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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무-56화 (56/200)

56화. 의문의 소녀 (2)

“아이고, 그렇게 웃으니 더 예쁘구나. 흐흐. 이 아저씨가 저기 있는 나쁜 사람들 좀 혼내주고, 가서 맛있는 거 사 주마.”

소녀의 미소를 보더니 첫째가 그렇게 말했다. 저 예쁜 얼굴로 미소를 지으니 더 예뻐 보였다.

하지만 한설연의 생각은 달랐다.

‘저 어린 소녀가, 저 예쁜 얼굴로, 어떻게 저렇게 위험한 느낌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거지?’

미소를 짓던 소녀의 눈동자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사내들은 소녀의 예쁜 얼굴 때문에 그 사실을 못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느낌이 이상한데……, 저 애.”

막내인 홍의 여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도 뭔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크헐헐. 막내 네가 언제 너보다 예쁘고 싱싱한 애들을 좋아한 적이 있었더냐? 질투는 이해한다만 이번에는 좀 아니지. 아직 애잖아.”

둘째가 그렇게 말하자 홍의 여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아니야, 둘째 오라버니.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니라고.”

“느낌이 이상하긴 무슨. 예쁘기만 하구먼.”

둘째가 핀잔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자 이번에는 셋째가 입을 열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큰형님.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셋째가 말한 대로다. 일단 할 일부터 하고 보자.”

첫째가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귀산사흉이 다시금 기세를 끌어올렸다.

한설연이 보니 연소운은 또다시 벌벌 떨고 있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온 후부터는 계속 저 상태였다.

연소운이 다시 한번 대단한 모습을 보인다 해도,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제는 막막하다는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얘야!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정말 위험해! 얼른 도망쳐!]

마지막 권고이자 부탁이었다.

한데 소녀의 반응이 한설연을 놀라게 했다.

[풋. 넌 가만히 좀 있어. 주제 파악이나 하면서.]

소녀가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전음을 보내온 것이다.

일단 소녀가 말한 내용이 충격이었다. 설마 저 어린 소녀가 저런 식의 대꾸를 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전음을 보내는 과정에서 소녀가 전혀 입술을 달싹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자신도 저렇게는 못 한다. 그래서 놀라웠다.

막, 귀산사흉이 한설연과 연소운을 향해 달려들려 할 때였다.

“당신들 같은 등신 머저리들이 그랬을 리는 없겠고. 누구지? 누가 저분을 저렇게 만들었지?”

귀산사흉이 멈칫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바로 소녀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얼굴만큼이나 예쁜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고, 그 내용은 뒤통수를 자극했다.

소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귀산사흉의 표정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첫째가 물었다.

“아, 아가야? 지, 지금 네가 말한 것이냐?”

“응.”

“우, 우리한테 한 말이냐?”

“응. 그 ‘우리’가 당신을 포함한 얼간이 네 명을 지칭하는 거라면.”

“허!”

첫째의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더니 다시 소녀를 보며 말했다.

“허허, 이 귀여운 것 좀 봐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오냐오냐해줬…….”

“시끄럽고.”

소녀가 한 손을 내밀며 첫째의 말을 끊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꺼져. 그러면 살려는 줄게. 저분을 저렇게 만든 거, 아무리 봐도 당신들 짓이 아닌 것 같아서 크게 인심 쓴 거야.”

귀산사흉의 기세가 그야말로 흉흉해졌다.

첫째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가 비틀어진 미소를 지은 채로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야, 아무리 애라고 해도 어른들이 참아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단다. 이 아저씨한테 볼기짝 좀 맞아야겠구나. 그래, 원래 그렇게 다 혼나면서 크는 게지.”

그러더니 첫째가 나머지 삼흉에게 나직이 말했다.

“너희들 셋이 저 연놈들을 처리해. 어차피 저것들은 버티지 못한다.”

그러자 소녀가 다시 히죽 웃으며 말했다.

“풋. 역시 얼간이들이네.”

“요런, 앙큼한 것.”

