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맹주의 선언(宣言)
종남산 아래 불마사의 진영에 구슬픈 곡소리가 울렸고 길게 늘어선 행렬사이로 두 개의 관이 여러 명의 승려에게 들려 옮겨지고 있었다.
장례의식에 참여한 모두의 표정은 침통했고 장례의식을 주관하고 있는 갈거종파의 수장인 오거 틴레는 비통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의 동료이자 형제인 영마파의 탁룽 그리고 월명종의 텐진 라흐파는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우리의 풍습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천장(天裝)을 치를 것이니 모두 마지막 인사를 건네시오.”
오거 틴레의 말이 끝나자 모두 곡을 하기 시작했고 특히 수장을 잃은 영마파와 월명종파는 특히나 크게 울기 시작했다. 서장의 풍습인 천장은 화장을 하는 여건이 좋지 않았던 서장의 보편적인 장례방식이었으나 수장급들의 지도자인 두 사람은 화장을 하여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고 높은 지위의 사람일수록 본을 보여야하는 위치기에 불마사는 모두 천장을 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들의 시신은 불마사로 돌아가 안치된 후 종파인들이 모두 복귀하는 시점에 정해진 영산에 천장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시신을 잘게 잘라 산에 뿌려 새들의 먹이로 주고 뼈를 잘게 빻아 시신을 공양하는 천장은 사악하고 덕이 없는 자는 새들조차 먹지 않는다고 다들 믿었기에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영마파와 월명종파의 남은 자들은 수장들의 장례절차를 위해 모두 복귀를 결정했으나 사마령이 수장의 복수를 직접 하지 않을 거냐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장례는 미루고 불마사의 본사에 시신을 안치하고 모두 복귀 후 천장을 치룰 예정이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시신이 든 관은 마차에 실렸고 마차가 출발하자 모두 다시 한 번 통곡 소리가 울렸다.
***
장례절차가 끝이 나자 사마령은 각 종파 수장들에게 회의 소집령을 내렸고 모두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의 요청으로 진행하기로 한 총공세는 검성의 기습으로 인해 취소될 수밖에 없었고 차후 방침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기에 사마령은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이었다.
“각 진영은 모두 피해를 수습하셨는지 모르겠네요. 불로 인한 피해는 천막이 불타고 크게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검성과 약선 그리고 검성의 제자인 신검 이윤후가 기습한 영마파와 월명종 그리고 황교종파는 피해가 있어 그에 대한 논의가 좀 필요합니다. 수장 없이 남은 영마파와 월명종에 대한 통솔도 어느 종파가 해주실 지도 정해야하고요.”
사마령은 조심스레 모두를 보고 말을 꺼내었다. 두 수장의 죽음과 장례의식으로 인해 다들 표정이 좋지 못했고 각 종파마다 서로 견제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다들 친분이 있어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지존(地尊). 활불의 복귀는 아직입니까?”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꺼낸 자는 갈거파의 여승 오거 틴레였다.
“활불께 최대한 빠른 복귀를 요청해두었습니다. 빠르면 오늘 늦게 나 늦어도 내일은 도착할거 같다고 연락을 받은 상황입니다. 활불께서 다들 자중하고 도착 후 바로 총공세를 시작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다행이군. 죽은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검성과 약선의 목을 비틀어 그들의 영전 앞에 맡겨야할 것이야.”
사마령의 말에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는 분을 삭이며 말했다. 이윤후와 겨루고 난 후 타에 도르제는 탁룽과 텐진 라흐파가 죽은 것을 알고 당장 종남산을 오르려고 하는 것을 모두가 막아서야했다.
타에 도르제가 성격이 불과 같고 모두의 견제를 받던 자이긴 했지만 누구보다 불마사에 대한 애정과 모두를 존중했기에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제 하루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활불께서 복귀하시면 불마사의 무림행은 시작 될 것이고 종남산에 모여 있는 자들만 격퇴한다면 무림의 모든 문파들은 자연스레 무릎을 꿇고 저희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사마령의 말에 모두 기분이 풀린 듯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유명을 달리한 동료의 복수와 지금까지 웅크리며 있어야했던 울분을 터뜨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들 들뜬 표정이 되었다.
사패 세력들은 늘 무림을 자신의 발아래 두려고 견제하며 부딪쳐왔지만 무림의 정복에 가장 가까웠던 곳은 불마사 뿐이었다. 전대 활불의 진군에 무림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나갔고 그 당시 불마사의 모든 종파들은 무림을 자신들의 발아래로 두고 포교활동을 하는 것을 꿈꿔왔다.
하지만 활불의 오만한 행보로 인해 불마사의 대업은 무너졌고 또 다시 내부분열로 인해 하나가 되어 협력했던 모든 종파들은 갈라지며 얼마 전까지 서로 대립해왔다.
다시금 활불이 등장하며 전대의 스승들과 종사들이 하지 못했던 업적을 자신들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 꿈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
종남파 대회의실.
무림맹에 모인 각 문파들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결전을 앞에 두고 무림맹주인 강유의 소집으로 모두 모인 상황이었다.
“모두 자리하신 듯 하니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회의의 진행은 그간 무당의 현우자가 도맡아오고 있었지만 오늘은 개방의 방주인 소천개가 주도하고 있었다.
