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검성재림(劍聖再臨)
콰과과과-
무월참의 도강의 회오리는 마치 구(球)의 모양처럼 검성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도 잠시 검성은 왼손만 펼쳐 막아내고서는 오른손을 빼어 검지와 중지만 세운 채 구의 정중앙을 내찔렀다.
츠츠츠츠-
검성의 손가락이 도강의 회오리 정중앙을 찌르자마자 마치 구멍 난 공처럼 기운들이 새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기운들은 검성의 좌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고 도존의 몸이 휘청하며 쓰러질 듯 주저앉았다.
“할아버지!”
유인경이 놀라 도존에게 다가갔고 도존을 부축했다. 이윤후는 그녀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는데 대결이 끝이 났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도존은 모든 내력을 끌어다가 마지막 무월참을 시전 했고 그 위력 또한 도존이 모든 것을 실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검성이었고 이미 무의 극한에 다다른 검성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도존은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내력을 극한까지 끌어 쓴 탓에 몸에 이상이 온 것이었다.
“승부는 난 듯 하군요.”
약선은 주저앉은 도존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그에게 달려갔고 여러 군데 살폈다. 유인경이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자 유인경을 달래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다. 그저 조금 내력을 급하게 끌어올린 탓에 내상이 조금 있지만 위험한 상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약선은 유인경은 안심시키고는 검성에게 다가갔다.
“당신의 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군요.”
약선은 진심으로 말했다. 사실 약선은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면 검성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는데 방금의 대결을 보고 느꼈다. 자신의 생각은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검성이 명성을 얻고 오절 중 최강이라 불렸을 당시 약선은 검성과의 대결을 한다면 이기진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만큼 약선의 숨겨진 실력은 높았고 검성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도존의 마지막 한수를 어떻게 눈치 챈 것이죠? 전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약선은 사실 도존의 무월참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에 검성이 막아냈을 때 정말 놀랐다. 도존의 내려치기가 절대 허초가 아님은 알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자신이 상대였다면 격중당하기 전까지도 눈치 채지 못했을 거 같았다.
“나도 처음 보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거야.”
“처음이라뇨? 도존과 처음 겨루는 거... 아 남궁세가에서 도존의 제자가 보여줬던 것 말이군요? 하지만 도존의 제자가 보여주었던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어요.”
약선은 이윤후와 독고진의 대결을 직접 본 사람 중 한 사람이었기에 독고진이 보여줬던 무월참과 도존은 전혀 달랐던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검성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독고진 그 아이가 미숙하긴 했으나 보기는 했었지 않나. 도존이 마지막 한수라고 보여준 일도가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긴 힘들지. 그리고 미약하긴 했지만 기운을 느끼기도 했고...”
검성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고 도존 역시 검성의 말을 듣고서 자신이 왜 패한지 알았다.
‘사부님은 기운이 느껴졌다고 하셨지만 난 전혀 느끼지 못했어... 그리고 독고진이 쓴 무월참을 직접 상대해본 나조차 이렇게 다른 도법일 것이라 예상 못했는데... 역시 사부님은...’
검성의 말을 들은 이윤후는 진심으로 감탄했고 두 사람의 대결을 머릿속으로 복기 하듯 상념에 빠졌다. 검성은 그런 이윤후를 보고 미소 지었다.
검성은 이 대결 역시 이윤후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함이었고 두 사람의 대결은 이윤후의 수준을 또 한 번 높여줄 계기가 될 게 분명했다.
“윤후를 부탁하지.”
“당신...”
검성은 가까이 있는 약선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고 그 말뜻을 알았던 약선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약선의 표정이 변하자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서문환이 놀라 다가오려 했고 약선이 그런 그를 손으로 다가오지 말라는 듯 신호를 보냈기에 움직이지 못했다.
‘끄응... 형님이 무어라했기에 누님이 저런 표정을...’
서문환은 약선이 걱정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런 서문환이 신기한지 단지경과 조준혁이 슬쩍 쳐다보곤 시선을 피했다.
“대결은 끝이 난 듯 한데 올라가서 담소를 나누시죠.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단지경은 큰 부상 없이 끝난 대결을 다행이라 여겼고 손님맞이를 하려했다. 사패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이라곤 하나 무림의 절대자들인 검성과 도존 그리고 약선에 서문세가의 가주까지 모두와 인연을 만드는 일은 흔한 기회가 아니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준혁. 유 소저를 도와드리도록 해.”
“네. 궁주님.”
단지경의 명령에 단지경은 바로 유인경과 도존에게 향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내상을 입은 도존을 유인경이 부축하기엔 힘들었기에 거들라고 조준혁을 보낸 것이었다.
“올라가시죠.”
단지경은 재차 권하며 서문환에게 말했고 그는 기회라 여겨 얼른 검성과 약선에게 다가갔다.
“누님. 올라가시죠. 빙궁을 처음 방문하니 빙궁에서 대접하는 차를 한번 마셔봐야겠습니다.”
서문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며 약선의 눈치를 살폈고 그녀의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는 것을 본 그는 검성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참고 또 참았다.
“그래. 올라가자. 빙궁에서만 나는 설매화(설매화)의 잎을 우려 만든 차가 일품이란다. 당신도 올라가요.”
“그러지. 윤후는...”
