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임시 맹주(盟主)

“서문 가주와 남궁 가주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두 세가의 배려로 피해 문파들에 더 많은 지원이 갈 것입니다.”

소천개는 두 세가의 가주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두 세가를 이번 지원에 넣냐 아니냐에 관해 말들이 많았고 적지 않은 소요가 있었던 상황이라 두 세가의 양보는 무림맹을 이끄는 세 사람에게는 큰마음의 짐을 덜 수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강 대협의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훈훈한 분위기 속에 갑작스레 질문을 던진 이는 천군회(天君會)의 회주인 한오명이었다. 그의 질문에 관심을 가지는 이도 적지 않았고 반대로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유는 천상검공 강유는 불마사와의 일전을 앞두고 맹주직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현재 맹주직이 공석이었고 그 자리에 벌써부터 욕심을 내는 문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강유의 몸 상태가 이전으로 돌아 올 수 없음을 안 자들은 맹주 자리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검공의 몸 상황은 이미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무공을 다시 사용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임시 맹주를 뽑아야 할 듯 합니다.”

소천개의 말에 다들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상황을 알고 있던 자들도 있었지만 강유의 몸 상태가 심각한 것을 처음 아는 이들도 있었기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새로운 무림맹의 수장이 누가 될지에 이목이 더 집중되었다.

“검공께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임시가 아닌 제대로 맹주를 뽑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팽가의 장로 팽지열이 의견을 말했다. 팽가의 가주가 공석이었고 팽가의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그가 팽가를 대신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 자리한 문파들이 무림맹의 전체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후 제대로 된 소집을 통해 그 자리에서 맹주를 뽑을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하고 수습할 일도 많기에 임시 맹주라도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 이해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임시맹주로 추대되는 분은 향후 맹주를 뽑는 자리에서도 개방과 무당 소림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소천개는 이미 회의 전에 현우자와 혜원 대사와 의견을 충분히 교환한 상황이었고 고된 일의 연속이 될 임시 맹주 자리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삼파는 임시 맹주를 지지하기로 약조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진 문파들이 충분히 욕심을 낼만한 자리였으나 향후 무림의 정세나 배신한 세력과 이곳에 남아 피를 흘린 문파간의 차후 알력이 있을 것을 감안하면 임시 맹주의 자리는 껄끄러운 자리가 분명했다.

소천개의 말이 끝나자 다시 소란스러워지며 각기 의견을 나누는 자들도 있었고 생각에 빠진 자들도 있었다.

‘과연 가시밭길이 확정인 무림 맹주의 자리에 나서는 자가 있을 것인가?’

소천개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고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홍아를 느끼곤 뒤로 돌아 홍아를 보았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까?”

소천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홍아에게 물었다. 홍아는 선천적으로 무공을 익힐 수가 없는 몸이라 전음이 불가했기에 소천개는 그들 주위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소천개의 물음에 홍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림 맹주의 자리가 험난한 길이 예정되어있다곤 하나 맹주의 권력과 위세를 생각한다면 서로 하려고 달려들 것이 분명해요. 거기에 소림 무당 개방의 지원이 예정 되어있는 자리라면 더욱 욕심을 낼 거예요.”

홍아의 말에 소천개는 미소를 지었다. 소천개도 그렇게 생각했다. 강유가 부상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강유의 몸 상태를 파악하려고 든 문파가 적지 않았다.

“임시 맹주의 선정은 어떻게 하게 되는 겁니까?”

한오명이 침묵을 깨고 물어왔다.

“지원자와 추천받은 인원을 모아 이 자리에서 모두의 의견을 모아 선정할까 합니다.”

소천개의 말에 다시 모두의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모용 가주께서 나서주시는 건가요?”

모용석이 손을 들고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가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추천을 할까 합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모용석이 추천을 하겠다하자 모두 그가 누구를 추천할지 궁금해 하였다. 세가연합의 일원이다보니 오대세가 중 한명이 추천 되겠구나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누구를 추천하실 생각이십니까?”

“남궁세가의 가주이신 남궁인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모용석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 놀라며 모용석과 남궁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남궁세가는 이미 세가연합회를 탈퇴한 것이 전 무림에 알려져 있었고 모용석이 당연히 오대세가 중 한명을 추천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남궁인의 이름이 나온 것은 예상외의 결과였다.

“우금으로 인해 어려웠던 무림맹을 잘 이끄셨던 남궁인님이 어떻게 보면 지금의 위기에서도 적격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임시가 아닌 세가연합회에서는 차후 맹주에도 남궁인님에게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모용석의 발언에 모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세가연합회를 탈퇴한 남궁세가의 남궁인을 맹주직에 추대한 것은 물론이고 차후 지지선언까지 이어지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인 남궁인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저는 맹주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용 가주의 추천은 감사하지만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남궁세가 주위의 문제만으로도 현재 신경 쓸 것이 많아 다시 세가를 떠나는 것은 힘듭니다.”

