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변수 등장
‘지금 이 자리에서 살기위해 군룡세가를 택한다 한들... 의천문이 움직인다면 마찬가지로 위험에 빠진다... 어찌 우리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가...’
엄윤겸은 의천문과 군룡세가 양쪽 다 원망스러웠다. 그저 자신은 장사치일 뿐인데 세력 다툼 가운데 생사를 걸어야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의천문이 그대들에게 삼일의 말미를 주었다고 들었는데 우린 그대들에게 그렇게 시간을 줄 수 없소.”
담수천이 말을 하고 손짓하자 포위하고 있던 무인들 중 하나가 무언가를 꺼내어 모두의 앞에 한 장씩 놓았고 그것을 확인한 그들은 놀란 눈이 되었다.
“이건 우리 사업장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증서 아닙니까?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담 장로!”
그들 앞에 놓인 것은 그들이 가진 모든 재산과 사업장 등 일체 권리를 군룡세가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증명서였고 그들의 인장이 찍힐 자리만 남아 있었다.
이제 진운형이 분노하여 벌떡 일어났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목덜미에 닿은 차가운 검이었다.
“진 장주. 경거망동 하지 마시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서로 믿을 수 있도록 장치를 하는 것뿐이오.”
“장치라니요? 무슨 말입니까?”
진운형이 군룡세가의 무인들에 의해 제지당하자 엄윤겸이 나서서 물었다.
“그대들의 재산과 사업장 일체를 우리에게 양도한다는 증서이긴 하나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면 모두 돌려줄 것입니다. 그저 그대들과 우리가 서로 믿기 위해 이러는 것임을 알아 두셨으면 좋겠소.”
담수천의 말은 듣기엔 나중에 모두 돌려줄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군룡세가 역시 원래 소주에 자리 잡았던 문파가 아닌지라 일대 상권등 그들이 전부를 장악하지 못했었다.
보통 큰 세가와 문파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상업 일체를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대리인을 세우더라도 그것에 대한 소유권은 문파나 세가가 가지고 있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소주 일대의 상권은 군룡세가가 가지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군룡세가는 계속 이권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소주의 노른자 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그들이 장악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이 지나왔다. 군룡세가에 수차례 사업장을 팔라는 말을 들어왔던 그들이었기에 군룡세가의 저런 말은 거짓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군룡세가는 이 기회에 우리의 사업장을 모두 빼앗으려고 드는구나... 일이 마무리되더라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 분명해...’
엄윤겸은 이미 삼대 째 내려오는 이 진향객잔을 군룡세가에서 얼마나 눈독 들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선뜻 먼저 인장을 찍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모두 주저하자 담수천의 손이 하늘로 향했다.
파바밧-
신호가 떨어지자 군룡세가의 무인들이 모두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고 담수천의 품에선 긴 대롱을 꺼내었다.
“그대들이 주저하는 것 같아. 빠른 선택을 위해 도움을 주겠소. 이 종이대롱에 불을 붙이면 하늘로 올라가 폭죽처럼 터지는데 그것을 본 당신들의 사업장과 가택에 대기 중인 내 수하들이 어떤 일을 할 것 같소?”
담수천은 종이대롱에 채운 화약을 보여주고는 수하에게 불이 붙은 화섭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심지에 불을 붙이려는 시늉을 했다.
“잠깐... 멈춰주시오... 수인(手印)하겠습니다.”
엄윤겸은 담수천이 결국 식솔들을 위협하자 가장 먼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항복의 뜻을 보였다. 그는 준비된 인장을 손바닥에 묻혀 문서에 손바닥을 찍었고 이어 다른 이들도 수인을 하였다.
자신들의 목숨뿐 아니라 식솔들이 목숨이 경각인지라 모두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운형 만이 계속 버티고 있었고 이에 담수천이 직접 그에게 다가갔다.
“진 장주. 그대는 수인을 하지 않을 것이오?”
담수천의 목소리가 달라졌고 그의 기도가 달라지며 은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명문 정파라는 곳에서 이렇게 사람을 겁박하여 남의 재산을 탐하다니... 그대들을 정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진운형도 무공을 배운 인물이었기에 담수천의 살기에 몸이 떨려왔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뱉어내었다.
이에 담수천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많던 그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깊게 패였다. 자신이 위협을 했음에도 반항하는 진운형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일이 마무리되면 돌려주겠다고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파밧-
“크헉...”
담수천은 진운형에게 다가서자마자 그의 목을 겨누고 있던 군룡세가 무인의 검을 빼앗아 진운형의 왼팔을 길게 베었다.
“수인을 하지 않을 것인가? 진운형.”
담수천의 목소리엔 내력이 실려 있었고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 진운형은 그대로 주저 않아 괴로워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수인을 하지 않을 것인가?”
“크으윽...”
담수천의 내력이 담긴 음성을 진운형은 견뎌내기 힘들었고 대답하지 못한 채 땅을 기었다. 그 모습에 담수천은 차가운 미소를 보이고는 검을 높게 쳐들었다.
“그대의 수인은 죽고 나서 받아도 상관없을 듯 하군. 본보기를 보여야겠어.”
