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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77화 (77/200)

77화. 재회 (2)

결국 청룡이 한설연을 쫓으려던 걸음을 급격히 멈추고 비수를 막아갔다.

콰아앙!

강력한 폭음이 들린 순간 청룡의 후방에서 십여 개의 인영이 일제히 튀어나오며 청룡 쪽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 즈음 청룡의 고개가 우측으로 홱 돌았다.

어떠한 기척이 거의 지척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단유소였다.

청룡이 다시금 두 눈을 부릅떴다.

다가오고 있는 건 분명히 사람인데, 마치 예리하게 벼려진 한 자루의 검이 날아오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청룡의 뒤쪽에서 나타난 십여 명의 인물들은 각양각색의 복장이었지만, 공통적으로 눈 아래를 가리는 형태의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도, 단유소도 일제히 청룡이라는 한 점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더 거리가 가까운 쪽은 아무래도 단유소였다.

슈슈슉―

청룡이 연달아 강기를 발출해냈다.

지척에 다다른 단유소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묵룡이 비록 강하나 한순간만 버티면 곧 뒤쪽에 있는 저들이 합류한다.’

복면인들 중에도 초고수들이 있었다. 아무리 묵룡이라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단유소가 사선으로 하강하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청룡이 발출해낸 강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캉! 캉! 카앙!

강기와 강기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강렬한 폭음을 만들어냈다.

청룡이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견제가 먹히긴 했으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어느새 더 가까워진 단유소가 맹렬히 검을 휘두르며 또다시 두 차례나 강기를 발출해냈던 것이다.

슈슉―

어찌나 빠른지 청룡은 살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서너 걸음 밖이었기에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청룡이 하나는 쳐내고 하나는 몸을 비틀어 피했다.

카앙!

그 즈음 단유소는 허공으로 낮게 도약하더니 허공을 격한 채 검을 몇 차례 빠르게 그은 후였다.

순간적으로 청룡이 인식한 건 자신의 지척에 다다라 있는 세 가닥의 선이었다. 갈 지[之] 자의 형태를 띤 강기의 선이었다.

청룡이 깜짝 놀라 몸을 비틀며 검에 강기를 주입하여 그 공격을 막았다. 공격이 날아오는 형태상,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근거리이니 더더욱.

청룡이 들고 있는 검에 모든 기운을 집중시켰다. 그러면서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카가강!

‘크윽……!’

겨우 막긴 막았지만 손아귀가 울려왔다.

청룡이 이를 악물며 단유소의 신형을 쫓았다. 이어지는 공격에 대비하려는 의도였다.

그 즈음 단유소가 급격히 허리를 숙이며 청룡의 하단을 공격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청룡이 검신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여 대비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스윽―

어디선가 미세한 파공음이 들렸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 미세하여 쉽사리 방향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 직후, 청룡이 눈동자를 부릅떴다.

방금 단유소가 허리를 숙인 뒤쪽 공간에서 까맣고 작은 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 순간.

푸욱!

날카로운 뭔가가 살갗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크윽!”

청룡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화살 하나가 이미 어깨를 관통한 것이다.

그마저도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마지막 순간에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화살이 관통한 것은 어깨가 아니라 가슴이었을 테니까.

그 직후, 단유소가 갑자기 신형을 뒤로 쭉 빼며 청룡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복면인들이 청룡의 근처로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룡은 단유소를 뒤쫓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대신 그는 피가 흐르는 어깨 주변의 혈도들을 빠르게 짚고 있었다. 지혈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혹시 화살촉에 독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니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즈음 대여섯 명의 복면인들이 청룡을 지나쳐 다리를 건너려 했다. 단유소를 쫓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결국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피윳―! 퓻―! 피비비비비비빗―!

십여 대의 화살이 갑자기 청룡과 복면인들을 노리고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단유소의 후방에서 날아온 화살들이었다.

약간 높은 지대에서 아래쪽으로 발사된 화살들이었고 곡사가 아닌 직사였다.

결국 복면인들도 더 이상 단유소를 쫓지 못하고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두세 개의 화살을 먼저 쳐내던 복면인들의 눈매가 심각해졌다.

팡! 파방!

화살촉들이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녹색의 연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

“피해!”

복면인들이 그렇게 외치며 빠르게 산개했다.

반대편에서 다시 한번 날아온 화살들은 모두 다리 위에 부딪쳐서 자잘한 폭발을 일으켰다.

짙은 풀색의 연기가 다리 위를 가득 메웠다.

연기의 건너편에 서서 묵묵히 이쪽을 바라보던 묵룡이 잠시 후 자취를 감추었다.

묵룡이 사라지자마자 청룡이 다친 어깨 부위를 끈으로 꽉 조여매기 시작했다.

화살이 관통한 건 어깨의 바로 아래쪽 팔 부분이었다. 상처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어떤 독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마취 효과가 가미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처음부터 독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혈도를 확실히 짚어두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큰일 날 수도 있었다. 끈을 꽉 조이고 있는 건 더 확실한 응급처치를 위해서였다.

그 후에 어깨 위쪽을 만져보니 그쪽에는 확실히 감각이 있었다. 다행히 독 기운이 어깨 안쪽으로 퍼지지는 않은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낸 청룡이 품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내었다. 그 안에서 알약을 꺼내어 얼른 삼킨 후, 고약을 꺼내어 상처에 발랐다.