“현재 저희의 소식통에 의하면 활불은 내일 정오 이전에 내지는 쉬지 않고 온다면 오늘 저녁 늦게면 저들의 진영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소천개의 말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활불이 도착한다는 것은 결전이 시작되는 것이었기에 다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모용가주님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게요?”
소천개는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석이 손을 들자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소문을 듣자하니 불마사에서 활불이 도착하기도 전에 공격을 감행하려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음... 그것이...”
소천개는 잠시 난감한 듯 앉아있는 맹주 강유와 무당의 현우자를 보았고 말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다시 입을 떼었다.
“네. 사실입니다. 조금 늦게 안 사실이지만 검성께서 환영신마의 시신을 그들의 진영에 보낸 것에 격분하여 종파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활불이 오기 전에 당장 총공세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합니다. 뭐 결국 검성과 약선 그리고 신검의 활약으로 공격해보기 전에 그들의 계획은 좌절되었지만요.”
소천개는 조금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그의 말에 다들 안도를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활불이 도착하면 바로 싸우게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당장 안 싸운다는 말에 안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검성께서는 모든 것을 예상하고 기습을 하신 거군요?”
“대단하십니다. 검성께서 움직이지 않으셨다면 저희가 위험할 뻔하지 않았습니까?”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그저 검성의 기습으로 인해 저들이 당장 쳐들어오지 않게 된 것을 기뻐하며 검성에 대한 찬양을 했고 소천개는 다소 씁쓸한 이 상황에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소천개도 검성과 약선이 저쪽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기습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나중에 천통자를 통해 물으니 그것은 아니었다고 들었었다.
‘다들 저렇게 좋아하니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
소천개는 굳이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생각하고 가슴에 묻었고 다시 입을 떼었다.
“불마사는 이미 기습에 대한 수습을 하고 대대적인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활불이 돌아오면 바로 종남산을 올라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천개의 말에 다들 동요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미 다들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걱정되는 것은 다들 같은 마음이었다.
“방주님. 오고 있다던 팽가와 남궁세가 그리고 서문세가의 지원은 아직 멀었습니까?”
구석에 앉아있던 금환문(金環門)의 문주인 범원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일어나 말했고 모두가 궁금했던 부분이라 대답을 할 소천개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갑자기 조용해지며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소천개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집중하여 모두를 둘러보곤 말했다.
“팽가는 이곳에서 복귀하다 돌아오는 것이라 오늘 저녁 이전에 도착할 것이라 연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서문세가의 지원은 아직 시일이 걸리는 바... 내일 만약 총공세가 시작된다면 제때 도착이 힘들 듯 싶습니다.”
팽가는 제때 도착한다는 말에 다들 안도했지만 서문세가와 남궁세가의 지원이 늦는다는 소식에 다들 장탄식(長歎息)이 흘러나왔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소천개는 헛기침을 하여 모두의 시선을 다시 집중시켰다.
“각 문파는 데리고 온 제자들과 수하들의 점검과 준비를 철저히 해주시고 무림의 명운은 이제 벌어질 싸움에 걸려있으니 총력을 다해주셔야 합니다. 불마사의 혈겁 때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과 문파들이 유린당했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소천개의 말에 다들 눈빛이 달라졌고 다소 기운 빠져있던 모두가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었다. 자신들의 안위와 문파만을 걱정하는 이기적인 자들은 이미 모두 빠져나갔던 터라 남은 문파들의 수장들은 소천개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했다.
“다들 걱정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석에 앉아 침묵을 지킨 채 회의를 지켜보던 무림맹주 강유가 자리에서 일어서 말했고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강유가 무림맹주 자릴 여러 번 거절해 왔다는 건 무림맹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정인군자라 불리는 그는 의와 협으로 대변되던 시절의 협사이긴 했지만 자신이 크게 주목받는 자리와 세력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그간 많은 세력의 영입을 거절했고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친우들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예전 검성의 행보와 닮았다하여 그를 정인군자라 불렀고 어떤이는 무림에 남은 마지막 의인(義人)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만큼 무림맹이 한때 우금의 사유 세력화되고 문파들의 개인주의가 팽배하던 시점에 강유 같은 인물은 특별했기에 무림인들도 그를 더욱 치켜세우는 자들도 많았다.
강유가 무림맹주의 자리를 수락했다고 그가 무림의 권력에 욕심낸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무림의 위기에 어쩔 수 없이 소림과 무당의 설득에 억지로 앉아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 강유는 무림맹주가 되고도 개인적인 일을 지시하거나 다른 일을 도모한 적이 없었고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발언하는 모습은 보기 힘든 모습이었기에 다들 그의 입에 주목하고 있었다.
“검성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활불은 자신이 상대하겠노라고.”
강유의 말에 다들 환호를 했다. 검성이라면 활불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겨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다들하고 있었지만 검성이 돌아온 이후 정파에 적대적인 발언을 많이 하였기에 선봉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다들 의심하고 있었는데 강유의 말은 모두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저는 이 시간부로 무림맹주 직을 내려놓겠습니다.”
강유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며 자신의 품안에서 백옥패(白玉牌)를 하나 꺼내어 앞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무림맹주에게 주어지는 상징이었다.
“맹주 자리를 내려놓고 전 한사람의 검수로써 검성의 뒤를 따르려합니다. 불마사와의 일전에 최선봉에 설 것입니다. 그러니 맹주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니 모두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강유의 말에 회의실은 충격으로 침묵이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