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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72화 (72/200)

72화. 묵룡조 (3)

낚싯대를 쥐고 있던 백리우의 손아귀가 움찔했다.

그는 오늘도 무림맹 사천지부에 있는 정원의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운 상태였다.

백리우의 입이 열렸다.

“뭣이라……?”

그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보고드린 그대롭니다. 청룡입니다.”

그렇게 대꾸한 문사 차림의 중년인은 역시 제갈윤이었다. 백리우는 정자의 난간에 앉아 있었고 제갈윤은 그 옆에 서 있었다.

“그럴 수가…….”

백리우의 어조에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백리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확신하고 있구나. 아닐 수도 있잖아? 그들의 조사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잖아?”

백리우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투였지만, 제갈윤이 볼 때 이건 현실을 부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묵룡조의 부조장 진평은 그 역량도 뛰어나지만 성향도 확실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이 믿지 못하시겠다면 다른 조로 하여금 다시 묵룡을 조사하게끔 지시하겠…….”

“아냐, 아냐. 그럴 필요는 없어.”

백리우가 제갈윤의 말을 끊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제갈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또 이렇다. 묵룡에 관련된 사안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다. 애초에 백리우의 이런 반응을 끌어낼 의도로 묵룡을 언급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 청룡이었다니…….”

백리우가 상심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룡대에 대한 백리우의 믿음과 자부심이 그만큼 컸으니까.

이윽고 백리우가 쥐고 있는 낚싯대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크나큰 상심이 분노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청룡…… 뿐이라더냐?”

“아직까지 확실한 건 그 정도인 듯합니다. 나머지는 심증 정도로 보이고요.”

“그래서, 심증이 가는 또 다른 인물은 누구고?”

“아직 심증에 불과한 자들까지 굳이 아실 필요는…….”

제갈윤으로서는 백리우가 더 이상 상심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백리우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뜻.

“백룡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녀마저도…….”

백리우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분노가 더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경우에는 아직 심증에 불과합니다. 청룡과는 별개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제갈윤이 다시 한번 강조하자 백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청룡조가 묵룡 쪽을 지원하러 갔으니 그는 더 위험해질 겁니다.”

백리우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그쪽에서의 연락은 아직 없었지?”

“예.”

“묵룡이 무사할 가능성……, 정말로 높은 거야? 그 영약이 중태에 빠진 그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영약을 먹이긴 했을까?”

백리우의 어조에 염려가 가득했다.

현월곡에서 비밀리에 조제했다는 영약을 한설연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송채령을 통해서였다. 그 소식을 듣고 백리우도, 단목수헌도, 제갈윤도 그나마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또다시 묵룡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하니 백리우는 다시 걱정이 도진 모양이었다.

“소림의 대환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영약이라 했잖습니까. 대환단급 영약이 얼마나 대단한 효능을 발휘하는지는 형님도 잘 아실 겁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한다는 영약입니다. 복용했다면 묵룡도 충분히 무사할 겁니다.”

제갈윤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게다가 한설연 소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묵룡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설연 소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곡주님과 송채령 소저도 확신하듯 얘기했잖습니까.”

“그런데 왜 연락이 없어……!”

“지금은 연소운도 함께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최소한 그라도 다시금 연락을 취해왔을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히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어떠한 상황이 있을 겁니다.”

백리우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그 상태로 조용히 있던 백리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책은 있고?”

“일단은 묵룡조 부조장 진평 등도 묵룡에게 가까워지고 있을 겁니다. 일전에 임무가 끝나는 대로 바로 묵룡을 지원하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응? 소식을 받은 게 방금 전이라면 그들이 소식을 보낸 건 이틀 전쯤이라는 얘기잖아. 그러면 아직 귀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

“그들이 소식을 보낸 건 그보다 훨씬 전의 일입니다. 무림맹에 먼저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해진 소식이라서 시간 차가 좀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빨라도 그들이 청룡보다는 약간 늦을 겁니다.”