검성은 이윤후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미소 지었다. 아직까지도 생각에 빠져 자신과 도존의 대결을 복기하고 머리에 새기려는 제자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제자 바보군요. 그렇게 좋아할 것을 예전에는 왜 그리 반대했어요.”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지. 신의께서 그렇게 제자를 두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아쉽긴 해.”
검성은 약선의 스승이었던 신의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약선도 검성이 어떤 것을 떠올렸는지 알았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검성과 그의 정인(情人)인 임소려는 약선의 스승인 신의 곁에서 살았고 신의는 늘 두 사람에게 얼른 아이를 가지고 검성의 무공을 아이에게 전수하라고 잔소리했었다. 그것을 약선도 알았기에 검성이 신의를 이야기하며 임소려도 떠올린 것을 알았기에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다들 먼저 올라가도록 하지. 난 윤후와 이야기를 좀 하고 같이 올라갈 테니.”
“알겠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시는 계단에 시비를 대기시켜 둘 테니 나중에 안내대로 오십시오.”
검성의 말에 단지경과 조준혁은 모두를 데리고 먼저 나갔고 약선은 검성에게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다가 서문환이 계속 보채자 어쩔 수 없이 따라 올라갔다.
검성은 아직까지 생각에 빠져있는 이윤후의 곁으로 다가갔고 검성이 코앞까지 왔는데도 이윤후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검성과 도존의 대결을 되뇌고 있었다.
“윤후야.”
“네? 네. 제가 너무 생각에 빠져 있었나보군요. 죄송합니다.”
이윤후는 검성의 부름에 놀라 주위를 보았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멋쩍게 미소를 보였다.
“성과는 있었느냐?”
“사부님과 도존의 모든 것을 본 것만으로 체득하긴 힘들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전 간격 싸움을 이제 실전에서 어느 정도 체화했다고 생각했는데 도존의 양손을 쓰는 방법은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제가 처음 마주했다면 바로 당했을 겁니다...그리고 무형지기의 도강은...더욱 놀랐습니다. 모든 것을 파훼하신 사부님은 더 대단했고요.”
“그래. 실전에선 늘 자만하지 않아야한다. 네 말처럼 넌 이전의 싸움에서 간격 싸움을 실전에서 제대로 체화시켰지. 그것에 대한 자만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간격 싸움을 파훼하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말이야.”
“네. 다시 한 번 배웠습니다. 사부님께서 계속 가르침을 주십시오.”
이윤후의 말에 검성은 침묵을 지켰고 대답 없는 검성에게 이윤후는 불안감을 느꼈다.
“사부님... 설마?”
“너도 눈치 채고 있었느냐?”
이윤후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물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답이 돌아왔다. 이윤후도 자신의 스승이 언젠가 떠날 거 같다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검성은 복수를 마치고 모든 일에 초연해진 듯 했는데 갑자기 무림의 일에 끼어들었고 그것이 모두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검성이 무리해서 자신을 빨리 가르치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떠나십니까?”
“그래. 먼 여정이 될 것 같다.”
“......”
이윤후는 목 끝까지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이제 다시 보지 못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오는 상실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윤후에겐 검성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기에 더욱 그랬다.
“더 묻지 않는 것이냐?”
“그냥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윤후의 대답에 검성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검성은 이제 등선(登仙)을 할 것이고 다시는 보지 못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제자는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운 이윤후를 바라보며 검성도 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검성도 이제 등선의 의식을 치르게 된 이후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연지기를 계속 체내에 축적하며 인외의 존재가 되었고 더는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계시를 받았다.
하지만 검성은 이윤후에 대한 미련으로 지금까지 미뤄왔고 이제는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네가 나를 기다려준다면 나는 꼭 돌아오마.”
“약조해주십시오.”
“그래. 약조하마.”
검성은 지키지 못 할 수도 있는 약속으로 어린 제자를 달래었다. 이윤후도 검성의 말이 진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냥 검성의 말을 믿고 싶었다.
“윤후야. 의천문을 부탁한다. 너를 위해 내가 만들었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유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닙니다. 사부님이 만드신 의천문은 제가 지킬 것입니다.”
“그래. 명헌에게도 말을 잘 전해다오. 그리고 정연이도 부탁하마.”
“네. 모두 지키며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이윤후의 단호한 대답에 검성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어린 제자의 모습을 보자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검성에게 더는 시간이 없었다.
“윤후야. 꼭 돌아오마.”
검성은 이윤후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었고 이내 검성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더니 사라졌다. 이윤후의 눈엔 눈물이 흘렀다.
검성은 그렇게 북해빙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검성이 등선했다는 소문이 무림에 돌았고 의천문은 그것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십여년 뒤 검성이 사라진 무림에 백여년의 힘을 비축한 마교가 무림정벌을 나섰고 마교의 준동은 한 사내의 검 앞에 패퇴했다.
바로 의천문의 문주 이윤후였다. 무림은 마교를 홀로 패퇴시킨 그에게 검성(劍聖)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모든 무림인들은 이윤후를 경외했다.
세인들은 검성이 돌아왔다며 마교를 패퇴시킨 이윤후를 칭송했다. 이윤후는 그의 스승처럼 마교를 패퇴시키고 의천문의 문주에서 물러난 후 잠적했고 다시는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무림인들은 검성재림(劍聖再臨) 이라는 속가를 만들어 두 사람의 검성의 업적을 칭송했고 무림을 구한 두 명의 영웅을 그리워했다.
두 명의 영웅... 검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