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활불의 무위
“제법 강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검성이나 약선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강유를 바라보고는 아쉬운 듯 이야기하는 깡마른 승려는 바로 활불이었다. 종남파에 도착한 후 활불은 검성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강한 기운이 느껴져 찾은 곳이 바로 강유가 있는 곳이었다.
“그대는... 누구요?”
강유는 자신의 앞의 상대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보통의 인물이 아닌 것은 감지하고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그는 이미 만전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강유라고 하오. 무림에서 천상검공(天翔劍公)이라 불러주기도 합니다.”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대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예의를 차릴 장소는 아니었지만 강유는 자신을 먼저 알리고 상대의 정체를 듣고자 했다.
“내가 아주 잘못 오지는 않았군. 천상검공 강유라면 무림맹주로군. 기억나 예전에 봤던 기억이 있어. 그땐 네 이름을 몰라 네가 무림맹주라는 것을 몰랐군.”
강유의 정체를 듣고는 활불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만 아는 기억이었지만 무림이 불마사의 혈겁이라 불리는 사건 당시 젊었던 강유도 불마사에 대항하여 참전했고 그때 활불은 강유를 본 기억이 있었다.
“나를 아시오? 나는 그대를 본 기억이 없는데?”
강유는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마주한 상대를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견은 사마군인 활불을 강유가 기억할 리가 만무했다.
“나도 너와 길게 이야기를 섞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말은 이만해야겠다.”
후욱- 파방-
“크헉...!”
활불은 가볍게 좌수를 늘어뜨렸다가 빠르게 내뻗었고 그 작은 움직임에 주변의 공기가 압축되었다 폭사되듯 튕겨져 강유를 향해 쏘아졌다. 갑작스러운 빠른 움직임에 강유도 검을 들어 막으려했으나 검막을 채 펼치기도 전에 덮친 충격파에 그대로 격중당해 밀려났다.
“이런... 위력이... 커헉!”
강유는 밀려난 채 그 충격으로 피를 토해내었고 내부가 진탕되어 장기에 손상이 온 상황이었다. 사전 동작 없이 가볍게 뻗은 장법의 위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고 자신이 호신강기로 나름 상쇄를 했는데도 큰 충격을 받자 강유는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활불은 자신의 혈천마장(血天魔掌)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강유를 보곤 조금 실망한 듯 혀를 찼다. 강유는 활불의 가벼운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충격 받았지만 활불이 펼친 일장은 혈천마공이었고 높은 경지에 도달한 활불이었기에 작은 동작에 극강의 공력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것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실망스러운데? 네놈 무림맹주라고 하지 않았나?”
스윽-
활불은 말과 함께 신형이 사라졌고 강유는 놀라며 검을 바로 휘둘렀다. 강유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듯 해보였으나 그곳에 활불이 나타났고 검을 가볍게 피하고는 다시 일장을 날렸다.
“같은 수에 당하지 않는다.”
강유는 몸을 비틀어 활불의 공격을 피했고 이어 재차 검을 움직여 활불을 베어갔다. 강유의 검은 정직했다. 변화가 많지 않았으나 그 하나하나에 실린 무거움은 강력했다.
파밧-
자신의 검을 쉽게 피해내는 활불을 보자 강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발을 멈추었고 검에 내력을 실었다.
“천익파천(天翼破天)!”
촤자자자작-
강유의 검이 움직이자 수 갈래의 검기가 활불을 찢어발길 듯 매섭게 날아들었다. 초식명처럼 마치 거대한 날개가 활불을 감싸듯 검기가 폭사되었다.
스윽-
하지만 활불은 당황하지 않고 양 손을 펼쳐 둥근 원을 그리듯 휘저었고 그와 동시에 쌍장을 내뻗었다.
“혈천대수인(血天大手印)!”
콰과과과-
활불이 내뻗은 쌍장에서 맹렬한 기운이 집중되었다 발산되었고 그 기운은 점점 커지며 강유의 천익파천과 맞부딪쳐갔다.
콰과과광-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 부딪치자 천지가 진동할 듯 한 굉음이 일었고 기의 폭발로 인해 분진이 어지럽게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때마침 산바람이 불어와 분진을 걷어내었고 그곳엔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진 강유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쓰러진 곳엔 마치 부처님의 거대한 손바닥이 찍힌 듯 손바닥 자국이 바닥에 깊게 패여 있었고 그 가운데 강유가 쓰러져있었다.
“내가 무림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군. 공동파 역시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는데 무림맹주라는 너까지 이렇게 약할 줄이야.”
활불은 쓰러져있는 강유를 바라보며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무림정복의 야욕을 가진 활불이었으나 그 역시 무공을 익힌 자답게 강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전혼대법으로 성공적으로 사마군의 몸을 장악하고 이전의 몸 상태로 만드는데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 속에 활불이 가장 갈구한 것은 피의 혈투였다.
