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17화 (117/200)

117화. 폐허 속의 새벽 (1)

홍학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그의 검이 또다시 연소운의 상체를 베어왔다.

그 즈음, 연소운이 왼손에 쥔 검을 살짝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으응?’

연소운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진평이 의아해할 때쯤, 연소운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 상태로 연소운이 홍학의 검을 마주했다.

카각!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치며 허공에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 직후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홍학이 들고 있던 검이 손잡이 바로 위부터 잘려 나가 있었던 것이다.

처억!

그리고 연소운이 허공에 띄웠던 검을 다시금 왼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연소운의 몸이 푹 꺼진다 싶더니, 홍학의 후방에서 두 가닥의 검광이 일었다.

어느새 홍학의 후방으로 이동한 연소운이 홍학의 뒷무릎을 향해 쌍검을 찔러 넣고 있었던 것이다.

퍼거걱!

또다시 홍학의 양쪽 뒷무릎에 생채기가 났다.

홍학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그가 손잡이만 남은 검을 연소운에게 던졌다.

쉭―

홍학의 공격이 상체에 다다를 때쯤, 연소운의 신형이 또다시 흔들렸다.

그 직후, 연소운은 이미 홍학의 오른쪽 어깨를 넘고 있었다.

그야말로 귀신같은 움직임.

허공에서 그가 쌍검을 휘둘렀다.

슈슉―

한 자루는 홍학의 왼쪽 어깻죽지를, 또 한 자루는 홍학의 팔꿈치를 때렸다.

퍼거걱!

여지없이 그 두 군데에 생채기가 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평이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짜식…….’

연소운이 초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이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의 움직임을 직접 본 건 방금 전이 처음이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연소운은 홍학의 시선을 붙잡아두며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주는 역할만 해도 성공이라고 여겼었다.

단유소가 다른 조치를 취하거나, 조력자들을 마중 나간 포원이 돌아올 시간만 벌어줘도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의 연소운은 시간을 끄는 걸 넘어서, 홍학을 상대로 승기를 잡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저 홍학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는데, 오히려 연소운이 그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초절정 고수다웠다.

‘많이 컸어.’

연소운은 나중에 대단한 무인이 될 거라던 단유소의 말을 반신반의했었는데, 그 어설펐던 막내가 저렇게 급성장할 줄이야.

‘저러면 부조장으로서의 내 체면은 뭐가 되냐고.’

입가에는 보기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진평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와아아!’

연소운의 싸움을 지켜보는 한설연 또한 내심으로 연신 감탄하는 중이었다.

‘저게 정말 연 공자님이라니……!’

연소운을 처음 봤던 날을 기억한다.

귀산사흉 앞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던 그였다. 도무지 신룡대원이라고는, 단유소의 수하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만큼 어설펐었다.

그러니 지금의 저 모습이 더욱 생소하기만 하다.

저렇게 듬직한 모습이라니.

‘아마도 그때의 일 때문일까……?’

그때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수마후 심소옥.

그날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신도, 연소운도, 단유소도 모두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 연소운과 자신은 심소옥으로부터 단련을 받았었다. 당시의 심소옥은 교묘하게 기혈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연소운과 자신에게 기연 아닌 기연을 남겨주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그때 이후로 적지 않은 성취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진기의 유통이 매우 자연스러워져, 항상 몸이 가벼웠고 뭘 해도 힘이 넘쳤다. 그 전까지는 진도가 안 나가던 무공들도 그날 이후로는 쭉쭉 진도가 나갔던 것이다.

자신이 이럴 정도인데 연소운은 오죽했을까.

겁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을 뿐이지, 사실 연소운은 첫날에도 대단한 모습을 보이긴 했었다. 무아지경에서 놀랄 만한 쌍검술을 구사했었던 것이다. 잠재되어 있는 실력의 수준 자체가 이미 달랐던 것이다.

가뜩이나 연소운은 심소옥에게서 더 집중적으로 단련을 받았었다.

아마도 침잠되어 있었던 본신의 실력이, 그때의 단련을 토대로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계기로 그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고.

‘힘내요, 연 공자님.’

단유소는 조금씩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거학은 그야말로 기가 찰 정도로 강한 자였다.

단 한 번의 틈이라도 보이면 그때를 노릴 생각으로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는 틈이 없었다.

얼핏 보면 그와의 싸움은 결코 마주치지 않을 평행선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르면 불리해지는 건 결국 자신이 될 터였다.

그나마도 다행인 건, 연소운이 홍학을 매우 잘 막아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잠재성을 누구보다도 높이 샀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지만, 직접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심소옥이 고마웠다.

저렇듯 연소운의 잠재성이 폭발한 이유가 전적으로 심소옥 때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 노파도 일조했다.

어쨌거나 살수들과 연소운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청성 문도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거학에게 무리수를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상대가 거학인 이상 무리수가 통했을 가능성보다는 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거학의 저 여유로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홍학을 투입한 건 그가 나름대로 준비한 한 수였고, 현재 그게 제대로 통하고 있지 않은데도 거학은 여유로웠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대체 얼마나 더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걸까.

