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신룡무-10화 (10/200)

10화. 최익

최익이라는 이름이 특이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양금영에게 주선연 자리를 마련해준 무림맹 절강지부의 최익이라는 사람은 여수금장의 중요 고객이라 했다. 금장주가 신경 쓸 정도로.

그렇다면 양금영이 알고 있는 최익은 무림맹 절강지부에서도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양금영은 ‘최익 대협’이라 했다.

그리고 눈앞에 최익이라는 사람이 있다.

절강지부 천망단의 정예 고수들을 이끌고 온 책임자란다.

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동일 인물이다.

그것도 구 할 이상의 높은 가능성으로.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인사는 반사적으로 나왔다.

“현월곡의 한설연입니다. 최 대협을 뵙게 되어 제가 더 영광입니다. 무림맹에서는 선뜻 저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곡주님과 저를 포함한 본곡의 모든 구성원들이 감사해하고 있다는 점,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립니다.”

한설연이 마주 포권하며 그렇게 말하자 최익이 웃으며 대꾸했다.

“이렇게 직접 뵙고 나니 세간에 퍼진 한 소저의 명성이 오히려 부족하다 느껴집니다. 아름다움을 포함한 모든 것이요. 허허.”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왜 하필 이 사람인 거야?

최익이 싫다는 게 아니다. 그는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주선연이 연상되고, 더불어 한 사내가 연상되었다.

며칠 전에 봤던 사내, 단유소.

괜히 그가 떠오른 것이다.

잘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어쨌거나 탁자 쪽으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신경 쓰지 말자, 한설연.

그는 나와 금영이의 관계를 몰라. 왜냐하면 금영이의 일자리는 사부님이 알아봐 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또한 그는 주선연 자리에 대신 나간 사람이 나라는 것도 몰라. 알 수가 없어. 주선연에 나간 한수련은 가상의 인물이니까.

세 사람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어차피 전체적으로 현월곡의 계획을 따르기로 미리 협의가 되어 있었으니 논의는 오래지 않아 끝났다.

“너무 저희 쪽의 입장에만 맞춰달라고 요구한 건 아닌가 하여 조심스럽습니다.”

구홍립의 말에 최익이 양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별말씀을요. 어차피 본맹에서도 최대한 협조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앞으로의 예정 경로에 포함된 무림맹 각 지부의 수뇌부에도 협조 지침이 내려간 것으로 압니다. 무림맹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한설연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최익에게 물었다.

“절강지부의 천망단원 서른 분만 함께하시는 건가요? 혹시 다른 수행원이 있나 해서요.”

“아, 제가 그 말씀을 드리지 않았군요. 절강지부의 비마대에서 작은 마차 한 대와 대원 두 명을 지원받았습니다. 간단한 식량을 실은 작은 마차입니다.”

비마대라는 말에 또다시 단유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 무림맹 비마대의 외부 업무 지원조에 있다고 했었다.

설마, 아닐 거야.

절강지부의 비마대원만 해도 얼추 백 명 가까이 되잖아? 그중에서 두 명을 뽑았는데 그가 끼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게다가 그는 본맹에서 파견을 나온 사람이잖아? 오래 머물 수 없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맹으로 복귀하고 있을 거야.

“아, 그렇군요. 어느 정도 무공은 할 줄 아는 분들이시죠? 그걸 알고 있어야 혹시 모를 위험에 처했을 경우 저희 쪽에서도 나름 신경을 써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 그런데 왜 내가 이런 걸 신경 쓰고 있지? 만에 하나 그가 왔다고 해도 그는 나를 모를 텐데. 어차피 신경 쓸 일이 아닌데.

“역시 한 소저십니다.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그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기뻐하겠군요.”

한설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을 때 최익이 바로 말을 이었다.

“사실, 비마대 절강분대장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통에 애를 좀 먹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두 명을 뺐는데, 둘 다 무공은 못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나마도 한 명은 본맹 비마대의 외부 업무 지원조에서 파견 나온 사람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어어어어어?

