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조각배 (2)
나루터 쪽으로 날아가는 그 장력의 크기를 무엇에 비교해야 할까. 황소만 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보다도 더 커 보였다.
중요한 건, 저렇게 무식한 크기의 장력은 생전 처음 본다는 사실이었다.
날아오던 검기와 단유소의 장력이 마주쳤다.
파바바바바바바방!
허공에서 여러 차례의 자잘한 폭음이 들렸다.
그 후, 단유소에게 날아오는 검기는 더 이상 없었다.
다만 단유소가 발출해낸 거대한 장력만이 여전히 나루터의 중앙 부근을 향해 날아갈 뿐이었다.
그 부근에 있던 적들이 서둘러 몸을 피했다.
나루터의 끝으로 피한 자들도 있었고 강변 쪽으로 피한 자들도 있었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는지 강물에 몸을 던진 자도 있었다.
이윽고 단유소의 장력이 나루터의 중간 부분에 닿았다.
콰아아앙!
나루터의 중간 부분이 완전히 박살 났다.
그 즈음에는 구홍립이 이미 단유소를 향해 장력을 발출한 후였다.
단유소가 허공에서 뒤돌아 하박을 교차하며 그의 장력을 막았다.
퍼엉!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단유소가 나루터 쪽으로 쭉 날아갔다. 그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이제는 섬처럼 떠 있는 나루터의 끝부분이었다.
탓!
슈슈슈슉―
착지하자마자 단유소가 주변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물에 빠졌던 적들이 검기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그러자마자 구홍립이 단유소가 있는 곳으로 도약했다. 그의 뒤를 나머지 일행이 줄줄이 따랐다.
허공에 뜬 상태의 구홍립이 단유소를 바라보았다. 단유소도 그를 응시했다.
솔직히 구홍립은 단유소가 어쩌려고 이러고만 있는 건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배는 이미 나루터에서 상당히 멀어진 상태였다. 아무리 단유소라도 이미 늦은 게 아닌가 싶기만 하다.
그래도 단유소니까, 분명히 뭔가 생각해둔 게 있을 것이다. 여태 지켜봐 온 그는 적어도 허튼 소리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는 방법도 달리 없었다.
그를 믿어볼 수밖에.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나누게 되는군. 자네만 믿네. 무운을 비네.]
[한 소저는 무사할 겁니다. 그러니 대주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살아남으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구홍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루터에 착지했다.
타다닷!
도움닫기를 한 그가 이윽고 저 멀리 어두운 강물 속으로 입수했다.
그를 이어서 다른 대원들이 차례로 나루터에 착지하여 강물 속으로 입수했다.
그러는 동안에 더러는 단유소가 있는 쪽으로 도약하여 공격해 오는 적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명도 단유소 근처에 다다르지 못하고 허공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마치 섬처럼 남아 있는 나루터의 끝부분에는 이제 단유소와 한설연만이 서 있었다.
한설연이라고 해서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리 없었다.
아까 구홍립이 심하다 싶을 정도의 말을 내뱉은 이유.
단유소가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일행들을 살리려 한 이유.
그 모든 게 자신을 살리고자 함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단유소가 말했다.
“결례를 용서하시길.”
말이 끝나자마자 단유소가 자세를 살짝 낮추더니 왼팔로 한설연의 엉덩이 아래쪽을 들어서 안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설연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단유소가 말했다.
“최대한 꽉 매달려 주시는 게 저를 돕는 길입니다.”
한설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양팔로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높이 도약할 겁니다. 각오하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단유소의 기세가 변했다.
대라유유선공의 운용을 멈추고 혼원태극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그 상태로 단유소가 도움닫기를 하더니 이윽고 나루터의 기둥을 강하게 박찼다.
탓!
그 순간에 혼원태극공이 공명을 일으켰다.
“헙!”
안겨 있던 한설연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순간적으로 단유소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발산되더니 갑자기 몸이 쑤욱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아찔했다. 각오를 했는데도 그 정도였다.
뛰어오르자마자 단유소가 다시금 대라유유선공을 활성화시켰다. 동시에 몸을 틀어 나루터의 끝부분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슈앙―
그의 장심에서 강맹한 장력이 발출되어 나루터의 끝부분을 향해 나아갔다.
콰과광!
그나마 섬처럼 남아 있던 나루터가 완전히 박살 났다.
장력을 발출한 반탄력으로 인해 강물 위를 날아가는 단유소의 속도에도 탄력이 붙었다.
한설연이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로 보이는 시커먼 강물이 까마득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한편으로 놀랍기도 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높이 도약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거의 하늘을 나는 수준이었다.
정점에 이른 단유소와 한설연이 이윽고 포물선을 그리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강하는 궤적에 조각배가 있었다.
조각배 위에 있는 자들은 두 명. 비슷한 황색 복장을 착용한 자들이었다. 한 사람은 노를 젓고 있었고 한 사람은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노를 젓던 자가 허공을 보더니 앞에 앉아 있는 자에게 뭔가를 알리는 듯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배와 단유소 사이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
일어선 자가 떨어져 내리는 단유소를 향해 쌍장을 내질렀다.
슈슝―
강력한 기운이 담긴 두 개의 장력이 단유소와 한설연을 향해 날아왔다.
단유소가 몸을 비틀며 날아오는 장력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에서도 장력이 발출되었다.
퍼벙!