남궁인은 정중히 사양했고 남궁세가가 사왕련과의 싸움으로 인해 재정비 중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그에게 강권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향후 무림의 정세와 권력에 욕심이 있었다면 남궁인도 탐낼만한 자리였으나 그는 그런 것에 욕심이 없었다.

모용석은 남궁인의 거절에 못내 아쉬운 듯 남궁인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세가연합회를 탈퇴한 남궁세가와 다시 연을 맺기 위해 남궁인을 추천한 것이었고 다른 세가들과도 미리 말을 맞춰놓은 상황이었다.

남궁세가가 빠지고 들어온 군룡세가가 무림을 배신하고 이곳을 떠난 이상 그들과 연을 맺는 것은 세가연합회의 존폐마저 위험할 여지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검성과 연을 맺고 있는 남궁세가와 다시 가깝게 지내고자 남궁인을 추천한 것이었다.

“임시라면 내가 잠시 맡아도 되겠습니까?”

한 사람의 발언에 모두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는 바로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환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소천개는 예상치 못한 서문환이 스스로 나서자 조금은 당황하며 물었다.

“전 부족합니까?”

“아니요... 부족하다니요... 서문 가주께서 이런 일에 나서주실 줄은 몰랐기에 놀라워서 그럽니다.”

소천개는 답하며 현우자와 혜원 대사를 슬쩍 보았다. 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대충 누가 나설 지 만약 마땅한 자가 없다면 소천개가 맡을 생각도 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서문환이 임시 맹주 자리를 맡아준다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릴 것이 분명했다. 현재 무림의 가장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약선의 가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검성과도 관련이 있는 가문이었다.

향후 문제가 될 문제도 서문세가가 나선다면 쉽게 해결 될 가능성도 높았다. 어떻게 보면 최고의 적격자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천통자.”

서문환이 나서면서 소란스러워진 와중에 조용히 듣고만 있던 천통자가 손을 들자 모두의 시선은 다시 천통자에게 집중되었다. 천통자는 현재 검성의 의천문을 대변하여 자리하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관심을 받고 있었다.

“검성께서 여러분께 전하라고 한 말이 있어 지금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통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고 검성의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의 관심도는 더욱 올라갔다. 이에 천통자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즐기며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은 채 나름 근엄한 척하며 입을 떼었다.

“의천문은 서문 가주께서 임시 맹주에 오르게 되면 무림맹에 적극적으로 향후의 일에 대해서도 힘을 보태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검성께서 그렇게 이야기하신 것이 맞습니까?”

천통자의 말에 소천개는 믿기지 않는 듯 재차 물었고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검성께서는 약선의 동생이신 서문환님이 임시맹주로 있는 동안은 무림맹의 일을 도울 것이라 하셨습니다.”

“잘 된 일입니다.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소천개는 예상치 못한 검성의 행동에 정말로 기쁜 듯 크게 웃었다. 검성이 나서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향후 일은 쉽게 풀릴 가능성이 높았고 가장 큰 문제가 될 배신자들에 대한 일도 쉽게 풀릴 지도 몰랐다.

“서문환이 임시 맹주로 있는 동안이라는 말이 걸리긴 하지만 잘 된 일이지?”

“물론이에요. 아마 서문 가주께서 임시 맹주자리를 맡는 대신 검성의 도움에 대한 약조를 받아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

소천개는 홍아의 말에 조금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그럴 거예요. 검성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절대 무림의 일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서문환이 임시맹주를 하겠다고 직접 나선 것은 약선의 뜻일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서문환님은 알려진 대로라면 검성만큼 무림 일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니까요.”

소천개는 좌중이 서문환과 천통자의 말로 인해 소란스러운 틈을 타 독순술을 이용하여 홍아와 의견을 나누었다.

“그렇지. 서문 가주가 가주가 된 이후 거의 무림 활동이 없다시피 했으니... 그럼 네 말은 서문 가주는 약선의 뜻을 따르기 위해 맹주가 되고자 한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검성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검성은 아마 이제 무림의 일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천통자가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한다면 모든 무림이 알게 되고 서문 가주가 맹주의 자리 있는 동안 모든 일이 수월해지겠죠. 약선과 검성 모두를 등에 업는 셈이니까요.”

“그렇구나... 서문 가주가 괜히 나선 것이 아니겠지.”

소천개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고 천통자의 발언으로 인해 좌중은 소란스럽긴 했으나 서문환이 임시 맹주가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이는 없었다.

“임시 맹주 자리에 지원하시는 분이 더 없으시다면 서문환님을 임시 맹주로 정하려 하는데 반대 혹은 자신이 맹주에 지원하겠다는 분 있으십니까?”

소천개의 말에 좌중은 침묵했다. 서문환이 나서고 천통자가 힘을 보태기로 한 이상 누구도 불만을 나타내거나 나서기 힘들었다.

그렇게 무림맹의 임시 맹주는 서문세가의 서문환이 맡기로 결정이 났고 맹주 자리를 노리는 문파들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