“음…….”

백리우가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윤이 다시 말했다.

“오는 길에 천무단에도 정예 고수들을 선발해놓으라고 이미 지시를 내려두었습니다. 형님의 승인만 떨어지면 바로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천무단은 애초에 정예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정예라면 대단한 전력이었다.

“당연히 승인해야지. 하지만 묵룡이든 청룡이든 아직 행적이 확실치 않잖아. 그래서는 천무단의 정예를 투입한다 해도 실질적인 도움은…….”

“일전에 투입한 비조대(飛鳥隊)의 인원들 대부분이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무림맹의 정찰대는 백풍단(白風團)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정찰 임무를 담당한다.

비조대는 쉽게 말하면 특수 정찰대다. 기본적으로 경공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몇 마리씩의 비둘기를 데리고 다니며 연락을 주고받을 수가 있다. 그들만의 자체적인 망을 구축하는 방식이라서 신속한 연락이 가능하다.

일전에 묵룡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사천으로 소집하여 투입시켰는데, 드디어 그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잘됐네. 천무단도 바로 투입시켜.”

“예. 지금 즉시 출발하라 지시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제갈윤이 움직이려 할 때쯤, 멀리에서 정자를 향해 다가오는 인영들이 있었다. 그러자 백리우가 한 팔을 뻗어 제갈윤을 대기시켰다.

정자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은 세 명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월곡주 단목수헌과 대공녀 송채령, 그리고 문상부의 전령이었다.

“여기들 계셨구려.”

단목수헌이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정자 위로 올라왔다. 송채령과 전령이 그 뒤를 따랐다.

정자 위에 도착해서 간단한 예를 주고받자마자 백리우가 단목수헌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아, 그저 잠시 산보나 나왔던 길이었는데 저기에 있는 전령이 황급하게 이곳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우리도 함께 서둘렀던 것이외다. 문상에게 보고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기에.”

“아, 그러셨군요. 어쨌건 잘 오셨습니다.”

백리우가 대꾸하자마자 제갈윤이 전령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전령이 제갈윤을 향해 한 장의 전서를 내밀었다.

“직접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갈윤이 얼른 전서를 받아 그것을 펼쳤다.

순식간에 내용을 훑은 제갈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모두의 눈동자에 의문이 담길 때, 단목수헌이 제갈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오? 혹여 이 늙은이가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이라면 자리를 피해주리다.”

“아닙니다. 곡주님께서도 들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대꾸한 제갈윤이 전령에게 말했다.

“자네는 일단 정원 밖에서 대기하게.”

“옛!”

전령이 사라지고 나자 제갈윤이 말했다.

“이건 청룡조에서 온 전서입니다.”

“오오! 청룡조라면 일전에 묵룡을 지원하러 가지 않았었소?”

“그렇습니다. 그들이 묵룡과 조우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예상대로 묵룡의 상태는 양호하답니다.”

“오오오! 묵룡에 청룡조 전원이 함께라면 그야말로 안심이구려!”

단목수헌의 말마따나 모두의 표정에 안도의 빛이 담겼다. 그때 제갈윤이 바로 말을 이었다.

“함께는 아닙니다. 묵룡은 그 길로 묵룡조원들과 합류하기 위해 떠났다고 합니다. 청룡조가 한설연 소저의 신병을 양도받아 이곳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그렇다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요. 일단 묵룡이 무사하고, 설연이는 신룡대 일개 조 전체의 호위를 받게 되었으니.”

단목수헌이 그렇게 말할 때 제갈윤과 백리우가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모습 속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파악했는지, 단목수헌이 곧바로 다시 물었다.

“왜, 왜들 그러시오? 또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러자 백리우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곡주님 앞에서 면이 서지 않는 이야기이긴 하나, 이제는 어쩔 수 없게 되었군요. 신룡대 내에 변절자가 있습니다.”

단목수헌과 송채령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그렇소, 송 소저. 변절자는 청룡이오. 청룡조도 동조하고 있는 것 같소.”