둘 다 해독 성능이 뛰어난 약들이었다. 잠시 후면 독소가 어느 정도 빠져나갈 것이다. 그 후에 혈을 조금씩 통하게 한 후 진기를 이용하면 독을 완전히 배출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고 나자 방금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 화살, 뭐였을까.’

화살이 그렇게 강력하고 빠르게 날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척과 소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묵룡이 바로 앞에서 신경을 분산시킨 탓도 컸다.

분명한 건, 보통의 화살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청룡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복면인들이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이오.”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청룡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복면인들과 접선한 건 아까 야산에 진입하여 은신처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잠시 정찰을 갔다 오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 야산이 바로 일차 목적지이기도 했다. 한설연을 제압하여 넘긴 후 이들에게서 다음 지령을 받기만 하면 모든 게 순조롭게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그 찰나에 한설연이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들과 함께 추적해 왔다.

오면서 보니 한설연이 제법 머리를 썼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의 수준은 딱 거기까지였다.

도주, 탈출, 추적과 같은 분야는 애초에 지능이나 재치보다는 기술이나 경험과 같은 전문성을 더 필요로 하는 분야였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전문가인 자신의 수준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한설연을 다시 찾았으니 그걸로 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당할 줄이야…….’

아직도 지금의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이런 식으로 엉뚱하게 엎어질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자 다른 복면인이 말했다.

“어떻게 손을 써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이리될 줄이야.”

그의 말대로였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많은 상황들이 벌어졌으나, 실제로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초고수들 간의 전투였던 탓이다.

그러자 또 다른 복면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청룡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나서서 물줄기를 따라 그녀를 추적해야 하는 것 아니오?”

실제로 지금 바로 물줄기를 쫓아가면 한설연을 못 찾을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룡이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소. 당신들이 잘 아는 바로 그 묵룡이 개입된 일이오. 그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녀를 떠내려 보냈을 리가 없소. 분명히 멀지 않은 하류 쪽에 누군가를 대기시켜뒀을 거요. 제법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조력자들이 묵룡을 돕고 있다는 걸 아까 당신들도 봤잖소.”

복면인들의 양미간이 좁혀졌다. 청룡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번에는 또 다른 복면인이 청룡에게 물었다.

“묵룡이 어찌 이곳에 나타났단 말이오? 확실하게 따돌렸던 게 아니었소? 처음부터 뒤쫓아 온 게 아니라면 대체 그가 어찌 이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오?”

다분히 책망이 담긴 어조였다.

청룡도 진심으로 그게 궁금했다. 귀주에 있어야 할 묵룡이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청룡이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들이 내게 준 그 위조 명령서에 하자가 있었다는 뜻이겠지.”

“뭣이라!”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뒤쪽에 떨어져서 팔짱을 끼고 있던 다른 복면인이 말했다.

“그만.”

홍의를 입고 동색의 복면을 착용한 자.

그가 바로 이곳에 있는 복면인들의 우두머리였다.

홍의 사내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가 청룡에게 말했다.

“지금은 대책을 세워야 할 때요. 어차피 교월은 묵룡과 합류할 듯하니, 그들의 뒤를 쫓긴 쫓아야 하오. 손 놓고 있어서는 당신에게도, 내게도 이로울 일이 없으니까.”

그러자 청룡이 대꾸했다.

“뒤를 쫓는다 해도 조심해야 하오. 상대는 그 묵룡이오. 게다가 상당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예상되는 자들이 그를 돕고 있소. 일단 동지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포위망을 넓게 구축하게 하시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조력자들을 모을 수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실력자들 다수를 끌어모을 만한 절대적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력이 상당한 조력자들인 만큼,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홍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도 그들의 뒤를 쫓아야 하오. 다만 그와의 간격은 철저하게 유지하는 게 좋겠소. 또 어떻게 그에게 당할지 모르니까.”

청룡의 어조는 조심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묵룡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머리로만 알았다면 이제는 몸도 안다고 해야 할까. 그가 왜 최고로 통하는지, 적의 입장에 섰을 때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로 다가오는지, 이제는 확실히 체감이 되었다.

홍의 사내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근처에 있던 다른 복면인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 즈음 복면인 한 사람이 뭔가를 들고 청룡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들고 있던 것을 청룡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래도 묵영시(黙影矢)의 일종인 듯하오.”

그가 건넨 것은 검은색의 화살이었다. 화살 전체가 칠흑처럼 검었다.

청룡의 눈빛이 심각함을 담아갔다.

‘묵영시였다니…….’

묵영시, 암영시, 무영시, 무음시와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화살들이 있다. 말 자체의 의미는 약간씩 다르나 소리와 기척이 없다는 점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진 만큼 화살 한 대의 가격만 따져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다.

그것을 자신에게 쏜 것이다. 독까지 묻혀서.

제거할 목적이었다는 뜻이다.

화살을 쏜 자들은 묵룡의 움직임과 연계하여 자신을 노렸다. 미리 약속된 움직임이었다. 즉, 묵룡은 이미 자신을 제거하려 마음먹고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묵룡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자신의 변심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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