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전말(顚末)
“복수를... 무림의 위선자들을... 처단... 커헉-!”
여인의 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고 그녀의 가슴과 등을 관통한 검에 의해 그녀가 절명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쓰러진 여인을 내려다보는 장신의 사내는 무심한 듯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마령. 네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너희를 택한 나의 선택은 역시 틀리지 않았어.”
쓰러진 여인은 바로 불마사의 천지쌍존 중 지존이자 두뇌 역할을 했던 사마령이었고 그런 그녀를 죽이고 내려다보는 사내는 바로 불마사의 활불 사마군이었다.
활불은 불마사의 진영으로 돌아오자마자 총공세의 준비를 사마령에게 지시한 후 그녀의 요청에 따라 독대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활불은 그녀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활용가치가 다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살려 줄 것을 그랬어.”
마르고 깡마른 활불은 퀭한 눈으로 쓰러진 사마령을 바라본 채 조금은 아쉬운 듯 말했다. 전대 활불인 그는 무당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의 합공에 의해 큰 부상을 입고 환영신마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도망쳤고 그 후 무림의 원한을 가진 사마군과 사마령을 데려와 후일을 도모했다.
성공적으로 사마군의 몸과 정신을 전혼대법으로 장악한 그는 차후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사마령을 제거한 것인데 놀랍게도 그녀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무림에 대한 복수를 자신에게 부탁할 뿐이었다.
“우직하고 미련하기까지 내가 너희를 나의 그릇으로 삼은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이 들 만큼 말이야.”
활불은 쓴 웃음과 함께 말했다.
“자신의 진짜 원수가 활불임을 알았다면 저렇게 자신의 죽음에 순응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군요.”
활불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았고 그곳엔 불마사의 유일한 여성 수장인 갈거파의 오거 틴레가 있었다.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나봅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선 오거 틴레는 차갑게 식어가는 사마령의 시신 곁으로 가 자신이 걸친 승복 외투를 벗어 덮어주었다.
“불쌍한 아이였어요. 살려 줄 수는 없었습니까?”
오거 틴레는 활불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보았다. 이미 세수가 칠십에 가까워 주름진 얼굴엔 사마령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나보군. 사마령과 사마군을 이용할 수 있도록 그들의 가문을 멸망시킨 것은 자네의 공이 아니었나?"
"속아서 그렇지만 불마사의 일을 도맡아왔던 아이였어요. 처분에 대한 고민을 해달라고 아니... 내가 설득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을 텐데요."
"모든 것을 알았을 때 가장 위험한 녀석이니 살려둘 수가 없지. 그건 자네도 잘 알 텐데? 그리고 환영신마가 주검이 되어 도착한 이상 저들도 내 정체에 대해 알 가능성이 높으니 더욱 살려둘 수 없었다."
활불의 말에 오거 틴레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활불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추궁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활불이 무림정벌을 나섰을 당시 오거 틴레는 갈거파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스승인 갈거파의 수장을 따라 참전했었다. 그녀는 특히 영특하여 갈거파 수장의 신임을 받았고 그녀의 뛰어난 오성을 알아봤던 활불은 그녀에게 중임을 맡겼다.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과 작전을 그녀가 주도했고 그녀의 주도하에 일사분란하게 불마사는 무림을 장악해갔다. 하지만 순조롭게 무림정벌이 마무리 될 시점에 활불의 오만함이 일을 그르쳤고 힘에 의해 뭉쳐진 불마사의 종파들은 활불의 큰 부상과 함께 모두 흩어져버렸다.
당시 모든 작전의 중심에 있었던 오거 틴레는 활불을 믿을 만한 환영신마에게 부탁했고 부상으로 서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무림에 숨어 요양하고 있었던 활불을 보살폈던 것이 바로 그녀였다.
활불은 오거 틴레에게 전혼대법(傳魂大法)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충분한 검토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했던 그녀는 전혼대법에 적합한 인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무림에 원한을 가지고 자신들에게 협조를 할 수 있는 인물로 말이다.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한 오거 틴레는 진천문(震天門)이 갑자기 강성해지며 하북일대를 평정하고 이에 기존의 문파들이 진천문을 경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을 꾸몄고 그것이 바로 봉황금시(鳳凰金翅) 사건이었다.
환우삼성(寰宇三聖)의 무공이 담긴 봉황금시를 육합문이 얻었는데 그것을 안 진천문주가 욕심내어 육합문을 멸문시키고 그것을 빼앗아 봉황금시의 비밀을 풀고 환우삼성의 무공을 얻어 강해졌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진천문의 갑작스러운 강세에 불만이 많았던 기존 하북성의 문파들은 소문이 퍼지자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림맹에 연줄을 대어 진천문을 압박했고 환우삼성의 무공이라는 말에 탐욕스러운 무림인들은 하나 둘 진천문의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오거 틴레의 안배대로 무림인들은 진천문이 얻었다는 환우삼성의 무공을 탐하여 사파를 부추겨 진천문을 공격하도록 했고 다수의 문파들이 사파로 위장해 진천문의 습격을 도왔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화를 당한 진천문은 가까스로 후계자인 사마군과 사마령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오거 틴레의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진천문이 무너지면 이미 점찍어 두었던 사마군을 대피시킬 것이라 생각했고 진천문주의 성향을 파악해두었던 그녀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갔다.
그 후 오거 틴레는 환영신마를 시켜 그들의 도주를 적절하게 도우며 그들이 무림에 원한을 깊이 가지도록 치욕스러운 도주를 이어가게 했다. 환우삼성의 무공을 탐한 많은 무림인들이 그들의 도주를 쫓았고 그 과정에서 사마군과 사마령은 온갖 치욕을 당한 채 겨우겨우 도주를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에 환영신마의 도움을 받은 그들은 활불 앞에 섰고 활불의 말에 속아 지금까지 이른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오거 틴레의 안배였다.
