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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69화 (69/200)

69화. 임무 인계 (3)

그러자 청룡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교월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군. 하긴 이 강호가 한번 냉혹해지기 시작하면 명문이라고 해도 봐주지는 않지. 어쨌거나 당신이 고생 많았겠어.”

“고생이 많긴 했지.”

“그래도 생각보다 평가가 박하네. 천하제일미라 불리는 교월 한설연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이런 평가를 듣겠어?”

“냉정해야지. 인수 인계니까.”

단유소가 그렇게 대꾸하자 청룡이 물었다.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없고?”

“응.”

그러자 청룡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말했다.

“언제 술이나 한잔하지.”

원칙적으로는 규정에 어긋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일 뿐, 우연히 서로 알게 된 다른 조원들끼리 만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기회 되면.”

“당신, 또 말만 그렇게 하고 정작 기회가 되면 안 나올 거잖아. 들어보니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조원들도 다들 다른 조와는 어울리는 법이 없다더군. 하여간 까다롭단 말이야. 이 힘든 짓 하면서 뭘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살아? ‘최고’의 자부심이라 그거야?”

단유소는 피식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러자 청룡이 다시 말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른 조장들은 가끔씩 서로 술 한 잔씩 하면서 지낸다고. 모두 함께 아는 사이는 아닌데 다들 따로따로 한둘씩은 알고 지내는 거지. 나도 마찬가지고. 유독 당신만 혼자 논단 말이야.”

이번에도 단유소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시큰둥한 느낌의 미소였다.

그러자 청룡이 중요한 정보라도 알려준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었지? 일전에 황룡이 바뀐 거?”

“한 반년 됐나? 소식만 들었는데. 여자라고.”

단유소가 그렇게 대꾸하자 청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맞아. 듣자 하니 상당한 미인이라더라고.”

신룡대의 각 조장, 그러니까 오룡의 자격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로지 실력과 맹에 대한 충성심을 보고 뽑는다. 특히 충성도에 관한 사안은 수많은 검증 과정을 철저하게 거쳐야 한다.

한동안 오룡 모두가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삼사 년 전에 여성이 백룡으로 임명되었었다. 그리고 근래에 또 한 명의 여성이 황룡이 된 것이다. 신룡대에서 두 명의 여성 조장이 동시에 존재한 예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청룡이 말을 이었다.

“백룡이랑 술 마시다가 들은 거야. 같은 여자끼리라고 종종 연락하며 지내는 모양이야. 다음에 백룡하고 또 술 한잔하기로 했는데, 그때 봐서 그녀가 황룡도 데리고 나오겠다고 하더라고. 너무 혼자만 놀지 말고 그때 꼭 와. 백룡도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라 하거든. 하여간 최고는 좋겠어. 인기도 많아서.”

“봐서.”

그러자 청룡이 짐짓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혀를 찼다.

“에잉, 쯧쯧. 또 안 나오겠군. 뭔가 벽에 대고 이야기한 느낌이네. 보아하니 규정과 규율만 철저하게 따르는 성향도 아닌 것 같던데.”

그러자 단유소가 빙그레 웃어 보인 후에 물었다.

“백룡한테 나 데리고 나간다고 호언장담해 놔서 이러는 건 아니고?”

“하핫. 들켰네.”

청룡의 반응을 확인한 단유소가 졌다는 듯 고개를 한 차례 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쉴 만큼 쉰 것 같은데, 이제 각자 갈 길 가지.”

“예,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최고님.”

잠시 이죽거리던 청룡이 이윽고 한 손을 내밀었다.

“이봐, 죽지 마. 언제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다음에 만나게 될 묵룡이 다른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뭐,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은 나겠지만.”

그러자 단유소가 청룡과 악수하며 대꾸했다.

“그래, 당신도 죽지 마. 만약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그땐 내가 술 한잔 사지.”

“오오! 그 약속, 잊지 말라고.”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사람이 쉬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다가갔다.

단유소가 향한 곳은 한설연과 연소운이 쉬고 있는 곳이었다. 같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휴식을 취하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는…… 거군요.”