담수천은 진운형이 끝까지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를 죽여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번쩍-
담수천의 검이 진운형의 목을 향해 내려쳐진 순간 검광이 번쩍이며 주위를 밝혔다.
파바박-
“크헉...”
진운형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치던 담수천은 무형의 기운에 격중당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그 모습에 놀란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며 담수천을 밀어낸 사내를 쳐다보았다. 모두 처음 본 인물이었음에도 이 자리에 모두는 단숨에 그가 누군지 유추할 수 있었다.
“검성(劍聖)?”
나타난 사내는 바로 검성이었고 이 자리에 누구도 검성을 본 적이 없음에도 검성임을 알아보았던 이유는 검성의 외모와 담수천을 밀어낸 무위 때문이었다.
“면여관옥(面女冠玉)... 검성을 두고 외모가 관 장식의 옥과 같다고 말하더니 실제로군요.”
엄윤겸은 자신의 목숨이 지척인 상황인데도 검성의 외모에 놀라 감상평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성을 만나기 위해 직접 의천문에 몇 번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으나 검성에 대한 소문은 들어왔기에 엄청난 미남자인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검성의 모습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 뛰어났다.
엄윤겸과 살아난 진운형이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것과 달리 군룡세가의 무인들과 밀려난 담수천은 검성을 확인하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검성...이십니까?”
담수천은 얼얼한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검성을 바라보고 물었다. 이미 검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물었다.
담수천의 물음에 검성은 답하지 않은 채 등 뒤의 엄윤겸과 진운형 그리고 그동안 지켜보기만 했던 소주의 금화상단의 분타장인 한철인 세 사람을 보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검성의 모습에 담수천은 화가 치밀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슴의 통증도 얼얼한 정도로 끝이 났던 이유가 검성이 손속에 정을 두었기 때문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은 군룡세가를 택한 것 같으니 묻지 않아도 될 듯 하고 너희는 어떠하냐? 군룡세가의 편에 설 것이냐?”
검성은 군룡세가 무인들 뒤에 숨어있는 배화진을 가리키며 세 사람에게 물었다.
“내 이야기가 어려운가? 너희가 군룡세가의 편에 서겠다면 난 이곳을 그냥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내 사람들이니 도와줄 생각이다.”
검성의 말에 군룡세가의 등 뒤에 있던 배화진의 얼굴이 구겨졌고 세 사람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특히 검성이 말한 자신들의 사람이라는 말에 세 사람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구해주십시오. 의천문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금화상단 역시... 단주의 허락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곳 소주의 운영 권리는 저에게 있기에 의천문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치익-
세 사람의 말과 함께 담수천은 불이 붙은 화섭자를 종이대롱의 심지에 붙였고 창가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타오르는 심지의 소리에 놀라 세 사람은 소리를 지르려했으나 그들의 외침보다 검성의 손속이 빨랐다.
파밧-
“크악!”
콰직-
검성은 단숨에 담수천에게 다가가 검을 그었고 담수천의 손목은 그대로 검에 베어졌다. 이어 검성은 불이 붙은 종이대롱을 낚아채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그대로 바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죽여!”
자신의 잘려나간 손목을 부여잡은 채 담수천이 소리치자 이에 상대가 검성임에도 군룡세가의 무인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하지만,
촤자자자작-
딸칵-
검성의 검이 현란하게 허공을 휘저었고 그 검속이 너무 빨라 지켜보던 세 사람은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했다. 검성은 무심하게 검을 휘두르곤 검을 갈무리했고 이어 달려든 군룡세가의 무인 수십이 그대로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쿠궁- 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검에 베여 쓰러진 그들을 보고 담수천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담수천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검성이 자신에게 다가와 손목을 베는 것도 제대로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는데 자신들의 수하가 베어지는 것도 보고 있음에도 몇 번이나 검성이 검을 휘둘렀는지조차 파악 되지 않았다.
군룡세가의 장로로 오랜 세월 무공을 익히고 어느 정도 자신의 무공에 자부심이 있는 그였지만 검성 앞에서 그는 한낱 어린아이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검성께서는... 어찌 같은 정파인 우리에게 이렇게 잔인한 손속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담수천은 마음을 가다듬고 검성을 향해 외쳤고 그 모습에 엄윤겸 등 세 사람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너의 말은 잘 못되었다.”
“무슨...?”
“의천문은 정파가 아니다.”
“정파가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담수천은 검성의 대답에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의천문은 정파도 사파도 아닌 중도의 길을 갈 것이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정파든 사파든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
“너희는 우리의 사람이 되어줄 자들을 겁박하고 해하려했으니 의천문의 적이라고 봐야겠지? 너를 시작으로 군룡세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검성의 말에 담수천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어차피 너를 죽일 생각까지 없었다. 그리고 쓰러진 자들도 모두 죽지 않았으니 조금 있으면 다 깨어날 것이다.”
“네?”
검성의 말에 놀란 담수천은 쓰러진 수하들을 보았고 당연히 검성의 검에 베여 죽은 것이라 생각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었다.
담수천은 가까이 쓰러진 수하를 살피고는 검에 베인 것이 아니라 검성이 검으로 모두 점혈한 것임을 알았고 오히려 그런 경지가 가능함에 더욱 놀라 경외로운 마음으로 검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