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재회 (3)
맹에서 알려준 건지 묵룡이 어떤 방식으로든 먼저 알아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발각되었다는 상황을 전제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조원들에게도, 그 외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얼른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참고로 청룡조원들은 다른 방향으로 한설연을 추적하러 보낸 상태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 차원이었다.
청룡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다른 부하 복면인들이 홍의 복면인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헝겊으로 손을 보호한 채, 그 위에 몇 개의 화살들을 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묵룡의 뒤쪽에서 날아온 화살들이었다. 터지면서 독연을 내뿜던 바로 그 화살들이다. 아직까지 일대에 독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수거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부하 복면인이 화살들을 홍의 사내에게 내밀어 보여주며 말했다.
“일반적인 화살들에 비해 크기가 작고 두께도 얇습니다. 다만 크기에 비해서 묵직하긴 합니다. 소궁(小弓)이나 쇠뇌 중에서도 소형의 물건들에나 쓰일 법한 화살들입니다.”
“음…….”
홍의 복면인이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때, 다른 복면인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자색의 야행복을 입은 복면인이었다.
다가오는 와중에도 그는 화살들에 시선이 고정된 상태였는데,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화살들에 대해서 아시오?”
홍의 복면인이 묻자 자색 옷을 입은 복면인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그렇소. 정확하게 알고 있소……. 그건 비격뢰에 쓰이는 화살이오. 비격뢰는 흑풍대원들이 쓰는 소형 특수 쇠뇌고.”
자색 옷을 입은 복면인의 말에 청룡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흑풍대……!”
흑풍대는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의 강호 세력이라 불리는 천마신교 안에서도, 최고의 정예 조직이라 불리는 무력 단체였다.
지금이야 신룡대와 비교되며 실력 면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풍대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이 강호에 한 명도 없었다.
예로부터 우는 아이의 울음도 멈추게 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이름이 바로 흑풍대였다. 흑풍대가 약해졌기에 신룡대에 수좌를 내어 준 것이 아니었다. 근래의 신룡대가 그들의 수완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흑풍대는 예나 지금이나 흑풍대였다.
홍의 사내가 바로 물었다.
“혹시 그 비격뢰라는 쇠뇌를 흑풍대가 아닌 자들도 지닐 수 있소?”
“그럴 수는 없소. 비격뢰는 오로지 흑풍대에만 지급되는 쇠뇌요. 각자가 지니고 있는 검, 도, 창 등의 무기는 잃어버려도 비격뢰만큼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자들이 바로 흑풍대원들이오. 크기가 크지 않아서 지니기에 불편하지도 않으니 사실 잃어버릴 일도 거의 없지만.”
자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바로 말을 이었다.
“특별한 재료들이 필요한 데다가 제작 방식이 매우 복잡한 물건이오. 오랜 세월 쌓아온 천마신교만의 기술력이 제대로 담겨 있소. 그렇기에 수량도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고, 따라서 밀반출도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오. 가뜩이나 폐쇄적인 천마신교이니 더더욱.”
자색 무복의 사내를 바라보는 청룡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물론 청룡 자신도 비격뢰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저 정도로까지 자세히 알고 있진 못했다.
‘흑풍대 출신이거나 흑풍대를 잘 아는 위치에 있던 자라는 뜻이겠군.’
강호의 여기저기에서 고수들을 영입했다더니 저런 인사까지 영입했을 줄이야. 하긴, 신룡대의 조장인 자신까지 영입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홍의 사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화살이 동시에 십여 개씩 날아왔으니, 아까 저곳에 흑풍대가 있었다는 뜻이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소. 내 상식선에서는.”
“그럼 무림맹의 신룡대와 천마신교의 흑풍대가 같이 일을 벌였다는 말이 되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소?”
“그래서 나도 지금 이해가 안 가오.”
자색 무복의 복면인이 그렇게 대꾸하자 홍의 사내가 청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뭔가 아는 거 없소?”
그러자 청룡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밝혀진 결과를 보면 그 둘이 동조했다는 건데, 나 또한 의문이오. 그럴 수가 없을 텐데…….”
진심으로 의문스러웠다. 믿어지지도 않았다.
분명히 저 작은 화살을 날린 자들과 묵룡은 약속된 움직임을 보였었다. 그들이 흑풍대라면 어찌 그게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로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정파와 마교 사이인데.
홍의 사내가 정리하듯 말했다.
“더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일은 아니니 일단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추가적으로 보고하겠소. 이제 묵룡도 제법 멀어졌을 테니 우리도 서서히 추적을 시작합시다.”
전체적인 포위망이 구축된 후, 여기에 있는 인원들까지 합세하는 순간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 기회를 잡아서 성과를 올려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윗선의 눈 밖에 나게 될 테니까.
“우리 조원들도 이쪽으로 불러주시오.”
청룡의 말에 홍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다시 부하 복면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런 후에 홍의 사내가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갑시다. 모두 기척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시오.”
그렇게, 그들이 막 출발하려 할 때였다.
[친구들, 일동 정지.]
