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강자의 고독(孤獨)
덜컥-
“이제 들어와도 괜찮아요.”
문이 열리고 약선은 검성과 천통자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윤후는 괜찮소?”
“처음부터 심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당신 제자가 몸 하나는 튼튼해서인지 피부가 많이 갈라지고 찢어지긴 했지만 그것 또한 당신의 만상오행공의 운기를 하고 나면 나아지겠죠. 그저 충격으로 기절을 했던 것인데, 아마 상대의 반탄지공(反彈之功)이 워낙 강했던 것 같아요.”
방 안에 들어선 검성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든 이윤후를 발견하곤 안심했고, 천통자는 탁자 바닥에 놓여있는 향로를 발견하곤 이윤후와 향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욱한 약향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아 모두 소문주가 흡수했겠지? 저 귀한 백천연실(白天蓮實)의 가루를 아낌없이 쓰다니…… 약선도 어지간히 소문주를 아끼는군. 소문주는 깨어난다면 더욱 강해지겠지.’
천통자는 아깝다는 듯 향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약선의 명으로 가져왔던 약낭(藥囊) 안에는 백천연실을 가루로 낸 분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냥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십 년분의 내공증진을 이루는 백천연실을 약선이 직접 가루로 내어 효능을 극대화했는데, 이윤후는 이걸 모두 흡입했으니 얼마나 큰 기연을 얻은 것인지 그는 아마 깨어나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약선 어르신.”
“응? 왜 그러느냐?”
천통자는 검성이 이윤후 곁으로 가자 슬며시 약선에게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레 불렀다.
“불마사 진영으로 가셔서 혹시 상대한 자의 이름은 들으셨습니까?”
“아…… 정신이 없어 그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구나? 저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들었느냐?”
천통자가 조심스레 묻는 것을 보니 검성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약선은 알았기에 물었다.
“네. 검성께서는 영마종파의 탁룽을 만났고 그를 죽였다고 하시더군요. 약선께서 만난 이는 누구였습니까?”
“내가 만난 자는 월명종파의 텐진 라흐파 라는 자였다. 나이가 한 칠십이 넘어 보이는 노승이었다.”
“그는 죽었습니까?”
“그래. 마지막에 숨을 거두었다. 제법 강한 자였어.”
약선은 기억을 떠올리며 답했고, 천통자는 그녀의 대답에 미소 지었다. 밤사이 두 명의 불마사 종파 수장이 제거되었다. 아마 수장을 잃은 종파들은 혼란에 빠져 서장으로 복귀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윤후까지 한 명을 제거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이윤후가 만난 이는 너무 강한 자였기에 검성과 약선의 성과만으로 충분하다고 천통자는 생각했다.
“소문주는 괜찮겠죠?”
“정신을 잃은 것은 상대의 반탄지기에 놀라 호신강기로 막아내다가 그 여파로 인해 정신을 잃은 게 아닌가 싶구나. 윤후가 저 정도로 다쳤다면 상대도 멀쩡하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기의 충돌이었으니 말이야.”
“그렇군요. 고수들의 대결에서 반탄지기와 호신강기가 충돌하여 서로 큰 내상을 입고, 심한 경우 불구가 된 자들도 적지 않다 들었는데 소문주는 운이 좋군요.”
“넌 이제 할 일이 있지 않느냐?”
“아…… 네. 저는 그럼 무림맹의 사람들과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좀 올리고 오겠습니다.”
천통자는 약선의 은근한 축객령(逐客令)을 빠르게 눈치 채고는 물러섰다.
‘검성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나보군? 궁금한데……’
천통자는 물러나면서도 약선이 자신을 쫓아내면서까지 검성과 할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하여 차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진 않았지만, 비천에 보고도 급하였고, 무림맹의 현우자에게도 얼른 성과를 이야기해주어야 했기에 미련을 버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약선은 천통자가 떠난 것을 확인하곤 문을 닫고 창문까지 모두 닫았다. 그런 약선이 자신에게 할 말이 있음을 안 검성이 그녀에게 돌아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가보군?”
“당신은 분명 저보다 먼저 윤후에게 도착했어요. 윤후가 그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할 수 있었음에도 왜 지켜보았죠?”
약선의 물음에 검성은 입을 닫았다. 그녀의 말처럼 검성은 탁룽을 처치하고 약선보다 빨리 이윤후가 싸우는 곳에 도착하여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결에 끼어들었어야 한단 말은 아니겠지?”
“대결이 아니었어요. 우린 무림과 불마사 간에 벌어질 큰 전쟁을 대비하여 기습하러 간 거잖아요. 무엇보다 윤후와 불마사의 승려가 강기 대결로 들어서기 이전엔 막았어야죠.”
“…….”
“윤후가 크게 다치지 않고 내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 다행이지만, 강기 대결로 이어져 큰 내상을 입었다면 윤후는 다시 무공을 펼치지 못할 몸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약선의 질책에 검성은 듣기만 했다.
“당신은 내가 중간에 끼어들려고 한 것조차 막았어요. 정말 윤후가 잘못되었다면 당신을 원망했을 거예요.”
약선의 진심 어린 말에 검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윤후를 얼마나 챙기고 자신의 제자처럼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더욱 내가 이해되지 않겠지.”
“그래요. 난 당신을 이해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윤후를 위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참은 것뿐이에요. 아마 당신은 윤후를 끝까지 믿고 지켜보려 했던 것이겠죠?”
약선의 말에 검성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그녀의 모습이 내심 귀엽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다.
