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44화 (44/200)

44화. 상황 돌변 (1)

위지척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였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핫!”

수적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고개를 홱 돌린 위지척이 황당하다는 듯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뒈질 때가 가까워지니 정신줄을 붙들고 있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구나. 풋.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러자 수적의 우두머리가 대꾸했다.

“철없는 애송이 하나 때문에 일이 꼬이는구나! 네놈은 곧 이 어르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가 갑자기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그것을 곧바로 입안에 삼켰다. 이어서 그의 주변에 있던 수적들이, 종래에는 모든 수적들이 입안에 뭔가를 털어 넣었다.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뭘까요……, 저게?]

[아직은 나도 모르겠군. 다만 수적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상했다는 건 알아.]

단유소는 아까부터 적들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기운이 이상했다니요?]

[우두머리를 포함해서 이십 명 정도는 이류 수준의 무인들이야. 나머지는 대부분이 삼류고, 아예 내공이 없는 자들도 있어. 누가 봐도 도적떼 수준이지.]

[제가 파악하기에도 그랬어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뭔가가 묘하게 감각을 자극하더군. 그래서 차분히 살펴보니 저들의 기운이 매우 불안정하더라고. 기운이 들쑥날쑥하다고 해야 할까?]

그 말에 한설연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아무리 변방의 도적떼라 해도 위지세가의 위명을 모를 리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적의 우두머리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죠. 그렇기에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왠지 저들이 방금 먹은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제법 있겠지. 지켜보면 알게 될 거야.]

위지척의 뒤에 있던 무인들 십여 명이 갑판을 스치듯 경공을 펼치며 달려 나갔다.

경공을 펼치는 모습만으로도 한설연은 그들의 수준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정 고수가 세 명. 그리고 나머지는 일류 중에서도 최상위권.’

참고로 위지척의 근처에 남은 무인은 다섯 명이었다. 무엇보다도 위지척의 안전이 가장 중요할 테니 아마 그쪽에도 최소한 두세 명의 절정 고수가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아까 위지척과 전음을 나누던 무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행한 절정 고수가 대여섯 명이라니.’

위지척이 어지간히도 나대더라니,

역시나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저렇듯 절정 고수 대여섯 명이 함께하고 있는데 세상천지 두려울 게 뭐가 있었겠는가.

근래 자신이 초절정 고수들을 너무 자주 접했기에 그렇지, 원래 절정 고수 다섯 명이면 대단한 전력이었다.

현월곡에서 자신을 강호로 내보내는데 투입한 절정 고수는 고작 두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사부가 은밀히 보낸 은월조의 석문까지 합한 숫자였다. 물론 따로 무림맹에 도움을 요청하여 안전 대책을 더욱 강화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아무리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절정 고수를 다섯 명이나 동행시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위지세가의 힘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검을 뽑아 든 위지세가의 무인들은 가차 없었다.

은자 꾸러미를 받으러 왔던 흉악한 인상의 덩치들 다섯 명이 죽어 나간 건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들을 처리하자마자 무인들 십여 명이 곧바로 정면에 있는 수적들의 배를 향해 도약했다.

그 순간,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수적의 우두머리가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어 버리는 게 아닌가.

풍덩!

의외의 상황에 모두가 놀랄 때쯤, 다른 수적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풍덩! 풍덩! 풍덩!

그렇게,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수적들이 순식간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위지세가의 무사들은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물속에서 수적들을 상대한다는 건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 즈음, 여객선의 양옆을 막고 있던 두 척의 배들도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마냥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절정 고수가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까지만 멀어진 후, 그 간격을 유지했다.

수적들을 반응을 접한 위지척이 광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핫! 뭐냐? 후회하게 될 거라더니? 아까의 자신감은 역시 허세일 뿐이었구나! 도적의 무리들이 그러면 그렇지! 푸하하핫!”

양쪽 배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그들 들으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이렇게 되니 오히려 어색하고 민망해진 쪽은 위지척이었다. 그가 선장을 향해 말했다.

“놈들을 일망타진하고 싶어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 버리니 어찌해볼 도리가 없구려. 어차피 이렇게 시간만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슬슬 출발하십시다.”

선장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저희들은 이 물줄기에 배를 띄워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위지 공자는 떠나도 우리는 계속 저들과 마주쳐야 한단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벌여 놓으시면 저희들은 앞으로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아! 놈들도 사내라면 복수는 우리 위지세가에 와서 하라 하시오. 내 지금은 이렇게 가지만, 꼭 관아 쪽에도 이곳의 상황에 대해 말을 해놓겠소. 그러면 관병들이 처리할 것이오.”

위지척이 수적들의 배에도 충분히 들리게끔 큰 소리로 대꾸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선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표정을 굳혔지만 그는 이내 얼굴을 폈다. 위지세가라는 배경을 무시한 채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장이 말했다.

“지금껏 관병들이 보호해줬고 정파에서 보호해줬으면 왜 우리가 여태껏 이러고 있었겠습니까……!”

“나 위지척,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 잔말 말고 어서 출발이나 하시오.”

선장은 속이 터진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감추며 포기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배가 닻을 내리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 가서 닻을 올리면 되잖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은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할 몸입니다. 저희들은 보복이 두려우니, 그렇게 출발하고 싶으시면 위지세가에서 가서 저 배의 닻을 올리십시오.”

