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갈라진 정파.
종남파 대회의실.
회의가 끝이 나고 모두 떠난 곳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있었다.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환과 의천문의 천통자. 그리고 개방의 방주 소천개 ,소림의 혜원 대사, 무당의 현우자 다섯 사람이었다.
“서문 가주께서 나서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소림을 비롯 무당과 개방은 서문 가주 아니... 맹주님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혜원 대사의 말에 서문환은 조금은 멋쩍은 표정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대사. 아닙니다. 전 그저 잠시 허수아비처럼 자리만 할 것이니 모든 것은 세 사람이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약조하고 나선 자리고요.”
서문환이 보기엔 혜원 대사보다 어려 보여도 이미 세수가 백이 넘은 인물이었고 혜원 대사와도 배분에서도 꿀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허수아비라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누님의 부탁으로 임시 맹주 자리에 지원하긴 했지만 제가 무언가를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드러내놓고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겉으로는 제대로 일을 하는 것처럼 할 것이고 그저 제가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서문환은 자신의 누이인 약선의 부탁으로 결국 나선 것이었고 스스로 원해서 임시 맹주에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향후 무림 정세를 걱정한 천통자가 검성 설득이 통하지 않자 약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약선은 자신의 동생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서문환은 말을 하곤 천통자를 슬쩍 노려봤는데 그 눈빛을 받은 천통자는 서문환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한 채 딴청을 부렸다.
‘내가 약선을 설득 한 것을 알아채었나보군... 회의 끝나자마자 바로 도망가야겠어.’
천통자는 서문환의 눈빛에 쫄아서 그를 바라보지도 못했고 회의가 끝나면 바로 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의천문이 무림맹을 돕는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검성께서는 이미 향후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 하셨는데?”
“검성님도 사실상 직접적으로 무림맹의 일에 개입하진 않으실 겁니다. 서문 가주께서 이번 일을 맡아주시면서 검성도 그저 이름을 빌려주는 정도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천통자의 말에 소천개를 비롯해 현우자와 혜원 대사는 못내 아쉬운 듯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검성의 이름과 서문세가의 이름을 빌리는 것만으로도 무림맹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그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검성과 약선 그리고 의천문, 서문세가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림맹의 안정까지 서문 가주께서 귀찮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빠른 시일 안에 안정화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현우자는 서문환과 천통자를 향해 예를 차렸고 진심으로 두 사람을 향해 감사표시를 했다. 이미 무림맹은 두 세력에 큰 빚을 진 셈이었기에 이름만 빌려주는 상황이라도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예를 차리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향후 무림맹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방향이라고 함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천통자는 현우자의 과한 예의에 부담스러운 듯 말을 돌렸다.
“임시 맹주 건은 정해졌으니 넘어가고 무림맹의 재정이나 피해를 본 문파들의 지원 문제 그리고 배신한 세력들을 벌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현우자는 천통자가 조금 아픈 부분을 묻자 바로 답하지 못했다. 향후 무림맹의 큰 숙제나 다름없는 문제들이었지만 지금으로써는 딱히 좋은 방안이 없었다.
자금 문제는 특히 우금이 재정을 바닥내놓은 상황에서 이어받은 터라 안 그래도 재정 문제가 있었는데 거듭된 전쟁과 향후 보상 문제까지 무림맹으로써도 큰 문제였다.
물주가 되어줄 큰 상단들도 약하디 약해져있는 무림맹에 큰 돈을 내어줄 리가 만무했고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자금력이었다. 세력들마다 이번 일로 큰 피해를 보았기에 지원금을 걷기에도 무리가 있었고 가장 좋은 것은 배신한 문파들은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지원금을 걷는 문제였으나 그들이 순순히 내어줄 리가 만무했다.
“자금 부분은 우선 서안의 무림맹에 돌아가면 무림맹에 지원을 해주던 상단들과 단체 그리고 상인연합 등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금은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입니다.”
소천개의 대답이 천통자는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더 묻는다고 답이 나올 것이 아니라 더는 묻지 않았다.
‘비천에서도 아마 무림맹을 돕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터 자금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천통자는 비천에서 예전부터 무림맹의 위기 때마다 도움을 줘왔기에 금전적인 지원 문제는 어렵지 않게 도울 것이라 생각했다. 정보활동의 핵심은 자금이었기에 비천은 상단 운영은 물론 각 성 마다 크고 작은 객잔과 상업 활동 등 자금력으로는 금화상단에 뒤지지 않을 금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무림맹에서 배신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 가겠지.’
천통자는 거기까지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저들도 아직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기에 묻지는 않고 있었다.
서문환은 향후 맹주의 일로 세 사람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천통자는 그저 듣고만 있다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
종남산에서의 결전이 무림맹의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무림은 다시금 평화를 찾았다. 무림맹의 약화와 불마사와 만독곡에 당한 문파들의 문제가 있었지만 일단 무림은 승리했고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내부적으로 결속 문제와 불마사에 가담한 문파들에 대한 처벌이 남아 있었지만 무림맹이 내부 결속을 다지는 동안 배신한 문파들에 대한 거론이 암묵적으로 되지 않음으로써 겉으로 보기엔 무림은 평화로워 보였다.
