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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58화 (58/200)

58화. 의문의 소녀 (4)

물속으로 들어가자 연소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하며 암벽의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설연이 빠르게 헤엄치며 그 뒤를 쫓았다.

곧, 약간 먼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심소옥의 모습이 보였다.

연소운과 한설연이 가까워지자 심소옥이 더 깊게 잠수하며 커다란 바위 뒤로 이동했다.

어차피 심소옥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한설연은 의아했다.

그녀가 입수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수중 동굴 같은 걸 예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심소옥이 향하는 방향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을 뿐, 딱히 통로나 틈새 같은 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 더욱 깊게 잠수하며 심소옥의 뒤를 따르던 어느 순간, 한설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바닥까지 잠수하던 심소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탓이다.

강바닥까지 내려와 본 후에야 한설연은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위의 밑 부분에 작은 틈이 있었다.

위쪽에서는 그저 넙적한 바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내려와서 보니 아랫부분이 패어 있는 형태의 바위였던 것이다.

연소운을 도와서 먼저 그를 틈 안으로 밀어 넣은 후, 한설연도 안으로 들어갔다.

틈 안쪽은 상당히 어두웠지만 통로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경사진 통로가 위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헤엄을 치며 위쪽으로 향하자 어느 순간부터 통로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넓어지던 통로가 급격하게 넓어졌다고 생각된 순간, 그 위로 수면이 보였다.

“푸하!”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자마자 한설연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 그 안의 공간을 빠르게 살폈다.

통로가 넓어질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역시나 수면 위의 공간도 제법 넓었다.

공간의 한쪽으로 물이 닿지 않는 평평한 바위 지대가 보였다. 심소옥은 이미 그곳에 있었고, 연소운은 그곳으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한설연도 그쪽으로 향했다.

그 위로 올라서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작은 통로 같은 게 보였다. 심소옥이 서 있는 곳의 바로 뒤쪽이었다.

심소옥이 돌아서며 말했다.

“따라와.”

그녀의 뒤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걸었다.

아래쪽의 넓은 공간은 자연적인 느낌이었는데 반해, 지금 걷고 있는 통로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다. 즉, 누군가가 바위를 파내어 통로를 넓혔거나 아예 뚫은 것이다.

나선형으로 돌며 한동안 위쪽으로 이어지던 통로가 어느 순간 막혔다. 나무로 된 문에 의해서였다.

심소옥이 문을 두드리자 문이 바로 열렸다.

문 안쪽에서 일렁이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허리가 굽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백발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그머니나! 이게 누구야!”

“안녕하셨어요, 황(黃) 할머니!”

“아이고, 예쁜 우리 아가씨!”

노파와 심소옥이 서로를 얼싸안았다.

한동안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이 이윽고 떨어졌다.

“아이고, 더 예뻐지셨네!”

“황 할머니는 더 젊어지셨는데요?”

“홀홀홀홀. 말씀이라도 고마워요, 아가씨. 참!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얼른 들어와요, 아가씨. 뒤에 두 분도 어서. 들어와서 몸들 좀 말려요.”

한설연과 연소운이 일단 목례를 해 보인 후에 문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와서 보니 제법 널찍한 바위 동굴이었다.

지금의 인원이 머무르기에도 충분히 넓은 느낌이었다. 동굴의 벽면에 여러 개의 촛불이 밝혀져 있어, 공간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원래는 천연 동굴이었던 듯한데 인공적으로 바위를 깎아서 내부의 일정 공간을 넓힌 모양새였다. 보아하니 지금 서 있는 공간의 안쪽으로 동굴이 더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천장도 서서히 좁아지는 형태로 상당히 높았는데, 위로 갈수록 굴곡이 져 있어서 어디까지 빈 공간이 이어지는지 섣불리 알 수 없었다.

한쪽 벽에는 나무로 된 작은 문이 달려 있어서 마치 창문 같았다. 한설연이 생각하기에 그 창문 쪽이 아마도 암벽 방향인 듯했다.

실내의 공간은 대체적으로 따뜻했다. 중앙에 있는 작은 화로 때문으로 보였다. 그 안에서 숯이 붉은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화로의 옆에는 나무를 대충 깎아서 만든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위에 사기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돌 침상이 마련되어 있어, 그 위에 짐승의 모피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한설연이 쓱 둘러본 동굴 안의 모습은 대충 그 정도였다.

‘강변의 암벽 속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생활 도구마저도 갖출 건 다 갖춰져 있다니……!’

가뜩이나 이곳은 찾고 싶다고 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심도 되었다.

노파가 말했다.

“업혀 있는 공자께서는 다친 모양이네요, 아가씨?”

“예, 황 할머니.”

“침상에 눕히기 전에 일단 젖은 옷부터 갈아입히는 게 좋겠네요. 그러니 젊은 공자는 일단 이쪽으로.”

노파가 그렇게 말하며 동굴의 안쪽으로 연소운을 이끌었다. 단유소를 업은 연소운이 순순히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고 나자 심소옥이 진지한 표정으로 한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잠깐 확인했을 때, 숙부의 몸 안에서 엄청난 양의 기운이 요동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숙부한테 뭘 먹인 거지?”

심소옥 정도 되는 고수라면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단유소가 대단한 무언가를 복용했다는 사실을.

“걱정 마. 독약은 아니니까.”

