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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80화 (80/200)

80화. 재회 (5)

슈아아아아아―

비로 인해 불어난 물살은 빠르고 거셌다.

물살이 하도 빠르고 거세다 보니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이리저리 부딪치거나 긁히기 일쑤였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리면 훨씬 안전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척을 죽여야 할 때였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설연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건 단유소가 또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열어준 생의 기회였다. 그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떠내려가다 보면 밧줄이 있을 거라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 밧줄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연소운의 수고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왔다.

급류 안에서 몸을 가누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의 소모도 매우 컸다. 그 과정에서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하다가 온 힘을 다해 탈출하고 도주하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몸이었다. 그러니 더 힘들고 고단했다.

갈수록 머리가 점점 멍해지면서 몸이 계속해서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만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으려는 걸, 이를 악물며 참고 또 참아냈다.

강호에 나온 이후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극한의 상황을 여러 차례 겪어보지 않았다면 아마, 진즉에 정신을 놓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의지를 떠나서 이제는 모든 면에서 한계에 도달해갈 때쯤이었다.

[한 소저?]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한설연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전음의 주인공은 연소운이었다.

너무도 반가웠다.

한설연이 두리번거리며 연소운의 위치를 찾을 때, 또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한 소저셨군요! 일단 지금은 밧줄을 잡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쪽 바위에서 건너편 바위로 밧줄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면 위로 한 자 정도의 높이에 밧줄이 보일 텐데, 얇은 밧줄이니 집중하셔야 합니다!]

한설연이 이를 악물었다.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도 않은 한 줌의 진기를 짜내어 안력을 돋웠다.

[삼 장(三丈, 9미터 남짓) 앞입니다!]

연소운이 그렇게 외친 직후부터 한설연도 밧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집중해서 밧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휘익― 풍덩!

누군가가 갑자기 허공을 날아 밧줄 근처의 물속으로 가볍게 뛰어들었다. 다만, 한 손으로 밧줄을 잡았기에 물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지는 않았다.

곧 물속으로 거의 잠겼던 그의 얼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그가 누군지는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연 공자님!’

그가 물속에서 밧줄을 잡고 있는 위치가 지금 자신이 떠내려가고 있는 경로상이었다. 즉, 연소운은 혹시라도 자신이 실수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수고를 무릅쓰고 직접 물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최대한 제가 있는 쪽으로……!”

연소운이 낮게 외쳤고, 곧 두 사람의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서로의 팔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연소운이 한설연을 강하게 끌어당긴 후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한 소저. 이제 물가로 향할 테니 양팔로 제 허리를 꽉 붙들고 계십시오.”

한설연이 순순히 그 말에 따랐고, 연소운이 양손으로 번갈아 밧줄을 잡아가며 물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물가로 나왔을 때 한설연은 연소운 말고도 한 명의 인물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연소운의 지인이겠지만, 한설연은 그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넬 새도 없이 털썩 주저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너무 숨이 찼고, 다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어억! 허억! 허억……! 콜록, 콜록, 콜록!”

거친 숨을 몰아쉬고 몇 차례 기침을 토해낸 후에야 그녀가 새로운 인물을 향해 짧게 목례를 건넸다. 그는 삼십 대 초반쯤의 인상 좋아 보이는 사내였다.

“괜찮으세요, 한 소저?”

연소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을 때 그의 옆에 서 있던 인상 좋은 사내가 말했다.

“소저, 일단 호흡부터 고르시지요. 인사는 그 후에 나누어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에 한설연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그렇게, 어느 정도 호흡이 안정된 후에야 그녀가 바닥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던 도중에 한설연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옆에 있던 연소운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한 소저……!”

한설연이 어느 정도 자세를 잡은 후에 연소운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연 공자님. 몸에 힘이 좀 없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그보다도…….”

한설연이 말을 줄이며 삼십 대 사내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연소운이 서둘러 말했다.

“아! 이분은 저와 함께 한 소저를 도우러 오신 분이세요. 그러니까 제 선배님으로…….”

그러자 삼십 대 사내가 연소운의 말을 받으며 미소 띤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평이라 합니다. 소저께서 누구신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 소개는 생략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한설연이 진평에게 정중히 예를 취했다.

“진 공자님이셨군요. 이렇게 도와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고생은 이 녀석이 했지요. 소저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설연이 고개를 돌려 연소운을 바라보았다.

“연 공자님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연소운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한설연이 바로 말을 이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진평이 피풍의를 훌렁 벗더니 한설연이 입고 있는 피풍의 위에 덮어주었다.

“이, 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한설연이 살짝 당황하며 그렇게 말할 때 진평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일단 그냥 걸치고 계십시오. 그리고 앉아서 잠시만 쉬고 계십시오.”