“아아!”

단목수헌이 한 손으로 뒷목을 잡았다. 휘청거리는 그의 신형을 송채령이 얼른 부축했다.

“사부님……!”

단목수헌이 신형을 바로잡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괜찮다. 이젠 괜찮다.”

송채령의 손길에서 벗어나며 정신을 추스른 단목수헌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물었다.

“변절이라 하시면 지금 이 강호를 흉흉하게 만들고 있는 무리들의 편에 섰다는 말씀이시오?”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리 설연이가 그쪽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말씀이신 거고요?”

“그렇…… 습니다. 그의 변절에 관해서는 소생도 방금 전에 문상을 통해 들었기에 대책을 수립하던 차였습니다.”

그러자 단목수헌이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에서 말했다.

“청룡조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이제 설연이 그 아이의 귀환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겠구려. 그들도 신룡대이니 일 처리가 확실할 테고, 묵룡이 무사하다는 그들의 보고도 믿을 게 못 되겠구려. 이 일을 어쩌면 좋소.

단목수헌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으니 백리우와 제갈윤도 침묵할 뿐이었다.

단목수헌이 눈을 뜨며 물었다.

“신룡대 내의 변절자는 청룡과 그 조원들뿐이오?”

“더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면 신룡대의 다른 조를 투입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큰일 아니오.”

“면목 없습니다, 곡주님. 다 소생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백리우가 대꾸하자 단목수헌이 말했다.

“마음먹고 속이려고 하면 누구든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법이오. 그게 어찌 맹주 탓이겠소.”

또다시 침묵이 이어질 때 제갈윤이 입을 열었다.

“일단 천무단에서 정예를 선발하여 투입할 생각입니다. 비조대가 망을 구축했으니, 그들과 연계한다면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포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천무단이나 비조대라고 믿을 수 있겠소? 그 신룡대에 변절자가 생겼다면 무림맹의 핵심 인사들이나 주요 전력들도 관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의심하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고. 정말 난감하구려.”

“믿을 만한 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내부의 적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주지시키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안이 급하니 일단 저는 가서 일을 진행하겠…….”

제갈윤이 중간에 말을 줄였다. 정자를 향해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아까 정원 밖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던 바로 그 전령이었다.

명을 어길 자가 아니니,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

그가 정자 위에 올라오자마자 제갈윤이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 이걸 보십시오!”

그가 또다시 제갈윤에게 한 장의 전서를 건넨 후, 즉시 정자를 벗어났다.

전서의 내용을 훑는 제갈윤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가 말했다.

“묵룡조에서 온 전서입니다!”

백리우와 단목수헌이 눈을 번쩍 떴다.

“진평 등의 묵룡조원들과 묵룡이 조우했답니다. 묵룡은 확실히 무사한 모양입니다. 조우한 시점이, 묵룡과 한 소저가 헤어진 후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합니다! 곧바로 청룡조를 추적하겠다고 합니다!”

“오오!”

모두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런 경우에 어지간하면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백리우마저도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저는 즉시 가서 묵룡조를 지원할 준비들을 하겠습니다.”

“이 늙은이도 함께 가겠소.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도우리다.”

제갈윤, 단목수헌, 송채령 등이 백리우에게 예를 취한 후, 서둘러 정자를 벗어났다.

정자에 홀로 남은 백리우가 잠시 후에 허공에 대고 입을 열었다.

“표익.”

그러자 허공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예!”

“혼자서 조용히 바람을 좀 쐬고 와야겠으니 지금 즉시 채비하거라.”

백리우의 어조에서 심상찮은 뭔가를 느낀 표익이 대꾸했다.

“하, 하오나…….”

“며칠이면 된다. 문상에게는 내가 따로 서신을 남길 것이다.”

확고한 의지가 깃든 한마디.

“충……!”

짧은 그 한마디의 대답이 허공에 긴 꼬리를 남기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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