단유소의 감각에 익숙한 기척이 잡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일행의 후미 쪽에 합류한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은 자신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포원의 기척이었다. 최정예 무인들과 정예 무인들을 대동하고 그가 드디어 합류한 것이다.

그때쯤, 단유소를 상대하던 거학의 눈동자에도 이채가 담겨 있었다. 거학 또한 포원을 비롯한 무인들의 합류를 알아챈 것이다.

자신들이 불리해지고 있음을 알 텐데도 그가 보이고 있는 저 여유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단유소가 속으로 그런 의문을 갖던 찰나, 거학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담겼다.

그리고 그 직후, 거학의 신형이 갑자기 단유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유소의 눈동자가 커졌다.

여태껏 서로 어울리던 속도가 있었는데, 그 속도를 무시하고 갑자기 거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거학 또한 특별한 힘을 쓴 것이라고 봐야 했다.

예전에 백학도 썼던 힘이며, 자신도 쓸 수 있는 힘.

바로, 진원진기를 자극하여 얻는 그 힘을…….

순간적으로 단유소가 거학의 기척을 찾는 동시에 대라유유선공의 운용을 멈추고 혼원태극공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진평을 향해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진평! 조심해!]

거학이 한설연을 노릴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단유소는 일부러 미리 움직이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가 한설연을 노리지 않고 연소운을 노리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처가 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설연 옆에는 진평도 있었다. 진평이라면 최소한 한 번은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찰나간에 혼원태극공을 가득 끌어올린 직후, 단유소가 땅바닥을 박찼다. 그의 신형은 연소운 쪽으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스윽―

연소운의 등 뒤에서 거검을 찔러가는 거학의 모습이 보였다.

상황이 그러한데 연소운은 아직도 거학의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거학이 움직임을 파악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직 자신만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의 움직임이었다.

이미 연소운이 반응해서 막거나 피하기에는 늦은 상태.

결국 자신이 막아야 했다.

나는 듯이 나아가던 단유소의 장검에 검은색의 기운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연소운을 향해 한 줄기의 기운이 날아갔다.

단순히 빠르다는 정도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속도.

혼원태극공을 이용하여 발출한 단유소의 검강이 마치 시공을 뛰어넘은 것처럼 연소운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콰앙!

등 뒤에서 갑자기 폭음이 들리자 연소운이 깜짝 놀라며 신형을 급격하게 낮췄다. 그러더니 홍학의 신형을 방패 삼아 그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예전의 연소운이었다면 당황하여 몸이 굳은 채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텐데, 방금 전의 대처와 상황 판단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 순간, 다가오는 단유소를 보며 거학이 씩 웃었다.

그러더니 그가 빙글 돌아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애초에 자신이 날렸던 검강은 연소운을 막아준 데에서 역할을 끝낸 게 아니었다. 거학이 거검을 이용하여 튕겨낸 후에는 저만치 날아갔었는데, 그것을 몰래 제어하여 은밀히 거학의 등 뒤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학이 그것을 너무 쉽게 눈치챈 것이고.

슈악―

단유소가 최대한의 속도로 거학과의 거리를 좁힌 찰나, 거학의 신형이 또다시 흔들렸다.

단유소가 급격하게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너무 빨리 다가가고 있던 탓에, 일종의 역동작처럼 되어버렸다.

쉭―

이미 이동하기 시작한 거학의 신형은 한설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단유소가 확인한 거학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타앗!

강하게 땅을 밟은 단유소가 신형을 돌려 거학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단유소는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고개는 한설연이 있는 방향이 아니라, 허공으로 향해 있었다.

비탈의 높은 곳에서, 그 허공 높은 곳에서 주먹만 한 무언가가 청성의 문도들이 있는 곳을 향해 무수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유소가 두 눈을 부릅떴다.

‘벽력탄……!’

어쩌면 독탄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저 무수한 벽력탄들이 그대로 떨어져 내릴 경우, 청성의 문도들은 대부분 죽을 거라는 점이었다. 벽력탄이 선봉에서 후미까지의 허공을 가득 메우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하여 고함을 쳐서 피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청성의 문도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모든 게 끝날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찰나에 수많은 상념들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 한설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그녀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매우 높다. 진평은 결코 거학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에게 달려가면 청성의 문도들 대부분은 몰살당할 것이다. 후미 쪽의 벽력탄은 어떻게 해서든 포원이 처리할 수 있겠지만, 선봉부터 중진 너머까지는 자신이 맡아야 했다.

한설연이냐, 청성의 문도들이냐.

자신에게 있어 더 중요한 쪽은 한설연 쪽이지만, 청성 문도들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이들이 위기에 처한 것도 결국 묵룡조와 한설연 때문이 아닌가.

구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미칠 것만 같았다.

[가세요, 단 공자님.]

순간적으로 들려온 전음에 단유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한설연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성을 구하세요.]

거학의 신형이 막 진평에게 짓쳐들고 있는 가운데, 한설연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시퍼런 비수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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