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불마사의 혼란
“사마령이 모든 것을 알고도 협조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느냐?”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살짝 말문이 막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사실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아차 싶었다.
“그럴 가능성에 대한 염두를 하지 않았네요. 어차피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림에 대한 복수이니 이미 알고 협조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일단 환영신마와 이야기했을 때는 사마군과 사마령 둘 다 속인 것처럼 이야기하긴 했는데 네가 말하는 것처럼 사마령이 설령 지금 상황을 몰랐고 우리가 알려준다 한들 그 아이가 우리에게 올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구나.”
“네, 검성의 말이 옳은 듯 합니다. 정말 모르고 있다고 한들... 차라리 끝까지 모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마령의 입장에선...”
천통자는 말하면서도 사마령이 참 기구한 운명이라 생각했다. 가문에 화가 없었다면 진천문의 출신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았을 여인이었는데 모두에게 속아 전란의 한가운데 서 있게 된 것을 말이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천통자가 이내 입을 떼었다.
“신마의 시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자신이 물었는데 다시 물어오자 천통자는 화가 났으나 늘 해오던 검성의 장난 같은 것이었기에 참았다.
“보통 늘 시신의 처리는 저희에게 맡기셨는데 굳이 이곳으로 옮기라고 하신 것은 따로 의중이 있으신 게 아닙니까?”
“그러니 너에게 묻고 있지 않느냐? 신마의 시신으로 뭘 하는 게 가장 좋을까?”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참자... 날 놀리는 게 취미인 노인네이니... 참고 참고 또 참아야한다.’
천통자는 화를 꾹 눌러 앉히고 웃으며 입을 떼었다.
“신마의 시신을 모두에게 보임으로써 이곳에 모인 자들의 사기가 충천해있으니 그것은 검성께서 신마의 시신을 이곳으로 가져온 첫 번째 이유겠죠?”
“그리고?”
“그리고 제 생각엔 검성께서 신마의 시신을 불마사의 진영에 보내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맞습니까?”
“잘 알고 있구나.”
“혹시나 다른 의도가 있으신가해서 여쭈어본 것이죠. 그럼 그렇게 준비하면 될까요?”
“그래. 네가 무림맹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 후 신마의 시신을 그쪽으로 보내주어라.”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천통자는 모든 일을 자신에게 미루는 검성의 모습에 조금은 얄미웠지만 이렇게 무림의 일에 나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투정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검성이 자신에게만 장난을 치고 살갑게 대하는 것은 천통자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비천의 은위단이 천통자의 일을 돕기 위해 따르고 있지만 그들은 천통자와 검성의 모든 일을 따로 비천에 보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성이 각별하게 여기는 천통자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비천에 이야기되고 있었고 향후 천통자가 노리는 비천의 회주자리에 오르는데 검성과의 친분은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
환영신마의 죽음이 무림에 알려지자 또 다시 무림은 이윤후를 찬양했다. 검성의 제자로서 뇌절검룡이라 불렸던 그를 무림은 신검(神劍)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명성을 더해가는 이윤후의 모습에 많은 무림인들은 감탄과 함께 시기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아졌다. 검성 하나만으로도 강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의천문인데 이윤후가 실력을 보이며 무림에서 명성을 쌓자 의천문은 그야말로 무림의 절대세력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불마사와 만독곡의 일로 인해 무림의 세력구도가 달라져있었는데 이제 무림은 의천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냐며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불마사의 진영.
그날따라 안개가 심하게 낀 아침 한치 앞도 안 보일만큼 시야가 불분명했는데 안개가 사라지고 불마사의 진영 입구엔 묵색 관 하나가 발견되어 수뇌부들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관이 있는 입구에 도착한 것은 사마령과 월명종(月明宗)의 수장인 텐진 라흐파였다. 붉은 승복을 입은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관에 다가가 관을 열었다.
“역시 소문대로 신마의 시신이군요.”
텐진 라흐파는 사마령을 바라보고는 말했고 관을 다시 닫았다. 이미 불마사에도 이윤후가 환영신마를 이기고 그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그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시신이 단긴 관이 도착하면서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갈라진 서장의 종파들 간의 가교 역할을 환영신마와 사마령이 해왔기에 종파들 간에 환영신마와 신뢰가 두터운 종파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월명종이었다.
그렇기에 관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텐진 라흐파가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신마의 실력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검성의 제자가 그리 뛰어나단 말인가?”
사마령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황교종(黃敎宗)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가 서 있었다.
“타에 도르제님도 오셨군요.”
사마령은 그를 보자 깍듯이 예를 취했다. 표면상으로는 불마사의 천지쌍존 중 지존으로 모든 것을 사마령이 총괄하고 있었지만 종파의 수장들은 활불과 동급인 존재들이었다.
열두 종파 중 가장 강한 활불이 모든 종파의 수장을 맡고 있을 뿐 각 종파의 수장들은 동일한 위치로 취급받고 있었다.
“검성의 제자가 이윤후라고 했나?”
“네. 이름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사파를 통합했던 사왕련의 련주도 그가 쓰러뜨렸습니다.”
타에 도르제의 물음에 사마령은 답했다.
“내가 한번 겨루어 보고 싶군. 환영신마를 이긴 실력을 직접 보고 그의 복수를 내가 해주어야겠어.”