위지척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잠시 후, 그가 아직까지 여객선의 선수 쪽에 있던 위지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턱짓했다. 그러자 세가의 무인들이 닻을 올리기 위해 정면에 있는 빈 배로 이동했다.

위지척이 비릿하게 웃으며 선장에게 말했다.

“계속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내, 오히려 선장을 관아에 고발할 수도 있소. 수적들과 내통한 죄로.”

선장이 눈을 부릅뜰 때, 옆에 있던 선원이 외쳤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한 팔을 뻗어 선원들의 동요를 막은 선장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말했다.

“어차피 다른 승객들을 위해서라도 출발을 하긴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일이니까요. 여건만 갖춰지면 출발할 것이니 그런 식의 누명은 씌우지 마십시오.”

“훗!”

위지척이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수적들은 절대 이대로 끝낼 기세가 아니었어요.]

한설연의 전음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나저나 위지척 저 꼴통 진짜……!]

한설연이 답답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을 때 단유소가 조용히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한설연이 보니 수적들의 배에서 수면으로 줄사다리가 내려진 상태였다. 수적들이 물속에서 빠져나와 그 줄사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는 중이었다. 물론 아까 정면의 배에서 물에 뛰어든 수적들이었다. 반대쪽의 배도 마찬가지였다.

[강가를 봐.]

단유소의 전음을 듣고 바라보니 양쪽 강변에 정박하고 있던 배들도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단유소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당신 말이 맞아. 수적들은 이대로 끝낼 기세가 아니야. 그리고 수적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점점 사납고 거세어지고 있어.]

[엇! 정말이네요? 대부분 삼류에 내공조차 없는 자들이 어떻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저들의 눈을 봐.]

가만히 수적들을 살피던 한설연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충혈되어 있었다. 마치 심각한 눈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충혈의 정도가 처음에는 미세했어.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고 있지.]

[하나같이 저런다는 건 역시 아까 저들이 먹은 무언가가 작용을 한다는…….]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즈음 수적들의 반응을 확인한 위지척이 또다시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핫!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더니, 꼴에 네놈들도 꿈틀거리긴 하는구나! 오냐, 잘 생각했다! 이참에 네놈들을 소탕해버릴 것이다! 명년(明年) 오늘이 바로 네놈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그 즈음, 우측의 배 위로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적의 우두머리였다.

“크흐흐…….”

물에 흠뻑 젖은 그가 위지척을 바라보며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의 눈자위 역시 새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이윽고 그가 주변의 수적들을 돌아보더니 외쳤다.

“가자!”

그의 말이 떨어지자 양쪽에 대기하고 있던 수적들의 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수들이 도약하여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위지척이 외쳤다.

“어차피 도적떼일 뿐입니다! 기다릴 것 없으니 먼저 가서 치세요! 누구든 저 우두머리 놈의 목을 따 오면 내, 그 공로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위지척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애초에 나섰던 십여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우측의 배를 향해 도약했다.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 절정고수 세 명이 거의 동시에 검기를 쏘아냈다.

푹푹!

정면에 있던 두 명의 수적이 그대로 검기에 의해 쓰러졌다. 수적의 우두머리만이 그 공격을 피했다.

위지세가의 무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빠른 공격을 일개 수적의 우두머리가 피한 것이 매우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의외인 건, 방금 목숨을 잃은 두 명의 졸개들이 각자의 무기를 이용하여 검기를 정확하게 막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병장기와 함께 목숨까지 절단 났지만.

‘어찌 저 수준으로 정확하게 반응을……?’

‘우연이라도 저럴 수는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위지세가의 무인들이 차례로 수적의 배에 착지했다. 그 직후, 병장기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양쪽에서 다가온 수적들의 배는 이미 여객선에 근접한 상태였다. 양측 강변에서 출발한 두 척의 배도 어느새 여객선의 근처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적들의 배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승객들이 겁을 먹고 우왕좌왕했다. 수적들의 기세가 너무 흉흉했던 탓이다.

그러자 선장과 선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승객들을 피신시켰다.

“저들은 우리와 안면이 있소! 그러니 한데 모여서 대적하지만 않으면 살 수 있소! 선미 쪽으로 모이시오!”

“눈먼 칼에 맞아서 비명횡사하고 싶지 않거든 모두 배의 뒤쪽으로 이동하시오! 어서!”

승객들이 허둥지둥 선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단유소와 한설연도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그 즈음, 수적들의 배가 여객선의 양쪽 측면에 완전히 닿았다.

우측의 배에서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좌측의 배에서만 수적들이 쏟아졌다. 측면에서 진입한 수적들이 즉시 양방향으로 나뉘며 흩어졌다.

한 무리는 여객선을 가로질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오른쪽 배를 지원했고, 다른 한 무리는 위지척이 있는 선실 쪽으로 향했다.

선실은 갑판보다 높은 단 위에 설치된 구조였다. 그렇기에 수적들은 계단을 오르거나 단 위로 도약하여 위지척이 있는 곳을 공격했다.

위지척을 호위하기 위해서 선실 쪽에 남은 무인들은 다섯 명이었고 그 중 두 명이 절정 고수였다. 두 명의 절정 고수가 수적들을 향해 검기를 발출하는 것으로 여객선에서도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후에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고함과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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