본맹 비마대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라고? 그것도 외부 업무 지원조에서?

그럼 단유소 그 사람이잖아. 말도 안 돼!

“한 소저의 따뜻한 배려는 감사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망단원 두 명을 그들과 함께 배치했으니 설령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지금의 한설연에게 최익의 마지막 말은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고 있었다.

구홍립이 대꾸했다.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오늘 논의는 이 정도에서 마치기로 하지요.”

“예.”

최익과 구홍립이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 한설연도 얼른 일어섰다.

문 앞까지 두 사람을 배웅한 후에 한설연이 말했다.

“그럼 최 대협,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 소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침상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는 걸까?

단 한 번의 주선연이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일에 연관되었던 사람들과 다시 엮였다.

최익은 그렇다 치자.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단유소라는 사내는 왜 또 연관된 것일까. 왜 하필 그 사람일까. 그 많은 비마대원 중에.

신경 쓰지 말자고 계속 다짐하는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최익을 만난 후부터는 자꾸만 그랬다. 가뜩이나 그가 자신의 일에 포함되었다니 더 그랬다.

어차피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텐데, 그러니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그런데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하필…….’

그의 목숨이 걸린 여정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주선연의 마지막 순간에 약간 안 좋게 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미운 건 아니었다. 주선연 상대로서 답답한 건 답답한 거고, 그 사람의 목숨이 소중한 건 소중한 거였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아는 사람이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잠시 그 생각을 하던 한설연이 홱 돌아누웠다.

한설연이 엎어진 상태에서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외쳤다.

“아유! 몰라! 어쩌라고! 내가 이 일에 끌어들인 것도 아닌데 뭐!”

* * *

비마대 절강분대에서 단유소와 함께 투입된 대원의 이름은 오필(吳珌)이었다.

그는 이십 대 초반의 청년으로, 무림맹 절강지부에 들어온 지 일 년도 안 된 신입이었다. 장거리 임무인 데다가 장기 임무가 될 것 같으니 선임들이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오필에게까지 온 것이다.

오필은 붙임성 좋은 청년이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하고 나이를 알아내더니 바로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좋든 싫든 앞으로 오필과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할 테니까.

오필은 호기심이 많은 청년이기도 했다.

무림맹에 입맹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으니 호기심 많은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너무 수다스럽다는 게 문제였다.

“단 형, 대체 현월곡에서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 먼 청해까지 가는 걸까요?”

잠을 청하려 숙소의 좁은 방 안에 나란히 눕자마자 오필이 그렇게 말했다. 단유소가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대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거냐? 낮 내내 쉬지 않고 떠들어대더니 피곤하지도 않아? 체력을 수다에만 쓰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아.”

억지로 피곤한 태를 팍팍 내며 대꾸했다.

전혀 피곤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일찍 잠들고 싶은 날이었다. 씁쓸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오필이 곧바로 말했다.

“게다가 무림맹에 도움까지 요청했잖아요. 이번에 투입된 천망단의 무사님들은 모두 정예로 꼽히는 분들이라고요.”

‘무사님들’이라는 표현을 쓴 건 오필의 꿈이 무인이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오필이 익힌 건 호신술 정도로 보였다. 무공의 경지를 논할 단계조차 아니었다. 처음에 악수를 할 때 느꼈는데 거의 확실했다.

무공을 익히기엔 이미 너무 늦은 나이라는 사실을 본인도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두고 남들은 허황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단유소는 오필의 그 순수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오필은 늦었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짬을 내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오필은 틈날 때마다 검을 휘둘렀었다. 비록 자세는 엉성했지만.

“현월곡에도 그 유명한 월혼대와 비월단이 있는데, 굳이 도움까지 요청한 거잖아요.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겠죠. 월혼대와 비월단이 본격적으로 투입될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몰라. 알 게 뭐냐.”

