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임무 수령
단유소가 대라유유선공의 운용을 멈추고 혼원태극공을 끌어올렸다.
푸드드드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심법만 바꿨을 뿐인데도 주변에 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서 날아갔다.
단유소가 혼원태극공을 잔뜩 끌어올리자 그의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리더니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이기 시작했다.
단유소를 중심으로 강맹한 기류가 회전하며 휘몰아쳤다. 어찌나 강력한지 흡사 폭풍이라도 부는 것 같았다. 대라유유선공을 운용할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혼원태극공은 극강의 파괴력을 끌어내는 심법이었다. 그러나 파괴력이 큰 만큼 위험성도 컸다.
혼원태극공이 진원진기를 건드리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내공과 진원진기의 공명을 통해 체내의 기운을 폭발시키고 그 힘을 순간적으로 발산해내는 게 바로 혼원태극공이었다.
진원진기는 인간의 본질적인 생명의 원기이다.
현재의 혼원태극공은 수많은 보완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의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게 사부의 주장이지만, 진원진기를 건드리는 무공인 만큼 당연히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기준으로 따지면 마공으로 분류된다는 사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부가 혼원태극공을 먼저 가르치지 않고 대라유유선공을 육성까지 익힌 후에 가르친 것도 혼원태극공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조화의 묘리를 담은 대라유유선공의 자연 치유력을 이용해 혼원태극공의 안전성을 한 번 더 확보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대라유유선공을 육성 이상 익히지 못했다면 사부는 결코 혼원태극공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예 혼원태극공이라는 무공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최악 또는 최후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혼원태극공을 쓸 일이 있다 해도, 결코 발출 가용 횟수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대라유유선공으로 보호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더 말해주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부는 비슷한 나이대의 보통 노인들보다 노안이었다. 내공심법의 효과로 무공 고수들이 대부분 동안이고, 사부 또한 고수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훨씬 더 노안이었다.
단지 외모만 노인인 것이 아니라 신체 기능도 많이 노화된 상태였다. 본인이 직접 혼원태극공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혼원태극공을 운용하는 것 자체로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단지 진원진기와 공명할 수 있는 상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체외로 진기를 발출할 때였다.
공명으로 인한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강력한 기운을 발출하는 이치이기에 제한이 있는 것이다.
현재 단유소는 혼원태극공을 삼성까지 익힌 상태였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한 횟수는 아직까지 한 번뿐이었다. 보다 강력한 무공을 사용할수록 회복되기까지의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사부는 대라유유선공과 혼원태극공의 경지가 올라갈수록 사용 가능 횟수는 증가하고 회복되기까지의 시간은 감소할 것이라 했다.
다만 정확히 어느 경지에서 몇 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누구도 상위 경지를 밟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원태극공을 아는 사람은 이 강호에서 두 사람뿐이었다.
혼원태극공의 창시자가 사부이기 때문이다.
고수가 되어 무료한 삶을 보내던 사부가 여러 무공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마공고서에서 실마리를 얻어 창안한 무공이라 했다.
그런데 사부는 부작용으로 인해 혼원태극공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단유소 자신이 알아내야 할 문제였다.
스으으으―
해가 이미 저물어 산바람이 한차례 근처를 쓸고 지나갔다.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떨어지며 허공에 흩날렸다.
단유소가 허공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활엽들이 여전히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더 빠르게 낙하하던 마른 솔잎들만이 갑자기 허공에서 정지했다.
정지한 솔잎의 숫자가 수십 개에 달했다.
단유소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싶은 순간, 누런 바늘잎들에 검은 기운이 일제히 담겼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단유소가 내밀고 있던 손바닥을 활짝 폈다.
정지해 있던 솔잎들이 튕기듯 허공을 갈랐다.
피비비비비빗―
순간 수십 개의 마른 솔잎들이 숲 이곳저곳에 깊숙이 박혔다. 일정한 궤적도, 방향성도 없었다. 나무 기둥, 흙바닥, 돌멩이, 바위 등을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나 박혀 있었다.
“스읍. 후우우우.”
한 차례 길게 호흡한 단유소가 굵은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려 땅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수십 개의 활엽들이 근처의 땅바닥 위를 뒹굴었다.
단유소의 시선이 그 활엽들에 머물렀다.
주위를 뒹구는 낙엽들마다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단유소가 날린 수십 개의 솔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던 수많은 활엽들의 정중앙을 정확히 관통한 것이다. 그가 집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종종 쓰는 수련 방식 중 하나였다.
무림맹 절강지부로 돌아가기 위해 단유소가 몇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쉬이이이익―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하늘 위에서 뭔가가 단유소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단유소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끼이이― 끼이이이―
날렵한 매 두 마리가 단유소를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유소가 한 팔을 뻗었다.
두 매가 날갯짓을 하며 단유소의 팔 위에 차례로 내려앉았다.
한 마리는 보통 매였고 나머지는 보라응(甫羅鷹)이었다. 보통 녀석은 깃털이 쪽빛인 수컷이었고 보라응은 깃털이 흰색인 암컷이었다.
“청비(靑飛), 설화(雪花).”
단유소가 미소 띤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차례로 매들의 깃털을 쓰다듬었다.
신룡대원들은 모두 한 마리씩 개인 전서응을 가지고 있다. 연락용이었다.
무림맹에서 어떻게 훈련시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은 똑똑했다.
심지어는 같은 장소에 신룡대원 둘이 같이 있어도 지정된 대원에게만 전서를 전달할 정도였다. 전서응들끼리의 구분 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단유소가 신룡대에 들어왔을 때 분양받은 녀석이 바로 청비였다.
