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무림맹 장로회의 (3)
오찬을 마친 후 무림맹 장로회의가 시작되었다.
거대 문파, 대문파, 명문세가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모두 참석했고, 그 외에도 무림맹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명숙들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회의에 참석한 총 인원은 서른 명 남짓이었다.
맹주 백리우는 급한 사정이 있어 회의에 늦는다고 공지한 가운데, 제갈윤이 나서서 현재의 강호 상황과 지금까지 무림맹에서 알아낸 혈천맹에 관한 여러 정보들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난 후에 제갈윤이 말했다.
“소생이 말씀드렸듯 그들은 파신폭멸공의 수법을 응용하여 독공까지 펼치는 자들입니다. 그 수법을 이용하여 삼류 무인도, 심지어는 일반인들까지도 본인들의 무기로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벽력탄을 쓰고 강시까지 대동하는 자들입니다. 청강시는 초절정 고수가 아니면 벨 수 없고, 청성에서 마지막에 등장한 혈강시의 경우에는 어지간한 초절정 고수조차도 쉽게 벨 수 없습니다.”
제갈윤이 사무적인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소생은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보고했을 뿐입니다. 정예 차출 건으로 이미 공문을 통해 그러한 사안들을 전해드렸던 바, 모두가 알고 계신 내용들이지요.”
그 말을 끝낸 제갈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여러 세력의 대표들께서는 귀한 전력들을 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강호의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며, 역시 백도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제갈윤의 어조가 이상하다는 걸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는 지금 고마워하고 있는 게 아니라 비꼬고 있는 것이다. 웃으며 탓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참석자들의 표정에 민망함이 담길 때쯤 제갈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근래 맹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핑계로 소생이 너무 무공 수련을 게을리했나 봅니다. 각 세력에서 보내주신 귀한 정예들이 맹에서 원했던 수준의 전력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요? 적의 저 무시무시한 강시들을 상대해야 할 전력인데 설마 일류 고수 정도를 보내주셨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래서 무공 수련은 평소에도 꾸준히 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허허헛.”
“흠! 흠!”
“커흠……!”
여기저기에서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윤이 천천히 좌중들을 한 차례 훑더니 말했다.
“으응? 반응들이 왜 그러십니까? 마치 제가 본 그들이 진짜로 일류 고수들이라는 것처럼?”
제갈윤의 그 말에 눈을 못 마주치는 자들이 다수였다. 그들 모두가 일류 고수를 정예랍시고 포함시킨 세력의 대표들이었다.
“무량수불, 문상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두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 정도만 하시지요.”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사람은 무당파의 장로인 왕운석(王雲晳)이었다. 그는 현 무당 장문인의 막내 사제이자, 무당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장로이기도 했다.
무당파와 제갈세가는 같은 호북에 위치해 있고 서로 멀지 않은 만큼 서로 친분이 깊었다.
특히 무당파는 백리세가에서 맹주를 맡기 전에 한 차례 맹주를 배출했던 만큼, 무림맹의 행사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해봤으니 아는 것이다. 연합 세력인 백도를 이끌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이번에 무당파에서는 다른 곳들과 달리 제대로 된 정예 전력들을 보내왔다.
제갈윤이 대꾸했다.
“예. 왕 장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당연히 모든 분들이 알아들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이 문제가, 제 속의 화만 누그러트려서 끝낼 수 있는 문제였으면 좋겠습니다. 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습니까.”
왕운석을 향해 그렇게 대꾸한 제갈윤이 다시금 좌중을 바라보았다. 그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자, 기왕 말이 나왔으니 툭 터놓고 얘기 한번 나눠봅시다. 공동파는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하룻밤 새에 궤멸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청성파는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문파들이 이미 멸문지화를 입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은 어디를, 누구를 노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상황,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고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제갈윤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정예들을 요청했는데 이런 식의 대응들이라니요? 대체 어쩌자는 생각들이십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전히 모르시는 겁니까? 아무리 오랫동안 강호가 평화로웠다 해도, 위기 의식이 이 정도로 없을 수가 있습니까?”
말을 빠르게 쏟아내던 제갈윤이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요. 아니겠지요. 얼마나 똑똑한 분들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요. 하면 대체 어쩌자는 생각들이십니까? 원하시는 게 뭡니까? 각자도생입니까?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소생도 이곳에서 헛수고 그만하고 세가로 돌아갈 수 있게끔 말입니다. 아니면 이 정도의 일로 맹에서 맹주령이라도 발동하는 걸 원하십니까?”
회의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 상태로 침묵이 유지되던 중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문상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모두 알 터이니 이제 진정하시구려. 이런 일로 맹주령이라니, 그렇게 되면 안 되지요. 그리고 사실, 이건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인 게 맞소.”
말을 꺼낸 인물은 소림의 유굉(流宏) 대사였다. 그의 손위 사형이 바로 소림의 방장인 천굉(天宏) 대사다. 유굉 대사는 소림에서 대외 업무를 맡고 있는 강호의 명숙 중 한 명이다.
소림 또한 이번에 온전한 정예 전력을 보내온 몇 안 되는 세력 중 하나였다.
