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41화 (41/200)

41화. 뜻밖의 훈련 (2)

지붕 위에 있던 자가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그러나 호두알이 날아가던 속도 자체가 너무 빨랐다. 그보다도 애초에 단유소라는 초고수를 상대할 실력이 아니기도 했다.

푸욱!

호두알이 적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나마도 반응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호두알이 관통한 건 그의 어깨가 아니라 가슴 한복판이었을 것이다.

지붕 위로 착지하기 직전에 단유소가 또다시 호두알 두 개를 연이어서 튕겨냈다.

슈슉―

미세한 시간 차를 두고 두 개의 호두알이 날아갔다.

이미 상대와의 거리도 매우 가까워진 상태.

그가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푸북!

지붕 위에 있던 적이 결국 두 개의 호두알에 가슴과 복부를 관통당했다. 그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졌다.

단유소와 한설연이 지붕 위에 착지했다.

그러자마자 아래에 있던 자객들이 지붕 위를 향해 도약하기 시작했다.

자객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라 두 사람의 시야에 나타났을 즈음, 단유소는 견과류 상인에게서 받았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는 중이었다.

곧, 단유소가 떠오르는 자객들을 향해 손을 털어냈다.

피비비비비비빗―

수십 개의 잣과 땅콩들이 횡으로 넓게 퍼지며 허공에 떠 있는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한설연조차도 눈으로 좇기가 힘든 속도였다.

이 역시 근거리에서 이뤄진 공격.

결국 적들이 그 공격을 막지 못했다.

허공으로 떠오르던 자들도, 막 지붕 위에 착지하려던 자들도 모두 몸에 구멍이 났다.

“윽!”

“큭!”

그들은 결국 지붕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짧은 신음을 흘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와아!’

한설연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암기술의 달인들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무서운 암기로 쓸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방금 전의 단유소가 딱 그랬다. 호두알이고 잣이고 땅콩이고 모두 무서운 암기로 화한 것이다.

단유소의 손아귀에는 또다시 한 움큼의 잣과 땅콩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이차적으로 도약하던 자들이 희생양이 됐다.

결과적으로 살아서 지붕 위에 착지한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강줄기 쪽으로 달려. 당신이 앞장서. 당신은 그러면서 전방을 막아서는 자들만 상대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

단유소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인 한설연이 지붕을 박찼다. 몇 걸음을 달렸을 때 단유소의 전음이 다시 들렸다.

[당신, 지금까지 제법 괜찮았어. 마지막 순간에 약간 흥분한 것만 빼면. 흥분하는 순간에 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싸울 때는 절대 냉정을 잃지 마.]

솔직히 제법 괜찮다는 정도보다는 더 큰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그래서 살짝 아쉽긴 했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니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했던 건 사실이었다.

단유소가 시켰으니 하긴 했는데, 그 정도로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급변하는 상황마다 적절하게 대처가 되니 신기하면서도 뿌듯했었다.

그래서 벅차 있었다.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마지막 순간에 평정심을 살짝 잃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단유소는 그 점을 짚어준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신기했다. 하여간 귀신같은 사람이다.

‘냉정!’

한설연이 그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두 사람은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으며 달렸다.

자객들이 부지런히 두 사람을 추격했지만 그들의 숫자는 이미 크게 줄어 있었다. 한설연의 뒤를 따르는 와중에도 단유소가 계속해서 그들을 처치했기 때문이다.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한설연도 계속해서 자객들을 상대해야 했다.

빨래 광주리를 들고 가던 인상 좋은 노파가 갑자기 젖은 옷가지 사이에서 비수를 꺼내기도 했고, 문 앞을 쓸던 점소이가 갑자기 품속에서 젓가락을 꺼내어 날리기도 했다.

갓난아이를 안고 가던 아낙이 난데없이 바늘을 날리기도 했고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가 한설연의 요혈을 노리며 공깃돌을 날리기도 했다.

노파든 점소이든 아낙이든 아이든, 모두가 위장한 채 숨어 있던 자객들이었다.

하지만 한설연은 한 번도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적절하게 대처하며 안정적으로 선봉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사실, 오늘 마주친 모든 자객들의 수준은 딱 한설연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단유소는 자객들의 수준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짐작이 갔다.

적들에게 행적이 발각되었다고는 하나 그들도 정예를 투입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쪽에 있는 자객들을 부랴부랴 섭외했을 가능성이 컸다.

적들도 갑자기 섭외한 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발목을 잡아놓겠다는 심산일 터.

그렇다 보니 한설연이 실전 감각을 키우기 안성맞춤인 상황이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기에 그녀로 하여금 적들을 상대하게 했던 것이다.

그동안 한설연이 실전을 치르는 모습을 종종 봤다. 참 어설펐었다. 그때는 지닌 실력의 오 할도 채 못 발휘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지금 상대하는 자객들이 그때의 흑의인들보다 더 까다로운데도 한설연은 매우 잘해내고 있었다.

단유소는 내심으로 흐뭇했다.

‘많이 늘었어.’

내공이나 기술은 이전과 비슷하다.

가뜩이나 근래에는 직접 전투를 치르며 실전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설연의 실력이 부쩍 상승한 것이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투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역량도 커진 것이다.

오늘 한설연이 보여준 임기응변은 자신의 방식과 매우 유사했다. 자객들을 상대하기 시작한 후로 줄곧 그랬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보고 배운 게 그거였을 테니까.

