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비천회주(秘天會主)
무림맹의 기습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면서 불마사가 종파회의에 논의했던 당장의 결전에 대한 이야기는 밀리게 되었다.
인명피해 자체는 적었지만 종파의 수장 둘이 목숨을 잃었고 화공(火攻)으로 인해 많은 진영이 불탔기에 수습을 하는데 꽤나 시일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태행산(太行山) 심처(深處).
한 중년 여인이 아무런 인적이 닿지 않을 이곳에 나타났고 그녀가 나타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흑의 복면인이 나타나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은위단(隱衛團)의 암영(暗影). 회주를 뵙습니다.”
나타난 복면인은 비천회의 유일한 무력집단이자 임무를 위해 각지에 퍼져있는 비천회의 모든 이들을 보호하는 은위단의 수장인 암영이었다.
그리고 그가 무릎 꿇은 여인은 바로 당대의 비천회주였다.
“암영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좋은 소식인가요? 아님 나쁜 소식?”
비천회주는 현재 무림의 큰 위기를 앞두고 제를 올리기 위해 태행산의 모든 정기가 모이는 이곳에서 제를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암영이 직접 찾아온 것은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함께 있습니다.”
암영의 말에 비천회주의 고은 아미가 찌푸려졌으나 이내 표정을 감춘 채 물었다.
“좋은 소식부터 듣죠.”
“검성과 약선께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도적이라? 검성께서 주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무슨 말이죠?”
비천회주는 아직 상황을 몰랐기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검성과 약선 그리고 신검이라 불리는 검성의 제자 이윤후가 독자적으로 오늘 새벽에 기습을 감행하셨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요.”
“믿기지 않은 소식이군요. 그저 방관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검성이 직접 움직이시다니? 대성공이라 하면 어떤 성과를 말이죠?”
비천회주는 기대하며 물었다. 암영의 성격상 허언을 하거나 부풀리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대성공이라 하면 아주 큰 성과가 확실히 있었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었기에 기대하게 되었다.
“검성께서 영마종파의 탁룽을 제거했고 약선은 월명종의 텐진 라흐파를 제거하셨습니다. 검성의 제자 이윤후는 황교종파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를 만나 그와 겨루다 부상을 입고 철수했다 합니다.”
“불마사의 수장 둘을 제거한 것은 꽤 큰 성과군요. 검성께서 제자를 엄청 신경 쓴다 들었는데 괜찮은가요?”
“네. 천통자의 말론 그리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곁에 약선도 계시고 오히려 약선이 영약을 써서 치료해서 검성의 제자는 회복 이후 더 강해질 것 같다고 본회에서 이윤후와 더욱 돈독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고 보고를 해왔습니다.”
“그렇군요. 아마 이번 일이 끝난다면 무림은 의천문 검성과 그의 제자인 이윤후를 중심으로 새로운 틀이 짜이겠죠?”
“네. 그렇게 될 듯 합니다. 이미 여타 무림 문파들도 의천문의 위세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합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요.”
비천회주는 암영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구파일방을 비롯하여 정파들은 우리가 계속 위기를 대비해야한다고 정보를 계속 주었음에도 내실을 다지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몸집만 키우다 현재 이런 위기를 맞이했는데 지금 상황에 의천문을 시기하고 견제하려하다니... 정말 이젠 화도 안 나는군요.”
비천회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고 암영은 말이 없었다. 비천회는 그간 모든 정보를 취합하며 그 정보를 적극적으로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에 대외적으로 제공해왔지만 현재 위기를 대비한 곳은 소림과 무당 그리고 불마사와 내통한 화산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은한에 대한 보고도 있는데 들으시겠습니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암영이 어렵게 말을 꺼냈고 은한의 이름이 나오자 비천회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해주세요.”
암영은 비천회주가 자신이 비천회에서 내쫓은 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꺼려하자 다시 한 번 권했고 허락을 받았다.
“은한... 아니 은정연은 검성의 의천문에 몸을 담았습니다. 검성께서 직접 요청도 있으시기도 했고 비천과 인연을 끊었다는 이야기에 의천문에 몸을 의탁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비천회주는 은정연이 자신처럼 비천회에 메인 몸이 되지 않길 바랐고 은정연이 차후 비천회주의 직에 욕심이 없다 해도 자신의 남편처럼 권력의 다툼에 휘말릴 수 있었기에 미리 연을 끊은 채 그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의천문으로 보낸 것이었다.
“은정연은 검성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네? 검성의 제자라니? 사실인가요?”
생각지 못한 암영의 말에 비천회주는 놀라 물었다.
“네. 검성께서 직접 자신의 제자가 되어 라고 하셨다더군요. 천통자의 말로는 은정연이 차후 비천에서 권력다툼이 생길 시에 휘말릴 여지를 알고 그 개입자체를 끊고자 제자로 삼은 것이라 생각된다 하였습니다.”
“고마운 일이군요. 검성께서 그 아이를 많이 챙겨주시는 군요. 검성에게 보낸 제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요. 암영. 고마워요.”
비천회주는 진심으로 암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암영은 그간 그녀가 비천회주가 되자 그녀를 지키고 보호해준 인물이었고 그녀의 남편이자 은정연의 아버지의 친우였다.
암영은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권력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이 회주의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희생한 그녀를 안쓰럽게 여겼고 지금까지 그녀의 곁에서 돕고 있었다.
“이제 내가 물러나도 큰 문제가 없겠군요.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 물러날 준비를 해야겠어요.”
