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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33화 (133/200)

133화. 무림맹 장로회의 (2)

제갈윤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 겨우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이삼 주 이상은 머리를 싸매야 할 겁니다.”

“그러다 관둔다고 할라.”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그때 보니 눈빛에서 의지와 근성이 느껴졌거든요. 그 친구가 왜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이쪽 일에 의욕을 보이는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백리우가 빙그레 웃었다.

문득 일전에 청성의 은신처에서 한설연과 단둘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단 공자님이 그러더군요. 신룡대의 원칙상, 신룡대원은 임무가 끝날 때마다 모습과 신분을 바꾸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정말 그런 건가요? 이번 임무가 끝나면 정말……, 다시는 그분을 볼 수 없는 건가요?”

“오랜 세월 동안 신룡대는 강호 최강 소수 정예 조직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해왔네.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방금 전에 소저가 말한 원칙 때문이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그 원칙을 바꿀 생각이 없다네. 신룡대의 건재함이야말로 강호의 안녕과 질서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일세.”

“그렇다면 제가 단 공자님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이 신룡대를 그만두는 길밖에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제법 오래 걸릴 걸세. 조장의 복무 기간은 일반 대원의 복무 기간보다 훨씬 길거든. 하지만 그가 신룡대에 속해 있어도 가끔씩이나마 그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소저라면 가능한 방법이지. 물론 그런다 해도 확실히 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은 가능성이나마 있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건 소저가 생각해보게. 소저라면 조금만 생각해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게야.”

그녀는 똑똑한 데다가 현월곡이라는 배경까지 있으니 무림맹의 문상부에서 일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한설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문상의 수석 보좌역 정도는 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비밀 조직인 신룡대에도 가까워지는 셈이니까.

물론 그렇다 해도 제갈윤이 신룡대에 관한 사안을 그녀와 공유할 일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만일의 경우라는 건 존재한다.

자신과 제갈윤이 없을 때엔 누군가가 맹의 중추에서 신룡대에 관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누가 변절자인지 알 수 없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확실히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그 중요한 신룡대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이런 상황에서 한설연은 좋은 대안일 수 있다. 그녀라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는 그녀가 제갈윤이 신뢰할 만큼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요건만 충족되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니 좋고, 자신과 제갈윤의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만한 능력 있는 인재가 생기니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한설연은 그때의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총명한 그녀이니 당연히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백리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가 의욕을 보이는 이유가 적어도 불손한 이유 때문은 아닐 거다. 그러니 잘 가르쳐봐. 너무 굴리지만 말고.”

한설연이 단유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갈윤은 모른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만 이야기한 것이다.

제갈윤이 대꾸했다.

“그 아이가 불손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의욕이 넘치니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지요.”

제갈윤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요즘 많이 바빠져서 일 좀 도와달라고 제가 먼저 부탁을 할까 했는데, 본인 발로 알아서 찾아왔으니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제 입장에서도 당분간이나마 믿고 맡길 만한 수하가 생긴 셈이니 좋은 일이지요.”

“교월이 아주 제대로 걸렸군. 허허.”

백리우도 웃었다.

그 후로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 때 백리우가 말했다.

“이번에는 강하게 나가야 할 것 같다. 이해해주고 사정을 봐주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해. 이렇게까지 서로 희생을 안 하려고 하면 결국 모두가 희생당하고 말 거야.”

무림맹 장로회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그들 앞에서 강하게 나가는 역할은 네가 맡아줘야 할 것 같다.”

“가만히 보면 욕먹는 역할은 꼭 저한테 시키신다니까. 형님 혼자만 좋은 사람으로 남겠다 그거죠?”

제갈윤이 째진 눈으로 그렇게 대꾸하자 백리우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니야, 이 사람아. 이번엔 그런 거.”

“그럼 뭔데요?”

“어디 좀 급히 다녀올 데가 있어서 그래. 장로회의 당일까지는 돌아올 거야. 혹시 모르니 회의는 일단 네가 주재하라는 뜻이고.”

“또 어디를요?”

제갈윤이 못 미덥다는 기색으로 묻자 백리우가 바로 대꾸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좀 청하러.”

제갈윤이 가만히 백리우를 바라보았다.

천하제일인의 집안이니만큼 백리우에게는 그만의 인연들이 있다.

“은거 고수라도 설득하러 가시게요?”

“응.”

“위험한 데 가시는 거 아니죠?”

“위험은 무슨.”

고개를 끄덕인 제갈윤이 말했다.

“표 호위 꼭 대동하십쇼.”

“물론.”

“언제 출발하십니까?”

“바로 출발해야지. 장로회의에 늦지 않으려면.”

“알겠습니다. 살펴 다녀오십쇼.”

백리우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제갈윤의 집무실을 나서려 할 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있더니 부관이 들어왔다.

“문상 어른, 한설연 소저께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응? 한 소저가? 알겠네. 안으로 모시게.”

“예.”

부관이 밖으로 나가자 백리우가 귓속말로 물었다.