갑자기 고막을 파고든 전음에, 선두에서 막 걸음을 떼었던 홍의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홍의 사내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그러다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 홍의 사내가 또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인원들이 왠지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때 방금 전의 그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다 찢어 죽이고 싶은데, 잔챙이 몇을 그렇게 만든다고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겠지. 어차피 친구들이 마음먹고 산개해서 도망치면 그걸 다 처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귀찮기도 하고.]
말에 담긴 내용은 살벌한데, 어조 자체는 매우 친근했다. 모든 이들이 또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정체불명의 전음이 곧바로 이어졌다.
[그러니 다 가도 좋아. 그런데 한 사람은 남아야 해. 어깨에 화살을 맞은 친구, 그 친구만 남아. 나머지 친구들은 도망친다면 굳이 쫓지는 않을 거야. 지금의 내게 중요한 건 그 친구뿐이니까. 단, 도망치는 데 있어서 조건은 하나, 방향이 남쪽과 서쪽이어서는 안 돼.]
이에 홍의 사내가 심각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일행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다들 방금 누군가의 전음을 들은 것이오?”
복면인들의 표정에 놀람이 담겼다.
누군가가 대꾸했다.
“어깨에 화살을 맞은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도망치라는 내용이었다면……, 그렇소.”
그 말에 모든 복면인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복면인들의 놀람은 더 커져만 갔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의 고수이기에 이곳의 모든 인원들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지였다. 말도 안 되는 고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에 복면인들의 놀람은 이제 점점 염려로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많은 복면인들의 시선이 청룡에게로 집중되었다. 전음의 주인공이 지목한 당사자가 바로 그였던 탓이다. 그는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태였다.
홍의 사내가 작은 목소리로 청룡에게 물었다.
“아는 목소리요?”
청룡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굳은 듯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고민하는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들 행동해. 친구들 대부분이 배신자들일 거 아냐. 친구들에게 동료애 따위, 애초에 없었잖아. 그러니 걱정해주는 척하지 말고 얼른 살길들 찾아. 살아남아야 또 배신하지. 아직 배신들 덜 했잖아. 더 해야지. 벌써 죽으면 큰맘 먹고 배신해왔던 지난 삶이 아깝지.]
놀람과 두려움만으로 가득했던 복면인들의 눈동자에 모멸감까지 섞였다.
홍의 사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려던 찰나, 틈을 주지 않고 정체불명의 전음이 다시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래. 잘들 하고 있어. 그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계속 그곳에 있어 주면 나야 고마운 일이거든. 자, 이제 셋부터 거꾸로 센다. 셋, 둘…….]
셋과 둘 사이의 시간차가 거의 없었다.
둘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쯤, 두 명의 복면인이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 두 사람이 향한 방향은 각각 북쪽과 북동쪽이었다.
그러자마자 또다시 세 명의 복면인이 튕기듯 그곳을 벗어났다. 먼저 이탈한 자들이 생기니 군중심리가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중에도 서쪽이나 남쪽으로 향한 자는 없었다.
[하나!]
그 말이 떨어지자 이탈자들이 대거 생겨났다. 대여섯 명의 인원들이 거의 동시에, 튕기듯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 남은 건 세 사람뿐이었다.
청룡과 홍의 사내 그리고 비격뢰에 대해 설명하던 자색 무복의 복면인이었다.
[끝.]
짧은 전음이 들려온 찰나, 한 줄기 미풍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윽―
그 직후, 홍의 사내와 자의 사내의 고개가 동시에 홱 돌아갔다. 홍의 사내의 고개는 우측으로, 자의 사내의 고개는 좌측으로.
“헙!”
홍의 사내와 자의 사내의 입에서 동시에 그런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들의 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난 건지 감조차도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저 인지한 순간,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러고 있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경악할 일.
귀신처럼 나타난 그는 백의를 입고 죽립을 쓴 자였다. 챙이 넓은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 확인할 수 있는 용모라고는 입술의 아래 정도밖에 없었다.
“안녕, 친구들?”
백의 사내가 좌우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전음으로 그랬던 것처럼 직접 듣는 목소리에도 친근감이 가득했다. 그의 입술이 씩 웃고 있었다.
홍의 사내와 자의 사내는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그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목석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이미 마혈을 제압당했기 때문이었고, 입을 뻥끗하지 못하는 건 아혈을 제압당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타난 건지도 모르게 나타났고, 어떤 수법을 썼는지도 모르게 당했다. 어디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실력의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당한 것이다. 그것도 동시에.
결국, 등장하기에 앞서 이곳의 모든 이들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말했던 것도,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만약 이 상황을 남들에게서 전해 들었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강한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상태니까.
‘그렇다면 이 백의 사내는 대체 누구일까.’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림맹주도, 그에 버금간다는 천마신교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았다.
홍의 사내와 자의 사내가 품고 있던 비슷한 의문은 결국 청룡에 의해서 풀렸다.
“매매매, 맹주님……!”
그 말에 홍의 사내와 자의 사내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무림맹 신룡대 출신인 그가 맹주라 했다.
즉, 자신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는 이 백의 사내가 바로,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무림맹주 백리우라는 말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