“사마령은 도대체 언제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활불이 전혼대법으로 옮긴 내공과 혈천마공을 모두 갈무리하고 폐관을 마쳤을 때까지도 그런 내색이 없이 열심이었던 아이였는데 아마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눈치를 챈 게 아닌가 싶군요.”
오거 틴레는 사마령이 눈치를 채었다 해도 가장 최근일 것이라 생각했다. 활불이 사마군에게 전혼대법을 실행하고 오랜 기간 폐관하였기에 같이 있을 시간 자체가 없었고 가장 최근에서야 폐관을 마치고 나왔으니 말이다.
“사마령을 만났을 때 내가 실수를 했었나보군. 아마 그때 눈치를 챈 게 아닌가 싶어.”
활불은 자신이 폐관을 마치고 사마령을 처음 만났을 때 아마 자신이 무언가 사마군과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눈치 빠른 사마령이 아마 그때 눈치 채고 모든 것을 조사하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하여간 대업이 코앞인데 위험인물을 살려두는 것은 예전처럼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자네도 이해해주길 바래. 자네가 사마령을 그간 아주 아껴왔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사마군과 자신을 속인 것을 안다면 사마령이 내게 협조할 리가 없지.”
“네. 어쩔 수 없죠.”
오거 틴레는 더 이상 활불에게 질책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여겼다. 사마령을 자신이 아끼긴 했지만 불마사의 대업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 괜한 감정싸움은 좋지 않았다.
“사마령의 역할은 이제 자네가 하도록 해. 불마사의 두뇌 역할은 원래 갈거파의 몫이 아닌가?”
“네. 알겠습니다. 현재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고 모두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활불의 명령에 오거 틴레의 눈빛이 바뀌었고 그녀의 대답에 활불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드디어 무림의 쥐새끼들을 한꺼번에 처리 할 기회가 왔군. 특히 무당놈들은 이번 기회에 모두 제대로 멸문을 시켜줄 것이야. 크하하!!!”
활불은 크게 박장대소했고 그 웃음은 모든 진영을 울릴 정도로 내력이 실려 있었다. 오거 틴레도 활불이 그간 얼마나 긴 시간을 참고 인내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말리지 않았다.
첩자들이 눈치 챈다한들 이제 곧 총공세를 감행할 예정이기에 알려져도 상관이 없었다.
***
콰과광-
인시(寅時)가 지난 새벽 깊은 시간 불마사의 총공세가 시작되었고 종남산을 오르는 모든 산행로를 비롯해 사람들이 다니지 않던 험한 길마저 불마사의 무승들은 거침없이 오르며 종남파로 향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불마사의 기습이었지만 이미 활불의 도착을 알고 있었고 이런 기습이 올 수 있음을 대비하고 있었던 무림맹의 대처도 나쁘진 않았다.
“저지선을 천천히 물리면서 상대해라. 절대 맞상대를 하지 말고 최대한 무리해서 들어오는 자들을 처리해라!”
무림맹의 저지선은 제법 탄탄했고 무엇보다 불마사의 거침없는 돌진을 맞상대하며 큰 피해를 보지 않고 무리한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불마사의 공세가 거세질 때 즈음에 무림맹은 바로 저지선을 끌어올리며 큰 격돌을 회피하고 있었고 그런 행동이 무림맹에겐 큰 피해를 피한 채 불마사의 피해를 늘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에서 차이가 크다보니 무림맹의 그런 현명한 대응도 결국엔 점점 저지선이 뚫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험한 길로 파고들었던 불마사의 무승들이 뒤를 장악하고 튀어나오면서부터 무림맹은 천천히 저지선을 올리는 일도 불가능한 채 밀리기 시작했다.
“크허억...”
“크헉...”
“모두 죽여라! 짓밟고 군림해라. 불마사의 힘을 보여주어라!”
황교종파(黃敎宗派)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의 등장과 함께 불마사의 기세는 더욱 올랐고 그의 묵봉의 휘두름에 무림맹의 무인들은 속절없이 쓰러져나갔다. 이미 뒤를 장악당한 탓에 도망도 가지 못한 채 모두 전멸 당했고 기세가 더욱 오른 불마사의 무승들은 더욱 거칠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촤자자작-
“크학...”
“커헉...”
섬광이 번쩍이며 산을 먼저 오르던 불마사의 무승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쓰러진 승려들을 사이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신검(神劍)이 나타났다!”
누군가 사내를 알아보고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도망치던 무림맹의 무인들은 그 소리에 모두 돌아오고 있었다. 나타난 이는 바로 새로이 신검이라 불리고 있는 이윤후였다.
희고 투명한 검인 상월의 주인이자 무림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검성의 제자로 모든 이의 주목을 받는 탓에 불마사의 인물들도 그를 알아보고는 산을 거침없이 오르던 행동을 멈춘 채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겨우 살아 도망갔기에 무서워 더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꽤나 배포가 큰 녀석이구나?”
이윤후를 알아본 타에 도르제는 묵봉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고 이윤후도 그를 보곤 상월검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당신의 전진은 여기까지입니다.”
“크하하- 설마 네가 나의 길을 막아서겠다는 것이냐? 너와 나의 차이는 이미 전날에 알려주었을 텐데?”
이윤후의 말에 타에 도르제는 크게 웃었다.
“제가 당신을 막아 낼 것입니다. 제가 있는 한 당신이 이 산을 올라 종남파에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윤후의 단호한 말에 타에 도르제의 웃음은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