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정인군자(正人君子) 강유
검성의 거처.
정오가 지난 시각 다 같이 식사를 마쳤던 검성과 이윤후 그리고 약선이 다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천통자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윤후의 얼굴의 상처를 보니 속상하구나.”
약선은 차를 마시다 마주 앉은 이윤후의 얼굴을 보곤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윤후는 환영신마와의 대결에서 전신에 큰 상처를 입었고 얼굴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꽤 있었다.
약선이 상처를 돌봐주면서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지만 오른 뺨 쪽 길게 혈왕인의 상처가 남아 조금은 보기 흉하였기에 약선은 식사 때부터 계속 말하고 있었다.
환영신마의 혈룡피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스쳤던 탓에 혈왕인이 얼굴에 남아있었고 이것은 단기간에 치료로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애령이 없애 줄 수 있다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러냐 윤후야?”
“네. 저도 온 몸에 생긴 혈왕인들이 평생가나 걱정했는데 약선께서 모두 지워주시겠다 하여 안심했습니다.”
약선은 심각하여 걱정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이윤후와 검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자 약선은 약간 화가 났으나 이내 가라앉히고 천통자를 보았다.
“불마사에 보낸 관은 어떻게 되었지?”
“네.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한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천통자는 약선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나 살짝 걱정하며 입을 떼었다.
“내부 정보에 의하면 현재 종파 회의가 소집된 상황이라 합니다. 아마 검성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천통자는 말하며 검성을 보았고 검성은 짐짓 딴청을 피우며 차를 즐기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환영신마의 시신이 그들의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 판단한거죠?”
약선이 묻자 검성은 그제서야 차를 내려놓으며 입을 떼었다.
“사람의 마음이 한 가지로 통일되는 것은 쉽지 않고 여러 종파의 모임인 불마사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지. 분명 종파마다 의견이 다를 테고 벌써 수일째 다툼 없이 저렇게 진만 치고 있으면 누군가는 분명 좀이 쑤셔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검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검성의 예상대로 불마사의 종파마다 현재 각기 입장이 다른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황교종파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가 광승이라 불릴 정도로 호전적이고 싸움을 좋아하는 인물인데 싸우러 이곳까지 와서 며칠째 대기만 하고 있으니 불만이 꽤 많았다 합니다. 활불이 자리 비운 상황에서도 계속 싸우길 주장했다고 하네요.”
“그렇겠지. 어제 네 말을 들으니 더욱 그럴 거 같았다.”
“제 말이요?”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잠시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종파의 수장들은 수평적인 관계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서로 불만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겠지.”
“아! 그이야기였군요. 네, 검성의 짐작대로 타에 도르제는 계속 불만을 이야기했고 다른 이들은 활불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그를 억제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환영신마의 시신이 그들에게 도착하면서 상황이 급변한 모양입니다.”
“환영신마가 꽤나 그들에게 신망이 높았나보군.”
“네. 전대 활불이 죽고 다시 갈라진 불마사의 종파들 사이에서 계속 관계를 유지시켜 왔던 게 환영신마였고 각 종파들의 수장들의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타에 도르제와 돈독했다고 합니다.”
“타에 도르제 그자가 신마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는 모양이지?”
검성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일이 잘 진행되는 듯 하여 신기한 듯 물었다. 사실 검성도 환영신마의 시신을 보냄으로써 그저 그들이 돌발행동을 보이길 기대했던 것인데 의외로 더 좋은 상황이 벌어지는 듯 싶었다.
“네. 불마사의 종파회의는 절대 다수의견을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 그간 타에 도르제가 싸우자는 의견을 피력해왔으나 그에 동조하는 수장들이 적었다합니다. 그런데 환영신마의 죽음으로 그와 돈독한 관계였던 다른 종파의 수장들도 타에 도르제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아 졌다는 거죠. 즉시 교전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무림맹에는 이미 알렸고?”
“네. 정보가 들어오고 바로 무당의 현우자께 알렸습니다. 무림맹에서도 긴급 소집을 하였습니다.”
“잘하였다.”
검성의 갑작스런 칭찬에 천통자는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어쩔 줄 몰라 했고 그 모습에 약선과 이윤후는 미소를 지었다.
“설마 저들이 활불이 복귀하지 않았는데 움직일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첩자들이 적지 않게 각 종파마다 잠입해있지만 종파회의의 내용까지는 얻어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대충 정보를 취합해보면 황교종파의 타에 도르제를 포함하여 셋 정도의 수장이 당장 싸우자는 입장인 듯 한데 이제 셋만 더 돌아서면 당장 전쟁이라는 것이죠.”
약선의 물음에 천통자가 답했다.
“환영신마의 죽음이 큰 파문이 되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구나.”
“그렇죠. 사실 무림맹으로서는 저들이 행동에 나서주길 바라는 편이 좋은데 아직 서문세가나 남궁세가 등 지원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라 수적 열세가 심하긴 하죠.”
“어차피 삼일 뒤면 활불이 도착하여 그때 움직인다 해도 지원이 도착하는 것은 매한가지 아니냐? 당장 싸우는 편이 낫지.”
“그거야 그렇지만 이러나저러나 무림맹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미 싸울 준비를 마치고 움직인 불마사와 정사 간의 평화에 속아 실력을 키우지 못한 정파들 간의 격차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의 차이가 나니까요.”
