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36화 (36/200)

36화. 섬전승천검뢰 (2)

한설연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딱 그 자리에만 벼락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벼락을 보았다. 대신 그 벼락은 땅으로 꽂힌 게 아니라, 하늘로 솟았다. 이치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정말로 그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벼락이 친 직후에 전투가 멈췄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노인이 눈을 부릅뜬 채로 단유소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눈빛과 표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렇듯 의문이 계속해서 증폭되어갈 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두 노인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털썩. 풀썩.

한설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단유소도 이추의 강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대라유유선공만을 이용하여 그를 상대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모되리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될수록 공동파에 펼쳐진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기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추 외에도 한 명의 고수가 더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설령 이추를 처치한다 해도 그까지 상대하다가는 영영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해답은 혼원태극공밖에 없었다.

이왕 혼원태극공을 사용해야 한다면 한꺼번에 두 사람을 처치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인 건 당연지사.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어둠 속의 고수를 끌어내어 그도 이추와 함께 싸우게 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일련의 과정상에서 가장 걱정했던 건, 두 사람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다리를 끊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 경우에도 한설연을 보호할 대책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훨씬 일이 힘들어질 게 빤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한설연에 대한 색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오히려 빨리 그녀를 얻겠다는 마음에 조바심을 내며 방심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섬전승천검뢰(閃電昇天劍雷)는 단유소가 알고 있는 쾌검술 중에서도 가장 빠른 쾌검술이었다. 사부가 수집한 수많은 무공비급들 중에서 최상급으로 분류된 비급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이기도 했다.

뇌정검(雷霆劍) 만준(滿峻)은 약 오백 년 전의 인물로, 아직까지도 쾌검술 분야에서는 고금 삼대 고수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쾌검술이 마치 벼락이 치는 것처럼 빠르고 강력하다 하여, 말년에 만준은 뇌검신(雷劍神)이라 불리기도 했다.

만준의 독문무공이 바로 섬전승천검뢰였다. 강호에는 그가 비급 따위를 남기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추와 두진이 최대한 근접할 때까지 단유소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던 건 섬전승천검뢰 때문이었다.

그들이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간격 안에서 혼원태극공을 이용하여 섬전승천검뢰를 펼쳐내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계획은 성공했다.

아마도 두진과 이추는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황천길로 갔을 것이다.

두 노인이 쓰러지자마자 단유소가 허리를 숙여 두 자루의 낫을 챙겼다. 그러더니 두 노인의 시체를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버렸다.

이제 두 노인이 있던 자리에 남은 건 핏자국뿐이었다. 두 사람의 핏자국이 한데 엉켜 있어서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만약에 적들이 이곳을 확인한다면 충분히 헷갈릴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죽은 것으로 오인한다면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초절정 고수 두 명이 투입되었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을 테니까.

물론 적들도 바보가 아니니 조사해보면 오래지 않아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그동안만이라도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순식간에 일 처리를 마친 단유소가 돌아서서 한설연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놀람 가득한 표정으로 한설연이 말했다.

“어, 어떻게…….”

“설명은 나중에.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야. 최대한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해.”

그 말을 남긴 단유소가 한설연을 지나쳐서 문주의 처소가 있는 봉우리 쪽으로 향했다. 멍하니 있던 한설연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뒤를 따르는 내내 한설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의 일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유소가 앞장서서 걸으며 말했다.

“산등성이 쪽으로 빠져나가기는 어려워. 마침 이 낭떠러지 아래로 계곡이 흐르는데 폭은 좁지만 제법 깊지. 적들이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려면 그쪽이 더 나을 거야. 결국 우린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거고.”

“네…….”

두 사람이 다리를 건넜을 때쯤이었다.

끼이이이―

그 소리에 한설연이 고개를 들어보니 허공에서 매 세 마리가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두 마리가 아니고 세 마리……?’

앞서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건 청비와 설화였다. 그 뒤를 또 다른 한 마리의 매가 따르고 있었다.

잠시 후, 청비와 설화가 단유소의 양 어깨에 내려앉았다. 새로 온 한 마리는 단유소의 팔에 앉았다. 그 매의 다리에 작은 통이 매달려 있었다.

단유소가 통 안의 전서를 빠르게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한 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단유소가 품속에서 매우 작고 길쭉한 무언가를 꺼냈다. 붓과 먹물을 휴대하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필묵통이었는데 매우 정교해서 크기가 작았다.

단유소가 붓을 꺼내더니 전서의 뒷면 빈 공간에 작은 글씨로 무언가를 적었다. 답신인 듯했다.

단유소가 답신을 매의 다리에 달린 작은 통에 넣었다. 잠시 후, 매 한 마리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전서를 확인하고 답신을 보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

한설연이 물었다.

“무림맹에서 온 건가요?”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공동파 문주의 처소에 머물렀다.

청비와 설화를 한쪽 팔에 옮겨 앉히며 단유소가 말했다.

“잠시만, 따라와.”

단유소가 경공을 펼치며 문주의 처소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한설연도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바로 도착한 문주의 처소는 온통 엉망이었다. 단유소가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또다시 그 종이에 뭔가를 적은 단유소가 이번에는 그것을 작게 접어 설화의 다리에 묶었다.

처소 밖으로 나온 단유소가 설화를 몇 차례 쓰다듬더니, 손가락으로 녀석의 부리를 몇 차례 가볍게 건드렸다.

툭툭. 툭툭. 툭툭. 툭툭.

