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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112화 (112/200)

112화. 결사 항전 (7)

카강! 캉! 펑! 콰아앙!

상청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는 쇠붙이가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들과 진기의 격돌로 인한 폭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단유소와 거학의 전투로 인한 소음들이었다.

사실,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제대로 좇을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검은 그림자 두 개가 휙휙 얽히고 있는 모습과, 검과 검의 격돌로 인해 발생되고 있는 수많은 불꽃들을 통해, 두 사람의 전투가 얼마나 빠르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현재 청성의 문도들은 본인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저런 초고수들 간의 싸움을 이렇듯 직접 본 적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알면 알수록 놀라게 만드는 한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저게 바로 묵룡…….’

처음에 황학이라는 자가 묵룡이라는 말을 언급했을 때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이 강호에서 묵룡이라 불리는 인물은 단 한 명으로, 그는 신룡대 최고의 고수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신룡대는 비밀 조직이니 보고 싶다 하여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묵룡에 대해 두 번째로 놀란 건 그 유명한 고수가 생각보다 훨씬 젊다는 사실이었다. 겉모습을 봐서는 잘해야 이십 대 중반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 번째로 놀랐던 건, 그가 앞서 황학이라는 사내를 상대할 때였다.

황학이라는 자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었다. 당장 장문인마저도 그의 공격에 쩔쩔매지 않았던가.

그런데 묵룡은 그 황학이라는 사내를 몰아붙이며 승리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묵룡은 한 번 더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황학을 상대하는 모습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빠르기와 강력함이라니.

경이로웠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더니, 지금의 청성 문도들에게는 묵룡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단유소와 거학의 대결은 벌써 한 식경(약 30분)이 넘게 계속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약간이나마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사람은 청의위의 고수 두세 명 정도와 진평뿐이었다. 물론 그들도 완전히 볼 수는 없었고 대강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묵묵히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진평의 귓전으로 한설연의 전음이 들려왔다. 현재 한설연은 진평의 뒤에 서 있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매우 조심스러운 어조의 질문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진평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설연은 상황이 너무도 궁금했다.

어쩌면 청성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매우 중요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설연에게 있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로지 단유소의 안위뿐이었다.

그간 함께 지내면서 그의 싸움을 많이도 봤다.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는 매번 이겨냈지만, 그 어느 하나 쉬웠던 싸움은 없었다.

특히 백학이라는 사내와의 싸움이 가장 처절했다. 그때 단유소는 크게 다쳤었다.

그리고 단유소는 지금 거학이라는 사내와 싸우고 있다.

비록 백학과 거학 중에 누가 더 강한지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학이라는 저 사내가 백학이라는 사내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염려스러웠다. 그때처럼 또다시 그가 크게 다치지나 않을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진평이 전음으로 대꾸했다.

[여전히 박빙입니다.]

한 식경이 넘는 시간 동안 단유소나 거학 중 그 누구도 확실하게 승기를 잡지 못했다. 승기가 한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가도, 잠시 후면 또다시 균형을 이루곤 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진평의 눈에 보인 거학이라는 자는 정말 대단했다.

최근 들어 단유소의 경지가 상승했다는 사실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한데 거학이라는 자가 그런 단유소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혹여……,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예. 잘 싸우고 계십니다.]

[아……!]

안도하듯 탄성을 내뱉은 한설연이 바로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알겠어요, 진 공자님. 더는 방해하지 않을 테니 혹시 제가 알아야 할 일이 생기면 꼭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소저.]

별문제 없다는 듯 한설연을 향해 대꾸하긴 했지만, 그 시각 진평의 눈동자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담기고 있었다.

‘예, 한 소저. 아직까지는 박빙입니다. 그러나…….’

한설연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지만, 거학 쪽이 승기를 잡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거학이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단유소를 상대하고 있는 데 반해, 단유소는 부지런히, 많이 움직이며 거학을 상대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걸음 수만 따져도 최소한 두 배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어이없게도 그건 실력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었다.

거학이나 단유소 모두 본신의 실력을 어느 정도씩은 감추고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드러난 실력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속도나 내공 모두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이가 생기고 있는 건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신체적인 차이였다.

거학은 팔다리의 길이도 길고 검의 길이도 길다.

거학에 비하면 단유소는 모든 게 짧다. 그와의 전투에 대비하여 쌍소검을 넣고 장검을 꺼내 들었지만, 그 장검조차도 거학의 검에 비하면 장난감 느낌이었다.

사실, 단유소든 거학이든 무기의 길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초고수들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의 두 사람처럼 비슷한 실력자끼리 붙는 경우에는 그러한 차이에서 유불리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아까의 황학이 자신의 무기인 도를 못 쓰게 되면서 결국 단유소에게 당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랬다.

두 사람 간의 절대적인 간격이 언제나 동일한 이 상황에서, 거학의 검이 단유소의 신체에 이르는 시간과 단유소의 검이 거학의 신체에 이르는 시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나아가서 거학의 검극에서 발출된 기운이 단유소에게 닿는 시간과, 단유소의 기운이 거학에게 닿는 시간에도 차이가 있었다.