그래도 놀라웠다.

아무리 고수의 전투를 곁에서 많이 지켜봤다 해도, 그것만으로 실전에서 적용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열의의 문제이기도 하고 명석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감각과 오성의 문제다. 한설연의 오성이 그만큼 범상치 않다는 뜻이다.

달리는 와중에도 한설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단유소가 씨익 웃었다.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강호상에 퍼진 그녀의 명성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어느새 아침 해가 불쑥 고개를 내민 시각.

단유소와 한설연은 금세 시가지를 벗어나 들판을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더 이상 한설연의 앞을 막아서는 자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단유소의 뒤를 추격하는 자객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추격해오는 자객들은 모두 단유소가 처리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경공을 펼치고 있었지만 속도는 많이 늦춘 상태였다.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고마워요, 단 공자님.”

“갑자기 뭔 소리야?”

“아까 나……, 즐거웠어요. 희열을 느꼈어요.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모든 감각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내가 여태껏 보고 인지해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어요.”

한설연의 눈동자는 꿈을 좇듯, 몽롱한 상태로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뭐, 나쁘지는 않더군.”

단유소가 그렇게 말하자 한설연이 빙그레 웃었다.

아까는 제법 괜찮았다고 했었다. 지금은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분 째지는 칭찬까지는 아니었지만 둘 다 칭찬은 칭찬이었다. 그리고 왠지 이 정도가 단유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공자님이 저보고 알아서 자객을 구분해내라고 했을 때, 솔직히 막막했어요.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순박해 보였던 사람들이 설마 자객일 줄은 몰랐어요. 심지어는 관병으로까지 위장을 할 줄이야…….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한설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질려버렸다는 표정이었다. 단유소가 말없이 미소만 짓자 한설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 중 다수가 자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대처가 가능했어요. 특히, 단 공자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공간과 지형지물을 이용하라는 그 말이요.”

단유소가 또 다시 미소만 지어 보이자 한설연이 짐짓 째려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아까는 너무하셨어요. 아무리 가만히 있겠다고 선언하셨어도, 적의 창이 몸에 닿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요지부동일 수가 있어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물론 저를 단련시키려는 그 의도는 알아요. 그래도 그런 순간에는…….”

“그때 내가 피했으면 이후에도 당신이 나를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아니었겠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던 한설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유소가 말했다.

“내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한 순간, 당신은 마음가짐을 달리하기 시작한 거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할 수밖에 없게 된 거지. 그래서 이후의 희열도 느낄 수 있었던 거고.”

한설연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사실을 곁눈질로 확인한 단유소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한계가 있어. 그걸 넘어서려면 자꾸 그 한계선을 건드려야 하지. 그런 식으로 한계의 영역이 익숙해지다 보면 점점 그 한계 너머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한계를 넘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벽을 넘고, 틀을 깨고, 껍데기를 벗는다는 말들의 요체는 바로 그거야.”

잠시 말없이 달리던 한설연이 물었다.

“그렇다면 아까의 나도 그 한계를 건드렸던 건가요?”

그러자 단유소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냐. 뭐, 한계의 영역에 어느 정도 근접은 했겠지.”

“하지만 아까의 나는 분명히 이전과는 달랐는데…….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그랬는데…….”

한설연은 다소 실망한 어조였다.

그러자 단유소가 물었다.

“희열을 느꼈다면서?”

“네. 분명히.”

“한계의 영역에서는 절대로 희열을 느낄 수 없어. 오히려 미칠 듯이 괴롭고 힘들지.”

“아…….”

하긴 상식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찌 한계를 겪는데 희열이 느껴질 수 있겠는가. 너무 들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뒀으면 아마 한계의 영역에 갔을 거야.”

“그런데도 멈추게 한 건, 역시 제가 흥분해서 냉정을 잃었기 때문인가요?”

“응. 한계의 영역에 가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거든. 어느 부분에서 얼마만큼 스스로를 제어해야 할지를 모른 채로 가면 오히려 당신이 위험해져. 단계를 밟으면서 가야 해.”

“아…….”

고개를 끄덕인 한설연이 바로 물었다.

“그렇다면 아까 제가 느낀 희열의 정체는 뭘까요?”

“당신은 원래 당신이 지닌 역량의 반도 제대로 발휘할 줄 모르는 상태였어. 실전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이제야 비로소 그 역량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게 된 거야. 당신이 희열을 느꼈던 건 그래서야.”

“아하.”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 한설연은 또다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나란히 달리던 단유소가 길잡이 역할을 하기 위해 두 걸음 앞서 나갔다. 한설연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까 경험한 상황들에 대한 복기도 필요할 것이고, 자신의 무공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가 한설연이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를 훈련시켰던 거예요?”

“글쎄.”

“대충은 알 것 같아요. 일단 나를 단련시켜야 내 안전이 더 보장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단 공자님도 조금 더 편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맞죠?”

“그건 부수적인 이유였지.”

그러자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부수적인 이유? 그럼 주된 이유는 뭔데요?”

그러자 단유소가 속을 짐작하기 힘든, 묘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강해지고 싶다며, 당신.”

그러자 한설연이 고개를 크게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단유소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단유소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더 이상 한심해지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거라며? 열심히 수련해서 강해지고, 그 힘으로 더 좋은 일 하면서 살겠다며?”

그 말에 한설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술기운에 혼자 토로했던 말이었다. 그가 확실히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그런데 그걸 다 들었다니.

창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