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67화 (67/200)

67화. 임무 인계 (1)

단유소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소운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담겨 있던 서글픔과 씁쓸함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또렷함만이 담긴 눈빛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역시 신룡대원은 신룡대원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연소운이 낮고 빠르게 대꾸했다.

당연히 한설연도 상황을 파악한 후였다. 한가하게 연소운이나 위로해주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나 은밀하게 이동했는데도 벌써 꼬리가 잡혔다니…….’

이제 사나흘만 더 가면 목적지인 아미산이었다.

그때까지 별일 없기를 바랐건만 결국은 또다시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적들의 저 찰거머리 같은 추종술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이번에는 제발 모두 무사할 수 있기를…….’

쏴아아아아아아―

사위가 깜깜한 가운데 장대비 쏟아지는 소리만이 여전히 가득했다.

단유소 일행은 장대비 내리는 어두운 산속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적들 중에 초고수가 있다면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다수의 적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만약 적들 중에 초고수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단유소 자신이 그의 발을 묶을 계획이었다. 연소운이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한참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유소 일행을 따라잡는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적들이 이미 커다란 망을 갖추고 이곳저곳에 넓게 퍼져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초고수가 어디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 적들은 그 정도로 치밀한 자들이니까.

그렇게 한 식경쯤 흘렀을 때, 단유소 일행은 이미 야산을 벗어나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거침없이 달리던 어느 순간 세 사람이 경공을 멈추었다. 그들의 앞으로 제법 폭이 넓은 시냇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원래 큰 물줄기는 아니었던 모양인데, 쏟아진 비에 의해 물이 크게 불어난 상태였다.

애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도 아닌 데다 헤엄을 쳐서 건너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

서둘러 좌우를 살핀 단유소가 이윽고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그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연소운과 한설연이 빠르게 그의 뒤를 쫓았다.

부지런히 달리다 보니 멀리로 다리가 보였다.

다리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던 단유소가 또다시 우뚝 멈춰 섰다. 뒤따르던 연소운과 한설연이 표정으로 의문을 표할 때 단유소가 말했다.

“다리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경공을 펼치고 있어. 무인이야.”

그 말에 연소운과 한설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적일 게 빤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로 향하려면 빨리 이 물줄기를 건너야 하는데, 하필이면 이 순간에 다리 건너편에서 적이 나타날 건 또 뭐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비가 쏟아지지만 않았다면 처음부터 다리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헤엄쳐서 건너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을 정도의 물줄기였으니까.

“물줄기를 따라서 최대한 빨리 달리며 다른 다리를 찾아야 할 것 같군. 그 전에, 일단 저 앞에 있는 적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봐야겠지. 내가 접근해볼 테니, 두 사람은 저만치 가서 출발 준비하고 있어. 소운은 내 신호 잘 확인하고.”

“예, 조장님.”

단유소가 막 발걸음을 떼려 할 때 한설연이 그를 불렀다.

“단 공자님.”

단유소가 고개를 돌리자 한설연이 말했다.

“조심해요.”

잠시 한설연을 바라보던 단유소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다리를 향해 나아갔다.

연소운과 한설연은 시냇가 옆의 작은 덤불들 사이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조용히 다리 쪽을 주시하고 있는 연소운을 향해 한설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연소운의 최대 시야에 걸릴 정도의 거리였기에 상대적으로 무공 수위가 낮은 한설연의 입장에서는 다리 쪽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아직 은밀히 접근 중이십니다.”

“아.”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잠시 후에 연소운이 말했다.

“일단 다리 근처에 다다라서 몸을 숨기셨습니다.”

“아.”

그 후로 연소운에게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설연은 단유소 쪽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자꾸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질문을 꾹 참았다.

그 이후로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연소운에게서는 말이 없었다. 실제로 흐른 시간은 길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한설연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결국 한설연의 입술이 열렸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그러자 연소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여전히 몸을 숨기고만 계십니다. 이쯤 되었으면 적의 수준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가늠을 하셨을 텐데도 말입니다. 조장님이라면 분명히 그러셨을 텐데…….”

“왜일까요. 설마 적이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시는 건…….”

“그건 아닐 겁니다. 몰래 다가갔다면 몰래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한 분이 바로 조장님이십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 거리까지만 접근을 하셨을 테니까요.”

“아…….”

연소운의 대답을 듣고 나니 조바심 때문에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다.

그 이후로 한설연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연소운이 뭔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연소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왜요?”

“조장님이 자리에서 일어서셨습니다. 그리고 다리 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계십니다. 왜 기습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한설연의 표정에도 의문이 떠오를 때쯤 연소운이 다급하게 말했다.

“방금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합류 신호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이윽고 두 사람이 단유소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다리 건너편에는 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서 있었다. 모두가 챙이 넓은 죽립을 쓴 자들이었다.

단유소의 곁에 도착한 연소운과 한설연은 의아했다.

단유소는 이쪽에서, 적들은 건너편에서,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대치 상태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단유소라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어야 했다.

돌파할 방법, 시점, 주의 사항 그리고 이후의 계획까지, 짧고 간단하게라도 일러줬을 터였다.