유굉 대사가 말을 이었다.
“아미타불, 솔직히 이건 아니잖소. 그렇기에 빈승도 문상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오. 그만큼 빈승도 실망이 컸다는 뜻이오. 본인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하오. 그렇다 생각되시는 분들은 정예 차출 건에 대해서 각파에 다시 이야기해주시길 바라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보충하는 것으로 합시다.”
많은 인물들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굉 대사였다.
강호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소림, 그중에서도 서열 이 위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유굉이니, 더 이상 말이 없는 것이다.
잠시 후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문상의 말씀도 맞고, 유굉 대사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우리 점창파에서는 이번에 제대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인정합니다. 이 회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본 파에 전서를 날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점창파의 장로인 원광생(阮曠生)이었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광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근래에 무림맹의 핵심부에 관련된 이상한 소문을 접했습니다. 신룡대에 변절자가 생겨서 수많은 전력이 이탈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문상?”
그 말이 끝나자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제갈윤에게 집중되었다. 모두가 명확한 답변을 기다리는 눈초리들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제갈윤이 입을 열었다.
“사실입니다.”
그 말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원광생이 다시 물었다.
“신룡대는 무림맹과 백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조직입니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듯, 비밀 조직이기에 누가 신룡대원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조직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까?”
“그 일은……, 우리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지금은 변절의 가능성이 있는 인원들을 일단 가려내었고, 그들을 제외한 많은 요원들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지휘부에서는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제갈윤이 대꾸하자 이번에는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는 우려스럽고 또 의문스럽소. 신룡대는 맹주님의 직속 수하들이오. 소수 정예인 신룡대조차 관리가 안 되는데, 어떻게 우리가 맹을 믿고 우리의 정예들을 기꺼이 보내줄 수가 있겠소?”
그는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보(南宮甫)였다.
남궁세가는 강호 역사상 수차례 천하제일인을 배출한 검의 명가였다. 제갈세가와 더불어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세가이기도 했다.
백리우의 조부인 천무검신 백리극이 급부상하기 전까지, 그 당시의 차기 맹주는 원래 남궁세가의 인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강호상의 모든 인지도가 백리극 쪽으로 기우는 통에 결국 고배를 마셨었다.
그 후로 남궁세가는 대놓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무림맹의 행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감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가만히 남궁보를 바라보던 제갈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소생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맹에서 신룡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과오는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정예 차출 건과 그 일을 한데 묶는 것은 억지입니다.”
“왜 억지라고만 하시오? 맹의 수뇌부가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으면서, 우리의 정예 차출 건에 대해서만 나무라신 게 아니오. 그게 왜 억지란 말이오.”
“아미타불, 남궁 대협. 대협께서는 또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가려 하시는 구려.”
중간에 끼어든 인물은 소림의 유굉 대사였다.
“그게 아닙니다, 대사. 서로 오해가 있으니 풀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시작부터 아무 것도 공감이 되고 타협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합심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지금의 큰 환란을 타개할 수 있겠습니까?”
남궁보의 말하는 방식이 교묘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곤란해진 것은 유굉 대사였다. 아무리 천하의 소림이라지만 저렇게 많은 이들이 남궁보에게 동조하고 있다면 쉽사리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말 자체가 아예 틀린 게 아니니까.
“남궁 대협의 말씀이 옳습니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고, 토론할 게 있으면 열띠게 토론해야지요. 그러면서 합치점을 만들어가자고 이렇게 무림맹 장로회의가 존재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하북팽가의 팽야창(彭惹昌)이었다. 팽가 또한 앞선 점창파나 남궁세가처럼 이번에 제대로 된 정예들을 보내지 않았다.
곤란해하는 표정의 유굉 대사를 향해 제갈윤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공동파가 그렇게 빨리 궤멸되었던 건 문파 내에 생각지도 못했던 변절자들이 있었고, 그 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생존자들의 증언입니다. 일전에 청성파가 공격당할 때에도 비슷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분들이 변절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 중 한 분은 그 일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계셨겠지요.”
제갈윤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가 된 신룡대 내의 변절자들에 대해서 강도 높게 취조를 진행했습니다. 변절이 밝혀진 순간에 제대로 걸린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조사해본 결과, 혈천맹은 온갖 방식을 써가며 변절을 유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상의 어쩔 수 없는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기도 했고, 대상의 과오를 꼬투리 잡아 그 일을 세상에 밝히겠다며 겁박하기도 했으며,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달콤한 유혹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갈윤이 안타까움 가득한 한숨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납치를 비롯한 온갖 흉악한 수법들마저도 모두 이용했습니다. 만약 제가 변절자들의 상황이었다 해도, 혈천맹의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공동과 청성이 그렇게 된 마당에, 본인들의 세력에서는 전혀 그럴 일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겠지요. 즉, 변절자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곳에도 변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소생이 알기로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제갈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당황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좌중의 반응을 보며 제갈윤이 씩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밝혀내 봅시다. 소생이 먼저 의심스러운 분들을 지목해볼까요? 아니면 여러분께서 먼저 지목해보시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지필묵을 나눠 드리고 써서 제출하는 방식을 사용할까요? 제보자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이 낫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