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종파회의(宗派回議)
“절반도 되지 않는군. 불마사는 환영신마 정도의 실력자들이 열인데 우린 고작 많이 쳐도 다섯이라는 소리군.”
검성은 정파들이 그간 나태했다는 소리를 계속 들어왔지만 천통자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괜히 이 싸움이 열세라고 했던 것이 아니죠. 사실상 검성과 약선께서 와주지시지 않았다면 무림맹은 아마 백기를 들고 무림을 불마사에 내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절정고수들의 수만 차이나는 게 아니라 그 아래 고수들의 차이도 엄청나니까요.”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전면전은 힘들다 봐야겠군. 피해가 너무 크겠어.”
“그렇네요. 당신이 생각해서 활불이 오기 전 저들이 공격하도록 도발을 했는데 사실상 그것도 제대로 싸워보기 힘들 전력이라니.”
검성의 말에 약선이 찬동하며 말했다. 약선 역시 무림맹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기에 천통자에 말에 조금은 놀란 상황이었다.
세가의 사람들을 데려오기로 한 그녀였기에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그녀로서는 그 차이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저희가 기습을 감행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윤후가 고민 끝에 한마디를 건네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이윤후를 쳐다보았다.
“전면전을 벌이기 힘든 상황이라면 기습을 감행하여 전력차를 조금이라도 줄여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부님과 약선 어르신 그리고 저까지 설응들과 함께 한다면 충분히 치고 빠지면서 교란하면서 피해를 줄 수 있을 겁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거 같아요. 당신 생각은 어떤가요?”
약선은 이윤후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 생각하여 검성의 의견을 물었다. 검성은 바로 답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에 빠져있었고 모두는 검성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위험할 것인데 괜찮겠느냐?”
검성은 이윤후를 바라본 채 물었다. 환영신마와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이들이 많다보니 검성은 이윤후의 안위를 걱정하여 물은 것이었다.
자신과 약선은 별 무리 없이 그들이 덤비더라도 상대하면 빠져나올 수 있지만 이윤후는 그렇지 않았기에 위험한 지경에 빠질 염려가 있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백아도 있고 말이죠.”
“그래. 백아라면 네가 위험해진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구하겠지.”
이윤후의 대답에 검성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사실 현재 전력 중에 백아가 이끄는 북해설응의 무리가 가장 강하다고 봐야했고 백아가 무리를 이끌고 몰아칠 경우 불마사의 정예들도 쉽게 막긴 힘들게 분명했다.
아무리 강한 강자라 한들 하늘을 나는 북해설응과의 싸움은 실력적인 측면을 떠나 변수가 많은 전투였다. 그래도 검성이 북해설응의 이용을 꺼리는 것은 상대적 강자가 많은 불마사의 진영을 상대로 설응의 피해도 클 것을 염려했다.
빙궁의 허락을 받고 북해설응의 무리를 사용해도 좋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설응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 빙궁의 단지경에게 면목이 없었다. 애초에 검성은 설응의 무리를 그저 위협의 용도로만 이용해도 충분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럼 기습을 위한 준비를 하고 무림맹에도 알리도록 해. 가는 것은 나와 애령 그리고 윤후만 간다.”
“네. 현우자와 혜원대사에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이 마음을 먹자 기쁜 듯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검성과 약선이 나선 만큼 이번 기습작전에 이득이 날 것이 분명했고 무림맹은 작은 투자로 큰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천통자는 검성과 모두에게 따로 예를 취하고는 얼른 소식을 전하러 나섰다.
***
불마사 진영. 정중앙 가장 거대하게 펼쳐진 천막에 속속들이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들어선 자들은 모두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에 요청으로 소집된 종파회의에 참여하기 위한 각 종파들의 수장들이었다.
천막 안에는 거대한 탁상 앞 열두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부재중인 활불의 자리엔 사마령이 자리했다. 그리고 곤륜에서 멸종된 파원종의 자리는 비어있고 나머지 자리는 모두 가득 차 있었다.
“영마파의 탁룽 님을 마지막으로 모두 오신 듯 하니 종파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현재 부재중이신 활불님의 자리는 명에 따라 제가 대신 의견을 행사하겠습니다.”
사마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모두의 반대가 없자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현재 전대 활불께서 직접 지정하셨고 불마사의 통합에 가장 큰 공을 세우셨던 환영신마께서 차가운 주검이 되어 관에 담긴 채 도착했습니다.”
“누구의 짓인지는 밝혀졌는가?”
태허종(太虛宗)의 수장인 판첸은 사마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불심이 깊고 현재 종파 중에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진 수장이라 사마령이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곳이 태허종이었다.
그리고 환영신마와 친분이 두터운 판첸이었기에 가장 사마령이 경계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태허종의 판첸이 묻자 사마령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현재 무림의 소문으로는 검성의 제자인 이윤후에게 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성의 제자라면 젊디젊은 애송이가 아닌가? 그런 애송이가 환영신마를 이겼다고?”
“검성이 자신의 제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가 신마를 죽이고 그렇게 소문을 낸 것은 아닌가?”
