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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39화 (239/251)

239화- 상처 입은 맹수(猛獸)(1)

검성도 잠깐의 대결이었지만 활불과의 대결이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검에 합을 제대로 맞춰주는 상대를 만난 것은 다시 깨어난 이후 처음이기도 했다.

복수를 위해 만났던 권왕과 신투는 약해져 검성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전대의 노마두였던 환영신마 조차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지만 이렇게 합이 맞는 활불과의 대결에서 검성도 만족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적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활불이 이상하게도 보였다.

물론 검성도 그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검성은 흑월도존이라는 대안이 있고 이윤후라는 제자가 있었기에 무림의 편에 선 것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무림에 대한 일에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게 분명했다.

검성이 인외의 존재가 되어갈수록 모든 감정이 무뎌지고 있었고 선과 악 그리고 정파와 사파 뭐 그런 것들은 검성에게 절대적인 중요요소가 아니었다. 그저 이윤후를 위해 그리고 차후 흑월도존과 겨루어보기 위한 두 가지 말곤 검성에겐 중요한 것이 없었다.

활불은 검성이 다시 무림에 나타났다고 들었을 때 자신의 좋은 상대가 되어 줄 것을 예감했다. 이전의 무림 정벌 때는 싱겁다 못해 너무 쉬웠다. 결국 실패했지만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무림을 발아래 둘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무림 정벌은 달랐으면 했다. 검성이란 존재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보았고 역시나 모든 일에 검성이 개입하면서 조금씩 일이 틀어졌다. 그때마다 활불은 내심 기뻤다.

쉬운 일은 재미가 없었고 자신이 크게 나설 일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검성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좋은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겨루어보니 더욱 탐이 났다. 이렇게 쓰러뜨리기 보단 수하로 두고 싶어진 것이었다.

‘검성을 수하로 둔다면 대업은 더욱 쉽게 이루어지겠지...그리고 나의 목표는 그저 무림의 지존이 되는 것만이 아니야. 쓸 만한 자를 최대한 추슬러 모든 무림의 무공서를 수집하여 새로운 나라는 세우는 것... 그것을 위해선 저 자가 필요하다.’

활불은 무림 정벌은 그저 단계일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워 불마사의 교리를 국교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리기 위해선 많은 강자들과 무림의 무공이 필요했다.

사마령을 시켜서 많은 무림인들을 회유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미 충성의 대가로 각 문파의 절기들의 사본을 받은 상황이었고 그것을 빌미로 그들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두 사람 사이 침묵이 잠시 흘렀지만 검성이 또 다시 먼저 움직였다.

파바밧-

검성의 검이 밝아오는 여명에 반사되어 빛나며 활불의 머리와 가슴을 순차적으로 찔러갔고 활불은 여유 있게 피하며 주먹을 뻗었다.

“거절인가? 아쉽군. 나와 함께 한다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려 했는데 말이야.”

“시끄럽군.”

검성은 자신의 검을 피하며 떠들고 있는 활불이 조금은 정신 사나운지 검에 점점 속도를 붙여갔다.

파밧- 파바밧-

검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자 활불의 입이 자연스럽게 닫아졌고 더는 여유롭게 검을 피하진 못했다. 검성의 검이 워낙 사납고 빨라 지켜보던 자들은 검을 눈으로 쫓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촤악-

검성의 검이 활불의 가슴 쪽 승복을 길게 베었고 그와 동시에 활불은 쌍장을 뻗어 검성을 떼어내며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처음부터 입을 좀 닫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검성은 정천검의 검 끝에 매달린 베어진 활불의 승복을 낚아채 던졌고 검 끝에 붉은 피가 맺힌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검성의 검이 처음으로 활불의 몸을 베어낸 것이었다.

그것을 본 무림맹의 무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반대로 불마사의 승려들은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탐색전은 이제 그만 해야 할 것 같군.”

“내 생각과 같군. 날이 밝아오고 있어. 얼른 너희들을 치워버리고 싶은 맘이야.”

활불의 말에 검성은 미소 지었고 활불 또한 크게 웃었다. 검성과 이렇게 합을 나누는 것이 기분이 좋았고 점점 고조되고 있는 기분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더 즐기고 싶었다.

촤악-

츠츠츠-

활불은 검성에게 찢어진 승복을 찢어 발겨 벗어던졌고 그와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핏빛 기류가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깡마른 그의 얼굴처럼 몸도 마른 몸이었고 혈천강기를 몸에 두텁게 감싸자 마치 갑옷을 두르는 듯 했다.

‘탁헌의 황룡신갑(黃龍神甲)과 비슷하군. 권장술을 주로 쓰는지라 전투 방법이 비슷한 건가?’

검성은 활불이 혈천강기를 마치 갑옷처럼 두르는 모습이 권왕의 기술과 닮아있다 생각했다. 일전에 복수를 위해 찾아갔을 때도 권왕은 저렇게 자신의 황룡신기를 몸에 두른 채 검성을 상대했는데 활불도 마찬가지로 행동하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움직이도록 하지.”

파밧-

“이런...?!”

쐐애액-

활불은 혈천강기를 전신에 두르자 마치 전신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 핏빛 기운이 번뜩이고 있었는데 단숨에 검성의 품에 파고들어 주먹을 뻗자 혈강이 소용돌이치듯 발산되었다.

촤자자자작-

생각지 못한 활불의 속도에 놀란 검성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활불의 일권에 격중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활불의 주먹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매섭게 쫓아오고 있었다. 이에 검성은 검을 뻗어 비뢰검결의 방어초식인 비뢰광망(飛雷光網)을 펼쳤고 뇌전의 그물이 펼쳐지듯 활불의 권강과 부딪쳐갔다.

