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상월검(霜月劍)
이윤후는 비뢰검결의 유일한 보법인 비류행보(飛流行步)를 펼치며 타에 도르제의 정신을 사납게 했고 한번은 만변의 유려한 검을 다음엔 뇌전같이 쾌속한 검을 교차로 펼쳤다.
이윤후의 검은 여전히 날카롭고 빨랐으나 좌수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타에 도르제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막아내고 있었고 그도 지쳤지만 이윤후가 팔을 다친 이후 자신에게 승산이 있음을 알자 오히려 타에 도르제가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회전하는 묵봉에 부딪치는 것만으로 이윤후는 몸에 타격이 있었기에 철저하게 피해야했는데 이윤후의 공세가 무뎌지고 타에 도르제가 공격을 주도하면서 모두 피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이윤후가 휘두른 묵봉을 피하려 하늘로 뛰자 타에 도르제는 회전하는 묵봉을 힘으로 잡아끌어 방향을 틀었고 허공에 뜬 이윤후를 향해 봉을 휘둘러왔다.
촤앙-
“크헉...”
쿠당탕-
이윤후는 검을 들어 봉을 막았으나 그 충격으로 그대로 튕겨져 나갔며 바닥을 거칠게 굴러야했다. 보통의 공격이라면 이화접목의 수로 기운을 흘려버리면서 충격을 와해시켰겠지만 타에 도르제의 봉은 패도적이고 회전이 가미되어 있어 그것도 쉽지 않아 충격을 그대로 받아야했다.
큰 충격을 받은 이윤후였지만 금세 몸을 일으켜 다시 검을 잡았고 타에 도르제에게 달려들었다.
“보기보다 몸이 튼튼한 녀석이구나.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숨을 고르던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가 다시금 달려들자 질리는 듯 표정을 보이며 봉을 휘둘러 이윤후를 떼어 내려했다.
두 사람의 수준 높은 공방전에 불마사의 승려들도 무림맹의 무인들도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이미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산을 오른 불마사의 본대들은 이미 종남파에 다다른 듯 종남파가 있는 쪽에서도 굉음과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무림맹의 무인들은 빠르게 종남파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이윤후의 상월검이 한기를 내뿜으며 타에 도르제의 급소를 찔러들었고 타에 도르제는 그 순간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돌진해왔다.
촤악-
이윤후의 검이 타에 도르제의 왼쪽 어깨에 깊숙하게 박히며 피가 솟구쳤다. 타에 도르제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나 이윤후의 안색이 나빠졌고 검을 바로 뽑으려했으나 검은 바로 뽑히지 않았다.
검을 쥔 손이 타에 도르제의 손에 붙잡혔고 그 순간
퍼벅-
"크헉..."
이윤후의 검을 쥔 손을 낚아 챈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의 손을 붙잡자마자 발길질로 이윤후의 명치를 노렸고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급소가 차이는 것은 막았지만 이윤후는 상월검을 놓친 채 그대로 뒤로 튕겨져 버리고 말았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타에 도르제가 봉을 이용해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검을 잃고 물러난 이윤후에겐 낭패인 상황이었다.
“크하하- 드디어 재빠르게 뛰어다니던 날파리의 날개를 떼어낸 듯 하구나? 크흑...”
쓰러진 이윤후를 보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듯 타에 도르제는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역시 치명상을 입은 상황이라 웃다가 피를 토했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불마사의 승려들이 걱정스러운 듯 보았지만 타에 도르제는 손을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승려들을 내쳤다.
타에 도르제는 싸움을 길게 끌어갈수록 자신에게 불리함을 느끼고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대결을 여기서 끝내기를 작정했고 그렇기에 이윤후의 검을 직접 몸으로 받아주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어깨에 큰 상처를 입긴 했지만 이윤후에게 검을 뺏은 것은 큰 성과였고 이미 왼팔을 쓰지 못하는 이윤후가 검을 빼앗기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각했다.
이윤후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주위를 살피고는 쓰러진 무림맹의 시신들 중 검을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려 했으나 이내 생각을 읽히고는 불마사의 승려들에게 포위당했다.
“어렵게 너에게 검을 빼앗았는데 또 다시 그 손에 검을 내어줄 수는 없지?”
타에 도르제는 자신의 어깨에 상월검이 박힌 채로 포위된 이윤후의 곁으로 묵봉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섰고 타에 도르제가 오른발을 끌고 있음을 눈치 챈 이윤후는 자신에게 승산이 아주 없지 않음을 느꼈다.
‘노승이 오른발을 다쳤구나? 하지만 검이 없이는 내게 승산이 없다...’
이윤후는 타에 도르제의 허벅지에 큰 자상이 있음을 보았고 그로인해 타에 도르제가 오른발이 불편함을 눈치 채었다. 하지만 그 역시 왼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권장술을 쓰기에도 불편했다.
그런 임기응변이 통할 상대도 아니란 게 가장 문제였다.
하지만 그때,
쩌저적-
“크아악!”
기묘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타에 도르제의 비명성이 울렸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이윤후와 포위하고 있던 불마사의 승려들 모두 놀라 타에 도르제를 보았다.
“크헉... 이 한기(寒氣)는 도대체 무엇이냐? 크흑...”
이윤후에게 다가가며 자신의 어깨와 가슴사이에 박힌 상월검을 뽑으려한 타에 도르제는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에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의 어깨는 상월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서려 얼어붙고 있었다.
