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235화 (235/251)

235화- 분노한 군자의 검

퍼버버벅-

“크학...”

“커헉...”

무승들의 봉이 이윤후를 내리칠 찰나 장영(掌影)이 하늘에 수놓아지며 불마사의 무승 전부를 일제히 쓰러뜨렸고 그들은 충격으로 밀려나 바닥에 튕겨졌다.

탁-

쓰러진 승려들 사이로 날아들어 이윤후의 앞에 착지한 인영은 바로 약선 서문애령이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따라오길 잘했구나.”

약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신을 잃은 이윤후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마사의 기습이 시작되고 종남파로 올라오는 모든 길을 봉쇄한 무림맹은 모든 길목에 인원을 배치했다.

이윤후가 길목 중 하나를 맡게 되자 약선은 걱정되어 검성에게 말하고 뒤늦게 따라온 것이었다.

“또 무리를 했구나? 기혈이 들끓고 내상이 심해...”

약선은 이윤후의 맥을 잡아본 뒤 바로 눕히고는 가슴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혈도를 짚고는 품 안에서 종이에 쌓인 단약을 꺼내었다.

바스락 종이를 벗겨낸 단약은 붉은색이 도는 환단이었고 약선은 바로 이윤후의 입으로 그것을 향했다. 정신을 잃어 단약을 삼키기 어려워보였지만 단약은 신기하게도 이윤후의 입에 들어가 침에 닿자마자 녹아버렸고 약선은 바로 이윤후를 일으켜 앉혔다.

우웅-

약선은 이윤후의 등에 두 손을 가져간 후 내력을 주입하기 시작했고 따뜻하고 온화한 약선의 기운을 이윤후는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다.

약선의 처치는 내력을 나눠주기 위함 보다는 먹은 단약의 기운을 이윤후의 몸에 퍼지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약선이 먹인 적령단(赤靈丹)은 약선 평생의 연단술의 정예가 담긴 환단이었고 몸의 보양과 내력 증진 등 모든 면에서 효과적인 단이었다. 특히 서문애령은 쉽게 먹이기 위해 침에 닿는 것만으로 분해가 되도록 만든 탓에 의식을 잃은 이윤후에게 먹이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사방이 뚫린 이런 위험한 곳에서 하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이윤후의 상황이 좋지 않았고 주위 기척도 없었기에 약선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츠츠츠-

약선은 이윤후의 운기를 강제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이미 이윤후가 수련동에서 수련하는 동안 몇 차례 운기를 도와준 경험이 있었기에 일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윤후의 운기가 시작되자 한편에 있던 상월검의 한기가 더욱 강해져 이미 얼어붙은 타에 도르제를 넘어서 이윤후와 약선에게까지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기물(奇物)이구나? 지닌 것으로 내공을 안정화시키고 향상시켜준다는 빙정으로 만들어진 검답게 제 주인의 위험을 알고 자신의 기운을 나눠 주려하고 있어.’

약선은 자신과 이윤후를 휘감은 빙정의 한기가 이윤후에게 흡수되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듯 보았다. 상월검은 이윤후가 운공 할 때마다 반응하여 이름답게 서릿발 같은 한기를 내뿜었고 그것을 이윤후가 흡수하는 모습은 약선도 몇 차례 지켜보긴 했지만 지금의 상월의 기운은 평상시와 달랐다.

이윤후의 안색이 점차 좋아지고 있었고 약선도 이윤후의 등에서 손을 떼곤 그대로 다시 이윤후를 눕혔다. 그리고는 타에 도르제가 얼어있는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놀랍군. 자체적으로 냉기를 뿜어내는 무기는 백천한옥(白天寒玉)으로 만든 백천옥검(白天玉劍)이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듯 고수를 제압할 만한 냉기를 뿜어내는 무기라니...”

약선은 타에 도르제의 왼쪽 어깻죽지에 박힌 상월검을 바라본 채 신기한 듯 보았다. 무림에 음양(陰陽)의 기운을 가진 무기는 제법 있었다.

약선이 말한 백천옥검이 그러했고 천년화망(千年火蟒)의 뿔로 만든 적린검(赤燐劍)은 화망의 화기를 머금고 있었다.

“죽지는 않았군. 윤후와 대결하면서 내력과 체력이 모두 저하된 상황에서 상월검을 쥐려다가 이렇게 된 것인가?”

약선은 타에 도르제의 얼어있는 모양새를 보고 대충 상황을 알 것만 같았다. 상월검은 이윤후의 손길 외엔 무엇도 거부하는 신물이고 인외의 고수인 검성과 약선 정도 되면 상월검이 어떤 저항을 하더라도 쥐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월검이 뿜어내는 한기를 제어하는데도 적지 않은 내공이 소모되는데 타에 도르제는 내력 소모가 극심한 와중에 상월검을 잡으려하는 바람에 남아있던 내공도 모두 상월검의 한기를 억누르는데 소진했고 제어 자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금의 꼴이 된 것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죽음에 이르겠지만 검을 회수해야하니...”

약선은 상월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적- 쩌저적-

후두두둑- 파삭-

약선이 상월검의 검병을 잡자 거짓말처럼 상월검이 내뿜던 한기가 잦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타에 도르제를 감싸고 있던 얼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음 잔해들이 바닥에 닿자 부셔지며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녹아 없어졌고 타에 도르제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파바바밧-

약선은 쓰러진 타에 도르제를 향해 탄지공을 날려 여러 곳의 혈도를 동시에 제압했고 이에 타에 도르제가 순간 꿈틀 거렸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너희에게 맡겨도 되겠느냐?”