첫째가 소녀를 향해 한 걸음을 떼었을 때, 삼흉이 한설연과 연소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연소운이 한설연의 앞으로 나섰다.

아까 쌍검을 들고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한 자루의 검만을 들고 있었다.

역시 아까 보였던 모습은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설연이 검을 쥐고 연소운의 옆에 설 때쯤, 귀산사흉의 첫째는 이미 소녀의 바로 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내밀어 소녀의 목덜미를 잡으려 할 때였다.

스윽―

소녀가 천천히 왼손 손바닥을 위로 내밀더니 다가오는 첫째의 손을 막아갔다.

“어쭈? 요 귀여운 게 앙탈을…….”

그 순간, 어른의 손과 아이의 손이 허공에서 닿았다.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첫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손과 손이 닿는 순간, 강맹한 기류가 나선형으로 휘몰아치며 팔을 타고 어깨에까지 전달되었던 것이다.

나선형의 기류를 통해 처음 받은 느낌은 서늘함이었다. 곧 서늘함이 찌릿함으로 변했고, 그 찌릿함은 엄청난 고통으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기나긴 비명이 일대에 울려 퍼졌다.

막 연소운과 한설연을 공격하려던 삼흉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비명을 지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첫째는 주저앉아 있었다.

역시나 고통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큰형님!”

“큰오라버니!”

보아하니 첫째의 오른팔이 덜렁덜렁했다.

“내가 경고했지. 말로 할 때 꺼지라고.”

소녀가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름다운데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잔인한 미소였다.

삼흉이 황급하게 첫째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소녀가 수도(手刀)의 형태로 손바닥을 곧게 펴더니, 주저앉아 있는 첫째의 가슴을 향해 살짝 털어냈다. 마치 검으로 검기를 떨쳐내는 모양새였다.

슥―

푸욱!

소녀의 손을 통해 모종의 기운이 발출된다 싶더니, 첫째의 가슴팍이 눈 깜빡할 새에 뚫려버렸다.

“컥!”

털썩!

짧은 두 종류의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하나는 첫째가 토해낸 단말마의 비명이었고, 또 하나는 그의 상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였다.

바닥에 쓰러진 첫째의 몸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절명한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모든 이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삼흉의 입도, 한설연의 입도, 연소운의 입도 쩍 벌어져 있었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갑자기 첫째가 죽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탓이다. 저 고사리 같은 손이, 저렇게 가차 없이 첫째의 명줄을 끊을 줄이야.

“크, 크, 큰형님…….”

둘째의 중얼거림 속에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잠시 그 상태로 유지되던 고요함이 깨진 건, 홍의 여인에 의해서였다.

“큰오라버니이이이이이!”

카랑카랑한 외침이 고막을 울렸다.

탓!

홍의 여인이 곧바로 땅바닥을 박찼다. 소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그녀의 눈자위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이성을 잃은 것이다.

“막내야!”

어떠한 위험을 느낀 셋째가 짧게 외쳤지만, 홍의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검을 이용해 소녀의 심장을 빠르게 찔러갈 뿐이었다.

슉―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였다.

소녀가 오른손을 뻗었다. 다가오는 홍의 여인의 검을 향해서였다.

“앗!”

소녀의 행동이 너무도 무모해 보였기에 한설연의 입에서 절로 그런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러던 순간, 소녀의 팔이 기묘하게 꺾였다.

캉!

사람의 살과 날카로운 쇠붙이가 맞닿았는데, 쇠붙이끼리 부딪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인해 휘둥그레졌다.

홍의 여인의 검이 소녀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홍의 여인도 깜짝 놀란 상태였다.

더 놀라운 건, 소녀의 손에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 점이었다.

‘검기가 가득 실린 검을 맨손으로 막아냈는데도……!’

한설연이 눈을 부릅뜬 채로 그런 생각을 할 때, 홍의 여인은 검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잇……!”

그 즈음, 소녀의 얼굴에 또다시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뚝!

