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기습(奇襲)(4)
파지직-
뇌정의 기운이 서리자 이윤후의 전신과 검에서 뇌전이 일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바로 타에 도르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감히 그렇게 뛰어도 되는가?”
부웅-
하늘로 날아든 이윤후를 향해 타에 도르제는 봉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봉이 그의 신형에 닿는 순간 이윤후는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이형환위(移形換位)?”
타에 도르제는 봉에 닿는 순간 사라진 이윤후의 모습에 낭패를 느끼고는 바로 돌아서며 봉을 휘둘렀고, 그의 생각처럼 이윤후는 배후로 진입해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파자자작-
“늦었소! 비뢰낙일(飛雷落日)!”
뇌정의 기운이 이윤후의 검에서 휘몰아치며 한줄기 강맹한 기운이 되어 벼락처럼 내리쳐졌고, 타에 도르제는 묵아를 빠르게 휘둘러 막으려했다.
콰과과광-
굉음이 일며 두 사람의 격돌로 생긴 충격파로 분진이 일어났고, 힘의 여파와 분진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졌다. 서서히 분진이 가라앉자 이윤후의 모습이 먼저 드러났다.
"이젠 정말로 모두에게 들켰겠군."
이윤후는 자신이 펼친 비뢰낙일의 초식으로 인해 이제 모두에게 노출되었음을 직감했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런…… 괴물 같은 자가……?"
이윤후는 비뢰낙일이 정통으로 명중하였기에 큰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 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타에 도르제를 확인하곤 놀란 표정이 되었다.
타에 도르제는 붉은 승복이 찢겨져 거의 나신(裸身)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있었지만, 건장하고 큰 그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이게 너의 가장 강력한 한수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내가 실망 할 것 같군?"
타에 도르제의 여유 있는 말에 이윤후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사왕련의 미후왕도 비뢰낙일의 초식에 타에 도르제와 같이 멀쩡하게 버티며 나타나긴 했지만 그때의 이윤후와 지금의 이윤후는 성취가 달랐고, 위력 또한 곱절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타에 도르제의 모습을 보자 당황했다.
"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인가?"
웅웅웅-
타에 도르제의 묵색 봉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매섭게 회전하며 돌아가는 그 모습은 상대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봉의 거리는 지금까지 상대한 그 누구보다 반경이 길다. 일단 거리를 파악해야 한다.'
몇 번의 부딪침 속에서도 거리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윤후는 봉의 거리를 제대로 파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파박- 팍-
웅웅-
하지만 타에 도르제의 봉은 더욱 빨라지면서 이윤후를 압박해왔고, 봉의 반경은 이윤후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기에 대처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팔과 어깨를 활용한 것만으로 봉의 간격이 늘어나 파악이 되지 않는다…….'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가 자신의 봉의 반경을 파악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래서 이윤후가 거리를 가늠하고 그만큼 피했을 때, 어깨를 좀 더 쓰는 것만으로 봉의 간격을 늘리며 이윤후를 당황하게 했다.
"어리다 싶더니 제법 실전 경험이 많은가 보군. 거리싸움에 이렇게 능숙하다니? 환영신마를 쓰러뜨린 것이 요행은 아니었군?"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의 모습에 조금은 감탄하며 말했고 일종의 칭찬이었지만, 이윤후에게는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여전히 얕보고 있음이 느껴지는 말투였는데 아직까지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시간을 더 끌면 안 된다. 이미 수많은 기운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
이윤후는 만상오행공을 운용하며 많은 기운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그 기운들 중에 검성과 약선도 있었다. 이윤후와 타에 도르제의 부딪침으로 생겼던 굉음으로 인해 불마사의 강자들도 이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또 어느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던 불덩이들도 끊어졌음을 이윤후는 그제야 눈치 챘다.
'실력을 가늠해보자.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
이윤후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 짧은 시간으로는 타에 도르제를 쓰러뜨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상대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어졌다.
츠츠츠-
이윤후가 내력을 끌어올리자 상월검이 이에 감응하여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타에 도르제는 흥미롭다는 듯 보았다.
"환영신마를 제압한 실력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가? 조금 전까지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곤 생각했지."
타에 도르제의 말에 이윤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그의 말에 평정심이 살짝 흔들렸으나 이내 가라앉히고는 평정을 찾았다.
'상대는 백전노장의 능구렁이다. 상대의 말에 흔들리며 안 돼…… 일합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곳을 뜬다.'
이윤후의 공격을 기다리는 듯 타에 도르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
번쩍-
이윤후의 검이 번쩍였고, 찰나의 짧은 순간 상월검의 검광이 주위를 삼킬 듯 빛을 내며 한줄기 뇌전을 쏘아내었다.
"파황격(破荒擊)!"
웅웅웅-
그와 동시에 타에 도르제의 봉이 회전하며 날아드는 뇌전을 향해 내질러졌고 뇌전과 묵봉이 부딪쳤다.
콰과과과광-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일었고 이에 생긴 기의 폭발은 주위를 파괴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한 마리 북해설응이 하강하여 무언가를 낚아채고는 하늘로 다시 솟아올랐다.
하강한 북해설응은 백아였고 정신을 잃은 이윤후를 낚아채 다시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아의 등엔 검성이 탄 채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한곳을 응시하던 검성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백아를 타고 종남산으로 향했고, 약선 역시 어느새 다른 설응을 타고 그 옆을 따르고 있었다.
