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합동 임무 (1)
슈슈슉―
선화란이 날린 세 줄기의 강기가 상대를 향해 매섭게 짓쳐들었다.
견제 따위를 날릴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필사의 각오로 달려들어 빈틈을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해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카가강!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쯤 선화란은 이미 최대한의 속도로 상대를 우회하고 있었다.
그녀가 막 도약하여 담장을 넘으려던 찰나, 담장의 뒤쪽에서 거대한 진기가 날아왔다.
슈웅―
이미 도약하여 허공에 뜬 상태에서도 선화란이 몸을 유연하게 비틀며 그 장력을 피해냈다. 실로 놀라운 수법이었다. 마치 한 마리의 새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라 해도 시간 차를 두고 날아온 그 다음 장력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상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선화란이 장력을 발출하여 그 진기를 막아갔다.
콰아앙!
허공에서 진기와 진기의 폭음이 들릴 때쯤, 선화란이 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착지하자마자 또다시 튕겨 나가려던 그녀의 신형이 우뚝 멈췄다.
어느새 사방이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퇴로가 없었다. 불쑥불쑥 나타난 인물들의 전체적인 실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이었다.
선화란을 포위한 네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그녀를 향해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 그녀의 간격은 예닐곱 걸음 정도였다.
선화란이 자세를 살짝 낮추며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을 서서히 살폈다. 비록 포위당한 상태이긴 하나, 그녀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벼려진 칼처럼 더욱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선화란이 보니 흑의 사내 세 명에 남색 복장의 사내 한 명이었다. 흑의인들은 모두 눈만 드러나는 검은색의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남의인은 처음에 방 안에서 튀어나왔던 사내로, 장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자였다.
그는 자신이 움직이자마자 기척을 알아챘다. 움직였다고는 해도 매우 은밀했는데,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면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라고 봐야 했다.
흑의인 세 명의 수준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세 명 중에 한 명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고, 나머지 두 명은 살짝 처지는 정도였다.
지난 며칠간 이곳 장원에서 지내면서 주의해야 할 몇몇 고수들을 파악해두었었다. 그 중에는 눈앞의 흑의인들 정도로 강한 자들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고수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칫! 함정이었다는 건가?’
선화란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의인이 입을 열었다.
“웬 쥐새끼인가 했더니 시녀라……?”
남의인은 선화란의 복장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현재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이 이곳 장원에서 일하는 시녀들의 복장이었던 탓이다.
선화란이 이 장원에 들어온 것은 아흐레 전이었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엌일을 돕는 시녀로 위장하여 잠입했었다.
“이제 보니 쥐새끼가 아니라 암고양이였군. 그것도 제법 사나워 보이는.”
남의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쯤 누군가가 다가왔다.
선화란이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 통통한 체구의 그는 이곳의 장주였다.
장주가 말했다.
“응? 너는……? 가만있자, 이름이 주란이라고 했던가?”
선화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장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견(見) 노파가 너를 칭찬했었지. 음식 솜씨가 제법인 데다가 생긴 것도 참하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도 너를 좋게 봐줬었거늘. 하……!”
음식 솜씨는 원래의 실력이었지만, 이곳에서 쓴 이름은 가명이었다.
얼굴도 인피면구를 쓴 얼굴이었다.
여인의 고운 생김새는 수많은 상황에서 유용한 무기가 된다. 특히 뭔가 잘하는 게 있으면서 외모까지 고우면 더 빨리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일부러 그런 인피면구를 골랐던 것이다.
장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근래 우리 장원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었기에 혹시나 싶어서 큰 덫을 놓아봤더니, 결국 걸려든 게 네년이었단 말이냐? 이런 고얀 년 같으니. 그래, 네년은 정체가 무엇이냐?”
선화란이 대꾸했다.
“아저씨, 딱 보면 몰라? 오지게 재수 없는 년인 거?”
“푸허허허허헛!”
장주가 고개를 젖히고 웃더니 말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걸 보니 정신 나간 년이로구나. 그래도 그 기개 하나는 인정해주마. 어차피 네년은 죽어야 할 운명이지만, 상으로 조금 더 늦게 죽여주마.”
장주가 그렇게 말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선화란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도 여자 보는 눈은 있네, 아저씨? 내가 또 끝내주거든.”
그러자 장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허! 허헛! 저, 저런 요망한 년을 봤나.”
그렇듯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반응하고 있는 선화란이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살아나갈 확률이 일 할은커녕 오 푼도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다가 선화란이 작게 중얼거렸다.
“젠장, 빌어먹을 작자 같으니…….”
“거, 얼굴은 곱게 생긴 년이 입 한번 걸구나.”
장주가 그렇게 말하자 선화란이 대꾸했다.
“아! 방금은 아저씨한테 한 말 아니야. 오해하지 마.”
“허허. 재미있구나. 그러면 누구한테 한 말이냐?”
“나를 여기로 보낸 사람한테.”
장주가 관심을 보였다.