윤후의 위기를 지켜보기만 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이렇게 따지고 있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약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윤후가 죽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저 지켜보려 했을 뿐이요. 어차피 중간에 우리가 개입하는 걸 윤후도 원하지 않았을 터…… 그저 난 윤후를 믿고 지켜보았을 뿐.”
“윤후가 죽지 않았을 거라는 당신의 말은 납득하기 힘들지만, 당신이 근거 없이 그렇게 말할 사람은 아니라고 믿어요. 하지만 나는 다음엔 당신이 막아선다 해도 윤후가 저렇게 위험한 지경에 이르는 건 지켜보진 않을 거에요.”
“그때는 막지 않겠다 약속하지.”
약선은 만족스러운 답을 받은 듯 미소를 보였다.
“윤후는 곧 일어날 거예요. 온몸의 상처엔 약을 발라두었고 백천연실의 가루로 피운 향을 모두 흡수했으니 크지 않았던 내상도 깨어난 뒤 운기를 하면 모두 괜찮아질 거에요. 그러니 깨어나면 운기를 시키도록 해요.”
“고생했소.”
“불마사가 날이 밝는 대로 공격해 오진 못하겠죠?”
“자신들의 피해를 복구하고 수습하는 데 시일이 걸리겠지. 아마 활불이 복귀할 때까진 웅크리지 않을까 싶은데, 모를 일이지.”
야밤의 기습으로 인해 불마사의 진영은 많은 곳이 불타 피해를 입었고, 두 명의 수장도 잃었기에 이에 대한 수습으로 바쁘게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상대했던 자는 그리 강하지 않았어요. 윤후가 상대했던 자에 비하면 말이죠.”
“내가 상대했던 자도 윤후의 상대에 비해 약했고, 환영신마에 비해서도 모자란 자였소. 천통자에 말에 의하면 환영신마보다 강하다고 생각되는 자는 둘. 윤후가 상대했던 자와 또다른 한 명이 더 있다더군.”
“그렇군요. 생각보다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약선의 말에 검성은 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무림에 당신과 나의 존재가 너무 크게 느껴지더군.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나 혼자서 불마사의 진영 모두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소.”
검성의 다소 광오하기까지 한 말에도 약선은 놀라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녀 역시 이미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다.
약선은 무림의 평가에 비해 높은 무공을 지녔다. 오절 중에 가장 약하다고 세인들은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약선이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실력을 드러내는 일이 없이 살아왔지만, 그녀는 현재 무림에서 누구보다 강한 무인이었다.
그런 그녀조차 현재 검성의 실력은 가늠되지 않았다. 예전 오절의 시대에 그녀는 검성과 겨룬다면 호각 내지는 이길 자신이 내심 있었다.
하지만 검성이 마교의 혈천검마에게 이겨 깨달음을 얻고 무당에서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 뒤의 검성과 겨루었을 때, 약선은 패배를 인정해야했다.
그렇지만 약선은 자신이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여 생긴 격차이고, 제대로 무공 수련에 다시 빠진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었다. 타고난 천재들이 태어난다는 서문세가에서도 최고의 기재라 불렸던 그녀였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지금의 당신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어서 불안해요.’
약선은 검성의 가늠되지 않은 강함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 검성의 강함에서는 의협심이 바탕이 된 무에 대한 성취욕이 느껴졌는데, 지금의 검성은 인외의 존재. 사람이라는 규격 외의 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흑월도존과 활불이 당신의 맞상대가 되어 줄까요?”
약선은 진심으로 두 사람이 검성이 갈구하는 무위에 맞는 상대이길 바라고 있었다. 검성이 현재 얼마나 고독할지는 그녀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림에 많은 강자들이 천하제일인을 꿈꾸며 수련하고 그 꿈에 닿길 원하지만, 막상 그렇게 강해진 많은 수의 인물들은 고독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권력욕이 있어 자신의 강함을 즐기는 자들이나 자신의 강함으로 다른 욕구를 채우는 자들은 공허함을 느끼지 않지만, 순수하게 강함을 추구하다가 그것을 달성한 후 오는 공허함을 느끼는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맞상대가 없어 더 이상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지 못해서 오는 고독함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말았다.
약선은 검성이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랐다. 그나마 이윤후라는 제자가 검성의 고독함을 대신해주고 있었기에 지금은 괜찮았지만, 언제 검성이 고독함을 이기지 못해 모두를 떠날지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렇기에 약선은 검성의 맞상대가 되어줄 흑월도존의 치료에 힘썼고, 그라면 검성의 고독함을 조금은 덜어줄 상대라 판단하고 있었다.
“흑월도존은 아마 지금의 나와 맞상대하기 충분한 상대일거라 생각하오. 그리고 활불이 전대 활불의 무위에 새로운 몸을 얻어 더 강해졌다면 충분히 나와 겨루어 볼만한 상대라고 생각되는데, 애령의 생각은 어떻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도존은 분명 나보다 강할 것이라 판단되기에 당신과 충분히 맞상대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활불은 저도 모르겠군요. 당시에는 무림에 내가 전혀 관심 없던 시절이라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진 자인지 모르겠어요.”
“이제 며칠 뒤면 알게 되겠지. 혼자서 공동파를 무너뜨린 것을 보아하니 나를 실망 시키지 않으리라 생각은 하는데…….”
검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이내 누워있는 이윤후를 바라보았고, 약선은 검성의 말에서 고독함이 느껴졌기에 더는 말을 건네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당신을 바라볼 때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는군요. 저와 윤후 곁을 곧 떠나게 될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들어요.’
약선은 차마 밖으로 내어 묻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킨 채 검성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