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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70화 (70/200)

70화. 묵룡조 (1)

매우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치고 있다는 말인즉, 그들이 고수라는 뜻.

연소운이 즉시 몸을 낮추며 단유소의 기색을 살폈다.

단유소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그 상태로 있던 단유소의 양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그 직후, 단유소가 눈을 떴다. 크게 떴다.

그의 눈동자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입니까……?”

연소운이 조심스럽게 물을 때쯤, 단유소는 먼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놀랍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따라와, 소운. 어서 가봐야겠다.”

그렇게 말한 직후, 단유소가 튕기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연소운이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어둠 속에서 연소운은 음영을 통해 세 개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도 이미 이쪽을 인식한 듯, 경공을 멈춘 채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거리가 더 가까워졌을 때쯤, 상대방 쪽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조장님……?”

연소운은 깜짝 놀랐다.

너무도 익숙한 음성.

부조장 진평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조장님……!”

“조장님!”

이어서 들려온 두 개의 음성 역시 반가운 목소리들로, 서백풍과 곽승추의 것이었다.

“너희들……!”

단유소가 낮게 외치며 걸음을 우뚝 멈췄고, 이어서 연소운이 외쳤다.

“부조장님! 선배님들!”

세 사람이 빠르게 단유소 쪽으로 다가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재회였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실로 오랜만의 재회.

묵룡조원들은 모두가 감격하고 있었다. 단유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조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러게 말이다. 이곳에서 너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는데.”

“그건 저희들도 마찬가집니다.”

“소운이도 정말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들!”

묵룡조원들은 한동안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경위가 어찌 되었건 그들에게는 무사히 다시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어느 정도 해후의 기쁨을 나눈 후, 진평이 물었다.

“그나저나 조장님,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그리고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자초지종을 얘기하기 전에 일단 몸을 숨기는 것이 좋겠다.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다섯 명이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이윽고 묵룡조가 도착한 곳은 인근의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나무 몇 그루가 모여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단유소가 걸음을 멈추었다.

진평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단유소에게 물었다.

“중태라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응, 지금은 괜찮아.”

“정말 다행입니다. 한데 어찌 된 일입니까? 어디로 가시던 길입니까?”

진평이 다시 묻자 단유소가 대꾸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귀주에 있어야 할 너희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야?”

“조장님 말씀대로 저희들은 근래에 귀주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임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무림맹에서 전서를 받았는데, 조장님이 중태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빠르게 임무를 마무리한 후 조장님 쪽을 지원하라는 내용이었기에 명에 따르고 있었던 것인데…….”

“응? 너희들, 위험에 처했다면서?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너희들 쪽을 지원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러자 서백풍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예? 위험이라니요? 물론 위험할 수도 있는 임무였지만 실제로 위험에 처한 적은 없었는데요?”

단유소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위험에 처한 적이 없다고?

조원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청룡이 의심되었다.

그 생각을 하던 단유소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그를 의심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룡 또한 그저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윗선에서 뭔가를 조작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아닐 경우에나 청룡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아니, 이미 벌어졌을 지도.

그러자 가만히 단유소를 바라보던 진평이 물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 먼저 여쭙겠습니다. 저희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은 누구에게서 들으신 겁니까?”

진평의 표정이 심각했다. 보아하니 진평 또한 이미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청룡이 조원들을 이끌고 명령서를 가져왔었다. 거기에 내가 맡고 있는 임무에 대한 인계 명령과, 너희들이 위험에 처했으니 지원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말에 진평, 서백풍, 곽승추의 눈동자가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세 사람의 반응 속에서 뭔가를 느낀 단유소의 양미간도 서서히 좁아졌다.

진평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말했다.

“조장님,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이야기는 매우 심각한 내용입니다.”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평이 말을 이었다.

“저희들이 맡았던 임무는……, 신룡대 내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었으니 극비리에 그것을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의 단서만 가지고 저희들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면서 말입니다.”

