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기습(奇襲)(3)
파바바박-
텐진 라흐파는 권법과 수도(手刀) 그리고 장법까지 자신이 아는 모든 권장지각(拳掌指脚)을 펼치려는 듯 몰아쳐왔다. 하지만 번번이 그의 모든 공격은 약선에게 닿지 않았고, 그는 공격을 실패할 때마다 약선의 연검에 베이며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뚜욱- 뚜욱-
일방적인 공세를 멈춘 텐진 라흐파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의 승복은 피가 머금어져 바닥으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호신강기로 제법 몸을 방어하고 있지만 이제 더는 힘들 듯하군요. 이제 끝을 내어야 할 때 인듯합니다."
약선은 피투성이가 된 텐진 라흐파를 향해 말하곤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약선도 공격을 피하며 텐진 라흐파를 단숨에 제압하려 요혈을 공격했지만, 그는 치명적인 공격은 가까스로 회피하고 호신강기를 이용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결국 저런 피투성이의 몸이 되었지만 약선이 몇 번이나 끝내고자 마음먹고 한 공격들이 치명상을 주지 못했다는 것에 약선 또한 조금은 놀란 상황이었다.
"나름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나와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였다니……."
텐진 라흐파는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며 분한 듯 말했다. 약선을 얕보지 않았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몰아붙였지만 돌아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과 패배감뿐이었다. 그래도 내심 약선과 엇비슷하게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시작했던 대결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은 삼 초의 공격을 약선이 피했을 때 알았다. 첫 공격이 약선의 옆구리를 아깝게 스쳤다 싶었을 때 자신의 공격이 약선에게 닿는다고 착각하며 두 번째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재차 세 번째 공격까지 약선의 몸을 스치듯 아깝게 지나가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네 번째 적양지(赤陽指)의 지풍조차 스치듯 피하는 약선을 보고 텐진 라흐파는 좌절했다. 자신의 공격이 아깝게 약선에게 닿지 않은 것이 아닌 약선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피하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었다.
자신의 공격이 번번이 빗나가고 그 찰나의 순간마다 약선은 공격해왔다. 텐진 라흐파는 방어로 돌아선다면 약선에게 이길 방법이 없다 여겨 몸으로 받아내며 한 번의 공격이라도 약선에게 닿기를 바라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지만, 결국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쓰러지지만…… 커헉!”
퓨붓-
“당신의 말을 길게 들어줄 시간이 없군요. 당신의 말은 들은 걸로 칠게요.”
약선의 검이 텐진 라흐파의 목을 베었고,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그의 신형이 무너졌다. 그리고 약선은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한자리에서 너무 지체했음을 느낀 약선은 빠른 마무리를 선택했고, 그녀 역시 검성과 마찬가지로 이윤후를 걱정하고 있었기에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황교종파의 진영.
이곳도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로 인해 천막들이 불타고 있었고, 쓰러진 승려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윤후는 하필 불마사의 종파 중 가장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황교종파의 진영에 떨어졌고 도착하자마자 발각되어 교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보통 실력이 아니군…….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너무 저돌적이야.’
이윤후는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황교종파의 승려들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바로 들킨 것은 둘째 치고, 이들을 상대함이 너무 까다로웠다.
적은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에게 돌격해 들어오고 있었고, 적당히 제압하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했던 이윤후는 생각을 바꿔 일격필살의 수법으로 모두를 처단하고 있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하나 승려들을 죽이는 것은 꺼려졌기에 살생을 피하고 싶었던 이윤후였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쪽에서 자신을 매서운 눈으로 살피고 있는 타에 도르제의 존재는 이윤후에게 큰 압박이 되고 있었다.
‘보통 존재감을 가진 자가 아니다. 분명 저자가 여기 종파의 수장 일터…… 이런 자들의 수장이라면 보통의 인물은 아니겠지.’
이윤후는 마음을 먹은 듯 눈빛이 달라졌다. 빨리 이들을 제압하고 타에 도르제를 상대해야겠다고 결심이 섰고, 그의 바뀐 기도를 타에 도르제는 흥미롭다는 듯 응시하고 있었다.
딸칵-
이윤후는 휘두르던 상월검을 회수하여 검집에 넣고서 발검의 자세를 잡았고, 그의 기세가 달라짐을 포위하고 있던 황교종파의 승려들도 눈치 챘기에 경계하며 조금은 물러섰다.
하지만 그 모습에 타에 도르제의 인상은 구겨졌다.
“물러서지마…….”
타에 도르제는 물러서는 자신의 수하들을 향해 소리치려 했으나 이미 그것은 늦은 외침이었다.
촤자자작-
“커헉…….”
“크헉…….”
이윤후의 발검(拔劍)과 함께 한줄기의 벼락같은 검기가 승려들을 갈랐다. 비뢰검결 비뢰섬(飛雷閃)의 초식이었다. 초식의 응용이 가능해진 이윤후는 한줄기의 뇌정이 아닌 수 갈래의 뇌정을 펼쳐 모두를 한 번에 베어버렸다.
‘내력의 소모가 있긴 하나 저 뒤에 서있는 자를 감안하면 빨리 정리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다.’
이윤후는 검을 거두어들이며 타에 도르제를 보았고, 그는 쓰러진 자신들의 수하들을 보고는 놀라긴커녕 재미있다는 듯 이윤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나는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 라고 한다. 이곳의 수장이지.”