타에 도르제는 호승심에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황교종은 파원종 다음으로 싸움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라 그곳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 역시 싸울만한 상대가 나타나자 환영신마의 죽음은 별개로 기뻐하고 있었다.
검성의 상대는 활불이 할 것이 분명했기에 각자 공을 세울 상대를 골라야하는 그들이었기에 타에 도르제는 이윤후를 먼저 선점하고 나선 것이었다.
“활불은 언제 도착하는가? 지존.”
“아마 삼일 이내 도착하실 겁니다.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활불께서 돌아오시면 전면전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저들이 이렇게까지 도발을 해오는데 끝까지 참아야 하는가? 당장이라도 종남산을 올라 산을 불태우고 저들의 피로 산을 물들여 환영신마의 넋을 위로해주어야 마음이 풀릴 듯 싶은데 말이야.”
타에 도르제는 그간 계속 종파 수장들을 설득하여 활불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그냥 먼저 공격하자고 말해온 인물이었다.
‘싸움에 미친 늙은이... 젊었을 적 너무 문제를 일으키고 다녀 광승(狂僧)이라고 불렸다더니 그 성미는 어디가지 않는구나.’
사마령은 타에 도르제를 바라보며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종파 수장간의 회의 때마다 계속 타에 도르제가 다른 수장들을 선동하여 얼른 종남산을 오르자고 떼를 쓰는 통에 사마령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이젠 환영신마의 시신까지 이렇게 왔으니 정말로 공격하자는 그들의 의견을 그냥 묵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환영신마와 돈독한 사이의 종파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이 타에 도르제의 의견에 동조할 경우 이제 사마령이 계속 반대할 수도 없었다.
종파회의는 철저한 다수의견 집행이 원칙이었고 이제는 타에 도르제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다수가 될게 분명해보였다.
“지존. 당장 종파 수장회의를 소집해주시오. 황교종의 수장으로서 요청하지. 이렇게 천존의 시신까지 받아놓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말이오.”
타에 도르제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강압적이었다. 원래부터 그는 지존이 모든 것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자였고 이번 기회를 통해 지존이 자신의 모든 의견을 막은 것을 뒤집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황교종의 수장인 타에 도르제의 요청을 받아 종파회의 소집을 진행하겠습니다.”
사마령은 답을 하곤 자신의 수하를 불러 무언가를 지시했고 그것을 본 타에 도르제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였다.
‘타에 도르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당장이라도 싸움을 일으키려 하겠지. 활불의 복귀까지 삼일... 그때까진 어떻게든 내가 시간을 끌어야해.’
사마령은 타에 도르제의 표정을 보자 조금은 화가 치밀었다. 자신이 차근차근 진행해오고 이제 대업의 완성이 코앞에 와있건만 섣부른 생각으로 그것을 망가뜨리려하고 있었다.
‘내편이 되어줄 수장들을 미리 만나 의견을 타진해 두어야한다. 종파 회의 때 만일 당장 싸움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면 나로서는 막을 수 없어...’
사마령의 마음은 급해졌고 그것을 아는지 타에 도르제의 표정은 그녀를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회의 시간 전까지 난 친우들과 담소를 좀 나눠야겠군. 여기 오지 못한 그들에게 이야기도 해주어야겠고 말이야. 나 먼저 가겠소.”
타에 도르제가 사라지자 텐진 라흐파가 사마령의 곁으로 다가왔다.
“타에 도르제는 환영신마의 죽음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킬 모양인 듯 합니다.”
“그런 듯 하네요. 광승이라 불렸던 그를 너무 억제하고 있긴 했죠. 제 실책인거 같아요.”
텐진 라흐파의 말에 사마령은 아쉬운 듯 답했다.
“지존이 불마사의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타에 도르제 역시 알고 있지만 그는 싸움을 좋아하는 자이니 긴 평화가 참기 힘들었겠죠.”
“종파회의 전에 최대한 많은 수장들을 만나 타에 도르제의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해야 합니다. 타에 도르제께서 영마파(寧瑪派)의 탁룽 님을 만나 뜻을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요. 저 역시 활불의 복귀전에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존의 뜻에 동참하니까 돕겠습니다.”
“감사해요. 텐진 라흐파. 전 갈거파(喝擧派)의 오거 틴레 님을 만나볼게요. 그 둘만 설득한다면 저희 쪽 의견이 우세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얼른 움직이도록 하죠. 시간이 없으니.”
텐진 라흐파는 먼저 사마령에게 말하곤 진영 안으로 들어갔고 사마령은 환영신마의 관을 비롯해 여기 상황을 정리해야했기에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서야 진영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지존. 바로 갈거종파의 진영으로 가실 겁니까?”
묵령이 사라지고 자신의 호위와 수행을 맡고 있는 지운이 나타나 그녀의 옆에 따라붙었다. 그 역시 진천문의 생존자 중 한 명이었고 묵령과 함께 그녀를 수행하는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바로 가자. 타에 도르제의 요청으로 종파 회의가 확정된 만큼 정오 이전에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나 뜻을 전해야 한다.”
“네.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운이 앞장서 그녀를 수행했고 그들의 발걸음은 갈거종파의 진영으로 향했다. 환영신마의 죽음으로 인한 불마사의 갈등이 조금씩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사마령은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