연소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반면, 단유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진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사 결과, 실제로 불온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불온한 움직임에 어떤 식으로든 청룡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겠군. 아까 청룡 얘기가 나왔을 즈음, 너희들이 보였던 반응으로 짐작할 때.”

“연관만 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청룡은 확실한 변절자입니다. 청룡조원들 모두가 이미 그와 뜻을 같이하고 있을 겁니다.”

“그럴 수가……!”

연소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낮게 외쳤다. 순진한 그에게 있어 지금의 내용은 다분히 충격적일 것이다.

서백풍이 연소운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진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더 큰 문제는, 신룡대 내에 또 다른 변절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청룡의 주도하에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조장급 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확증은 없습니다만 심증이 가는 인물은 있습니다.”

진평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유소가 말했다.

“심증이 가는 인물은 혹시 백룡인가?”

그 말에 오히려 진평이 놀랐다.

“그,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까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기로 청룡은 백룡과 상당히 친분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한번 던져본 말에 불과했는데, 실제로 백룡 또한 용의선상에 있다니.

“별거 아냐. 그냥 내 나름대로 추측해본 거야.”

그러자 연소운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대로라면 큰일입니다! 한 소저가 이미 변절자들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그러자 진평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한 소저라……?”

“교월 한설연 소저 말입니다.”

연소운이 대답하자 서백풍과 곽승추가 동시에 목을 길게 뺐다.

“으응? 조장님의 호위 대상이 교월 한설연 소저였단 말이냐?”

“모, 모르셨습니까?”

“우리는 그저 조장님이 누군가를 호위하다가 크게 다치셨다고만 들었다. 대강 조장님이 계실 거라 짐작되는 위치만 적혀 있고, 어서 지원하라는 내용만 있었기에 그리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진평을 비롯한 세 사람은 한참 전부터 이번 임무에 착수했었다. 단유소보다 먼저 임무에 투입되었었다.

게다가 한설연이 강호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까지 기밀이고, 아울러 단유소가 그녀를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밀이니, 세 사람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연소운처럼 맹에서 직접 임무를 하달받지 않은 이상,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교월 한설연 소저였다니……!”

곽승추와 서백풍이 여전히 놀람을 감추지 못할 때 진평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저희들이 받은 명령에 호위 대상을 꼭 구하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한설연이 이미 적의 수중에 넘어갔으니, 그녀를 구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묵룡조가 매우 위험해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이게 진평이었다.

진평 또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진평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한설연을 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진평이 최우선시하는 건 늘 단유소의 안전이었고 조원들의 안전이었다. 그러기 위한 냉정한 판단도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단유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기 전에, 항상 안전을 위한 최선의 의견을 먼저 내놓는 사람도 진평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유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가 조원들의 안전을 염두에 두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자 서백풍이 조용히 연소운에게 물었다.

“한 소저를 넘겨준 게 언제였나? 며칠이나 지났지?”

“며칠이 아닙니다. 불과 두 시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진평과 곽승추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서백풍이 이번에는 단유소에게 물었다.

“조장님,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한설연 소저는 총명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표식 같은 걸 남겼을 가능성은 아예 없겠습니까?”

단유소에게 그렇게 물은 서백풍이 바로 진평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추적할 방법만 있다면, 게다가 두 시진밖에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잖습니까. 청룡조가 아직 적들과 합류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어차피 놈들 방식이야 우리도 빤히 알고.”

묵룡조 서열 삼 위, 바람둥이 서백풍.

그는 지금 한설연이 천하제일의 미인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 그의 역할이었다.

진평이 안전을 최우선시한 의견을 내놓으면, 서백풍은 일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차분히 따져본다. 그래서 가능한 일일 것 같으면 단유소와 진평을 설득한다.

“이런 기회에 마음의 빚 좀 지워줘서 우리도 천하제일미한테 술 한잔 얻어먹어 보자고요. 목숨을 구해줬는데 차후에 설마 술 한잔 안 따라주겠습니까? 상상해보세요. 천하제일미가 따라주는 술은 또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하핫.”