다가오는 단유소의 표정 속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한설연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면 다시 지름길로 돌아가도 되니까.”

“네. 가셔야지요. 당연히.”

한설연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보이는 모습, 웃는 표정이고 싶었다. 아쉽고 또 아쉬운 속내와는 상관없이.

“건강하고, 앞으로 하는 일 다 잘되길 빌어, 한 소저.”

“저야 이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뭐. 단 공자님이야말로 무탈하시길 빌어요. 그간 정말…… 감사했어요.”

“나도 고마웠어.”

그 후로도 잠시 한설연을 바라보던 단유소가 이윽고 연소운을 불렀다.

“소운.”

출발하자는 뜻.

“예, 조장님.”

그러자 단유소가 한설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아까 마지막에 했던 말, 절대 잊지 마.]

한설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소가 돌아섰다.

연소운도 한설연에게 포권하더니 돌아섰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길 앞에, 청룡조가 나란히 서 있었다.

“무운을 빌어, 묵.”

청룡이 그렇게 말하자 청룡조원들이 단유소를 향해 일제히 무림맹 식의 예를 취했다. 연소운도 청룡을 향해 예를 취했다.

“무운을 빌어, 청. 그리고 조원들도 수고하고.”

그렇게 단유소와 연소운이 산지 옆의 평지 쪽으로 멀어져 갔다.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쯤 청룡이 한설연에게 다가왔다.

“최고인 묵룡보다야 못하지만 저희들도 엄연한 신룡대입니다. 게다가 저희들은 다섯이니 목적지까지 최선을 다해 안전하게 모실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 소저.”

“저는 경험도 일천하고 무공도 약하여 민폐만 끼치기 일쑤입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동 중에 쉬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전음으로 말씀해주십시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한설연의 대꾸에 고개를 끄덕인 청룡이 이윽고 조원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내가 한 소저와 함께 중진에 위치한다. 선봉조 두 명이 앞을, 후미조 두 명이 뒤를 맡는다.”

“예!”

“이상, 출발.”

이윽고 여섯 개의 인영이 산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청룡조원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한설연은 아까 단유소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방금 휴식을 취하기 전에, 달려오면서 단유소가 전음으로 해준 말들이었다.

“잘 들어, 한 소저. 청룡조와 함께하게 되면 최대한 어수룩한 척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말 그대로 온실 속에서만 자란 화초인 척, 뭘 해도 덜렁거리는 척, 위기가 오면 잔뜩 긴장하는 척하란 말이야.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척하라고. 나와 함께하면서 배운 것도 거의 없는 척하고. 그러면서 뭐든 핑계 댈 게 없으면 내 핑계를 대. 우리가 함께할 당시에는 내가 다 해서, 당신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하고.”

그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었다.

다만 한 가지,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르긴 했다.

그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당시의 그는 청룡조조차도 확실하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알았어요. 단 공자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그제야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줬었다.

“이 강호에서 누굴 만나든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당신의 능력을 철저하게 감춰. 그러면서 상대방을 신뢰하는 척해. 절대로 날카로운 눈빛이나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마. 그게 당신이 보다 안전할 수 있는 길이야. 설령 아군과 함께일지라도.”

그가 해준 말은 거기까지였다.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던 그 손길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청룡의 옆에서 경공을 펼치는 와중에 한설연이 묵묵히 이를 악물었다.

명심할게요, 단 공자님.

그러니 단 공자님도 무사하셔야 해요.

* * *

단유소와 연소운은 비 내리는 벌판을 한동안 말없이 달렸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단유소가 천천히 달렸기에 연소운이 알아서 보조를 맞추었다.

달리던 와중에 힐끔힐끔 단유소의 기색을 살피던 연소운이 말했다.

“좋은…… 분이셨어요.”

단유소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수긍의 표시였다.

“나중에 먼발치에서라도 보면 많이 반가울 것 같아요. 여태 많은 사람을 호위해봤지만 그런 사람, 몇 안 되는데.”

