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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86화 (86/200)

86화. 청성 괴사 (2)

갑자기 쏟아진 무수한 악평에 진평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저 한 소저가요?”

“그래. 나는 그녀의 안 좋은 모습들부터 봤어.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지. 그래서 임무 수행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졌다 싶으면 바로 몸을 뺄 생각이었고.”

그게 바로 신룡대의 호위 지침이기도 했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유사시에 호위 대상의 안전보다는 신룡대원 본인의 안전을 우선시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룡대원들은 실제로도 그 지침에 따라 움직였다. 그에 따른 잡음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어차피 신룡대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도 못 지킨다는 뜻이니까.

“어쩌다가 일행 모두가 희생되고 그녀와 둘만 남게 됐는데, 그래도 인간적으로 인근에 있는 공동파까지는 데려다줘야 내 마음이 편하겠더라고. 희생된 일행들 중에 나름 친해졌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부탁도 들어줄 겸.”

“그 상황이라면 신룡대원들 중 누구라도 그 정도는 해줬겠지요. 가능한 상황이라면.”

진평의 대꾸에 고개를 끄덕인 단유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함께하다 보니 그녀에 대한 다른 면들도 보이기 시작하더군. 강호 초출에 충격적인 일들을 연속으로 겪었는데도 의외로 의젓한 거야. 심적으로 충분히 힘들 텐데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밝은 척하려고 애쓰더라고.”

“대부분은 그런 때에는 정신줄 놓고 실의에 빠져 비협조적이기 일쑤지요.”

“그렇지. 만약 그랬으면 나도 적당히 하다가 빠질 생각이었고. 그런데 적극적으로 임하더군. 물론 전적으로 나한테 잘 보여야만 그녀 자신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노력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였어.”

“그랬군요. 어쨌거나 제가 듣기로 공동파는…….”

그 말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랬지. 가보니까 궤멸된 상태더군. 그 이후로는 어찌어찌 상황을 타개해 나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렇게 함께 지내다 보니 그녀의 장점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 거고. 뭐, 정도 들었고.”

“그래서, 조장님이 생각하는 그녀의 장점은 뭡니까?”

그러자 단유소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때때로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안다는 것.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는 것.”

진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단유소가 고개를 돌려 그를 한 차례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가 궁금한 것 같은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그냥 함께 있다 보면 편하고 재미있기는 해.”

“그렇군요.”

“그녀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결국 그 일로 인해 영약도 먹고 무공도 증진됐으니 나도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지. 지금은 그 정도가 전부야.”

진평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가서 쉬어야겠지. 내일은 하루 종일 청성파를 향해 달려야 할 테니.”

그러자 진평이 입을 열었다.

“예. 쉴 수 있는 한, 푹 쉬어야겠지요. 누군가가 우리를 노린다면 이 시간 이후부터 내일까지가 될 테니까요.”

단유소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객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기상……!”

갑자기 들려온 낮은 외침에 묵룡조원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며 눈을 떴다.

단유소의 목소리였다.

사위는 아직 어두컴컴했다.

눈을 뜨자마자 조원들이 누운 자리에서 튕기듯 상체를 일으키며 각자의 무기와 봇짐을 챙겼다. 그러던 와중에 진평이 속삭이듯 말했다.

“소운.”

그러자 연소운이 자신의 짐을 든 채 은밀하고 신속하게 방 안으로 이동했다. 한설연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스릉― 스르릉―

진평과 곽승추가 조용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철컥! 드르르륵―

서백풍은 들고 있던 단창 하나와 단봉 하나를 결합시켰다. 그러자 하나의 장창이 되었다.

그 사이에 한설연도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는 옆에 놓아둔 봇짐을 챙기고 있었다.

모두가 복장을 갖춘 채로 잠들었기에 가능한 신속한 준비였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짐도 모두 싸둔 채였다.

연소운과 한설연이 방에서 막 나왔을 때 단유소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복도로!”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평이 문을 발로 박차며 복도로 나섰다. 이어서 일행 모두가 문 쪽에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콰장! 콰장창!

갑자기 객실의 창문들이 깨지며 시커먼 구체 몇 개가 날아들었다.

모두가 문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방을 빠져나오던 단유소가 구체들 쪽으로 신형을 비틀었다.

쾅! 콰과광!

지축을 울리는 폭음이 들린 순간 일행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벽력탄……!’

벽력탄에 관한 사항은 모든 게 국법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사적인 제조는 물론이거니와 사용은 더더욱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이런 시가지에서.

파편은 모두 단유소의 정면에서 막혔다.

그러자마자 단유소가 다시 낮게 외쳤다.

“따라와! 지붕을 이용한다!”

단유소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조원들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고요했던 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붕 위로 올라오자마자 일대를 새까맣게 덮고 있는 흑의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세 단유소 일행의 위치를 파악했는지, 그들이 속속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단유소의 검광이 번쩍인 순간, 그들은 채 지붕 위에 발을 딛지도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다.

단유소가 앞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행은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으며 이동했다.

방향은 남동쪽, 바로 청성파가 위치한 방향이었다.

흑의인들도 길을 따라 단유소 일행을 추격해 왔는데,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마치 검은 물결이 흐르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기를 잠시, 일행이 나아가려는 방향의 지붕 위를 점령한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활시위를 잔뜩 당긴 채로 단유소 일행을 겨누고 있었다.

“소운.”