그런데 곁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유소에게서 아무런 말도 없으니, 그게 의아한 것이다.

[저어……, 조장님?]

연소운이 전음까지 보냈음에도 단유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혼자만 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구성을 보니 확실한 것 같군.”

건너편에서 들려온 음성이었다.

여섯 명 중에서 맨 앞에 서 있는 자였는데, 소리를 지른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또렷하게 들렸다.

대단한 고수라는 뜻.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나를 알아보겠나?”

그 말에도 단유소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맞은편 사내가 다시 물었다.

“암어를 댈까?”

그때, 실로 오랜만에 단유소가 반응을 보였다. 사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것이다.

그러자 맞은편의 사내가 피식 웃어 보이더니 가만히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단유소가 사내를 향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맞은편 사내도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입술은 전혀 달싹이지 않았지만 현재 두 사람이 전음을 주고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이 두세 번 이어진 후에야 맞은편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서운한데? 그래도 우리는 이래저래 두세 번은 마주쳤던 사이잖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바로 알아볼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 최고로 통하는 ‘묵(墨)’이라 그건가? 본인 말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굳이 기억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거야?”

사내가 서운하다는 어조로 그렇게 묻자 단유소가 대꾸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

그러자 사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진짜? 그럼 말해봐. 내가 누군데?”

“누구긴. 당신이 바로 ‘청(靑)’이지.”

“오호! 이거 알아봐 주셔서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그 말에 단유소가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대꾸했다.

“어쨌거나 방금 전에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알잖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알지. 우리의 행사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그 즈음, 한설연과 연소운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상태였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맞은편 사내의 정체를 유추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청룡……!’

청룡.

신룡대 오룡 중의 일인이자 청룡조의 조장.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설연은 놀라운 한편으로 신기했다.

‘그 유명한 신룡대의 오룡 중에서 두 명을 한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 상황이 신기하기는 연소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청룡과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니, 아예 다른 신룡대원들과 마주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어쨌거나 상대는 아군.

게다가 그냥 아군도 아니고 신룡대다. 너무도 든든했다. 더 이상 든든할 수가 없을 정도로.

청룡이 물었다.

“중상을 입은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중태에 빠져 있을 때, 연소운이 전서를 날려 그 사실을 무림맹에 보고했다고 했었다.

단유소가 대꾸했다.

“그랬었지. 아직 온전치는 않은데, 다행히 움직일 정도는 되어서 말이야.”

“다행이네. 당신이 중태면 우리 쪽도 그만큼 힘들었을 테니까. 뭐, 예상하고 있겠지만 명령받고 지원하러 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청룡이 그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누군가를 불렀다.

“전호.”

그러면서 청룡이 단유소 쪽을 향해 턱짓하자, 한 사내가 대꾸하며 앞으로 나섰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이윽고 전호라 불린 사내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고 단유소를 향해 다가왔다.

그 뒤쪽에서 청룡이 말했다.

“명령서야. 확인해봐. 아까 말했듯 확실히 해야 할 테니까.”

단유소가 전호에게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방수용 기름종이로 밀봉한 봉투였다.

단유소가 기름종이를 뜯고 봉투를 열어 명령서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그가 기운을 일으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명령서에 바로 근처에서 튕겨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청룡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놀랐다는 표현이었다.

“아직 몸도 온전치 않다면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신위를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괜히 우리 애들 주눅 들잖아.”

단유소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청룡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즉, 그냥 하는 말에 불과했다.

한동안 명령서를 훑어보던 단유소가 이윽고 기운을 회수했다. 그러자 종이가 빗물에 젖기 시작했다.

이내 종이가 흠뻑 젖자, 단유소가 한 손으로 종이를 뭉치더니 그것을 서서히 짓이겼다.

그러면서 티 나지 않게 전음으로 연소운에게 물었다.

[소운, 우리 조원들이 어디로 임무를 수행하러 갔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들은 바 있나?]

그러자 단유소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연소운이 전음으로 대꾸했다.

[최초 파견 지역은 광서였고, 제가 조장님을 찾아 나서기 전쯤에는 귀주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렇다면 확실한 것 같군.]

[어인……, 말씀이신지…….]

[진평과 나머지 녀석들이 위기에 처한 것 같다.]

[예에?]

[자세한 건 나중에.]

전음을 마친 단유소가 걸음을 옮겨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연소운과 한설연이 그 뒤를 따랐다.

건너편에 다다랐을 때쯤 청룡이 물었다.

“그런데 저분 소저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아시나?”

“우연히 그렇게 됐지. 지금쯤이면 당신의 정체도 알아냈을 테고.”

“그렇겠네.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까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윽고 단유소가 청룡 앞에서 멈추자, 그가 물었다.

“명령서는 확실히 확인했지?”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청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확인 마쳤으면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 모두 더 힘들어질 테니 말이야. 당신을 중태에 빠트릴 정도로 무서운 자들이라면 나는 더 두렵다고.”

“실제로 무서운 자들이더군. 당신 말대로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임무 인계에 있어서 우리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만한 사항이 있나? 곤란하면 전음으로 말해줘도 되고.”

청룡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단유소의 뒤쪽에서 한설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 무슨 말씀이시죠? 임무 인계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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