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생사 대립 (5)
놀란 눈과 당황한 기색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목종림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내 그의 표정과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식구라 생각한 사람들이 변절을 했다고 생각하니 실망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른 탓이었다.
“오냐.”
추락하는 와중에 목종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너희들이 나를 적으로 대한다면 이제부터는 나도 철저하게 너희들을 적으로 여겨주마.”
장문인으로서 청성의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허공에서 호신강기를 가득 끌어올린 목종림의 표정은 이제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워진 상태였다.
창!
목종림의 검에서 검이 뽑혀 나오자마자 열 가닥 가량의 검기가 뻗어 나갔다. 그 검기가 창문을 박살내고 뛰쳐나온 변절자들에게로 향했다.
푹푹푹푹!
변절한 제자들의 몸에 검기가 박힐 즈음에는 이미 목종림의 근처에 화살들이 다다르고 있었다. 목종림의 검이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티디디디디디디디딩!
날아온 십여 발의 화살들 중에서 목종림의 몸에 닿은 것은 한 발도 없었다.
놀라운 건, 화살들을 막는 와중에도 목종림의 검에서 따로 검기가 발출되어, 검을 들고 짓쳐들어오던 변절자들을 처치했다는 점이었다. 과연 청성의 장문인다운 신위가 아닐 수 없었다.
[혹시 독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호흡을 멈추십시오!]
순간적으로 전음이 들렸다. 누구의 전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그러나 들어서 나쁠 조언은 아니었기에 목종림이 호흡을 멈추었다.
그런 채로 목종림이 이 층과 삼 층의 창문 쪽으로 빠르게 검기를 발출했다. 화살을 쏘던 제자들 중 몇은 그 검기에 당했지만, 다른 몇은 벽 뒤로 몸을 피했다.
일단의 위기는 넘겼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 즈음의 목종림은 길 위에 착지하기 직전이었는데, 그 아래를 제자들이 빼곡하게 메운 채로 검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목종림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가 착지점을 향해서 장력을 발출했다.
큼지막한 장력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청성의 문도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긴 공간은 넓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문도들의 실력이 제법 높았던 탓이었다.
목종림이 아래쪽을 향해 연이어서 검을 쑤셔 넣었다.
슈슈슈슈슉―
몇 가닥의 검기가 문도들의 몸을 찌르고 나서야 약간의 착지할 공간이 생겼다. 그 직후 목종림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가 착지하자마자 사방에서 검기가 쏟아졌다.
부지런히 방어를 하는 와중에도 목종림은 의문스러웠다.
‘이렇게나 많은 문도들이 변절한 건가? 아니면 미리 이런 상황을 계획하고 이 근처에만 변절자들을 모아놓은 건가?’
의문스러운 건 또 있었다.
‘원래 이 아이들이 이렇게 강했나?’
사실이었다.
지금 공격해오는 모든 문도들의 실력이, 평소에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실력보다 훨씬 빼어났다.
생각해보니 아까 이삼 층 창문을 깨고 달려든 문도들의 실력도 그러했다. 날아오는 화살들에 담긴 힘도 그러했다. 그들 모두가, 평소에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실력보다 훨씬 강했다.
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기 때문인지 포위된 상황에서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지금, 변절한 문도들을 상대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그들의 검은 날카로웠는데, 그보다 더 까다로운 건 중간에 섞여서 날아오는 암기였다.
맹렬히 움직이며 포위망 안에서 변절자들을 하나씩 처리할 때쯤, 또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서둘러 지붕 위로 다시 올라가시는 게 여러모로 낫겠습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아까 독에 대비하여 호흡을 멈추라던 그 목소리였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직후, 멀리서 누군가가 도약하여 다가왔다. 그는 쌍검을 쓰는 자였다. 그러는 와중에 그가 허공에서 변절한 문도들을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가만히 보니 단유소의 일행 중 한 명이었다. 유약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했고, 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약해 보였던 청년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결국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막내라는 사실만 기억이 났다.
목종림이 검을 휘둘러 주변의 공간을 확보했다.
그러자 유약한 인상의 청년이 그곳에 착지하더니 곧 맹렬하게 쌍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와 함께 포위망 안에서 검을 휘둘렀다.
목종림의 눈에 놀람이 담기기 시작한 건 잠시 후부터였다.
‘뭐야, 이 청년……!’
섬세하고 세밀한 그의 쌍검술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자신에게 똑같이 하라고 해도 해낼 수 없을 정도로.
그로 인해 방어에 신경을 쓸 일이 줄어들자 변절한 문도들에게 향하는 목종림의 검도 더 자유로워졌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변절자들이 죽어 나갔다.
그때 또다시 청년에게서 전음이 들렸다.
[이들의 근처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지붕 위로 올라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엄호할 테니 먼저 올라가십시오. 그 후에 허공에서 엄호 한 번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네.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연소운이라 합니다.]
[맞아. 그랬었지.]
전음으로 그렇게 대꾸한 목종림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사방을 향해 빠르게 검을 쑤셔 넣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검에서 검기가 연속으로 발출되었다.