콰과과과-

두 기운은 마치 그물에 걸린 거대한 짐승의 모양새처럼 이리저리 부딪치다 사그라졌고 이어 검성과 활불은 다시 어우러져 부딪치기 시작했다.

검성의 검은 빠르고 정확했지만 활불은 치명타는 피해내며 얕은 검들은 혈천강기로 튕겨내었다.

활불의 권장은 매섭고 진중했는데 검성 역시 권강에 옷가지들이 찢어지긴 했으나 치명타는 피한 채 두 사람의 교전은 어느새 오십여 합이 넘어서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이 길어지고 어느새 날이 밝으면서 살아남은 불마사와 무림맹의 무인들 거의 모두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숨을 죽인 채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 결과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양 세력 간의 싸움은 암묵적으로 멈춰진 상황이었다.

양 세력의 사활이 걸린 대결이었지만 당사자인 검성과 활불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전혀 생사결(生死結)을 벌이는 이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검성이 공세를 주도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활불이 공세를 주도할 때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엔 은은한 만족감의 미소가 띄워져있었다.

마치 친우들이 벌이는 비무와 같은 모습이었으나 실상 그들의 손속은 남달랐다. 활불의 권장은 천지를 부수려는 듯 패도적이었고 검성의 검은 태산을 베어 넘길 듯 강력했다. 서로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다면 상대가 어떻게 될지는 눈에 뻔히 보였고 서로 치명타를 피한 채 공방을 거듭하고 있었다.

“더 물러서라. 휘말리면 죽는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양 세력의 인물들은 검성과 활불의 대결로 인해 생긴 기류에 휘말리지 않게 더욱 물러서고 있었고 이미 많은 수가 검성과 활불의 대결 여파로 인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자도 있었다.

촤라라락-

검성의 검이 마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듯한 착시와 함께 활불의 급소를 노리며 찔러왔다.

“검의 기질이 바뀌었군?”

활불은 검성의 공격을 피해내며 말했다. 검성의 검이 워낙 변화가 심하고 빨랐기에 모두를 피하는 것은 활불이라도 불가능했고 혈천강기를 두른 두 손으로 적절히 요혈을 노려오는 검은 튕겨내고 있었다.

혈천강기를 두른 활불이었지만 검성의 검을 직접적으로 잡아내거나 맞서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검성의 검이 뇌정을 일으키고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맞설 경우 혈천강기를 베어낼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기에 활불은 철저히 검을 빗겨내며 검격을 튕겨내고 있었다.

파바바밧-

검성의 검은 활불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빠르고 매섭게 활불의 요혈만 노렸다. 곧 검성의 검은 화려하게 눈을 현혹하며 한 점을 노리는 것이 아닌 동시에 여러 곳을 노리면서 허와 실을 감추는 만변(萬變)의 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촤악- 촤작-

‘곤란하군... 더 까다로워...’

검성의 검이 공격 일변도로 변하자 활불은 검성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해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성이 쾌검식 위주의 검을 사용할 때는 그래도 눈이 적응하고 몸이 체화되면서 대응하기 편했으나 만변의 검으로 바뀌면서 활불은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박-

검성의 허초를 잡아내자 활불은 기회라 여겨 내력을 단숨에 끌어올려 자신의 배후로 파고든 검성을 확인하고 뒤돌며 쌍장을 내뻗었다.

“이젠 끝이다!”

활불은 강유를 쓰러뜨렸던 혈천대수인(血天大手印)을 펼쳤고 허초로 시선을 끌고 자신의 배후에서 공격하려던 검성을 발견하고는 이게 마지막 한수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콰과과광-

하지만 혼신의 힘을 쏟은 공격이 바닥에 격중 되었을 때 활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런... 이것도 허초였나?”

활불은 낭패감을 느끼며 검성의 기척을 찾으려 돌아섰을 때 한줄기 검광이 그를 맞이했다.

샤악-

“크흑...”

번쩍인 검광은 활불을 두 동강 낼 듯 했으나 활불이 대처를 하여 얼굴을 스치는 정도에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로인해 활불은 얼굴에 화끈함을 느껴야했고 왼쪽 이마에서 눈 그리고 볼까지 혈선(血線)이 그어지며 피가 흘러 내렸다.

“얕았나?”

검성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비뢰섬(飛雷閃)의 일격이 고작 활불의 얼굴을 베는 정도로 끝이 나자 조금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셔야했다. 활불의 허점을 찾아 제대로 노린 일격이었지만 치명상을 주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웠기에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검성인데도 표정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네놈이... 감히 나의 몸에...!”

활불이 분노하자 그의 주위 공기부터 떨려왔고 그가 발산해내는 기운들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상처를 입히다니... 나의 실책이군.’

분노한 활불의 모습에 검성은 내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기연으로 환우삼성의 일인인 비뢰검제의 비급을 얻기 전 사냥꾼의 아이로 살아왔던 검성은 상처 입은 맹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버지에게 똑똑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진하야. 너도 사냥꾼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은 꼭 명심해야 한다. 작은 사냥감이라해도 절대 얕보지 말아야하고 어설프게 상처를 입혀서는 절대 안 된다. 성처 입은 짐승은 그 무엇보다 위험하단다.”

아버지와의 기억이 많지 않은 검성에게 아버지의 가르침은 무림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큰 울림이 되어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사냥꾼이었던 아버지의 그 말은 무림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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