한설연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심소옥을 상대로 이렇게 반응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소옥은 그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아직 심소옥에 대해서 아는 건 많지 않지만, 그녀는 일단 단유소가 불러서 온 사람임이 확실하다. 게다가 심소옥은 말로만 단유소를 숙부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를 끔찍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심소옥이 단유소의 동료인 자신과 연소운에게 위해를 가할 리 없었다. 단유소를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이, 그가 싫어할지도 모르는 짓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심정적으로 심소옥이 편하게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한동안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설연을 바라보던 심소옥이 뭔가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꺼벙이가 그런 대단한 걸 지니고 다녔을 것 같지는 않았지. 역시 당신 거였군. 그 정도 효능이라면 그 값어치를 따지기도 힘든 것이었을 텐데?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한설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굳이 대꾸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심소옥이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고수답게 참 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잠시 한설연을 바라보던 심소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그런 걸 지니고 있었지? 당신 누구야? 정체가 뭐야?”

한설연은 고민스러웠다.

어찌 되었건 심소옥은 단유소와 상당히 가까운 관계에 있음이 확실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정체를 밝히는 게 도리일 테고, 실제로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만, 독단적으로 밝히기가 좀 애매했다.

아직은 심소옥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이상, 단유소에게 맡기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한설연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너는 내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사람이야. 그런 네게 이런 말을 하기가 너무 미안하지만, 내 정체에 관한 건 네 숙부에게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분명히 퉁명스러운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심소옥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뭐 그 편이 서로 편하겠지.”

연소운이 단유소를 조심스럽게 침상 위에 눕혔다.

단유소는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노파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에 구비되어 있는 여벌의 옷이라 했다.

어쨌거나 단유소를 눕히고 나서야 한설연은 노파와 제대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신세를 지게 되어 송구할 뿐이에요. 더불어 이렇게 머물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려요, 어르신.”

그러자 노파가 인상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홀홀홀. 참 곱게도 생긴 소저시구려. 누추한 곳이지만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고.”

“누추하다니요, 어르신. 저는 이곳이 신기하고 아늑하여 마음에 쏙 들어요. 그리고 아직은 제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점 또한 용서해주세요.”

“홀홀. 소저, 그런 건 조금도 미안해할 필요 없다우. 어차피 이곳에까지 오게 된 손님들이라면 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는 얘기거든.”

노파는 섣불리 짐작하기도 어려울 만큼 나이가 많아 보였다. 대강 짐작컨대 최소한 여든 살은 훌쩍 넘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세속에서 초연한 느낌이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인상 좋은 할머니 같지만, 한설연은 왠지 노파가 상당한 고수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걸 여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르신은 늘 이곳에서 지내시는 건지요? 이곳의 모든 게 신기한 마음에 궁금하여…….”

그러자 노파가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그렇지는 않고, 나는 그저 가끔 와서 이곳을 관리하는 정도라우. 최근에 들렀던 건 닷새 전이었지. 오늘은 아가씨가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온 거고. 이곳은 비상시에만 이용하는 비밀 거처거든.”

“아…….”

노파가 침상 위에 있는 단유소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저 공자 말이우. 언제부터 의식을 잃고 있었수?”

“어제, 늦은 밤부터였어요.”

“그동안 뭐라도 먹인 건 있고?”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먹인 약 외에는 없어요. 뭔가를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한설연의 말에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미음이라도 쑤어서 먹이지 않으면 곤란하겠구려. 게다가 모두들 시장할 테니 간단히 요기할 것이라도 좀 마련해 오리다. 편히 쉬면서들 조금만 기다리시우.”

한설연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도울게요, 어르신.”

“홀홀홀. 됐수. 딱 봐도 소저가 가장 많이 지쳐 보이는데, 그냥 누워서 쉬고 계시우.”

“전 괜찮아요, 어르신. 그러니…….”

“어허. 그냥 쉬고 계시래두.”

노파가 굽은 허리에 뒷짐을 지고 동굴 안쪽으로 걸어갔다.

한 식경 남짓이 지난 후 노파가 내온 것은 말린 생선과 육포 등을 이용하여 만든 죽과, 단유소 몫의 미음이었다.

세 사람이 식사를 하는 가운데 노파가 단유소에게 미음을 먹였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한설연과 연소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한설연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누운 채로 정신을 차려가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 중에 너무도 기다리던 목소리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상체를 일으키는 한설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침상 쪽으로 돌아갔다.

단유소가 미소 띤 얼굴로 한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상 위에 누운 상태에서 고개만 돌린 채였다.

“어……!”

놀란 한설연이 저도 모르게 낮은 음성을 토해냈다.

단유소가 웃으며 말했다.

“으이그. 하여간 잠이 많아.”

“어, 어, 언제 깨어나신 거예요?”

한설연이 그렇게 물으며 서둘러 침상 쪽으로 다가갔다.

침상 한쪽에 심소옥이 걸터앉아 있었고 그 옆에 연소운이 서 있었다. 노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단유소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당신 잠꼬대할 때.”

“저 놀릴 힘은 있는 거 보니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후후후.”

웃음 짓는 단유소를 향해 한설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응.”

그제야 한설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정말…….”

“한 소저 덕분이지.”

“저는 뭐……, 딱히 한 것도 없어요. 저보다는 이 두 분이 훨씬 더 고생했죠.”

그러자 단유소가 고개를 저었다.

“소운이한테서도, 소옥이한테서도 다 들었어. 한 소저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난 염라대왕 앞에 있었겠지. 고마워, 한 소저.”

“다른 분은 몰라도 공자님은 제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결국 나 때문에 그렇게 되신 건데…….”

“알았어. 이 정도만 하지.”

한설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심소옥이 말했다.

“숙부한테서 들었어. 너, 유명한 사람이더라? 내가 들어봤을 정도면 진짜 유명하다는 거거든.”

심소옥에게로 고개를 돌린 한설연이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당신’이라고는 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너’란다.

하여간 이 꼬맹이, 싸가지하고는.

한설연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단유소가 말했다.

“내가 얘기해줬어. 소옥이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

한설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단유소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소옥이 말투, 거슬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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