“준비를 마쳐놓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암영은 담담하게 답했다. 이미 그는 비천회주가 직을 내려놓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았고 은정연을 검성에게 보낸 것도 그 일환 중 하나라 생각했다.
“나쁜 소식은 무엇인가요?”
비천회주는 문득 아직 듣지 못한 나쁜 소식이 궁금해져 물었고 암영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떼었다.
"활불이 내일이면 불마사의 진영에 당도할 듯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무림맹은 준비를 마쳤나요?"
암영의 말에 비천회주는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다소 시일이 남아 무림맹이 몸집을 더 불릴 수 있길 바랐지만 그것은 힘들 것으로 보였다.
아직 무림맹을 떠났었던 팽가의 정예들도 종남산에 당도 못한 상황이었고 서문세가와 남궁세가의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모두 도착해야 그나마 불마사와 수적으로 대적해볼만한 상황이었다.
"활불이 공동파를 무너뜨리고 다소 여유롭게 복귀를 하는 모양새였는데 아마 빠른 복귀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어제 검성의 기습이 아니었다면 날이 밝는 대로 불마사가 총공세를 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활불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총공세를요?"
"네. 환영신마의 죽음으로 인해 종파회의가 긴급 소집되었고 거기에서 총공세가 결정되었다 합니다. 활불을 기다리지 않고 말이죠."
"놀랍군요. 총공세가 시작되었다면 종남파의 무림맹은 막기 힘들었을 터인데 뭔가 무림맹엔 좋게 흘러가는듯 싶군요."
비천회주는 놀라면서도 다소 의아한 듯 말했다.
"검성의 존재가 무림맹에 행운을 가져오는 듯 합니다. 검성이 개입한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으니까요."
암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의 말에 비천회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무림은 말 그대로 검성의 행보에 따라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되고 있었다. 만약 검성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만독곡과 불마사의 행보에 무림은 큰 피해를 보았을 게 분명했다.
사실상 단독으로 만독곡의 행보를 저지한 검성과 이윤후가 이제는 불마사를 막고 있으니 무림의 패권을 노리는 자들로서는 검성과 이윤후의 의천문이 고마우면서도 경계될 게 분명했다.
"검성은 과연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무림의 일에 전면에 나올까요?"
비천회주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검성이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도 무림의 일에 관여할지 그리고 의천문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말이다.
"검성께서 의천문을 만든 것은 제자 때문으로 저희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천통자의 보고도 그러했고요. 무림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거부하며 세력을 가지지 않았던 검성이 의천문이라는 문파를 만들었으니 차후엔 싫어도 무림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겠군요. 검성과 이윤후가 스스로 나서지 않더라도 무림에서 의천문을 신경 쓰겠죠? 당장 의천문이 위치한 소주를 중심으로 세력다툼도 이어지겠군요."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다들 신경이 불마사를 막는 일에 쏠려있으니 괜찮지만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결국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을 하게 될 겁니다. 불마사와 만독곡에 무너지거나 힘을 잃은 문파들의 이권을 남은 자들이 탐하겠죠. 그것에 대한 다툼이 일 것이고 의천문이 위치한 소주를 중심으로 세력구도가 또 달라지며 다툼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천회주는 암영의 말에 다소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말처럼 불마사와의 일이 끝나면 당장 각 문파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직면하게 될 거라 그것에 대한 다툼도 생각해야했다.
전쟁이 끝나면 늘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이루어지고 무림맹 내에서도 많은 다툼이 일어날게 분명했다. 멸문한 문파들의 수도 적지 않고 무엇보다 불마사를 지지하며 돌아서 배신을 한 문파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문파가 군룡세가였고 군룡세가는 소주 일대의 이권을 가지고 성장한 세력이었기에 의천문과 다툼은 예정되어 있다고 봐도 되었다.
"화산을 비롯한 불마사에 가담하거나 무림맹에서 이탈한 문파들은 모두 파악이 끝이 났나요?"
"네. 무림맹에서도 이미 철저히 가려내 징계를 할 모양인 듯 합니다. 지금 당장은 눈앞에 적이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개방에서 돌아선 문파들을 철저히 압박중이라고 합니다. 혹여나 뒤에서 불마사에 가담하여 무림맹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있어서인지 개방의 방주가 각지의 개방도들에게 철저히 지시한 모양입니다. 저희가 따로 나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불마사와의 일이 끝난 후 피의 숙청이 시작되겠군요. 대의를 저버린 채 스스로 안위와 문파만을 생각하는 자들이 그렇게나 많다니... 우리가 조사한 모든 것들도 천통자를 통해 무림맹에 넘겨주도록 해요. 그런 자들을 가만히 둔다면 나중에 또 문제가 될듯 하니..."
"네. 명대로 행하겠습니다."
“물러가도 좋아요. 제(祭)를 올려야하니 모두에게 제를 올리는 동안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라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몸을 보중하십시오.”
비천회주의 말에 암영은 마지막으로 답하고는 사라졌고 그가 사라지자 비천회주는 한참을 상념에 빠졌다.
“모든 혼란이 사라진다면 무림은 의천문 중심으로 개편 될 것인데 과연 검성이 무림의 중심에서 나서 줄지 모르겠구나.”
비천회주는 딸인 은정연을 검성에게 보낸 것이 잘 한 것인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저 차후에 있을 비천회의 권력 다툼에서 멀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 싶었는데 의천문이 무림의 중심이 된다면 은정연은 무림의 권력 다툼에 휘말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