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최후의 대결 (1)
약선은 뛰어난 핏줄만이 태어난다는 서문세가의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기재라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세인들은 오절 중 약선이 가장 약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약선이 딱 한번 실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동생인 광기자 서문영이 마교에게 납치되어 검성과 도후 그리고 약선이 십만대산까지 추격한 적이 있었다.
결국 마교의 절진에 막혀 마교의 본거지로 들어서진 못했지만 동생을 납치당한 약선의 분노로 인해 마교의 최고 정예들인 천마풍혼대(天魔風魂隊)를 약선 혼자서 모두를 죽여 버렸다.
당시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자들은 마교가 검성과 도후에게 겁을 먹어 자신들의 본산까지 찾아온 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숨었다했지만 사실은 도후 혼자 천마풍혼대를 멸하는 것을 보고 숨어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마교는 원하던 광기자를 납치 성공하였으니 목적을 이룬 셈이니 괜히 오절 중 셋과 부딪치기를 피한 것이었다.
검성도 약선의 무위를 보고 몇 차례 제대로 붙어주기를 원했지만 약선은 사랑하는 정인인 검성에게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에 검성도 약선과 싸우는 것은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런 약선이 도존을 높게 평가하는 것을 들으니 검성으로서는 신이 안날 수가 없었다.
“나는 애령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소. 사실 도존을 알지 못했다면 마지막 일전은 그대와 하길 졸랐을 거요.”
“당신 설마...?”
검성의 말에 약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성이 말한 마지막 일전이라는 말이 크게 와 닿은 탓이었다.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어야 했어. 곡기(穀氣)를 끊어도 내 몸엔 이상이 없고 잠을 자지 않아도 마찬가지요. 어떠한 욕구조차 없는 상태지.”
“......”
검성의 담담한 말에 약선의 눈에선 말없이 눈물이 흘렀다. 약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검성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그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이윤후에 대한 미련이 그를 붙잡아 주길 바랐었다.
“도존과 마지막 일전 이후 난 떠날 것이니 윤후와 의천문을 가끔 살펴줬으면 좋겠소.”
검성은 약선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약선은 검성에게 몸을 기대어 안겨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검성은 그런 그녀를 떼어놓지 않고 그저 그녀의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려주었다. 평생을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이 사라지자 오십여년을 찾아 헤맸던 여인이었다.
임소려라는 정인이 없었다면 검성은 그녀를 사랑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인에 대한 미련은 그녀를 밀어내었고 당시 약선의 마음을 가볍게 보았던 검성은 그녀가 이렇게 긴 세월을 자신만을 바라 볼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지금은 더욱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한참을 울던 약선은 검성의 품에서 스스로 떨어져 눈물을 훔쳐내었다.
“전 돌아가... 도존을 만나 날짜를 잡을게요. 그리고 다시 올게요.”
“직접 오지 않아도... 아니 좋은 대로 하도록 해.”
검성은 직접 오지 말고 전서구로 전해주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말을 하려다 약선이 눈을 흘기자 놀라 말을 바꾸었다. 약선은 검성이 떠나려한다는 것을 알고 한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찾아오겠다 했는데 그걸 거부하자 살짝 화가 났다.
“식사를 같이 하지. 정연이가 당신이 온다는 소식에 신경을 쓰겠다했으니 말이야.”
“그래요?”
검성의 식사제안에 약선은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누월정을 지나 검성의 거처로 향했다.
***
월령문(月靈門).
사파의 새로운 문파 창설 소식이 무림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름 아닌 흑월도존 유상휘의 문파였고 그가 온전한 몸이 되어 문파를 새로이 만들었다는 소식은 무림에 큰 화제가 되었다.
사왕련의 해체 이후 구심점이 사라졌던 사파인들은 월령문의 창설을 크게 반겼고 무림맹과 천무맹은 월령문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령문의 구성원들 때문이었는데 도존을 비롯하여 이전 사왕련의 미후왕도 있었고 도존의 심복인 월랑 그리고 도존의 제자인 독고진도 있었다.
무공이 금제당하고 스승인 도존을 배신한 독고진이 다시 소문주의 자리에 오르자 사파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도존은 모든 논란을 일축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식이 무림을 뜨겁게 달구었는데 검성과 흑월도존의 대결 소식이 무림에 알려진 것이었다. 원래는 서문세가에서 비밀리에 두 사람의 대결을 위해 장소를 알아보던 것이 소문이 새어나간 것이었다.
소문이 퍼지자 모든 무림인들의 시선은 서문세가와 의천문 그리고 월령문에 집중 되었다. 어느 곳도 제대로 된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대결을 보고 싶은 많은 이들이 세 곳의 입구에 대기한 채 그저 누군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결을 보고 싶어 대기하던 자들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의천문과 서문세가 그리고 월령문에서 북해설응이 날아올랐고 북해설응을 쫓아갈 방법은 그들에겐 없었다.
북해빙궁(北海氷宮).
빼액- 빼액-
북해빙궁의 하늘엔 설응들의 무리가 선회하며 우는 통에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고 빙궁의 넓은 연무장엔 궁주인 단지경과 그의 딸 단채영 그리고 조준혁등 많은 인물들이 도열해 있었다.