진평이 그렇게 말하더니 근처의 나무로 향했다. 그 나무의 밑동에 밧줄이 묶여 있었다. 급류에 떠내려 오던 한설연을 살린, 바로 그 밧줄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 밧줄을 회수하려는 것 같았다.

진평의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한설연이 연소운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단 공자님은요? 단 공자님은 괜찮으신 거예요?]

잠깐 본 것에 불과하지만 연소운과 진평은 상당히 친밀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아직 확실치 않으니 일단은 전음으로 물은 것이다.

연소운이 미소 띤 표정으로 답했다.

[괜찮으실 겁니다.]

연소운도 전음으로 답했다는 건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뜻.

한설연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적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단 말이에요. 모두가 상당한 실력자들인 것 같았고요.]

실제로 물에 빠지기 직전에 다리 쪽으로 짓쳐드는 수많은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물론 단유소 혼자라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거라고 믿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소운이 여전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실 겁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소운은 단유소의 안전을 확신하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저 정도로까지 확신을 하니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되었다.

한설연이 또다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단 공자님과 연 공자님은 분명히 동료분들을 도우러 귀주에 가신다고 했었잖아요.]

[귀주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한설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아까 청룡과 얘기하던 단 공자님은 그의 변절을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어요. 설마 그 사실을 알고 제가 위험하다 판단하여 동료분들을 구하러 가지 않으셨던 건…….]

[하하! 그런 게 아닙니다, 한 소저. 정확히 얘기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해야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저희들은 한 소저와 헤어진 후로 얼마 되지 않아서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로 인해 한 소저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겁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래서 그 길로 곧장 한 소저를 추적해 온 겁니다. 중간에 한 소저께서 표식을 남겨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아…….]

한설연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면 조장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자세한 건 그때 들으시면 됩니다. 지금은 일단 쉬십시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설연이 바위에 등을 기대었다.

눈을 감고 쉬기 시작한 뒤로 반각쯤 지났을까.

근처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오시는 것 같소.”

연소운의 목소리도 진평의 목소리도 아닌 생소한 목소리였다. 한설연이 눈을 번쩍 떴다.

서둘러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지만 그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력을 더욱 돋우고 기척을 감지하려 애썼지만 그 또한 허사였다.

근처에 서 있던 진평이 그 방향을 향해 대꾸했다.

“알겠소.”

의문 가득한 표정의 한설연을 바라보며 연소운이 전음을 보냈다.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만에 하나 이곳이 공격받을 수도 있으니 그 경우에 대비하여 함께하는 중이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건 우리 말고 두 분입니다.]

[이곳에 있는 게 두 분이라는 말씀은…….]

[예, 다른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조장님 쪽을 돕고 있는 겁니다.]

어쩐지 아까 단유소가 안전할 것이라고 확신하듯 얘기하더니 이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놀랍기도 했다.

이미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멀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척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 또한 상당한 실력자들이라는 뜻이었다.

헤어진 후로 불과 나흘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 동안에 자신의 행방을 추적하기에도 벅찼을 텐데 언제 저런 고수들까지 끌어모았단 말인가.

한설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인원들이 경공을 펼치는 소리였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들이 한설연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숫자가 열댓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두 사람이 선두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단유소였고 한 명은 흑의인이었다.

한설연이 유심히 단유소의 모습을 살폈다. 혹시 어딘가 다친 곳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혈색도 정상이었다.

그제야 한설연이 안도하며 다른 인물들을 살폈다.

단유소를 포함한 세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같은 복장이었다. 그들은 모두 흑의를 입었는데, 입거나 착용한 모든 게 온통 흑색 일색이었다. 신발이나 장갑은 물론이고 쓰고 있는 죽립마저도 흑색이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하나하나가 풍기는 느낌이 청룡조원들에 못지않았다.

실제의 실력 차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청룡조가 자유로운 느낌이라면 이들은 엄격한 느낌이라서, 피부에 와 닿는 압박감 자체는 이들 쪽이 더했다.

‘누구지?’

저들이 바로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바로 그 흑풍대임을 그녀가 알 리 없었다.

한설연과 제법 거리를 둔 채로 단유소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모든 이들이 멈췄다.

단유소가 흑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선두에서 다가오던 자였다.

단유소가 그 흑의 사내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신세를 졌군.”

그러자 흑의 사내가 대꾸했다.

“이러지 말지. 신세졌던 얘기 하면 할 말은 내 쪽이 훨씬 더 많은데.”

젊은 목소리였다.

챙 넓은 죽립에 가려져 표정이 온전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 아래로 보이는 그의 입술은 분명히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단유소도 사내를 향해 특유의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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