즉, 거리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거학에게는 유리하고 단유소에게는 불리한 그 차이가.

게다가 두 사람간의 신체적인 차이는 길이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고난 신력의 차이였다.

두 사람의 검은 계속해서 맞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더 힘든 건 단유소일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 비슷해도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있다 보니, 거학의 경우에는 힘을 덜 소모해도 되는 데 반해 단유소는 힘을 더 소모해야 하는 것이다. 공격을 가하든, 방어를 하든.

지금의 두 사람처럼 온 정신을 집중하여 싸우고 있는 경우에는 체력도 급속도로 소모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체력이 더 빨리 소모되는 쪽도 단유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평이 염려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소의 불리함을 안고 싸운다 해도 단유소는 지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그와 함께 많은 전투를 치러왔고, 그중에는 답이 없는 상황도 많았다. 그러나 단유소는 늘 그 어려움들을 극복해왔다. 위기가 커질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이 바로 단유소였다.

‘그러니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

단유소의 말마따나 적들은 오늘 작정했다. 거학이라는 저 사내 외의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주변 분위기의 변화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의 역할이다.

진평이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슈슈슈슈슉―

단유소의 장검이 거의 동시에 다섯 가닥의 강기를 쏟아냈다. 다섯 가닥의 강기가 모두 거학의 요혈을 노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거학이 신형을 살짝 틀며 거검(巨劍)을 가볍게 휘둘렀다.

카가강!

세 가닥의 기운은 강기가 주입된 거학의 거검에 의해 쉽게 막혔고, 나머지 두 가닥의 기운은 회피 동작에 의해 그의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거학이 검을 빠르게 두 차례 휘둘렀다.

쉬쉭―

검에서 발출된 직선형의 강기가 가위 모양으로 교차하며 단유소를 향해 날아왔다.

이전에도 이런 방식의 공격을 서너 차례 접해봤지만 막거나 피하기가 참 까다로웠다.

단유소가 서둘러 자세를 낮춘 채로 보법을 밟으며 우측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가위 모양의 강기 중, 우측 하단으로 날아오는 강기를 쳐냈다. 체력과 기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방어를 한 것이다.

단유소가 대처를 했을 즈음에는 이미 또다시 세 줄기의 강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단유소의 검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카가강!

동시에 검을 쥐지 않은 단유소의 검지에서 한 줄기의 지풍이 발출되었다.

소리도 없고 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강기.

얇은 송곳 같은 그 강기가 거학의 복부로 향했다.

까앙!

역시 거학.

은밀했다고는 하나 그 정도의 공격을 눈치채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애초에 단유소가 발출했던 지풍은 한 가닥이 아니었다. 방금 전의 지풍보다 더 기척이 없는 지풍을 미세한 시간 차로 발출했던 것이다.

날아가던 두 번째 지풍의 경로가 휘어지며 방패 같은 거학의 거검을 피해 갔다.

그 지풍이 거학의 허벅지에 닿는 듯했다.

그때, 검을 쥔 거학의 손목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거검이 미끄러지듯 그의 허벅지 앞을 막았다.

깡!

막아내자마자 거학이 또다시 검강을 발출해냈다.

그러면서 거학이 단유소를 향해 양쪽 눈썹을 한 차례 들어 올려 보였다.

이번 공격은 제법이었다는 의미.

단유소가 아랑곳하지 않고 거학의 기운을 막아갔다.

사실, 이각(30분)이 넘게 진행된 여태까지의 싸움은 이런 공방의 무한 반복이었다. 자신도, 거학도, 방어와 동시에 공격을 했고, 공격과 동시에 방어를 했다.

진평이 파악한 것처럼 단유소 또한 자신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인 거학은 한결같이 여유로울 뿐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탐색전이 장시간 이어지는 상황조차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로 간에 감추고 있는 힘을 누가 먼저 개방하게 되는지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느낌이었다.

거학의 그 여유 때문에 더더욱 혼원태극공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백학도 진원진기를 이용한, 혼원태극공과 비슷한 무공을 펼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학도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자신이 혼원태극공을 일으켰는데도 거학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청성도, 자신도, 묵룡조도, 한설연도, 모두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고민하던 단유소가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최대한 시간을 오래 끈다.’

포원이 조력자들을 이끌고 오고 있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때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청성과 이 모든 사람들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된다. 조력자들 중에는 최정예 고수들도 다수 섞여 있으니까.

단유소가 결정을 내린 후, 거학과 이십여 합 정도를 주고받았을 때였다.

단유소에게 제법 강력한 공격을 쏟아낸 거학이 갑자기 신형을 뒤로 빼며 거리를 벌렸다.

단유소가 관여치 않고 서둘러 거리를 좁히려 할 때 거학이 검을 들어 청성 문도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겨누며 말했다.

“멈추는 게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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