사마령이 말하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말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사마령도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소문이 이윤후가 환영신마를 죽였다고 소문이 났어도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성이 그렇게까지 할 인물도 아니라 여겼기에 검성의 제자에게 환영신마가 패배했다고 봐야했다.
“일단 소문은 사실일 듯 합니다. 검성이 굳이 자신이 한 일을 제자가 했다고 할 인물도 아니고요. 문제는 환영신마의 죽음으로 저쪽은 사기가 올라있고 저희는 사기가 꺾이고 있다는 게 문제겠지요.”
“그래서 내가 회의 소집을 요청한 것이 아닌가.”
사마령의 말에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가 일어나 말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내가 소집한 회의니 안건은 내가 말해도 되겠지?”
“그러십시오.”
타에 도르제는 사마령을 향해 묻고 그녀가 답하자 다시 모두를 훑어보고는 입을 떼었다.
“황교종의 타에 도르제요. 현재 우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지 수일이 지났습니다. 지존이 계책이 있어 무림맹이 사분오열 할 것이라 했지만 그것은 실패한 듯 싶고...”
타에 도르제는 말을 하며 사마령을 힐끗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야했다. 그동안 타에 도르제를 비롯한 강건파들이 전쟁을 바로 하자는 것을 막아왔던 이유가 내부의 첩자들을 이용해 쉽게 무림맹을 와해 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던 것인데 그것의 실패를 타에 도르제가 지적하고 나서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여야했다.
“환영신마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온 지금 우리가 가만히 참는다면 무림은 우리를 얕볼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힘은 차고 넘치는데 저들의 도발을 참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데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타에 도르제의 힘이 실린 말에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옆의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자,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 자도 있었다.
‘좋지 않군... 상황이 너무 나쁘게 돌아가고 있어. 오라버니가 올 때까지 버텨야하는데...’
사마령은 타에 도르제의 말에 찬동하는 뜻을 보이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고 낭패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 곧 활불이 돌아오지 않습니까?”
붉은 승복을 입은 비구니. 수장 중에 유일한 여승인 갈거파의 오거 틴레가 입을 떼었다.
“활불이 돌아오려면 아직 시일이 걸립니다. 우리의 친우인 환영신마가 죽었소. 오거 틴레. 당신도 환영신마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소? 그의 죽음을 그냥 넘길 생각입니까?”
“음... 나 역시 그의 죽음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불마사의 이름으로 무림에 우리의 교리를 퍼트릴 중요한 기회인데 돌발적인 변수가 없었으면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타에 도르제의 말에 오거 틴레가 조목조목 차분하게 답했고 그녀의 말에 타에 도르제는 인상을 구겼다.
‘이미 그녀를 구워삶은 것인가? 재빠르게 움직였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타에 도르제는 사마령이나 텐진 라흐파가 오거 틴레와 말을 맞추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여럿을 포섭해두었기에 그녀의 의견은 중요치 않았다.
“갈거종파의 수장이신 오거 틴레님의 말씀도 옳지만 우리 불마사의 교리를 잊지 마십시오. 저희는 가족과 친우 그리고 동료의 불우한 죽음에 외면하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원융종파의 니구모가 나섰고 그의 말을 듣자 사마령과 텐젠 라흐파 그리고 오거 틴레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원융종파의 니구모는 중립의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사마령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주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타에 도르제의 의견에 뜻을 함께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원융종파의 니구모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환영신마는 우리에게 가장 특별한 자가 아니었습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우린 그때 이후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일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태허종의 판첸이 다시 나서자 사마령은 이미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 채었다.
‘모두 타에 도르제의 뜻에 동참했구나...’
환영신마의 죽음이 이렇게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사마령은 난감함을 느꼈다. 분명 그가 많은 종파에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긴 하나 각 수장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모두 싸우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 그간 내가 그들을 너무 오래 억제 해왔던 탓이다.’
사마령은 다들 환영신마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타에 도르제를 비롯해 모두의 속셈은 싸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그간 웅크리고 산 기간이 길었기에 모두가 그것을 무림에 풀고 싶어 했고 무림 진출이 결정되면서 그간의 화풀이를 할 거라 여겼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싸움도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각 종파마다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고 그것이 이렇게 환영신마의 죽음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타에 도르제는 황교종파의 수장으로서 우리의 친우를 해한 종남산에 숨은 무림맹의 잔당들을 당장 처리하고자 이렇게 종파회의를 요청하였습니다. 모두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타에 도르제는 모두를 향해 예를 갖춘 채 안건을 상정했고 각자의 답을 기다렸다. 종파 회의는 다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이 원칙이었고 제안된 의견에 동참하면 자리에서 일어서면 되었다.
타에 도르제가 먼저 일어섰고 원융종파의 니구모, 태허종의 판첸이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이어서 세 사람이 더 일어섰고 그것을 보자 사마령은 대세는 기울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타에 도르제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고 종파회의는 타에 도르제의 뜻대로 즉시 무림맹과 일전을 벌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