옆에 있는 청년이 안정적으로 방어해주고 있었기에 그의 검은 맹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변에 있던 변절한 문도들이 모두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그 순간, 목종림이 강하게 땅바닥을 박찼다. 신형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상태에서 그가 아래를 향해 검을 몇 차례 털어냈다. 물론 쌍검을 쓰는 청년이 서 있는 곳만을 제외한 채였다.
발출된 검기가 땅 위로 쏟아지던 순간, 청년 또한 높게 도약했다.
청년 또한 도약하면서 쌍검을 털어냈다. 그의 검기가 날아간 곳은 이 층과 삼 층의 창문 쪽이었다. 그곳에 있는 자들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견제의 의미가 강했다.
두 사람의 신형이 지붕 위에 다다랐다.
목종림을 밀쳐낸 한설연은 곧바로 위기에 봉착했다.
이 장로를 포함한 네 명의 장로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설연도 멍하니 있지는 않았다.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에 목종림을 밀어내자마자 진평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진평은 이미 이쪽 지붕에 다다라 있었다.
한설연은 놀라웠다. 진평은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쭉 편 채로 태평하게 쉬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신룡대 묵룡조의 부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평이 한설연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장로를 향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슈아악―
초승달 모양의 기운이 장로들의 허리를 양단할 기세로 날아왔다.
한설연은 또다시 놀라야 했다.
기운이 날아가는 속도가 매우 빠른 건 둘째 치고, 그 기운 자체에 담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했던 탓이다.
자세히 보니 그 기운은 진한 빛무리를 머금고 있었다.
‘강기……!’
진평의 실력 또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기로 저렇게 큰 기운을 날려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니.
어쨌거나 날아오는 기운이 강기인 이상, 장로들도 대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붕 위라는 한정된 공간인 데다가, 강기가 날아온 높이가 미묘하게도 허리 어림인지라 신형을 구부려서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기를 일으켜서 막거나 도약하여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의 문제는 한설연을 붙잡기가 사실상 힘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엇?’
지붕의 가장자리 쪽으로 향하던 한설연의 고개가 뒤쪽으로 홱 돌아갔다.
진평이 발출했던 기운보다도 더 강력한 느낌을 주는 기운이 갑자기 느껴졌던 탓이다.
보아하니 이 장로가 발출한 기운인 듯했다.
‘그가 저런 기운을 발출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나?’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이 장로가 발출한 기운과 진평의 강기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콰아앙!
지붕 위에서 강력한 폭음이 들렸다. 기왓장들이 부서지며 그 파편이 주변으로 날아갔다.
그 즈음, 진평은 어느새 한설연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진평의 눈동자에도 의문이 담겨 있었다.
한설연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장로도 고수긴 하나 진평의 실력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묵룡조의 자체 평가였다. 그런데 이 장로가 발출한 기운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니 진평도 의아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진평의 강기가 이 장로의 강기에 의해 상쇄되자 장로들이 일제히 진평과 한설연 쪽으로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보니 옆에 있는 건물들의 지붕 위에서도 청성의 문도들이 이쪽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지붕의 난간 끝에 선 진평과 한설연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한설연이 이를 악물었다.
사면이 적이니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보조를 잘 맞춰야만 진평에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평은 이 상황에서조차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한설연이 의아해할 때 장로들의 공격이 일제히 진평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도약하여 지붕 위로 고개가 쑥 올라온 순간에 목종림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진평과 한설연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을 공격하는 네 장로들의 기세가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시나 네 장로 또한 목종림 자신이 여태까지 알고 있던 실력이 아니었다. 본래의 실력을 훨씬 상회하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진평과 한설연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니, 두 사람의 신세가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곳이 하필이면 목종림의 위치에서는 반대편 지붕 끝이었다.
‘지금 바로 돕지 않으면 늦을 텐데……!’
조바심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와중에도 목종림은 양발로 향하는 진기를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지붕에 발이 닿기만 하면 저들을 향해 튀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스윽―
조용한 바람이라도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장로들의 뒤쪽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바로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는데도 장로들은 여전히 그 인영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저 정도로 은밀한 등장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즉, 방금 등장한 인영이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목종림은 그 인영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사숙……!’
포원이었다.
단유소와 함께 밖에 나갔다더니 대체 언제 돌아왔단 말인가.
이윽고 포원의 신형이 흔들렸다.
빠각!
포원의 팔꿈치가 근처에 있던 장로 한 명의 등을 강하게 가격했다.
“커헉……!”
그 장로의 신음이 들릴 때쯤에는 이미 포원의 한 발이 다른 장로의 옆구리를 강하게 차고 있었다.
퍼어억!
“컥!”
축 늘어져 버린 장로 둘의 몸이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강하게 튕겨 나갔다.
그 즈음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터억! 데구르르르―
포원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다른 장로 한 명의 머리가 갑자기 목에서 분리되더니 지붕 위로 떨어져서 경사면을 타고 굴러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설연은 그 장로의 목을 벤 사람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공자님…….’
포원과 같이 나갔으니 같이 돌아왔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단유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 기척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고, 잠시 이곳의 상황을 확인한 후에 벌써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렇게 무섭도록 깔끔한 수법이라면, 분명히 단유소의 한 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진 공자님은 이미 포 대협과 단 공자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거구나.’
방금 전의 위기 상황에서 진평이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