단유소의 정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진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단유소가 나아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 궤적대로라면 배 위에 내려설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단유소와 한설연이 배와 매우 가까워진 상태에서 또다시 장력이 날아왔다.
이에 단유소도 맞대응하며 또다시 오른손을 뻗었다.
퍼엉!
진기가 맞부딪치며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의한 반탄력으로 인해 단유소와 한설연의 궤적이 바뀌었다. 결국 배의 후미에 닿기 직전에 두 사람이 그대로 강물에 빠졌다.
풍덩!
한설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물의 느낌이 매우 차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설연이 감았던 눈을 뜨며 물속의 상황을 확인했다. 강물이 탁하여 시야가 흐렸지만, 바로 앞에 있는 단유소의 모습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수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설연도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로 배의 밑면이 보였다. 배가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중이었다.
단유소가 젖혔던 고개를 내리더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그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는데도 그랬다.
‘뭐 하는 걸까?’
무인은 일반인보다 물속에서 훨씬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도 섣불리 수면 위로 올라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라가 봐야 적의 공격에 당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물속에서는 피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뭔가 다른 수를 내긴 내야 한다. 그런데 저러고만 있으니 의아하기도 했고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때 단유소가 움직였다.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왼팔을 푼 것이다.
한설연은 반사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단유소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양팔이 자유로워진 그가 쌍소검을 양손에 나누어 역수검의 형태로 쥐었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감는 게 아닌가.
그 직후, 단유소가 배 쪽을 향해 시간 차를 두고 두 자루의 검을 던졌다.
두 자루의 소검이 튕기듯 배 쪽으로 날아갔다. 물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먼저 날아간 검은 선수 쪽을 향하고 있었고, 다음에 날아간 검은 선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단유소가 양손을 휘저었다.
퓻―
소검이 수면을 벗어나자마자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 소검이 선수에서 노를 젓고 있던 황의인의 등으로 날아들었다.
노를 젓던 황의인이 이상한 기척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푸욱―
소검이 황의인의 목을 관통했다.
목을 관통한 소검이 배 위에 서서 주변을 살피던 다른 황의인에게 향했다.
그야말로 찰나간에 벌어진 상황.
배 위에 서 있던 황의인이 고개를 홱 돌리며 다급하게 반응했다. 그가 자신의 검을 들어 날아드는 소검을 막았다.
카앙!
쇠붙이끼리 강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순간.
푸욱―
그의 등 뒤에 또 한 자루의 소검이 박혔다.
황의인의 신형이 고꾸라졌다.
그 직후, 배 근처의 수면 위로 두 개의 머리가 떠올랐다.
“푸홧!”
단유소와 한설연이었다. 수면으로 나오자마자 참던 숨을 토해낸 사람은 물론 한설연 쪽이었다.
“헤엄칠 줄 아시죠?”
호흡을 고르는 와중에 한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그 말을 남긴 단유소가 먼저 앞서 나갔다.
“하지만 아직……!”
배 위에 적이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려던 한설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배 위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는 되었는데, 한설연이 보니 배 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했지만 한설연도 곧 단유소를 따라 배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괜히 단유소가 저렇듯 태연하게 배에 다가가는 건 아닐 테니까.
이윽고 배의 후미에 다다른 단유소가 난간을 잡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배 안에서 뭔가를 들어 강물 밖으로 버렸다.
한설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
시체 두 구였다. 두 구 모두 황색 복장이었다.
당연하게도 앞서 배에 타고 있었던 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언제 죽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까 물속에서의 그게……!’
방금 전, 물속에 있을 때 그가 왜 눈을 감은 채로 양팔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는 건지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어검술!’
어검술을 펼칠 정도의 고수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는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을 제어했다. 물속에서 물 밖에 있는 검들을 제어했다는 사실은 아예 경악이었다.
배 위에서 단유소가 뻗는 손을 움켜잡으면서도 한설연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뭐야, 대체 이 사람……?’
배 위에 오르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이 보였다.
선수 쪽에 앉은 단유소가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가 건너편을 향해 쭉쭉 나아갔다.
건너편에 다다른 두 사람이 배에서 내렸다.
뭍에 내려서자마자 단유소가 근처에 있던 넓적한 바위를 들어 올리더니 그것을 배 위에 실었다.
“뭐 하시려는…….”
한설연이 그 말을 꺼낼 때쯤 단유소가 배의 선수를 강의 중심부 쪽으로 향하게 하더니, 한쪽 다리를 들어 배의 후미를 힘차게 밀었다.
촤아아아아아악!
배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강의 중심부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더니 이내 물살을 타고 하류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아.”
그제야 한설연은 단유소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아까 강 속으로 뛰어든 일행들을 위해서인 것이다.
“허억, 허억, 허억.”
그제야 단유소가 허리를 굽힌 채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단유소를 한설연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안색이 창백한 건 결코 물속에 오래 있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 사람도…… 지치는구나.’
처음이었다. 그의 지친 모습을 보는 건.
이제야 그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인지되었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거의 초인에 가까웠으니까.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모습들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 초인 같던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지쳤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강을 건너기 직전까지만 해도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정신이고 신체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일행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속으로는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혼자 살아남아서 공동파에 간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다 희생시키고서야 살아남은 주제에, 또 무슨 염치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그런 한심한 생각들이 바뀐 건, 전적으로 단유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