼭 한 번은 조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나마 뵐 길은 합동 임무밖에 없는데, 그나마 신룡대는 합동 임무 자체가 극히 드물잖아요. 설령 그런 기회가 생겨도, 묵룡조와 함께 임무를 수행할 확률도 드물고…….”

단유소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룡대의 어느 조라도 묵룡조와 더불어 합동 임무를 수행한 조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조장이 된 이후에는 그랬다. 다른 조는 몰라도, 묵룡조에는 늘 단독 임무만 하달되었다.

만약 이번에 신룡대 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도 묵룡조는 여전히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이런 말씀 드리기가 어려웠는데, 오늘은 술자리이고 하니 용기 내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직접 조장님을 뵙고 나니, 왜 모두가 묵룡, 묵룡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까 장원에서 무공을 펼치시던 모습은 정말이지…….”

호문혜가 아까의 일을 회상하는 듯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단유소가 말했다.

“고맙군. 어쨌거나 지금은 그쯤 하지. 내 속에 있는 주충들도 난리들을 피워대서 말이야.”

“앗! 네!”

호문혜가 정신을 차리자 단유소가 말했다.

“다 함께 건배하는 건 황룡조장이 오면 하지. 그 전까지는 각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알아서 부딪치면서 마시자고.”

“예!”

모두가 쭉쭉 술잔을 들이켰다.

약 일각쯤 후에 선화란까지 합류하니,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단유소가 별채의 마당에 나와 보니 멀리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여름이었으면 이미 햇볕이 쨍쨍해질 시간이었겠지만, 겨울의 해는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중이었다.

“스읍……. 하아아아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니,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로 인해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가 부어라 마셔라 술을 들이켜고 취했다.

몇몇은 이미 취해서 곯아떨어졌고, 몇몇 주당들은 아직도 남아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단유소가 크게 호흡하며 동이 터오는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뭐 해?”

선화란이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단유소에게 평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냥, 시원한 공기 좀 쐬려고.”

단유소가 돌아보지 않고 대꾸하자 선화란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 나란히 섰다. 그러자 단유소가 물었다.

“당신은 왜 나왔는데?”

“나도 그냥. 바람 좀 쐬려고.”

그 후로 한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불편한 침묵이 아니라, 각자가 여유를 즐기는 침묵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중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선화란이었다.

“실은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단유소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자, 선화란이 갑자기 전음으로 물었다.

[정체가 뭐야? 당신네 묵룡조는 대체?]

[무슨 뜻이지?]

[어떻게 조장급의 실력자가 두 명이나 더 존재할 수 있어? 게다가 나머지 두 명은 조장급을 제외하면 신룡대에서 최고 수준의 정예들이고. 이건 일개 조 단위의 전력이 아니잖아. 완전 말도 안 되는 전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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