“결국 이 사람과 내가 많은 것을 해줘야 한다는 거겠군. 윤후도 마찬가지고.”
검성과 천통자의 이야기를 듣던 약선이 끼어들었고 그녀의 말에 천통자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처럼 무림맹이 기댈 곳은 검성과 약선이 상대의 수장들을 압도적으로 꺾어주는 것 그것만 바래야했다.
“불마사의 결속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못하니까요. 이전의 불마사의 행보에서도 활불이 무당산에서 협공을 당해 큰 상처를 입자 결전을 피하고 후퇴를 선택했던 불마사라 이번에도 활불이 패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천통자는 말하면서 검성을 보았다. 비천에서도 이번 싸움에서 전면전은 정파의 압도적 패배라고 보고 있었다. 수적 열세는 당연하고 절정 이상의 고수들도 차이가 있었다.
그저 정파가 바라볼 수 있는 변수는 천통자가 말한 검성과 약선이 활불을 이겨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불마사의 각 종파의 수장들이 환영신마급의 실력자라고 했는데 현재 무림맹에 그들과 싸울만한 실력을 가진 자가 누가 있지?”
“음... 일단 이곳에 있는 분들은 가능할 듯 싶고...”
천통자는 이윤후를 살짝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윤후가 이렇게까지 평가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천통자는 말하면서도 조금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무림맹주인 강유 대협도 무림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실력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환영신마 급까지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으나 맞서 싸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림과 무당이 그저 자리를 채운 인물은 아니었나보군?”
검성은 강유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딱히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그저 말처럼 소림과 무당이 현재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대협으로 칭송받는 강유를 무림맹주에 앉히고 소림과 무당이 무림맹의 일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모르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강유는 환우십강 중 일인입니다. 마교와의 일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죠. 검성께서 예전에 상대하고 검성의 칭호를 얻었던 혈천검마(血天劍魔)를 기억하시죠?”
“그래. 마교제일검(魔敎第一劍)이자 마교제일의 고수로 평가받던 인물이었지 내가 지금까지 싸워본 자들 중엔 가장 강하다 느낀 인물이었다. 고작 반초차이로 내가 우위를 점했고 그때 그 반초차이가 아니었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겠지.”
검성은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살짝 주먹을 쥐었다 펴곤 천통자를 보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환우십강에 이름을 올린 인물 대부분은 마교와 일전에서 공을 세운 당시 무림의 절대자들입니다. 그중 강유 대협은 혈천검마의 유지를 이은 듯한 자와 대결에서 호각의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마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던 터라 아마 직접 검을 맞대본 강유 대협조차 상대한 이가 혈천검마의 유지를 이은 자였는지는 몰랐을 겁니다. 그렇기에 무림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죠.”
“혈천검마의 제자라. 확실한가?”
혈천검마의 유지를 이은자라는 이야기에 검성의 눈빛이 바뀌었다.
“네. 당시에는 정보가 미흡하여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이후 그가 누군지 파악했습니다. 혈천검마의 손자인 막사평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혈천검마의 자리였던 혈천대주의 자리를 잇고 있는 마교의 핵심 중에 핵심이었죠.”
“호랑이 밑에 견자(犬子)가 나지 않았을 터 강유의 실력이 그리 뛰어난데 왜 무림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 환우십강이라곤 하나 다른 이들이 비해 거의 초야에 묻혀 산 인물이던데?”
“좀 특이한 인물이긴 하죠. 검성을 굉장히 존경한다고 합니다.”
“나를?”
“네. 강유 대협은 마교와 일전 이후 거의 무림에 두문불출 하였는데 검을 익히고 검성의 발걸음을 쫓는데 전념한 인물이라 주위 사람들은 평하더군요. 욕심도 없고 학식도 높아 천상 정인군자(正人君子)라 합니다. 무림에 그만한 실력을 가졌으면 세력과 많은 것을 욕심낼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것에 욕심 없이 귀향하여 산 인물이니까요.”
“그렇군. 어떤 인물인지 알겠어. 예전의 나처럼 답답하고 꽉 막힌 자로군.”
검성이 강유를 자신에 빗대어 표현하자 약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듯는 동안 예전 협 과 의를 부르짖던 당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당신도 느꼈군요. 당신을 존경한다더니 정말 당신의 뒤를 쫓은 자 같아요.”
약선도 내내 듣는 동안 검성의 젊은 시절과 닮아있는 강유의 평가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 외엔 실력자가 있나?”
“무당의 현월자(玄月子)가 유일할 듯 합니다. 아마 현월자는 환영신마에 비해 한참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당의 기재이고 일생을 무당의 모든 무공을 배웠다고 알려진 인물이나 환영신마가 워낙 전대의 노마두이다 보니... 그와 견줄 자가 현 무림에 없긴 하죠.”
천통자는 말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정파는 흑월도존으로 인한 기나긴 평화로 인해 나태해졌고 실력을 키우는데도 태만했다. 무당은 불마사의 혈겁 이후 크나큰 피해로 복구하기 벅찼고 소림 역시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고 복구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다.
평화는 정파를 좀먹었고 나태해진 정파는 현재 위기를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