고개를 끄덕인 단유소가 들판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그 상태로 가만히 서서 한동안 눈을 감았다. 기척을 감지하려는 의도임을 연소운도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단유소가 눈을 뜨더니 고개를 들었다. 곧 그가 검지와 중지를 입술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이―

매우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허공으로 향했다.

이윽고 허공 위에서 하얀빛을 띤 물체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하강했다. 설화였다.

연소운이 아까 확인하기로 청비와 설화 그리고 자신의 전서응인 금랑은 계속 함께 붙어 다니고 있었다. 즉, 단유소는 지금 설화만 따로 부른 것이다.

설화가 단유소의 팔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단유소가 설화의 이마와 부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다가 녀석의 이마를 쓰다듬고, 또다시 방금 전처럼 이마와 부리를 일정하게 건드리길 반복했다.

연소운은 이전에도 단유소가 설화에게 저러는 모습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었다. 설화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묵룡조의 선배들은 설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어려운 임무를 쉽게 해결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설화는 그냥 보라응이 아니야. 영물이지. 그게 바로 저 녀석을 수년간 지켜본 우리의 결론이야.”

설화에 대한 선배들의 평가가 그랬다. 실제로 선배들은 자신들의 매보다 설화를 더 예뻐했다.

연소운은 궁금했다.

‘지금은 딱히 위기도 아닌데 뭘 하시려는 걸까?’

그러는 사이에도 단유소는 몇 번이고 설화의 이마와 부리를 일정하게 건드리길 반복했다.

이윽고 단유소가 설화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탁한다, 설화.”

그러고 나서 단유소가 설화를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더니 어딘가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마자 연소운이 물었다.

“뭘 하신 건지 여쭤봐도…….”

“그런 게 있다.”

단유소는 빙그레 웃을 뿐 대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가자, 소운.”

이윽고 두 사람의 신형이 또다시 벌판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한설연과 헤어진 후로 두 시진가량이 흐를 동안 단유소와 연소운은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달렸다.

비가 그치지 않고 있으니 은신처를 찾는다 해도 제대로 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은신처를 찾느라 시간을 소모하느니 차라리 이 시간에 이동을 더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잠시 쉬어갈 겸 나무 아래에 몸을 숨겼을 때 연소운이 말했다.

“우리야 적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만, 그쪽은 무사할까요?”

“아까 오두막에 있을 때 위치가 발각되긴 했으니, 적들도 대강의 경로는 예측하고 있을 거야. 설령 당장 위험하진 않더라도 앞으로는 위험해지겠지.”

“청룡조장님 말씀입니다만……, 처음 그분을 봤을 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조장님 외의 다른 조장님은 처음 뵌 건데, 괜히 신룡대의 조장님인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희미하게 미소만 지어 보였지만 단유소는 흡족했다.

아까 청룡은 전혀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소운은 청룡의 강함을 느낀 것이다. 그만큼 연소운의 경지가 올라갔다는 뜻이었다.

“그분을 뵙고 나니 조장님이 왜 신룡대 최고의 고수로 통하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습니다. 조장님이 가만히 계시면 저는 아직도 조장님에게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합니다. 그냥 일반인 같은 느낌뿐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래에 연소운의 경지가 약간 상승했다고는 하나, 단유소 자신의 경지 또한 상승했다. 격차는 그대로이거나 더 벌어진 셈이다.

연소운이 먼 하늘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청룡조장님은 본신의 경지도 높지만 융통성도 많고 임기응변에 매우 강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 소저를 충분히 안전하게 이끌어주시겠지요. 다 잘되었으니 이제는 우리 선배들만 무사하시면 되는데…….”

연소운도 이미 조원들의 상황에 대해서 아는 상태였다.

“녀석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하고 생존력도 뛰어나지.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걱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

단유소가 말을 제대로 맺지 않자 연소운이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단유소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감각에 뭔가가 걸린 것이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단유소가 말했다.

“소운, 기척을 확실하게 감춰. 매우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치는 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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