약선의 외침에 검은 인영 셋이 나타났고 그녀 앞에 부복했다. 나타난 이들은 바로 비천의 은위단이었다.

약선은 은위단이 검성과 이윤후 곁을 따르고 있음을 알았고 그들의 기척 또한 느끼고 있었다.

“혈도를 제압해두었으니 너희가 데려가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것을 먹이거라.”

약선은 품 안에 작은 약병을 꺼내어 그들에게 건네었다.

“특별히 정제된 산공독(散功毒)이다. 깨어나기 전에 먹이고 단단히 구속하여 데려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은위단은 걱정했던 부분을 약선이 알아서 다 설명해주며 대안을 주었기에 걱정을 거둔 채 받아드릴 수가 있었다.

약선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이윤후의 곁으로 가 이윤후를 안아 들었다. 이윤후의 덩치가 제법 큰 편에 속했지만 약선에게는 문제되지 않았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이윤후의 몸이 약선의 손길을 떠나 허공에 떠오르자 타에 도르제를 데려가려던 은위단 중 하나가 놀라 말했다.

약선은 이윤후를 손대지 않은 채 종남파를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윤후는 공중에 몸이 들어 올려진 채 약선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약선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자 은위단도 빠르게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종남산 아래에는 아직 불마사의 잔당들이 남아있었기에 타에 도르제를 데리고 하산하려면 각별히 조심해야했다.

***

종남파.

종남파는 이미 불마사가 침입하여 싸움으로 인해 곳곳이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전각마다 파괴되어 멀쩡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오는 길목마다 모두 방어진을 편성하여 불마사의 침입을 최대한 막으려했지만 길이 나지 않은 곳으로 파고 든 적들로 인해 방어선이 무너졌고 수적차이로 인해 지금은 모든 길목이 뚫려 불마사의 모든 인원이 종남파로 밀려든 상황이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고 현재 이곳은 지옥도(地獄道) 그 자체였다. 불마사는 불가의 한종파였지만 살계(殺戒)를 금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교리를 믿지 않는 자들을 죽여 교화시킨다는 사상을 가진 위험한 종파였다.

그렇기에 불마사의 승려들은 자신들이 죽인 자들은 계도(啓導)시켰다고 믿고 그 수만큼 몸에 자문(刺文)을 새겨 그것을 자신들의 자부심으로 삼았다.

“크하하~ 이렇게 내가 계도한 수가 이제 오십이 넘어가는군. 어리석은 자들을 계도하는 일은 보람이 있지.”

거대한 몸집을 가진 승려는 종남파의 제자로 보이는 두 사람을 쓰러뜨리고는 바로 자신의 승복 윗도리를 벗어 제쳤다.

그의 왼쪽 가슴 위엔 그가 죽인 자들의 수를 뜻하는 사십여덟의 자문이 새겨져있었다.

“흉악한 놈이구나? 승려라면 살생을 금해야하거늘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다니?”

“누구냐?”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놀란 불마사의 승려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창을 들었고 그곳엔 무림맹주인 강유가 서있었다.

이미 싸움에 휘말린 듯 그는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피가 아닌 그가 벤 적들의 피였고 강유가 얼마나 많은 자들을 베었음을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불마사의 승려도 강유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경계하고 있었다. 강유임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그의 기도에 압도되어 창을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며 너의 수하들로 보이는 수십의 승려를 베었다. 이곳엔 네가 마지막이니 누군가 너를 도와주러 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척-

강유는 피를 채 닦지도 못한 검을 들어 승려를 향해 겨누었다.

“네가 오늘 여기서 죽인 자들이 오십인 것이냐?”

“아니오... 지금까지 내가 계도한 자들의 총 수가... 이 둘을 합쳐 오십이오...”

강유의 물음에 승려는 조심스레 답했다. 이미 그는 강유의 기도에 압도되어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고 대답을 듣고자한 강유가 압박하던 기운을 풀어주었기에 답할 수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너희 불마사의 흉적들을 얼마나 벤 줄 아느냐?”

“모르겠소...”

“여기서 벤 것만 오십이 넘는다. 하지만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니지. 아무리 너희가 흉적이라 한들 살생을 한 내 죄는 내가 죽을 때까지 사죄하고 살아서 그 죄를 씻지 못한다면 사후에 그 죄를 받아야겠지. 그런데 너희는 살생을 자랑하는 것인가?”

츠츠츠-

“크헉...”

채쟁-

강유의 기운이 바뀌며 승려의 전신을 압박해오자 그 기운에 압도당한 승려는 그만 창을 놓치고 말았다. 정인군자라 불리며 불교에 심취한 강유는 승려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승려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고 살생을 금하고 고기와 화기(火氣)를 멀리하며 생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불마사의 승려의 행태에 강유는 더욱 화가 나 있었다.

“살생을 금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너희를 살려 돌려보낸다면 계도를 핑계로 많은 자들을 죽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너희를 이곳에서 하나도 살려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용서... 용서를... 커헉...”

투둑-

강유의 검에서 검광이 번쩍였고 그와 동시에 승려의 몸이 무너지며 머리와 몸이 두동강 났다. 상대를 늘 존중하며 적에게도 존경받는 강유였지만 오늘 그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고 마치 나찰과 같았다.

스윽-

상대가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강유의 얼굴은 잠시 괴로움이 비쳤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자신이 혈귀가 되어 손속에 정을 두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고 아무리 불마사의 승려라 해도 피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어떻게든 괜찮은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를 도와주러 가야한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강유는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려는 순간 자신을 압박하는 기운을 느끼고는 바로 검을 겨누었다.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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