한참의 소란이 일어난 뒤 흙먼지가 거두어지고 나서야 검성이 바라보던 곳에 타에 도르제가 멀쩡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가 검성인가? 반로환동 하였다더니 정말로 저렇게 어려진 것인가?"
타에 도르제는 북해설응을 타고 종남산으로 날고 있는 검성과 약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윤후와 타에 도르제의 격돌로 인해 주위는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지형지물이 변화할 정도로 마지막 격돌로 인해 생긴 기의 폭풍은 주위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아쉽군. 결착을 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 될지도 모르겠어."
타에 도르제는 못내 아쉬운 듯 검성이 사라진 하늘을 보며 봉을 잡았던 오른손을 펼쳐보았다.
뚜욱- 뚝-
타에 도르제의 오른손은 마치 무언가에 심하게 쓸린 듯 피부가 벗겨져있었고, 피가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환영신마를 이겼다는 것이 헛소문은 아니었군.”
마지막 격돌에서 이윤후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을 타에 도르제는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이윤후를 다시 본다면 반드시 마무리를 해야 겠다 속으로 다짐했다.
쿠웅-
불마사의 많은 이들이 소란에 몰려오자 타에 도르제는 봉을 바닥에 꽂았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한밤중의 기습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어느새 여명(黎明)이 밝아오고 있었다.
***
퍼드득-
“윤후를 주세요.”
약선은 설응에서 내려 검성에게 윤후를 건네받은 다음 얼른 안아들고는 안으로 향했다.
꾸륵-
“걱정 말아라. 윤후는 괜찮을 것이다.”
백아는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은 이윤후가 걱정스러운 듯 울었고, 그런 백아의 마음을 알았기에 검성은 백아를 한차례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하였다. 너희 무리를 얼른 복귀시켜 쉬도록 해주어라.”
검성은 하늘을 선회 중인 설응의 무리를 보고는 백아에게 말했다.
밤새 종남산에서 불덩이를 받아 불마사의 진영에 떨구느라 고생했을 설응 무리들이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하늘을 날고 있자 신경 쓰였다.
꾸륵-
빼액-
검성의 말을 알아들은 듯 대답을 한 백아는 우렁차게 하늘을 향해 울었고, 종남산 전체를 울릴듯한 백아의 울음에 하늘을 선회하던 북해설응들이 일제히 흩어져 북해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너도 쉬어라. 윤후는 걱정 하지 말고…….”
백아가 검성의 말에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떠나지 않자, 검성은 한차례 더 백아를 쓰다듬어주곤 자리를 떠났다. 아무리 떠나서 쉬어라 해도 말을 듣지 않을 모습이었기에 차라리 얼른 이윤후가 정신 차리는 걸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방에 들어서자 이미 언제 가져온 건지 향로에서 나온 약향이 방 안 가득했고 이윤후는 그것을 호흡과 함께 흡수하고 있었다.
“당신도 일단 나가 있어요.”
방문을 열자마자 약선의 축객령에 검성은 밖으로 쫓겨났고, 밖으로 나오자 같이 쫓겨난 것으로 보이는 천통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향로와 약주머니를 건네주자마자 쫓겨났습니다. 검성도 쫓겨나셨군요?”
“…….”
“그건 그렇고 소문주는 어떻게 저리 만신창이가 되신 겁니까? 환영신마에게 다쳐 치료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저렇게……?”
천통자는 말을 하다 검성의 표정이 좋지 않자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입을 닫아야했다.
“종파의 수장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누구지?”
“저희가 파악하기론 활불을 제외하고는 갈거종파의 오거 틴레라는 여인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황교종파가 호전적인 무승들의 종파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가 그 다음이라고 하더군요.”
“윤후가 상대한 자는 나이가 한 사십에서 오십 대 정도였다. 덩치가 컸고 봉을 다루는 자였어. 누군지 아느냐?”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가 묵봉을 다룬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파의 수장들이 대부분 칠십이 넘은 노승들인데 타에 도르제만이 그나마 젊은 오십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인 듯하군요.”
천통자는 이윤후가 타에 도르제를 만나 변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대화의 흐름 속에 파악했으나 검성의 반응 때문에 그리 깊숙하게 묻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물을 분위기는 아닌 듯하지만…… 혹시 가신 성과는 조금 있으셨습니까? 저도 무림맹에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입장이라……,”
천통자는 검성이 이윤후가 다친 것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 보였기에 최대한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만난 이는 영마파의 탁룽이란 자였다. 그는 죽었다. 그리고 애령 또한 누구 하나를 베었던 거 같은데 그것은 직접 물어보아라. 윤후가 다치고 급하게 빠져나오는 통에 묻지 못했다.”
“대단한 성과군요. 수장을 둘이나 베었다면 저쪽의 전력이 대폭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크게 기뻐하다가 검성이 방 문을 바라본 채 말이 없자 이내 입을 닫았다.
‘역시나 제자 사랑이 엄청나군……. 약선은 외상만 조금 심할 뿐 괜찮다고 했는데 너무 걱정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구나.’
천통자는 괜히 검성에게 더 말을 시켜 본들 더 대답을 듣기 어려울 듯싶어 일단 약선의 치료가 끝나길 기다려야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