단유소의 말이 떨어졌을 때쯤 지붕 위에 있던 적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피슈슈슈슈슈슈슈슛!

거의 직사에 가깝게 화살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 찰나에 연소운이 선두에 있던 단유소를 스쳐 지나가며 쌍검을 휘둘렀다.

달빛에 비친 검광이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티디디디디디디딩!

화살들이 연소운이라는 벽을 뚫지 못하고 모두 튕겨 나갔다.

뒤에서 연소운의 쌍검술을 보던 한설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 전과 완전히 달라……!’

연소운이 어설픈 쌍검술을 펼치던 게 결코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최근의 일이었다.

그런데 방금 보인 쌍검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떻게 그 어설펐던 쌍검술이 갑자기 저렇게 완숙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무의식중이 아니라 말짱한 상태에서.

화살들이 막힌 순간 또 다시 두 사람이 연소운 근처로 뛰쳐 나갔다.

서백풍과 곽승추였다.

두 사람이 뛰어가는 와중에 동시에 전방의 지붕 쪽으로 각자의 병장기를 내질렀다.

서백풍의 장창과 곽승추의 검이 각각 여러 개의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병장기에서 몇 가닥의 날카로운 기운이 흑의인들을 향해 발출되었다.

슈슈슈슈슈슉―

그 순간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아하니 단유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허공입니다.]

옆에 있던 진평의 전음이 들리자마자 한설연이 살짝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마따나 단유소는 허공에 떠 있었다.

놀라웠다.

분명히 전방을 보고 있었고 방금 전까지 그곳에 단유소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도약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대체 언제 떠올랐단 말인가.

보아하니 반대편 지붕에 있는 흑의인들도 단유소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들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백풍과 곽승추가 날린 기운을 막기도 급급한 상황이었으니까.

이윽고 단유소가 하강하는 와중에 그들을 향해 검을 몇 차례 내질렀다.

슈슈슈슈슉!

그나마 서백풍과 곽승추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냈던 자들이 그 한 수에 우수수 쓰러졌다.

그러자마자 연소운이 단유소가 내려선 전방의 지붕을 향해 도약했다.

한설연의 귓가에 진평의 전음이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소저도 가십시오.]

한설연과 진평은 일행의 후미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적들이 이미 지척까지 추격해 온 상황이었다. 한설연이 보니 진평은 그들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가오던 적들을 잠깐 바라보던 한설연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달려가서 도약했다.

착지해서 보니 서백풍과 곽승추도 막 이쪽을 향해 도약한 상태였다.

진평 혼자 남아서 어쩌려는 건지 의아했다. 이미 서백풍과 곽승추가 이쪽을 향해 도약한 상황이라 엄호도 없었다. 그러니 살짝 걱정도 되었다.

그 순간, 허공에 떠오른 서백풍과 곽승추가 동시에 신형을 비틀었다. 그러더니 후방에 대고 기운을 발출해냈다. 진평을 엄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진평도 이쪽을 향해 도약했다.

‘와아……!’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놀라웠다.

처음에 연소운이 단유소의 앞으로 나선 순간부터 마지막에 진평이 도약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유기적이었던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속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모두가 큰 힘을 들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미리 짜놓고 움직였다 해도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은 여럿인데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직접 겪어본 묵룡조는 차원이 달랐다.

‘이게 바로……, 단 공자님의 동료들이구나…….’

* * *

달과 별의 위치를 보아하니 인시초(寅時初, 새벽 3시)쯤인 듯했다.

달빛이 희미한 가운데 단유소 일행은 새까맣게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며 계속해서 전진하는 중이었다.

선두에 선 사람은 서백풍과 곽승추였다. 중진에는 단유소와 연소운이, 후미에서는 진평과 한설연이 따르는 중이었다.

한설연이 뒤따르면서 보니 서백풍과 곽승추의 돌파는 과감했다. 평소에도 죽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싸우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래 보였다.

두 사람이 그렇듯 과감할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중진에 있는 단유소 덕분이었다.

두 사람의 임무는 빠른 돌파였기에 자칫 놓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들을 중진에 있는 단유소가 알아서 처리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단유소는 그러는 와중에 측면에서 다가오는 자들까지도 상대했다. 후방에 위험 요소가 생기면 후방도 지원했다.

진평은 후방에 대응하며 한설연을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추격하는 적들과의 거리가 벌어져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싶었을 때 진평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저, 처음에 지붕을 뛰어넘는 시점에 반응이 늦으셨습니다. 이후에는 제 지시가 떨어진 즉시 행동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제가 의사를 묻지 않는 한, 아까처럼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지 마십시오. 의문을 갖지도 말고 이유를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그러다가는 늦습니다.]

듣기에 따라서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한설연은 그 말을 명심하는 중이었다.

아까도 느꼈고 지금도 계속해서 느끼고 있지만 묵룡조의 움직임은 더할 나위 없이 유기적이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늦으면 이들의 움직임에도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중요한 시점에.

물론 누군가가 실수를 한다 해도 묵룡조는 그 실수를 충분히 메워줄 만한 실력자들이긴 했다. 그렇다 해도 될 수 있으면 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진평의 말로 인해 더욱 긴장이 되었다. 그 즈음 진평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주의사항 정도를 말씀드린 것뿐이니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다 보면 한 소저께서도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

진평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한설연이 검을 고쳐 쥐며 대꾸했다.

[예, 부조장님. 명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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