“어어? 단 형!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두 경우 중에서 어떤 경우이든 이번 임무,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고요. 게다가 남 일이 아니라니까요?”

귀찮게 하고 있긴 하지만 오필도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한정된 정보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추론을 해낸 것이다.

“특히 이번 일의 책임자가 최익 대협으로 바뀐 것도 그래요. 최익 대협은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망단 내에서는 손꼽히는 실력자라고 들었거든요. 즉, 절강지부에서 제대로 현월곡을 돕고 있다는 뜻이죠. 대충 구색만 갖춰서 적당히 도와주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최익.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사람 때문이다.

그가 바로 곽승추의 지인이자 지난 주선연의 주선자임을 알고 있으니까.

주선연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한수련이라는 여인이 연상되니 그게 문제였다.

주선연으로부터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정리하고자 노력해도 아직까지는 잘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나마 씁쓸했던 기억이 조금씩 아물어가던 시기에 최익과 얽히게 된 것이다.

사귀다가 헤어진 것도 아닌데, 그냥 고백했다가 차였을 뿐인데, 며칠이 지나도 이러는 것을 보면 그녀를 좋아하긴 좋아했던 모양이다.

“뭔가가 있어요, 뭔가가. 현월곡의 중요한 누군가가 연관되어 있을 거예요.”

무림맹에서 임무를 받기는 했지만 단유소도 자세한 건 몰랐다. 다만 한설연이 청해 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 안다. 그녀를 호위하라는 게 자신이 받은 임무니까.

“가뜩이나 청해 쪽은 무림맹의 영역도 아닌데.”

“두렵냐?”

“두렵긴요. 어차피 언젠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무림맹에 들어온 건데요. 다만, 벌써 죽기는 싫을 뿐이에요.”

“그런 걸 두려워한다고 하지. 보통은.”

“하긴, 그 말이 맞겠네요. 하지만 제가 죽기 싫은 이유는…….”

오필의 어조에 짙은 여운이 묻어 있었다.

뭔가 그만의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밝히기 쉽지 않은 사연이.

오필은 그 이후로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단유소도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을 때 오필이 물었다.

“안 궁금해요?”

“응.”

“가차 없으시네. 사실 난 단 형이 이래서 더 믿음직스러워요.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고.”

취향 제법 독특하구나, 너.

“사실, 여동생이 병을 앓고 있거든요. 낫지 않는 병이래요. 그런데 가족이라고는 저밖에 없어서요.”

이래서 듣고 싶지 않은 거다. 임무 중에 얽힌 사람들의 개인사를.

그리고 이래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거다. 임무 중에 얽힌 사람들과.

마음이, 약해지니까.

지키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임무는 더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여동생은 지금 혼자 있는 거냐?”

듣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들은 이상 결국은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렇겠네요. 지금은 밤이니까. 낮에는 일하는 사람을 쓰고 있고요.”

“몇 살인데?”

“올해로 열다섯 살이네요.”

“품삯이며 약값이며 많이 들겠네.”

“그래도 월봉으로 감당할 수준은 돼요.”

그래서 죽는 게 두려운 거구나, 너는.

“대견하네. 힘들 텐데도 밝게 살고, 꿈도 포기하지 않고.”

“와! 단 형, 방금 나 칭찬해준 거예요?”

“됐다. 잠이나 자자. 피곤해.”

“하하. 네. 그래요.”

그 후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오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단 형 같은 좋은 사람과 함께하게 돼서. 잘 자요, 단 형.”

문득, 이번에 무림맹에서 내려온 임무의 단서 조항이 떠올랐다.

“단, 극한 상황에 처했을 시에 호위 대상의 안전보다는 본인의 안전을 최우선시할 것.”

그 생각을 하던 단유소가 오필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한참이나 오필을 바라보던 단유소도 이윽고 자세를 바로 하고는 눈을 감았다.

한설연. 당신이 최소한 이 녀석보단 더 가치 있는 사람이길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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