하시만 불마사와의 일전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무림은 또 다른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불마사에 가담하며 무림맹을 직접적으로 배신한 문파들과 관망했던 문파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들은 무림맹이 안정화되면 자신들에 대한 처벌과 보복이 올 것을 염려하여 자주 회동을 가졌고 결국 그들이 행동에 들어간 것이었다.
천무맹(天武盟).
화산파와 군룡세가 등 불마사에 가담한 문파들과 무림맹과 척을 지며 관망을 했던 중소방파들이 모여 새로운 연합을 만들었고 그것은 무림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천무맹은 군룡세가의 가주인 담영진을 맹주로 추대하였고 담영진은 무림에 선언했다.
“무림맹은 우금이 이미 사유화하고 안에서 곪아버린 단체이기에 우리는 무림맹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림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 많은 문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새로운 연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모두의 뜻을 모아 천무맹을 만들어 무림의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다.”
천무맹주 담영진의 선언에 무림맹은 분노했고 무림맹과 천무맹은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천무맹이 생기면서 무림맹에도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그간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을 줄곧 주장했던 자들과 무림맹의 안정을 위해 미뤄왔던 자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새외 세력의 위기에서 벗어난 무림은 안타깝게도 정파간의 세력 분쟁으로 분열하는 결과를 맞이했고 무림 구도는 점점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세인들은 기존 무림맹을 위시한 문파들을 북무림 천무맹을 남무림이라 구분해 부르기 시작했고 양 세력간의 다툼도 생기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정사의 대립이 아닌 무림맹과 천무맹 간에 알력으로 인해 무림의 세력구도는 달라졌고 서로의 구역을 지날 때마다 문제가 생기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불문율화 되고 있었다.
양 측 모두 잦은 충돌로 인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기에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고 있었지만 언제 부딪칠지 몰랐다.
소주 의천문(義天門).
불마사와의 일전이 끝나고 의천문으로 돌아온 검성과 이윤후는 두문불출(杜門不出)했고 문파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일절 만나주지 않았다.
의천문의 손님 중 유일하게 만나주는 이는 무림맹에서 온 자들 뿐이었고 그 덕에 무림맹은 검성과 연이 닿아있다는 소문이 퍼져 천무맹에서도 무림맹과의 다툼을 최대한 피하고 있었다.
천무맹이 생기고 의천문이 전혀 외부활동이 없자 검성이 등선(登仙)한 것이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고 그로 인해 천무맹이 무림맹과 거리낌 없이 갈등을 유도해 부딪쳤다. 불마사와의 일전 이후 무림맹의 모든 문파는 약화되어 있었기에 전혀 피해가 없었던 천무맹의 문파들과는 힘 차이가 분명했다.
천무맹은 자신의 영역뿐 아니라 무림맹 문파의 영역까지 욕심내며 갈등을 일으켰지만 그런 도발은 무림맹의 손님을 의천문이 받아주면서 천무맹은 잠잠해졌다. 그간 전혀 손님을 받지 않았던 의천맹이 무림맹의 손님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천무맹이 활동을 자제할 정도로 의천문의 무림에서 입지는 그만큼 컸다.
누월정(鏤月亭).
의천문 내에 작은 인공 호수가 있었는데 그곳 가운데 돌길을 내고 호수 한가운데 정자를 누월정이라 불렀다. 의천문은 서문세가의 서문환이 직접 알아보고 매매했기에 그는 소주에서 가장 좋고 큰 장원을 사서 공사를 했고 누월정과 인공 호수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검성이 아주 마음에 들어 했기에 서문환도 기뻐했는데 검성은 제자인 이윤후에게 이곳의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고 이윤후는 이곳을 누월정이라고 정했다.
밤에 호수에 비친 달을 본 이윤후가 달을 아로새긴 장원이란 뜻으로 지었고 검성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의천문에 머무는 검성은 늘 누월정에서 머물렀는데 오늘도 검성은 누월정의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엔 제자인 은정연과 천통자가 있었다.
특히 천통자는 검성 앞에서 벌 서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검성이 말이 없자 조급해진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문주님...?”
천통자는 검성이 침묵을 지키자 참지 못하고 불렀으나 이내 검성의 표정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었다.
“내가 다시 무림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라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검성은 침묵을 깨고 천통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무림맹에 그 뜻을 전했지만 현재 무림맹의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불마사와 만독곡의 일로 약화된 무림맹의 문파들이 재건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천무맹에서 약화된 문파들의 영역을 계속 침범하고 이권을 빼앗아가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
침을 튀기며 말을 하던 천통자는 검성의 한마디에 굳어버렸다. 검성의 말처럼 검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천통자는 더욱 말문이 막힌 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검성이 무림맹의 손님들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출입시켜준 것만으로도 검성은 자신과의 약조를 지킨 셈이었다.
더 요구하는 것은 불가했지만 천통자는 괜히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