‘역시 종파의 수장이었군.’
타에 도르제의 말에 이윤후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하곤 그를 보았다.
“의천문의 이윤후라고 합니다.”
“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검성의 제자이자 환영신마를 이겼다는 이윤후로군.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내가 운이 좋은 모양이군.”
타에 도르제는 현재 일어나는 소란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이윤후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그에겐 불마사의 현재 소란보단 이윤후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음이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네가 정말로 환영신마를 이긴 것이 맞느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타에 도르제의 물음에 이윤후는 짧게 답했다. 여전히 이윤후는 환영신마의 숨통을 끊은 마지막 일격이 자신이 한 것 같지 않았기에 조금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운이라? 네가 생각하기엔 환영신마 그 사람이 운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였나?”
“그건…… 아닙니다. 그저 마지막 한수가 운이 좋게 그에게 닿았고, 그것으로 이겼을 뿐입니다.”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의 답이 조금은 이상했기에 재차 물은 것이었는데 이윤후의 반응이 이상하자 조금 의아해했다.
‘환영신마는 무림에서도 악명이긴 하나 이름이 꽤나 알려진 인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를 이긴 것이 그리 탐탁지 않은가 보군.’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의 반응이 조금 신기했기에 더 물을까 하다 그만두었다.
“츠링. 묵아(墨牙)를 가져오너라.”
타에 도르제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어린 승려를 향해 소리쳤고, 츠링이라 불린 승려는 무너져 내린 천막을 뒤져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종주(宗主)님. 묵아를 가져왔습니다.”
어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덩치가 아주 컸던 츠링은 자신의 키보다 큰 약 6자(尺)길이의 묵색 봉을 가져와 타에 도르제에게 건네었다.
덩치 큰 츠링이 들기에는 버거울 만큼 묵색봉의 무게가 나가보였다. 이윤후는 봉을 보자 조금은 경계하는 눈빛이 되었다.
봉을 상대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처음이었을 뿐더러, 묵색봉에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듯 아래에서 위까지 길게 음각되어 있는 것이 예사 물건이 아닌 듯 보였다.
“내가 이 묵아를 꺼내어 상대를 한 것이 거의 십 년 만이다. 무림에선 쓸 일이 생기겠지 하고 챙겨왔는데 결국 쓸 일이 생기는군.”
웅웅웅-
가볍게 봉을 받아든 타에 도르제가 봉을 크게 휘돌리기 시작하니 봉에서 허공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만만하게 볼 자가 아니다. 천통자는 각 종파의 수장들이 환영신마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라 했는데, 이자는 환영신마보다 더 강하다.’
이윤후는 자신의 앞의 타에 도르제가 환영신마 그 이상의 실력자라는 것을 알았고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 속전속결(速戰速決). 바로 승부를 본다.’
이윤후는 검을 뽑아들었고 상월검은 은은한 한기를 뿜어내었다.
“츠링. 최대한 물러나 있거라.”
“종주님이 싸우시는데 제가 어찌……?”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물러서라.”
“네…….”
츠링은 타에 도르제의 불호령에 멀리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미 주위는 소란스러워지고 있었기에 이윤후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스슥-
이윤후는 천천히 행보를 밟으며 타에 도르제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막상 빠른 공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윤후였지만 봉의 긴 사정거리를 가늠하지 못해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일단 부딪쳐보자.’
파밧-
마음을 먹은 이윤후가 바로 신형을 날리며 검을 내뻗자 그의 검이 변화하며 타에 도르제의 각 요혈을 노리며 찔러갔다.
“흥! 잔재주가 제법 있는 녀석이구나.”
채앵- 채쟁-
이윤후의 무수한 검을 타에 도르제는 봉을 휘둘러 모두 쳐내었다.
“이런 잔재주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웅웅-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의 검을 모두 쳐낸 뒤 봉 끝을 잡고 그대로 내질렀고, 단숨에 거리를 좁혀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는 봉에 놀란 이윤후는 몸을 비틀어 피했다.
콰과광-
이윤후는 가까스로 봉의 찌르기를 피했지만, 그 여파는 그대로 이윤후의 뒤의 나무들과 땅을 헤집어 놓았고 그 위력에 이윤후는 소름이 돋았다.
‘직격하거나 검으로 쳐내려했다면 내 손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윤후는 검으로 쳐내려다 꺼림직한 기분을 느끼고 피하는 것을 택했는데, 그것을 옳은 선택이었다. 조금은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뒹굴긴 했어도 검으로 쳐냈다면 회전격을 먹인 타에 도르제의 봉에 휩쓸려 등 뒤의 나무와 땅바닥처럼 처참한 꼴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을 틈이 있는가?”
파박- 파밧-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봉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하여 재차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그가 봉에 회전을 주고 있음을 알았기에 최대한 검을 부딪치지 않고 회피하며 빈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하지만 봉의 길이에 막혀 피하기 급급했다. 검의 간격에 들어가려 하면 봉을 휘둘러 그를 쫓아내고, 물러서면 봉을 찔러 공격하다 보니 일방적으로 타에 도르제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었다.
‘더는 안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어.’
이윤후가 마음을 먹은 듯 내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전신에 뇌정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에 타에 도르제도 긴장한 채 경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