“그게 누구더냐?”
“있어, 그런 인간. 그나저나 아저씨, 나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선화란이 애교를 섞어 말하자 장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푸핫! 하여간 처음부터 끝까지 요망한 년이로구나!”
“억울해서 이래, 내가. 그 사람한테 가서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 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이런다고, 내가. 왠지 이번엔 함정이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좀 믿을 만한 조력자를 붙여달랬더니 글쎄, 본인의 부하 중에 제일 약해 빠져 보이는 애송이를 붙여주는 거야!”
“그래서?”
장주가 흥미롭다는 듯 대꾸해주자 선화란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사실은 나도 조장이고 그 인간도 조장이거든? 직급은 같은데 그 인간이 이번 일의 책임자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애송이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어. 그랬더니 이렇게 아저씨가 파놓은 함정에 딱 걸린 거야. 애송이한테 뭘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 정말 어쩌면 좋아?”
“푸허허! 팔자마저도 기구한 년이로다!”
“그치? 그러니까 한 번만 봐줘, 아저씨.”
“뭐, 들어보니 나름 측은하긴 하다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저승에 가서 원혼이 되어 그놈을 따라다니든지 하거라.”
“에이, 아저씨!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어차피 덫이었다며? 함정이었다며? 그러면 내가 들은 것도 다 지어낸 얘기들이었을 거 아냐?”
선화란의 말에 장주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선화란의 눈동자에 살짝 이채가 담겼다가 사라졌다.
‘사실이었군.’
그렇다면 더더욱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서, 반드시 알려야 한다.
장주가 말했다.
“듣자하니 그 애송이도 우리 장원에 있나 본데, 내가 꼭 찾아내서 네년의 저승길에 말동무로 삼게 해주마. 단, 그 애송이가 누군지 네년이 미리 알려주면, 놈은 고통 없이 편하게 죽여주겠다. 자, 그 애송이는 누구냐?”
“저, 전데요…….”
갑자기 들려온 대꾸에 모든 이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대꾸한 인물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선화란을 포위하고 있던 세 명의 흑의 복면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복면을 벗더니 등 뒤의 검집에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는 이미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는데, 방금 등 뒤에서 뽑은 검과 모양과 길이가 같았다.
쌍검인 것이다.
선화란 또한 크게 놀란 상태였다.
‘백운……?’
이 친구다. 이번 잠입 임무의 조력자는.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매사에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그는 묵룡조의 막내다. 이름은 백운이라고 했다. 신룡대의 특성상 어차피 가명이겠지만.
어쨌거나 그 인간, 묵룡은 묵룡조에서 제법 쓸 만해 보이는 자들은 다 젖혀두고 결국 저 인간을 붙여줬다.
위험할지도 모르고 함정일지도 모르니 좀 더 나은 실력자를 붙여달라고 항의도 했었다. 그러나 묵룡 그 인간은 자신의 의견을 단박에 묵살했다.
“백운 저 녀석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쓸 만해. 그러니 황룡 당신이나 잘해.”
아, 그 말을 할 때의 묵룡은 정말 재수 없었다.
물론 그는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이긴 하다.
그래도 같은 조장끼리인데,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평소 그가 신룡대 최고의 실력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기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합동 임무를 하면서 완전 깼다.
감투 썼다고 그렇게 구는 것이면 참으로 마음에 안 들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면 더 마음에 안 든다. 이젠 그가 뭘 해도 마음에 안 든다.
어쨌거나 이번 임무는 합동 임무다.
사실 신룡대가 이개 조 이상 모여서 처음부터 합동 임무를 펼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룡대의 각 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부분의 임무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하기 때문이다. 대원들 개개인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기본적으로 작전 수행 능력들이 뛰어난 탓에, 단위 조별 전투력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합동 임무가 주어진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저 혈천맹이라는 미치광이들이 워낙 위험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맹에서는 근래 여러 가지 정보들을 취합하여 그들의 전초 기지를 예측했는데, 아무리 신룡대라 해도 조별 단위의 행동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 합동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한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신룡대 자체의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근래 신룡대 내에 큰 풍파가 있었다.
신룡대 내에 혈천맹 쪽으로 변절한 자들이 생긴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특히, 변절의 주모자가 청룡이었고 청룡조원 모두가 변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멍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사석에서 두어 차례 만나서 언니라고 부르게 된 백룡이 그 일에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아직 혐의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백룡을 비롯한 백룡조원들은 현재 모두 임무에 열외가 되어 있는 상태다.
그리하여 청, 적, 황, 백, 묵의 다섯 개 조 중에서 현재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조는 적, 황, 묵의 세 개 조뿐이었다.
적룡조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무림맹 사천지부에 주둔하고 있어, 현재 합동 임무를 펼치고 있는 건 묵룡조와 황룡조였다.
장주와 남의인을 비롯한 인물들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을 때 선화란이 빠르게 전음으로 물었다.
[그, 그대가 왜 거기에 있는 거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