그가 이전에 속했던 원융종파는 불마사의 종파 중 가장 약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활불의 등장과 함께 원융종은 가장 강력한 종파가 되었고 활불의 주도하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불마사의 모든 종파를 통합하고 하나가 되어 무림정벌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 활불에게 서장에선 상대를 찾기 힘들었고 무림에서조차 그와 맞대결로 버티는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활불은 태산북두라는 무당과 소림에 희망을 걸었고 이전의 문파들이 쉽게 무너진 탓에 무당을 얕보고 혼자 장문인과 장로들 모두와 대결을 벌이다 그들의 동귀어진 수에 당한 것이었다.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활불에게 현재는 더욱 무림에서 맞상대를 찾기 힘들었고 환우십강의 일인인 강유조차 활불의 삼초지적(三招之敵)도 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맹주님?!”
두 사람의 격렬한 부딪침으로 생긴 굉음과 소란으로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몰렸고 도착한 무림맹의 무인들은 쓰러진 강유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귀찮군.”
츠츠츠-
“어...?!”
“허공섭물?”
모여든 십 수 명의 무림맹의 무인들은 활불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동시에 공중에 떠올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중에 떠오른 이들은 발버둥 쳤으나 자신을 제어 할 수가 없었다.
“버러지들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꺼져라!”
화륵- 화르륵-
“크아악!”
“살려... 크하악!”
공중에 떠오른 무림맹의 무인들은 불꽃에 휩싸이며 그대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이었다. 허공섭물로 모두를 공중에 띄운 채 삼매진화를 이용하여 그대로 불태워버린 활불은 모두가 죽자 손을 내렸다.
쿠궁- 쿵-
하늘에 떠올랐던 모두가 일제히 바닥에 떨어졌고 탄내가 진동하며 뒤이어 도착한 불마사의 승려들조차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저항도 못한 채 산채로 탄 시체를 보는 것은 그들이라도 보기 힘든 참상이었다.
그리고 그때,
콰과광-
굉음이 들렸고 모두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일제히 돌아보았다. 종남파의 중앙 하나의 건물이 불에 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었다.
“종남파의 조사전(祖師殿)이 무너진 듯 합니다.”
활불을 향해 다가와 말하는 이는 바로 갈거파의 수장인 오거 틴레였다.
“자네가 계획한대로 일이 진행되는 듯 하군. 사방에서 들리는 곡소리가 제법 들을 만해.”
활불은 기분이 좋은 지 크게 웃었다. 오거 틴레가 종남파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노린 것은 종남파의 조사전이었다. 각 문파의 조사전은 가장 문파에서 중히 여기는 곳 중 하나로 이곳이 무너진다면 그 문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었다.
“곳곳에 저항이 심한 곳이 있지만 종남파의 장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나도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군.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왔더니 저 녀석이었고 말이야.”
활불은 쓰러져있는 강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상검공이군요? 살아있습니까?”
오거 틴레는 쓰러진 강유를 알아보고는 물었다. 그녀는 실질적으로 불마사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고 있었기에 무림의 주요인사에 대한 초상화도 확인한 터라 강유를 바로 알아보았다.
“살아는 있을 거다. 혈천대수인이 격중당하는 순간 나름 호신강기로 버티는 모습이었으니 말이야. 호신강기가 파괴되면서 이제 다시는 무공을 쓰지 못할 몸이 되었겠지만 말이야.”
활불은 강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유는 자신의 노림수였던 천익파천이 깨어지면서 모든 내력을 소모하여 호신강기로 버티려했지만 역부족이었고 호신강기가 깨어지면서 몸이 아예 망가지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활불의 말처럼 단전이 깨어지고 내력이 흩어져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다. 목숨이 붙어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무림인으로써 생명은 끝이 난 상황이었다.
“인질로서 가치가 있을지 모르니 포박해두어야겠어요.”
“인질이 필요할까? 오늘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죽을 것인데?”
“그래도 정인군자라 불릴 정도로 무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니 쓰일 때가 있을 겁니다. 어차피 무공도 잃은 상황이면 걱정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마음대로 하도록 해. 그건 그렇고 검성은 어디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 이곳에 없는 게 아닌가?”
“이 난리 통 속에 이곳에 있다면 이미 모습을 드러냈을 텐데요?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검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당 놈들이나 처리하러 가야겠군.”
“그러시죠. 전 이곳을 수습하고 강유를 데려가도록 하죠.”
“그렇게 해.”
대답과 함께 활불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강유를 포박하여라. 그를 산 아래로 이송하도록 해.”
활불이 사라지자 오거 틴레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오거 틴레는 자신의 목에 닿은 차가운 검에 놀라 굳어버렸다.
“누구...?”
오거 틴레는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을 확인하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거 틴레가 불마사의 수장급들 중 무공이 떨어진다 한들 그것은 그들에 비해서지 절대 낮은 실력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거 틴레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접근하여 검을 들이댈 실력은 무림에서도 손가락에 꼽혔고 그녀는 대충 누군지 짐작도 하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저들을 멈추어라.”
“검성이십니까?”
오거 틴레는 천천히 검을 겨눈 자를 바라보았고 그곳엔 검성이 있었다.
“모두 행동을 멈추어라!”
갑작스러운 오거 틴레의 외침에 상황을 수습하던 불마사의 승려들은 그녀를 보았고 그녀가 위협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검성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그녀는 손을 들어 모두의 행동을 막았다.
“너희의 상대가 아니다. 경거망동 하지 마라. 검성이시다.”
오거 틴레의 말에 모두의 동요가 있었고 검성이라는 말에 다들 놀라 행동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