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양자택일(兩者擇一)
검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통자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주 일대의 상업을 하는 부호들과 상단 그리고 의천문에 몸을 의탁하길 원하는 중소방파들까지 천통자는 차례차례 불러 만나기 시작했다.
소주 일대가 그동안 군룡세가의 영역이긴 했으나 결국 검성이란 존재가 있는 한 이권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상대를 선택해야한다면 의천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은 의천문이 전혀 군룡세가의 이권에 대한 간섭이 없었기에 그들도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상황은 달라져있었다. 천통자는 그들을 불러 확실하게 선언을 했다.
의천문을 택할지 군룡세가를 택할지.
그들 입장에선 날벼락 같은 선고였다. 군룡세가의 그늘 아래서 불만이 없었기에 의천문이 소주에 자리 잡을 당시에도 그저 인사치례 그리고 혹여나 의천문이 바란다면 군룡세가에 내는 지원금을 의천문에도 내는 정도는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천통자는 자신들을 불러 양자택일을 하라 통보했기에 그들의 입장은 난감했다.
진향객잔.
소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객잔으로 소주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방문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주의 명물이기도 한 객잔이었다.
쉬는 날이 없이 손님을 받았던 진향객잔이 갑자기 오늘 하루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방이 붙었고 찾아온 손님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미시(未時=오후1시~3시)가 지나자 진향객잔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점원들의 제지를 받지 않은 채 이층으로 향했다.
이층 객잔은 귀빈만을 받는 곳이다 보니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장식과 화려한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중앙 자리에 따로 마련된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원형 탁자가 놓여있었고 다섯의 인물이 둥글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소주 일대의 상단과 객잔 등 이권을 지니고 있는 부호들이었고 진향객잔의 주인인 엄윤겸도 있었다.
“모두 의천문에 가서 이야기는 듣고 오셨을 테니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엄윤겸이 모두를 바라보고 물었고 그의 물음에 바로 답하는 이는 없었다. 잠시 침묵이 있고나서 덩치가 있고 통통한 체격의 중년인이 입을 떼었다.
“천통자라는 의천문의 총관은 저에게 의천문이 이제 소주 일대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아 문파를 키울 것이라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말은 뭐 도와달라고 했지만 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죠. 마지막에 생각할 시간을 삼일 주겠다며 그 후엔 말로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더군요.”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소주를 근거지로 하는 상단인 은룡상단의 단주인 배화진이었다. 그는 말을 하며 조금은 악에 바친 듯 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배 단주. 진정하시오. 저희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방문하고 만나주지 않고 선물을 보내도 돌려보내더니 갑자기 의천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백염에 백발로 근엄하게 생긴 노인이 배화진이 흥분하자 진정시켰다. 그는 소주와 인근 도시의 도박장을 다수 운영하는 진운형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소주 일대의 상업과 상단 도박장등 돈과 관련되는 모든 이권을 가진 인물들이었고 그들은 의천문의 선언으로 인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갑작스레 의천문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소주의 이권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는데...”
“현재 무림 정세와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무림 정세라면 무림맹과 천무맹의 힘겨루기를 말하는 겁니까?”
배화진의 물음에 진운형이 답했다.
“무림맹의 사정이 좋지 못한데 천무맹이 계속하여 무림맹의 영역을 욕심내고 도발하는 상황이다 보니 관망하던 검성께서 노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주는 천무맹의 맹주 담영진님의 군룡세가의 영역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나 이렇게 갑자기 한 문파의 영역을 장악하려드는 건 무림에서도 말이 나올만한 상황일 텐데요. 의천문의 통보는 말 그대로 소주의 모든 이권을 자신들이 장악하고 군룡세가를 몰아내겠다는 선언 아닙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죠. 애초에 군룡세가는 무림을 배신한 배신자들이 아닙니까? 무림맹의 상황이 좋지 못해 처단을 받지 못한 것이지...”
“진 장주. 말을 조심하세요. 우리뿐이라곤 하지만...”
진운형의 거침없는 말에 엄윤겸이 놀라 그를 말렸다. 사실 모두 진운형과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군룡세가를 비롯한 불마사에 협력해버린 문파들의 소식을 듣고 무림맹이 불마사를 몰아냈다는 소식을 이어 들었을 때는 그들은 오늘 같이 한자리에 모였었다.
불마사를 몰아낸 무림맹의 다음은 배신자들의 처단이 될게 분명했기에 소주일대에 피바람이 불수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림맹은 불마사와의 격전으로 약화되었고 오히려 군룡세가와 화산이 중심이 된 천무맹이 창설되면서 무림의 구도는 아예 바뀌어버렸다.
“그나저나 의천문에 검성과 신검 둘을 빼면 누가 있기는 합니까? 군룡세가를 상대로 정말 전쟁을 시작할까요?”
배화진은 말을 돌리며 모두에게 물었다. 진운형의 발언으로 인해 잠시 굳어버린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군룡세가의 본가에만 무인의 수가 수백에 분가와 협력하는 소주와 인근의 중소방파들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수는 헤아리기조차 힘듭니다. 현재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강한 곳은 군룡세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수가 검성과 신검 앞에 무슨 소용입니까?”