주인 외에 손길을 거부하는 상월검이 이윤후가 아닌 타에 도르제의 손길이 닿자 한기를 뿜어낸 것으로 평소의 타에 도르제였다면 내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수준이었을 것이나 이미 내력 소모가 심하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점에 도달한 그는 상월검이 뿜어내는 한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뽑으려 잡은 오른손과 함께 그대로 얼어버린 타에 도르제는 몸의 반절가량이 상월검이 내뿜는 한기에 얼어 굳은 상태였다.
‘내가 죽을 자리가 여기가 아니구나.’
이윤후는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리곤 내력을 쥐어짜듯 끌어올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윤후를 포위했던 불마사의 무승들은 혼란에 빠졌고 그에게 내력을 끌어올릴만한 시간이 주어지자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벽풍탄지(碧風彈指)!”
파바바밧-
이윤후는 열 손가락을 튕겨 탄지공을 쏘았다.
“크헉...”
“컥...”
이윤후의 탄지공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불마사의 무승 여럿이 동시에 쓰러졌고 그제서야 무승들은 다시 이윤후를 포위하며 덮쳐오기 시작했다.
“일단 검성의 제자를 사로잡아라! 죽여서는 안 된다!”
무승들 중 직책이 높아 보이는 중년 승려가 소리치자 일제히 대열을 갖추며 움직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타에 도르제의 상태가 이윤후의 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보고 이윤후를 사로잡아야 저것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윤후를 사로잡으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윤후가 자신을 포위한 수십의 무승을 쓰러 뜨리는데는 일각(一刻)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타에 도르제에 의해 팔 하나를 못 쓰고 곳곳에 상처를 입은 몸에 검까지 없었으나 불마사의 일반 무승들을 상대하기엔 박투술로도 충분했다.
이윤후는 비뢰검결 외에도 약선의 동굴에서 수련하며 약선에게 벽풍탄지와 권장술을 배웠다.
이윤후가 배운 비뢰검결은 검법과 한가지의 보법만으로 이루어져있었기에 권장술은 따로 익힌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약선이 그것을 알고 권장술을 알려준 것이었다. 서문세가의 가전무공은 알려줄 수 없었지만 서문세가의 서고에 존재한 모든 무공서를 익힌 약선이었기에 이윤후에게 맞는 몇 가지 무공을 알려주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약선 어르신이 알려주신 권장술이 없었다면 위험했을지도... 검이 없는 싸움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겠어.’
이윤후는 쓰러져있는 불마사의 승려들을 훑어보곤 다짐했다. 약선에게 권장술을 배워두지 않았다면 검을 잃은 시점에서 당황하여 아무것도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보통의 고수들이라면 검이 없다한들 손을 검으로 삼는 다던가 나뭇가지를 검으로 삼는다는 등 응용을 했겠지만 이윤후에겐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기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크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옮기려던 이윤후는 갑자기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정신을... 차려야..."
털썩-
이윤후는 거듭된 대결과 싸움에서 많은 부상을 입고 있었기에 누적된 피로와 상처로 인해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타에 도르제와의 대결로 인해 정신적 소모도 극심했는데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었다.
이윤후가 쓰러지면서 가장 놀란 이는 바로 타에 도르제였다. 상월검의 한기로 인해 움직임에 제한을 당한 상황에서 이윤후가 마무리를 지으러 다가오기에 끝을 감지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급변한 것이었다.
"크으윽..."
이윤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타에 도르제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 움직이려 해보았으나 여전히 상월검의 한기로 인해 얼어버린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현재 모든 내력을 끌어 모아 전신이 얼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힘에 부쳐오고 있었다.
이미 검이 꽂힌 왼쪽 어깻죽지부터 검을 잡은 오른손을 포함하여 왼쪽 절반이 얼어버린 상황에서 상월검의 한기로 얼음부위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크흑..."
타에 도르제는 충혈 된 눈으로 이미 쓰러져버린 이윤후를 바라보고 크게 탄식했다. 이윤후가 쓰러진 마당에 마무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쩌저저적-
타에 도르제의 마음이 꺾이자 상월검의 한기가 그를 삼키기 시작했고 타에 도르제의 전신은 얼음으로 뒤덮히며 이윤후를 노려본 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두 사람 모두 대결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이미 종남파에서 소란이 일자 종남파로 복귀한 상황이었고 남아있던 불마사의 무승들은 지친 이윤후를 상대하다 모두 쓰러져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죽지 않았던 불마사의 무승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상황을 살피더니 타에 도르제와 쓰러진 이윤후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종주께서는 괜찮으신가?"
"숨이 끊어지진 않은 듯 하나 상황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얼음이 깨어지지도 않습니다."
타에 도르제의 곁으로 간 두 사람의 승려는 얼음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고 있었으나 타에 도르제를 뒤덮은 얼음은 그들의 힘으론 깨어지지 않았다.
"살아있으면 되었다 모두 이리로 와라. 검성의 제자의 숨통을 끊는 것이 먼저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승려의 수는 다섯으로 그들 역시 이윤후의 공격으로 인해 멀쩡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거동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윤후를 먼저 살폈던 승려가 이윤후가 살아있음을 신호하자 방심하지 않고 모두 모여 이윤후의 숨통을 끊으려는 속셈이었다.
"혹시 모르니 경계를 하여라."
"네. 현재 숨은 미약하게 쉬고 있지만 깨어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 봉을 들어라."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외침에 모두 봉을 들었고 타에 도르제의 황교종파의 소속인지라 다들 봉을 무기로 쓰고 있었다.
"내리쳐라!"
쐐액-
외침과 함께 다섯 자루의 봉이 쓰러져있는 이윤후를 향해 내리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