홍의 여인의 검이 손잡이 윗부분께만 남기고 부러졌다.

충격으로 인해 홍의 여인의 동작이 그대로 굳었다.

소녀가 오른손을 털었다.

부러져 있던 검신이 짧게 허공을 가르며 홍의 여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푹!

부러진 검신이 홍의 여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여인의 가슴을 관통한 검신이 위력을 유지한 채로 귀산사흉의 둘째를 향해 날아가는 게 아닌가.

쉬익―

둘째가 깜짝 놀라며 검을 들어 날아오는 검신을 쳐냈다.

카앙!

그러는 와중에 본능적으로 소녀의 위치를 확인하던 둘째의 눈매가 좁아졌다.

소녀가 원래의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빠르게 고개를 돌리던 둘째의 고개가 멈춘 곳은 그의 허리 아래였다. 그와 셋째의 가운데였다.

자세를 낮춘 소녀가 굽힌 한쪽 다리를 축으로 하고 다른 쪽 다리를 쭉 뻗은 채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둘째와 셋째가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에는 이미, 회전하던 소녀의 발이 두 사람의 종아리 아래쪽을 차례로 가격한 후였다.

퍼벅!

강한 힘에 의해 양다리가 땅바닥에서 떨어지자 두 사람의 신형이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휘청거렸다.

그 순간, 둘째는 우연히 소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는 그 미소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 미소는 아리따운 미소가 아닌, 죽음의 미소였다.

소녀의 신형이 둘째를 향해 짓쳐들었다.

여전히 발이 당을 딛지 못한 채로 몸의 중심이 무너져 있었기에, 둘째의 입장에서는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소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소녀가 그 검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녀의 팔이 뱀처럼 휘어지며 검신을 스쳐 지나갔다.

콰악!

소녀가 또다시 손아귀로 검신을 잡았다. 그러면서 검을 끌어당겼다.

허공에 떠 있던 둘째의 신형이 소녀에게 가까워진 순간.

퍼억!

소녀의 발이 둘째의 가슴을 강하게 차냈다.

“커헉!”

둘째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그 즈음, 소녀는 그 반동을 이용하여 셋째에게 가까워진 후였다.

셋째의 안색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소녀가 얼마나 무서운 고수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가 소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본능적인 방어 심리에 의한 마구잡이 칼질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칼질이 소녀에게 통할 리 없었다.

셋째의 검도 여지없이 소녀의 손에 잡혔다.

소녀가 또다시 손을 날카롭게 펴서 셋째의 가슴을 찔렀다. 실제로 소녀의 손이 셋째의 가슴에 닿지도 않았는데, 그의 가슴이 뚫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일대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녀가 한설연과 연소운을 향해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한설연과 연소운이 움찔했다. 적을 처치하고 자신들을 도와준 장본인이 바로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도 놀라운 건, 소녀의 새하얀 옷에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소녀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더욱 강하게 와 닿았다.

소녀는 한설연과 연소운의 등 뒤에 누워 있는 단유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가 물었다.

“그분……, 의식을 잃은 거지?”

염려와 걱정이 가득 담긴 어조였다. 표정 또한 그랬다.

한설연과 연소운이 대꾸하지 않자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있잖아!”

소녀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한설연과 연소운이 다시 움찔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단유소의 안위를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단유소를 ‘그분’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단 공자님의 지인이야.’

그 사실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설연은 소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적이었던 귀산사흉 앞에서도 거의 떨지 않았는데, 적이 아닐 것이라 판단되는 소녀의 앞에서는 여전히 떨렸다.

짧은 시간 동안 소녀가 보여주었던 무서움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반증이었다.

‘진정하자, 한설연. 단 공자님의 지인 앞에서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순 없어.’

무엇보다도 일단은 소녀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단유소와의 관계도 알 수 있고 그 후에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도 정할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한 한설연이 눈을 떴다.

그 상태로 한동안 묵묵히 소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한설연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보다도 당신……, 아니 넌……, 누구지……?”

안타깝게도, 각오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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