“예전 생각이 나지 않은가? 준혁.”
하늘에 시끄럽게 날며 우는 설응의 무리들을 보자 단지경은 웃으며 조준혁에게 물었다. 하늘을 나는 설응 중엔 단지경의 설응인 설왕도 있었다.
“네.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이 소협... 아니 소협이라 부르면 안 되겠군요. 신검이라 불러야죠.”
“하하~ 그렇지. 자네도 몸이 근질근질 하겠군. 신검과 겨루고 싶지 않아?”
단지경은 조준혁이 이윤후에게 패해 큰 부상을 입었던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당시 급성장한 이윤후의 실력 탓에 조준혁은 큰 부상을 당했지만 그 덕에 만상오행공의 상생의 기로 인해 조준혁은 그때와 다른 수준의 무인이 되어 있었다.
강해진 조준혁 탓에 현재 빙궁의 내란은 이미 종결되었고 하나의 빙궁이 되어 있었다.
“옵니다. 궁주님.”
조준혁의 말에 모두가 하늘을 보았다.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조준혁은 이미 남들보다 더 먼 곳의 기운까지 느끼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더 빠르게 기운을 느끼고 보고 있었다.
빼액- 빽-
설응들이 더욱 세차게 울기 시작하더니 선회하던 것을 멈추고 빙궁을 기준으로 물러나 날기 시작했다.
한 마리의 설응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고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검성과 신검입니다. 공주님.”
조준혁은 하강하는 설응이 백아임을 알아보았고 검성과 이윤후를 확인하고 단지경에게 보고 했다.
백아가 땅에 내려서지 않고 낮게 저공비행하자 백아의 등에서 검성과 이윤후가 동시에 뛰어내렸고 두 사람은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해 단지경을 확인하고 다가왔다.
“단 궁주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신검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검성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빙궁은 네 뜻대로 잘 정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검성 덕분이었습니다.”
단지경은 진심으로 검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준혁이 상생의 기로 강해지면서 안 그래도 검성과의 친분과 단지경의 무위가 드러나며 분열했던 반대파들이 자연스럽게 단지경에게로 돌아섰고 모략을 꾸미던 단경호는 조준혁에게 발각되어 무공을 폐하고 추방당했다.
“그들은 먼저 와있다고 들었는데?”
“네. 약선과 서문 가주 그리고 도존과 유 소저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바로 가지.”
검성과 도존의 대결이 무림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탓에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고 검성은 빙궁의 지하 비무장이 생각나 단지경한테 따로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은 상황이었다.
단지경도 이미 두 사람 대결 소식을 알고 있었고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허락을 하였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조준혁은 검성이 단지경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윤후와 담소를 나누다 두 사람 대화가 끝난 듯 하자 바로 앞장섰다.
“가시죠. 약선과 도존 일행은 이미 지하 수련실에 가 있습니다.”
세 사람은 조준혁을 따라 빙궁 안으로 들어섰고 안내에 따라 지하로 향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지나 지하에 도착하자 무고와 서고를 지나 수련실로 향했고 이미 열려있는 수련실에선 사람이 오는 소리에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수련실에 들어선 검성은 약선과 서문환을 보고는 간단히 아는 척하고는 도존과 유인경을 확인하곤 그리로 성큼성큼 향했다.
“무림의 절대자이신 검성을 뵙습니다. 제가 쓰러져있는 동안 제 손녀도 그렇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존은 검성이 다가오자 깍듯이 예의를 취했다. 그의 말처럼 독이 중독된 자신을 구해준 것도 검성과 이윤후였고 손녀인 유인경도 이윤후와 검성이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위험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과한 예의는 취할 필요 없네. 몸 상태는 괜찮은가?”
“몸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약선께서 잘 치료해주셨고 제 몸 안에 있던 독기가 모두 빠져나가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마저 듭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혹시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내가 억지를 부린 탓에 받아준 것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깨어난 후 경이가 검성께서 저와 대결하고 싶다고 하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영광이었습니다. 말은 검성께서 먼저 하셨지만 제가 도전장을 쓰는 게 맞다 생각하여 약선을 통해 도전장을 보냈습니다.”
“내가 늘 도전장을 보내는 입장이었는데 받아 본 적은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을 해서 기분이 좋았네.”
검성은 말하고 미소를 보였다. 도존은 혹시나 도전장을 보낸 것이 실례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여겼지만 약선에게 검성이 크게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안심했었다.
“자네 제자가 도를 상하게 했었는데 수리를 했나보군?”
“네. 도의 날이 상한 것은 아니라 손잡이 부분만 새로 만들고 날을 갈았습니다. 오늘을 위해 말이죠.”
도존은 말하며 눈빛이 바뀌자 검성은 크게 웃었다.
“하하~ 마음에 드는 말이군. 나도 이 날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자네가 상상하지 못할거야. 빨리 시작하고 싶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제대로 싸워보지 못했는데 제가 검성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존의 말은 공손했으나 그의 말엔 힘이 실려 있었고 자신감도 느껴졌기에 검성은 그런 그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럼 시작하지.”
검성은 약선을 보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약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