“벌써 찾아온 걸 보니, 네가 내준 숙제가 너무 힘들어서 때려치우겠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러자 제갈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애초에 그 정도 근성밖에 안 되면 차라리 빨리 포기해주는 편이 낫지요. 기대할 일도 없게.”

“냉정한 놈.”

백리우의 말에 제갈윤이 뭐라고 대꾸하려 할 때 문이 다시 열리더니 한설연이 들어왔다.

백리우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설연이 말했다.

“맹주님과 문상 어른을 뵈옵니다.”

“어서 오시게.”

백리우가 대꾸하자 한설연이 말했다.

“맹주님께서도 자리하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중요한 말씀 중이셨으면 제가 나중에 다시 찾아뵐게요.”

제갈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얘기 끝내고 맹주님께서도 막 나서려던 참이셨네. 한데 어쩐 일인가?”

그러자 한설연이 제갈윤의 집무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를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윽고 한설연이 보자기를 풀자 안에 있던 내용물이 나타났다. 가지런히 철을 해놓은 두툼한 문서더미였다.

“이게 뭔가?”

“일전에 문상 어른께서 내주셨던 숙제입니다.”

그 말에 제갈윤과 백리우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벌써 다 했다고?”

제갈윤은 약간 놀랐다는 듯한 어조로 묻고 있었지만 백리우는 알고 있었다. 현재의 제갈윤이 크게 놀란 상태라는 사실을.

“네에.”

“내가 이 숙제를 내주면서 자네에게 기대했던 게 비단 일 처리 속도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길 바라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긴 했는데 미진한 부분투성이겠지요. 어제 끝내고 나서 방금 전까지 다시 한번 훑어보긴 했는데…….”

그 말에 제갈윤이 또다시 놀란 기색을 비쳤다.

어제라면 숙제를 내준 지 겨우 엿새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최소한 삼사 주는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숙제를 엿새 만에 다 끝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제갈윤이 놀란 기색을 내비친 건 잠시였다. 그가 곧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와서 말했다.

“만약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하게 되면 그 ‘나름대로’라는 표현은 쓰지 말게. 언제나 최선이어야 하고 그 최선이 최고여야 하네. 알겠는가?”

“예? 예…….”

“그럼 잠시 밖에서 대기하고 있게. 훑어본 후에 다시 부를 테니.”

“알겠습니다.”

한설연이 밖으로 나가자 백리우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엿새 만에 끝냈다면 대단한 거 아니냐?”

“의외긴 하군요.”

“의외 정도가 아니라 너, 놀란 것 같은데?”

그 말에 제갈윤이 피식 웃으며 한설연이 두고 간 문서더미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곧 문서들을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문서더미가 마침 두 개로 나눠져 있었기에 백리우가 나머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문서들을 빠르게 넘기기를 잠시, 제갈윤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가 종이를 넘기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그러기를 아직 반각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제갈윤이 들고 있던 문서더미를 내려놓았다. 그를 향해 백리우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벌써 다 확인한 거야? 그 많은 걸?”

백리우는 아직까지 들고 있는 문서의 반의반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갈윤이 말했다.

“형님, 그거 잠시 줘보십시오.”

“어? 어…….”

제갈윤이 문서더미를 건네받더니 또다시 그것들을 빠르게 훑었다.

방금 전까지 백리우가 들고 있던 문서의 양이 더 많았지만, 제갈윤은 이번에도 역시 반각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확인을 마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리우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두뇌들의 세계는 심오하구나. 한 달에 끝낼 양을 일주일 만에 끝낸 한 소저나, 그것들을 일각도 안 돼서 모두 확인하는 너나.”

제갈윤은 눈을 감은 채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알 것 같았다.

지금 제갈윤이 매우 놀란 상태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리우가 모른 척 물었다.

“그래서 어떻더냐? 아까 얼핏 내가 확인하기로는 정리가 제법 잘돼 있는 느낌이더라만.”

그러자 제갈윤이 눈을 뜨며 대꾸했다.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대꾸하는 그의 어조에 놀람이 담겨 있었다.

“그 정도냐?”

“예.”

그러자 백리우가 농담을 하듯 다시 물었다.

“그 시절의 너와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

제갈윤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 정도면 음……. 그 시절의 제가 더 나았다고 마냥 확신할 수가 없겠는데요?”

그 말에 백리우가 대꾸 없이 빙그레 웃었다.

한설연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시절의 제갈윤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갈윤은 역대 무림맹의 그 어떤 문상들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무림맹의 문상직을 맡았다. 그런데 백도의 누구도 그 어린 제갈윤이 문상직에 오르는 걸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그 전까지 제갈윤은 무림맹에서 일한 적이 없었다. 고로 그가 문상이 될 만한 역량을 남들 앞에 증명해 보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랬다.

굳이 실제로 역량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제갈윤이 유명했던 탓이다. 그 대단한 제갈세가에서도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는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이 상태라면 즉시 투입시켜도 상관없을 듯하군요. 바로 제 수석 보좌역으로 등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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