배화진의 말에 진운형이 답했고 이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남궁세가에서 검성의 제자인 신검과 군룡세가의 소문주인 담석영 간의 비무는 모두 알지 않습니까? 신검이 아예 가지고 놀았다고 본 사람들은 그러더군요. 그리고 검성 앞에 수는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진운형의 말에 다들 침묵을 지켰다. 사실 검성이 아니라 제자인 신검 이윤후만 나서도 군룡세가에는 그를 상대할 고수가 군룡세가에 없음을 자리에 모인 이들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수 차이였다.
정말 의천문과 군룡세가가 전면전에 들어갈 경우 군룡세가가 순진하게 부딪쳐줄리 만무했다. 검성과 신검 둘 외에 알려진 것이 없는 의천문인데 그 둘을 피해 의천문을 친다던가 자리비우는 틈을 노릴 여지가 있었다.
“군룡세가의 분위기는 어떠합니까? 이미 그쪽에서도 의천문의 의도를 알 텐데요.”
“알아보니 그쪽에서도 갑작스러운 의천문의 행동에 비상소집이 된 듯 하더군요. 외부로 나간 세가원들 소집령이 떨어졌고 천무맹이 있는 항주에 파견 나가 있던 인원까지 모두 불러들였다합니다.”
“그야말로 군룡세가도 전쟁을 준비하는군요. 의천문의 수를 감안하면 과한 듯 싶지만 상대가 검성과 신검이니... 이해는 가는군요.”
“문제는 우리들이 어떻게 할지이니 그에 대한 이야기나 더합시다.”
이야기가 점점 다른 곳으로 새자 엄윤겸은 모두에게 주지시키고 집중을 요구했다.
“의천문이 우리에게 준 시간은 단 삼일입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의 의견을 내어야합니다.”
엄윤겸의 말에 다들 생각에 빠졌지만 딱히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의천문과 군룡세가 어느 쪽에 붙던 향후 벌어질 일에 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그 손해는 금전적인 손해뿐 아니라 식솔들과 모두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기에 더욱 신중하게 고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자 진운형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저는 의천문을 택하려고 합니다. 군룡세가가 아무리 인원이 많고 천무맹의 힘을 동원할지 모르나... 아니 천무맹 전부가 덤빈다고 한들 검성을 당해낼 것 같지 않습니다.”
“진 장주. 신중하게 생각하신 겁니까? 의천문의 고수는 단 둘입니다. 군룡세가에서 인원을 나눠서 공격한다면 의천문은 당해내기 힘들 것입니다.”
배화진은 진운형을 말리려는 듯 만류했다. 검성을 군룡세가의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선뜻 진운형처럼 의천문을 택하지 못하는 이유도 배화진이 말한 부분 때문이었다.
군룡세가가 자신들의 사업장을 공격했을 때 의천문이 지켜줄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 의천문의 인원으론 불가능해보였기에 그들은 선뜻 검성이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의천문을 택하지 못했다.
“다들 검성이 복수를 위해 오절 중 권왕(拳王)과 신투(神偸)를 어떻게 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우리가 의천문에 가담하는 순간 의천문은 우릴 자신들의 사람으로서 받아줄 것이 분명합니다. 혹여나 의천문이 우릴 당장의 위험에서 구해주지 못한다고 해도 분명 복수는 해주겠죠. 아니 군룡세가에서 복수가 두려워 저희를 못 건들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진운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것이 보이자 배화진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우리가 군룡세가 덕에 어떻게 사업을 유지해왔는데 다들 배신하겠다는 것입니까?”
배화진이 모두를 보며 불같이 화를 내자 다들 그의 눈을 피했고 진운형 만이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진운형이 나이든 몸이긴 했지만 무공을 배운 몸이었기에 더 젊은 배화진도 그에게 대놓고 뭐라 하진 못한 채 갑자기 창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창밖을 향해 수신호를 하기 시작했고 이에 놀라 진운형이 그를 만류하려 달려갔다.
“무슨 짓이오? 배 단주.”
하지만 진운형이 배화진을 잡기 전에 다수의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는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촤자장-
“모두 움직이지 마시오.”
계단을 올라온 이들은 군룡세가의 무인들이었고 명을 내린 인물은 모두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군룡세가의 장로 중 한명인 담수천이었다. 군룡세가의 가주인 담영진이 천무맹이 있는 항주에 머물면서 현재 세가의 실질적 통솔을 맡고 있는 게 담수천이었다.
배화진을 제외한 모두는 배화진이 군룡세가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노했으나 이미 상황은 그들에게 좋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배화진 네놈이...”
“진 장주를 비롯하여 모두 내게 서운할 것은 알지만 차라리 이렇게 된 것이 그대들에게 다행일 것이오. 괜히 의천문에 붙어 우리 사업장을 비롯해 식솔들까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내가 구해준 것이라 생각하시오.”
배화진의 말에 모두 그를 찢어죽일 듯 쳐다보았으나 이미 군룡세가의 무인들에게 포위당해 검이 겨누어지고 있는 이상 그들이 그 무엇도 할 수는 없었다.
“배 단주의 말이 틀리지 않소.”
지켜보던 담수천의 말에 모두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대들이 오늘 여기에서 의천문을 택한다면 그 즉시 그대들의 모든 사업장과 가택 모두 군룡세가가 들이닥쳤을 것이오. 이미 대기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신호만 한다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움직일 것이오.”
담수천의 말에 모두 절망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들의 식솔은 물론 모든 사업장에 군룡세가의 무인들이 대기 중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그들의 선택지는 군룡세가 밖에 없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지금 당장의 목숨을 유지해줄 뿐이라는 사실에 모두는 더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