그러자 진평과 곽승추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서백풍을 째려보았다.

“아니 이거 왜 이래요? 다들 방금 상상했잖아요? 상상만으로도 좋았을 거 아니에요? 와아! 이런 식으로 또 나만 쓰레기 만들기예요?”

저것도……, 서백풍이긴 하다.

그러자 곽승추가 연소운에게 물었다.

“막내, 네 생각은 어때?”

연소운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곽승추가 막내였다. 그의 막내 생활은 제법 길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곽승추는 언제나 막내인 연소운을 먼저 챙긴다.

“조, 조장님이 결정하실 문제가 아닌지…….”

“조장님 지금 생각 중이시잖아. 늘 말하지만 이런 때에 편하게 네 의견도 한 번씩 얘기해보는 거야.”

그러자 연소운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저, 저는……, 한설연 소저와 며칠간 함께 지낸 바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한설연 소저는 꼭 구하고 싶은 분입니다. 정말 좋은 분이시고 특히…….”

“특히?”

“중태에 빠졌던 조장님을 살린 분도 한설연 소저였습니다. 영약을 아끼지 않고 말입니다.”

“영야아악?”

“무슨 영약?”

서백풍과 곽승추가 놀라며 묻자 연소운이 대꾸했다.

“어떤 영약인지는 모릅니다만, 분명히 대단한 물건이었을 겁니다. 저도 당시에 조장님을 진맥해봤기에 그 효능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후에 조장님께서 말씀하시기로도 한설연 소저가 아니었으면 절대 깨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소저가 조장님을 퍽 잘 따르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자 서백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단유소를 향해 말했다.

“오호, 조장니이임.”

한설연을 잘 따르게 만들었다니, 제법이라는 투.

그러자 결국 진평이 서백풍을 향해 한마디 했다.

“으이그. 하여간 저 자식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까지 꼭! 하여간 개념이 없어, 개념이.”

하지만 서백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유소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울 뿐이었다. 진평이 입을 열어 한마디 더 하려다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곽승추가 한 손을 번쩍 들더니 단유소와 진평을 향해 말했다.

“막내가 한 소저를 꼭 구하고 싶답니다! 저는 차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막내가 기어이, 꼭 구하러 가고야 말겠다네요!”

그 말에 연소운이 화들짝 놀랐다.

“꼬꼬꼬, 꼭, 구하고 싶다는 말씀은 아니었…….”

그러자 곽승추가 씩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구하지 말자는 얘기야? 그럼 말지 뭐.”

그렇게 대꾸한 곽승추가 또다시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막내가 변덕이 심하네요! 사실은 절대 구하러 가기 싫답니다!”

연소운이 더 화들짝 놀랐다.

“제제제제, 제가 언제 그런 말씀을……!”

그러자 곽승추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연소운의 뒤통수를 툭 하고 쳤다.

“어쩌라는 거야, 인마, 그럼.”

“아, 아니 그게…….”

째진 눈을 하고 곽승추와 연소운을 지켜보던 진평이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고. 저것들 때문에 아주 늙는다, 내가.”

그때, 단유소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자.”

그러자 조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꾸했다.

“예!”

이윽고 단유소가 서서히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원들이 그 뒤를 따라 경공을 펼쳤다.

이어서 단유소가 속도를 올렸고, 조원들도 보조를 맞추었다.

그러는 동안 조원들 중에서 그 누구도 단유소에게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단유소도 조원들에게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단유소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모두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눈치들이었지만, 그보다는 단유소가 어떤 결정을 내렸든 상관치 않는다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일행의 후미에서 경공을 펼치는 연소운의 표정이 환했다. 이 강호에서 자신이 가장 든든하게 여기는 네 개의 등이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문득, 예전에 부조장 진평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니, 이제 그만 신룡대를 나가겠다고 했을 때 그가 해준 말이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어디를 어떻게 가느냐가 아니다. 누구와 어떻게 가느냐다.”

진평의 등을 보며 연소운이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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