설화는 자신이 원래 기르던 녀석이었다. 날개를 다쳐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어린 녀석을 우연히 구해준 데서 시작된 인연이었다.
단유소가 깃털을 쓰다듬던 중에 청비가 고개를 하늘로 들더니 울음소리를 내었다.
끼이이이―
단유소도 고개를 들었다.
끼이이이이이―
또 다른 매 한 마리가 긴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단유소가 안력을 끌어올려서 살펴보니 눈에 익은 녀석으로, 신룡대의 전서응이었다. 녀석 또한 하늘에 떠 있는 청비를 찾아서 날아온 것이다.
단유소가 다른 한 팔을 뻗자 방금 날아온 전서응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자, 너희들은 잠시만.”
단유소가 한 팔을 살짝 털자 청비와 설화가 가볍게 날갯짓을 하더니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단유소가 전서응의 다리에 묶여 있는 꼬깃꼬깃한 전서를 풀었다.
내용은 묵룡조원끼리만 사용하는 암어로 적혀 있었다.
참고로 같은 신룡대여도 각 조마다 쓰는 암어가 달랐다. 그 암어조차 주기적으로 바뀌는 식으로 보안이 이뤄졌다.
물론 신룡대원 전체가 함께 쓰는 암어도 따로 있었지만, 이번에는 묵룡조원들만 쓰는 암어였다. 굳이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만큼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사안임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단유소가 무림맹의 전서응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용을 곱씹었다.
절강지부의 천망단과 함께 움직이며 비밀리에 현월곡의 요인을 호위하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호위해야 할 요인의 정체가 의외였다.
한설연이라.
그 유명한 강호제일미를 직접 호위하게 되는 일이 생길 줄이야.
어차피 강호의 여인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지만 호기심은 생겼다.
다른 여인도 아닌 한설연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성품 곱기로 유명한, 강호제일미 한설연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호에 퍼진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자신은 순진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임무를 통해 자기가 직접 보고 겪은 유명 인사들의 면면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으니까.
특히 젊은 유명 인사들이나 후기지수일 경우에는 거의 다 그랬다. 철없고 건방진 애송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을 얼마나 더 실망시키냐, 혹은 덜 실망시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한설연이라는 여인이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
미안하지만, 전혀 없다.
‘그나저나 극한 상황에 처했을 시에 호위 대상의 안전보다는 내 안전을 최우선시하라니…….’
그게 이번 임무의 단서 조항이었다.
의외긴 했다.
이런 단서가 붙는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보통은 최악의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우선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임무를 포기해도 좋으니 자신의 안전을 먼저 도모하라고 한 것이다.
윗선에서 판단한 이번 임무의 성향과 잠재적 위험성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피곤한 임무가 될 것 같네.’
생각을 정리한 단유소가 전서응을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 가보거라.”
따로 답신을 보내야 할 경우에는 전서를 작성해서 녀석을 통해 보내야 하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단유소가 팔을 힘차게 들어 올리자 녀석이 무림맹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단유소가 쭈그리고 앉아서 땅바닥에 있는 청비와 설화를 몇 차례 쓰다듬었다.
“자, 너희들도 이제 가서 놀아.”
그러자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두 마리의 매가 날갯짓을 하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두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단유소가 꼬깃꼬깃한 전서를 허공에 띄웠다.
챙!
슈슈슈슈슈슈슈슉―
단유소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 달빛에 비친 검광이 한동안 춤을 추었다.
척!
검이 다시 검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단유소가 분명히 전서를 향해서 검을 오랫동안 휘둘렀는데도 허공에 떠 있는 종이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단유소가 한 걸음을 떼자 때마침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전서의 형태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하얀 가루로 변해 그의 주변에 흩뿌려졌다.
* * *
때는 인시초(寅時初, 새벽 3시).
모두가 잠든 시각임에도 현월곡주 단목수헌의 침실 안에는 희미한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촛불은 네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단목수헌, 송채령, 한설연 그리고 월혼대주 구홍립이었다.
단목수헌이 염려를 떨치지 못한 표정으로 한설연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네가 그냥 곡에 남겠다고 해줬으면 좋겠구나.”
“제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거, 사부님도 이미 아시잖아요.”
한설연은 행장을 꾸린 모습이었다.
그녀가 현월곡을 비운다는 사실은 곡 내에서조차 아직까지 기밀로 유지되고 있었다. 언젠가 곡 내의 사람들이 알게 되어도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자는 게 단목수헌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한설연은 구홍립과 함께 야음을 틈타 몰래 현월곡을 빠져나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직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단목수헌이 구홍립에게 물었다.
“미리 빠져나간 호위대원들에게서 연락은 왔는가?”
“예, 곡주님. 모두 각자의 합류 지점에서 대기 중이랍니다.”
월혼대원들과 비월단원들로 구성된 이른바 ‘교월호위대’는 이미 곡을 비운 상태였다. 다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이목을 끌 테니 삼삼오오 미리 움직인 것이다.
“호위 과정은 세인들의 이목을 최대한 끌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할 걸세.”
“명심하고 있습니다. 곡주님이 말씀해주신 계획대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단목수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서도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연락이 왔네. 일단은 근처에 있는 무림맹 절강지부의 천망단에서 정예들을 차출하여 먼저 합류시키겠다고 하더군. 작전 통수권은 우리 쪽에 맡기겠다고 하니 구 대주가 그들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일을 처리해 나가면 될 걸세.”
“알겠습니다.”
구홍립이 대꾸하자 한설연이 물었다.
“신룡대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