그런 후에 다시금 녀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겠지? 부탁해, 설화.”

그러더니 단유소가 설화를 하늘 위로 날려 보냈다.

저 멀리 사라지는 설화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단유소가 이번에는 청비를 쓰다듬었다.

“청비는 가서 설화 기다리고 있어.”

이윽고 청비도 하늘 위로 보내고 나서 두 사람은 바로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에 이르러서 단유소가 한설연에게 두 자루의 낫을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쌍소검을 꺼내 쥐었다.

“당신에겐 그게 더 편할 거야.”

이추가 쓰던 물건이라서 그런지 꺼림칙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설연이 양손에 낫을 쥐자 단유소가 다시 말했다.

“절벽을 타는 도중에 돌 부스러기 같은 게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해. 어려우면 내가 내려가는 경로를 따라서 이동하면 돼. 이런 경험이 없겠지만, 당신 정도의 고수라면 어렵지 않을 거야. 절벽 사이는 소리가 울리니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전음으로 하고.”

낫을 더 꽉 움켜쥐며 한설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유소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무림맹에서 온 전서는 공동파가 당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어. 결국 뒷북이었지. 답신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 관해서 간략하게 적어 보냈고.”

“아.”

아까 전서의 내용을 확인한 단유소가 낮게 한숨을 내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게도 공동파 이후의 계획은 없어. 지금 생각 중이니 당신도 생각해봐. 그리고 설화는 지인에게 보낸 거야. 도움을 청하려고.”

사실 한설연도 막막했다. 공동파가 건재했을 경우에 대한 계획만 있었는데 설마 공동파가 이렇게 되었을 줄이야.

“저도 사실은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근처의 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생각해볼 게요.”

“그래. 그럼 가지.”

이윽고 두 사람이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익숙한 듯 쭉쭉 내려가는 단유소와는 달리 한설연의 속도는 느렸다. 역시나 경험 차이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다소 느렸던 한설연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면서 요령이 생긴 탓이었는데, 그 전에 그녀가 독하게 마음을 먹은 탓이기도 했다.

한설연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설령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익숙하게 만들어야 할 때였다. 해내야 할 때였다. 단유소에게 배려나 바라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 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였다.

그렇듯 의지를 가지고 집중하다 보니 암벽을 타는 일도 더 빨리 익숙해진 것이다.

먼저 내려가며 종종 한설연의 상태를 확인하던 단유소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걸렸다. 어느 순간부턴가 겁도 없이 쭉쭉 내려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일은 자질의 문제보다는 극기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소에 대한 공포, 추락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그 공포심을 어떻게, 얼마나 더 빨리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어지간한 의지로도 그 공포심이 잘 극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포심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그렇다.

한설연도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녀는 보기 좋게 예상을 깨버렸다. 절박함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녀가 암벽을 타는 모습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암벽 타는 법만큼은 어지간한 자신의 부하들보다 한설연이 더 빨리 터득한 느낌이었다. 대견했다.

두 사람이 절벽 아래에 도착한 건 한 식경(약 30분)가량이 지난 후였다.

일반인이었다면 거의 두 시진은 걸릴 높이였지만 두 사람은 고수였다. 경공술을 쓸 때처럼 몸을 가볍게 하고, 무기에 기운을 담아 푹푹 찌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탱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곡은 폭이 좁아,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제법 시끄러웠다.

단유소가 널따란 바위 위에 앉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한설연은 바위의 바로 앞에서 흐르는 물에 몇 차례 얼굴을 적셨다.

이윽고 한설연이 단유소의 곁에 앉자, 그가 엄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잘했어, 한 소저. 훌륭했어.”

절벽을 내려온 일에 대한 칭찬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이라 한설연이 살짝 웃어 보였다. 단유소가 다시 물었다.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해봤나?”

“생각해봤지만 갈피를 잡을 수 없었어요. 제가 이 지역의 지리를 잘 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러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에서의 선택지는 세 곳 정도야. 청해, 섬서, 사천이지. 섬서는 우리가 지나왔던 곳이고, 알다시피 이곳에서는 너무 멀어졌어. 그렇다면 청해와 사천 정도야.”

“아.”

“애초에 당신의 목적지가 청해의 어딘가라고 듣긴 했어. 당신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둘이서 그곳에 간다는 건 애초에 무리야. 청해에 있는 곤륜파도 이곳에서는 너무 먼 데다가, 공동파가 이렇게 된 마당에 곤륜파라고 해서 무사할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맞아.”

원래의 목적지는 공동파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그곳에 가야 사형 진소학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쪽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죽으러 가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한설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단유소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감숙에 머물 수도 없으니 일단 사천으로 가는 수밖에 없겠어. 그쪽에서 중경부를 거쳐 호북으로 향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일 것 같은데.”

마침 이곳 공동파는 사천 땅과의 경계선상에 있다. 그리고 단유소가 잡은 최종 목적지인 호북에는 무림맹이 있다.

“아까 이추가 말하길 사천도 곧 위험해질 거라고 했어요. 적들의 성향을 볼 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죠. 괜찮을까요?”

“무림맹에서도 공동파가 초토화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렇다면 적들의 다음 목표가 사천이나 섬서 쪽일 것이라는 점도 이미 예상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대비도 하겠지. 참고로 아까 답신을 보낼 때 사천이 위험해질 거라는 내용도 넣었어.”

“그렇다면 그나마 사천이 가장 낫겠군요.”

한설연의 말에 단유소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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